〈 54화 〉54화. 심문
검을 바닥에 꽂은 채 멍하니 앉아있는 내게 에라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속셈이냐?"
"무슨 속셈? 그럼 지금 당장 죽일까?"
"아니다!!! 말이 잘못나온거다, 사과하지"
검을 쥐려했던 손을 아래로 떨구고서는, 유하연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는 랄라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찌르기를 멈추고, 노란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난 그런 말은 듣지도 못했는데... 설마 너, 처음부터 이런 일인줄 알고 받아들였던거냐?"
"저도 오고나서 들은겁니다"
"다 들어버렸는데 안하면 좆되니깐 어쩔 수 없이 하는거라고요"
"그래?...... 정 하기 힘들면 내가 대신 해줄 수도 있는데"
그녀는 바닥에 꽂혀진 검을 집어들더니 유하연의 목에 갖다대었다. 이러한 그녀의 돌발행동에 나 뿐만 에라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특히 에라,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당장 그만두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해줘, 말어?"
"......"
"젠장!젠장!!... 잠깐만!! 나한테 좋은 수가 있어!!"
"그러니깐 그 검 치우고 내 얘기 좀 들어줘!!!"
"일단 그녀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죠"
내 결정에 그녀는 군소리 하나 없이 잘 따라줬다. 갑자기 성격이 순둥해진게 적응이 안됐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해보시죠,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녀를 나한테 양도해라"
"들을 가치도 없었군"
"잠깐만! 아직 얘기 안끝났어!!"
"그녀를 나한테 양도해주기만 한다면 아무 해코지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가겠다"
"이 년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는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야?"
"니는 지금 잡혀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널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아니, 상황은 바뀌었어"
"뭔 개소ㅡ"
"입 다물어봐, 밖의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한 마디 하려다가 랄라의 말에 입을 닫고 밖의 분위기를 감지했다. 밖은 새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귀는 쫑긋 선채로 연신 흔들어대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듣고 있는 것처럼.
"아마도 이 여자의 동료들같은데?"
그녀의 물음에 에라는 미소를 흘리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곳에 나만 온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아쉽게 됐군"
(이럴려고 일부러 시간을 끈 거였구만)
"망할년 같으니라고..."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일거야 말거야?"
밖에서 나는 발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한다면 받아들이지"
"너희들에게 전혀 해코지를 하지 않을것임을, 나의 임라리스 님에 대한 충성심을 걸고 맹세하지"
".......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반디트가 알게 된다면 그녀뿐만 아니라 나 또한 죽게된다고"
"걱정마라,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오직 너와 우리들말고는 아무도 모를 거다"
에라의 확신에 나는 유하연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유하연을 실제로 죽이는 것보다 가짜로 죽였다고 말하는 편이 그녀와 나, 둘다에게 최선의 선택지였다.
"랄라 씨, 유하연 씨 몸에 겨눈 검 치워주세요"
"저 여자 말을 믿어?"
"믿는거 외에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
이번에도 그녀는 내 말에 순순히 따라줬다. 나는 에라의 몸에 묶여진 밧줄을 풀어주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잡았던 검은 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유하연을 안아 든채로 밖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여러 발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멀어져 갔다.
(이걸로 된거야)
대자로 드러누워 한숨을 푹 쉬었다. 망설이지 않고 죽였더라면 후환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지, 망설임 없이 베어죽였다면 그녀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 났을것이며 내게는 커다란 죄책감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게 최선이다.
"만약에 저 유하연이라는 년이 너한테 해코지 하면 그땐 어쩔려고"
"그땐 그때가서 생각해보죠"
옆으로 돌아누어 눈을 질끈 감았다. 최선의 선택이 후회로 바뀌기까지는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 -- 62. 심문 -- >
(빌어먹을... 괜한 짓 한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년이 반디트한테 걸리면 그날로 난 죽은 목숨인데)
왼쪽 눈이 아작이 난 채로 기절한 비아데나르를 쳐다보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손발이 못에 박힌 채, 십자가형을 당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빨리 심문을 끝마치고 부대로 합류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의 얼굴에 주먹을 세게 날렸으나 일어날 기미가 없었으며 밖으로 이어진 구멍을 쳐다보니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랄라가 다리 사이에 꼬리를 밀어넣고서는 옆으로 누어 자고 있었다.
이 여자는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 자는게 습관인지 아예 두 손을 바지에 넣고서는, 새액ㅡ거리며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몸매는 진짜 죽여준다)
쫙 달라붙은 가죽바지로 인해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루나보다 조금 더 컸다.
(아내들 엉덩이 만지면서 잔게 엊그제 같은데)
씁쓸한 마음에 손으로 자지를 주물럭 거렸다. 그러고 한참을 있자 마침내 그가 깨어났다.
"으으......."
퍼억ㅡ!
"개씨발새꺄! 왜 이렇게 오래 쳐자?!!"
"크으읍.... 니는 꼭 내가 죽여주마"
"내가 니한테 뒤지면 사람이 아니다, 병신아!"
아직도 누가 위인지 분간하질 못하는 것 같아 그의 왼쪽 눈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이러면 분간하고도 남을 것이다.
"크아아악!!!!!"
"크흠! 이제 심문을 시작하지"
"흐흐흐흑... 씨발새끼,씨발새끼,씨발새끼"
"입 다물고 좋게 말할 때 내 질문에 답하는 게 좋을거야, 친구"
첫 번째 권능이 발현되자마자 그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마치 오랜 지기를 보는 것과도 같은 눈빛이었다.
"이봐 친구, 왜 내 몸이 묶여있는거지?"
"너 기억안나냐? 피 흘린 채 쓰러져있던 널 업고 내가 죽을 둥 살둥 달린거?"
예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첫 번째 권능의 대상자는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고, 새로운 존재로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대상자를 상처입혀도 권능을 발현하기만 하면은 그 사실은 전부 잊은 채 나를 친구로서 인식한다는 소리이다. 물론 나와 만났던 모든 기억들도 잊어버린다.
"그렇지 참! 그 년? 그 망할 년은 어딨는거지?!!"
"어떤 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 년이 갑자기 나를 공격해왔어, 아마 이 상처들도 그때 생긴거겠지"
그는 자신의 왼쪽 눈과 깊게 베인 허벅지를 들이밀었다. 허벅지는 어젯 밤에 입었던 상처가 아닌걸로 봐서는 꽤 된 것 같았는데, 필시 랄라가 맡았다던 피 냄새의 정체가 이 녀석일게 분명하다.
"그보다 이곳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던거였냐?"
"그건... 기밀이다"
"짜식이! 친구 사이에 비밀이 어딨다고..."
"말해봐봐, 친구 좋은게 뭐냐?"
"내 부랄친구 같은 너니깐 특별히 말해주는거다"
"메리온 교황 성하께서 제국의 동태를 파악하라 명을 내려 정찰중에 있었다"
"제국이 뭐 나쁜짓이라도 했어?"
"제국은 여기에 잔적소탕하러 온건데, 그게 잘못된 일인건가?"
"멍청하긴, 네녀석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제국이 여기에 단지 잔적 소탕만을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는거냐? 쯧쯧쯧, 인생 헛살았구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면서 말해줬다.
"제국은 여기 카밀란스 산맥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온거라고"
(진작에 알고 있었어, 병신아)
"와! 진짜? 그러면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좆되는 거겠네?"
"좆될 일은 없어, 이곳 카밀란스 산맥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아무리 날고 긴다하는 제국이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국이 지배하는것을 다른 나라들이 두고 볼 것 같아?"
(내가 다른 나라 왕이면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할 것 같은데?)
"듣고보니 그렇네..... 그래서 그런 이유로 너희 비아데나르 전부가 이곳에 정찰온거야?"
"전부는 아니고 극소수만, 우리가 전부 가면 교황 성하님은 누가 지키냐?"
"몇 명 왔는데?"
"말하면 안되는데..."
"내가 니 적이라도 되냐? 씨발놈이 존나 정 뚝 떨어지게 하네"
"으음........ 열 명정도 왔다"
"열 명? 아니 이 넓은 산맥에 고작 열 명밖에 안 왔다고?"
(이 새끼가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그래, 비아데나르가 원체 수가 적잖냐"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한 군단을 맡아서 정찰하는거지, 우리가 뭐 싸우기를 해 뭘해, 그냥 정찰하는 것 뿐인데"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겠군)
"그럼 너는 어느 군단을 맡았는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게 뭐겠어? 4군단이겠지"
"니 말고는 이곳 주변에 아무도 없는거야?"
"아까 말했잖냐, 한 명이 한 군단을 맡는다고"
"그렇구나"
(다행이다, 호송하는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겠어)
"이봐 친구, 근데 이것 좀 어떻게 해봐봐"
손과 발에 차진 수갑과 족쇄를 내밀면서, 그는 빨리 풀어줄 것을 청해왔다. 이에 나는 그건 주술이 담긴 것이라 풀 수 없다고 말하니 곧장 수긍하고는 얌전히 있었다.
진짜로 그것들은 비아데나르 생포를 위해 받은 주술이 담겨진 구속구였으므로 아무리 안간힘을 쓰더라도 절대로 풀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체감상 30분이 지나자 권능이 사라지면서 그는 다시 원래의 살벌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날 보자마자 욕질을 해대며 지랄발광을 쳐댔다. 얌전히 있으라고 고환을 발로 세게 걷어차니 그대로 개거품을 물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으으... 씨발,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운거야?"
자다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인지 그녀의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있었다. 깊어보이는게 굉장히 큼지막한 가슴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한 그녀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내 눈을 쳐다보자, 나는 얼른 그녀의 가슴골에서 시선을 뗐다. 아내들과의 섹스 금단 현상이라도 온것인지 미친듯이 성욕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일어나셨으면 이제 슬슬 움직이죠"
갈 준비를 함과 동시에 아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녀의 야릇한 모습을 머릿속에 밀어버리는데에 안간힘을 썼다. 아내를 생각하자 성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배낭을 매고 밖에 나가서 자위를 쳐댔다. 물론 아내들의 속옷을 딸감으로 삼은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하하하!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빨리 가기나 해"
(이제 화가 많이 풀렸나보네? 어제 일 때문에 심경에 변화라도 생긴건가?)
하긴 어제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
절벽울타리로 향하는 길목 중간 지점에 있을 정찰조와 합류하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어김없이 랄라가 앞에서 길을 인도했고, 나는 뒤에서 입에 재갈을 물린 비아데나르를 호송하면서 걸어갔다.
"야, 빨랑 빨랑좀 걸어!"
새끼가 전직 모험가 출신이면서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걸어가니깐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자꾸 느리게 걸으면 아예 고환을 터뜨리겠다고 하니깐 그제서야 발걸음을 놀려댔다.
한참을 걸은 끝에 갈림길에 다시 되돌아왔다. 해가 저물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가기로 하고, 다시 나무구멍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어젯 밤 했던 그대로 그의 정수리를 딱 부여잡은채 남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고서는, 놈의 턱 밑을 강하게 올려쳤다. 빡! 소리가 들리더니 그는 이내 바닥에 시체마냥 엎어졌다.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게 꼭 죽은것만 같아서 재빨리 맥박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다.
"휴우~ 힘들다, 힘들어"
자리에 앉아 배낭에서 꺼낸 육포를 씹어대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는데, 야릇한 신음소리에 눈을 돌리니 그곳에 랄라가 고양이 자세를 취한 채 몸을 풀고 있었다.
(하아... 씨발 존나 꼴리네)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자석이라도 붙은 것 마냥 자꾸만 시선이 그녀의 엉덩이로 향했다. 순산형 엉덩이인게 애 낳을 때 고생은 덜 할것 같았다.
(아르베님 어째서 저한테 이런 시련을...!)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린 채 그녀의 엉덩이를 뜷어지게 쳐다봤다. 마성의 엉덩이 그 자체였다. 살랑거리는 꼬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못참겠다!)
배낭을 매고서는 살그머니 밖으로 나가 적당히 숨을 만한 곳을 찾아댔다. 때마침 한 명 정도 들어갈 만한 나무구멍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 폭딸을 시전했다.
"스읍ㅡ! 하아~ 루나 냄새, 릴리 냄새! 미쳐버리겠다..."
코로 그녀들의 냄새를 흡입하면서 자지를 부서질듯이 흔들어댔다. 아침에 그렇게 했는데도 내 음경은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우뚝 솟아있었다. 역시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유산소 운동을 하니 정력이 쎄진것 같았다.
(섹스 존나 하고 싶다, 아내들 살결에 파묻혀서 자고 싶어!!)
"야, 너 뭐하냐?"
"뭐여?!!"
갑자기 출현한 랄라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 폭딸을 중지하고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