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화. 주먹다짐
< -- 56. 제물 -- >
밤이 되자 아침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은 연병장에 집핬했고, 우리들 또한 아침에 섰던 자리 그대로 도열한 채 서 있었다. 앞의 연단에는 반디트가 중앙에, 그 양옆으로는 아르베 교단의 수녀들과 소름끼치게 생긴 고문도구를 든 거구의 남성들이 서있었다.
[대대장들은 보고하라!]
아침점호와 똑같이 보고를 끝마친 후 그는 앞에 서 있던 병사들에게 의식에 쓸 제물들을 끌고오라고 명했다. 잠시 뒤 그들은 다리오의 아내와 그 내연남, 그리고 몇 명의 꾀죄죄한 몰골을 한 남녀들을 끌고와 연단 앞에 무릎 끓렸다.
[다리오 백부장, 연단 앞으로 오도록]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리오는 서둘러 연단 앞에 서고는, 열중 쉬어 자세로 예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반디트는 고개를 끄덕인 뒤, 권위적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다리오 백부장, 자네의 아내와 그 내연남을 의식용 제물로 쓸것이다. 반론은 없겠지?]
"그들은 이미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가축들이나 진배었습니다. 군단장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다만 처벌은 제가 직접 하도록 해주십시오, 제게 새겨진 치욕과 불명예를 씻고 싶습니다"
[허락한다. 그 대신 형벌은 아르베 교단의 수녀님들이 결정할 것이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군단장님!"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하겠다!]
반디트가 의식의 시작을 알리자, 옆에 서 있던 수녀들이 연단 앞에 무릎 끓려진 자들 각자의 앞에 서서 기도문 같은 것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손에는 수정구슬이 쥐어져 있었는데, 기도문이 끝나자마자 구슬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비춰졌다.
아마도 저 수정구슬에서 나타난 희뿌연 무언가는, 제물들이 저지른 범죄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테다.
[이제 형벌을 결정해 주시길]
반디트의 요청에 따라 수녀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형벌의 종류를 말하였다.
"이 자는 어린 여아를 겁탈하고 살해한 죄가 있으니, 다리를 절단시킨 후에 산채로 매장시키는 형벌이 적당하겠습니다"
"이 자는 아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집에 남편이 있는 여성과 간통을 저질렀으므로, 모든 뼈를 부러뜨리고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이 적당하겠습니다"
대망의 다리오의 아내와 그 내연남의 형벌이 나왔다.
"이 자는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남편과 제국의 자손을 잉태할 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간남자와 간통을 저질렀으므로 죄의 경중이 큽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자는 결혼 전에도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음으로써 처녀성을 더럽혔음은 물론, 대천사 아르베님께 한 맹세마저 어겼으니 최고형인 사지를 절단시킨 후에 태워죽이는 형벌이 적당하겠습니다"
[기뻐하라! 이번 의식에서 최고형이 나왔으니 우리들은 모두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사랑하는 제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와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에 저 멀리 숲속에서 새들이 떼지어 날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광경에 유하연은 낯빛이 새파래진채로 내게 물었다.
"사람을 제물로 삼는 것도 모자라서 기뻐하다니... 이세계 사람들은 원래 다 이런건가요?"
"이세계인들에게 저것은 액막이와도 같은 의식이니 기뻐하는건 당연한 겁니다"
"신년마다 하는 행사와 비슷한데, 설마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지 진짜인줄은 몰랐어요..."
"그럼 지금 보시면 되겠군요"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니, 그녀가 적응을 못하는 주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되는데 , 그녀는 이세계법이 아니라 지구법을 따르고 있으니 적응을 못하는 거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뒤, 연단을 쳐다봤다. 반디트가 다리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리오 백부장, 자네 차례가 올때까지 대기하도록]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군단장 님!"
[이제 의식을 시작하라!!]
-
차례차례 제물들이 처벌됐고, 이로 인해 숙영지 내에서는 비명과 악취가 들끓었다. 다리가 잘려진 채 매장당하고 있는 자의 절규와 몸에 뼈라는 뼈는 몽둥이에 의해 박살나고 있는 자의 고통에 찬 소리, 망치질로 인해 항문에 말뚝이 박혀지고 있는 자가 내뿜는 분뇨냄새의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이 안정되는게 느껴졌다. 그들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대가로 인해 처벌받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 나는, 반드시 이번 의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문장은 뭘로 하면 좋을까? 성이 '고'씨니깐 고구려... 고구려면 삼족오... 그래! 삼족오가 좋겠네!)
"우웨에에엑ㅡ"
생각에서 깨어나 옆에 서 있던 유하연을 쳐다보니, 그녀는 바닥에다 저녁에 먹었던 음식들을 게워내고 있었다. 반면에 그녀 옆에 서있던 랄라는 하품을 해대면서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이세계인과 지구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연 씨, 괴로우시면 그냥 눈감고 계세요"
"그... 그래도 돼요?"
"조금이라도 봤으니 액막이는 됐을겁니다"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한 말에 그녀는 어색한 미소만을 짓고서는,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한동안 환호와 비명이 뒤섞이던 소리가 이내 반디트가 들어올린 손에 의해 잠잠해졌다.
[다리오 백부장, 형을 집행하라]
그의 말에 다리오는 검을 뽑아들고서는 바닥에 대자로 못 박혀 누워있는, 알몸의 여성에게 다가갔다. 앞에 선 후에는 검을 팔에 대고 고기 자르듯이 썰기 시작했다. 처형자 군단의 전매특허인 토막내기 기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사지가 고기 썰리듯이 썰려나가자 여성은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미친듯이 떨어댔다. 잠시후 팔 다리가 다 잘린 여성은 말뚝에 묶여진 채 그대로 화형당했다. 화형당할 때 비명을 안지른 것을 보면 아마도 전의 과정으로 인해 미쳐버린게 틀림 없을것이다. 간통을 저지른 것 부터가 미친짓이었지만.
"이제 슬슬 출발준비를 합시다"
"하암~ 졸려운데..."
화형당하고 있는 여성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숙소로 돌아가 수색 준비를 시작했다. 자그마한 배낭에는 육포와 건포도 같은 불 없이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응급처치 물품 등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깔고 잘 담요 한 장과 '세른'을 챙겼다.
'세른'은 3년전 지하동굴에서 봤었던 초록색 빛을 뿜어내는 돌을 이르는 단어로 도시의 밤을 밝혀주는 도구로 활용된다. 값이 꽤 나가는데, '방울 토마토'만한 크기의 돌맹이 하나가 무려 은화 10닢이다. 수명도 짧다.
하지만 이번 임무에 내 승급이 걸려있으므로, 이 기회에 큰 맘먹고 산 사치품이다.
"준비 다 하셨습니까?"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준비를 다 마친것 같다. 드디어 임무 시작이다.
< -- 57. 주먹다짐 -- >
횃불이 피어오르고 있는 숙영지를 벗어나 어둠이 깊게 깔린 숲속을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주의를 경계했다. 깜깜한 숲을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하면서 걷는다는게 참 고역이었지만, 포루로 족인 랄라가 있어 조금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역시 늑대라 그런지 밤눈이 밝나보군)
그녀의 엉덩이에서 살랑거리고 있는 꼬리를 뒤따라가면서 문득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지구에서 강아지 꼬리를 만져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감촉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매우 부드럽고 따뜻했다. 하지만 개는 꼬리를 만지면 싫어한다고 했으니 분명 만졌다가는 주먹다짐이다.
(그래도 만져보고는 싶은데...)
"내 꼬리 좀 그만 쳐다보지?"
"씨발...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거 아니야?"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거 참... 불쾌했다면 사과드리죠"
그녀는 내 사과에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더니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돌리자마자 다시 꼬리를 쳐다봤다. 그녀의 꼬리는 양옆으로 폭넓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 존나 만져보고 싶다. 분명 부드럽겠지?)
애써 마음을 접은 채 다시 주변을 수색했다.
-
얼마나 걸었을까... 꽤 숲 깊숙히 들어왔을 때 즈음, 우리들은 커다란 나무구멍에 들어가 '세른'을 던져놓고 휴식을 취했다. 나무가 큰 만큼 안에 공간도 넓어서 세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였다.
(여기 있으니깐 델타가 떠오르네, 그 하피소녀는 아직까지 날 기억하고 있을려나?)
눈을 떠보니 자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 슬퍼하는 하피소녀를 상상하자 순간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릴리, 루나와 아직 하지도 못한 반지교환을 하피소녀하고 먼저 해버렸으니, 인간의 문화로 봤을 때 소녀와 나는 그때 결혼한 거나 진배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조차 안 한 채 냉큼 도망쳐 온 것이,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스러웠다.
(끄응...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고마웠었다고 말해줘야겠다)
"야, 야!"
미친 년의 목소리에 얼른 생각에서 깨어난 뒤,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잔뜩 성난 표정을 지은 채로 입을 열고 있었다.
"어떤 추잡한 생각을 하고 있길래 몇 번을 불렀는데도 대답을 안하는거냐?"
"모르셔도 됩니다"
"내 꼬리 어떻게 만질까 하고 생각한거지?"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꼬리를, 내 눈 앞에 내밀고서는 흔들어댔다.
"만져봐, 만져보라고"
"발정난 개변태 새끼같으니라고, 이런 새끼를 좋아해서 결혼까지 하는 미친 여자가 있다니, 놀랍다 놀라워!"
(씨발!! 감히 내 아내한테 욕을 해? 넌 뒤졌다!!)
"씨발!! 감히 내 아내한테 욕을 해? 넌 뒤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자 이성을 잃고서는, 그대로 이 년의 꼬리를 손으로 강하게 움켜잡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손바닥에는 딱딱한 꼬리뼈가 느껴졌다.
"흐끅ㅡ!!"
꼬리가 만져지자 그녀는 귀여운 신음을 토해내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뒷통수에서 살벌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넌 뒤졌어"
순식간에 내 볼에 그녀의 건틀렛 주먹이 날라왔다. 피할려고 했지만 워낙 빠른 탓에 그대로 맞아버렸다. 입안에서 피맛이 났다.
"씨발년이! 오늘 누가 더 위인지 확인해보자고!"
나는 그대로 내 볼에 다시 날라오는 그녀의 주먹을 한 손으로 막고서는,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말아쥔 채 그녀의 얼굴에 꽂아넣었다. 체내에너지가 발동된 것인지 그녀는 내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서는 그대로 바닥에 자빠졌다. 자빠진 그녀를 보고 벌떡 일어나 몸으로 제압할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배를 발로 걷어차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커헉ㅡ 이런 씨..."
"이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새끼가 감히!!"
퍼억ㅡ!
배를 부여잡은 채 무릎끓고 있던 내게 그녀는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주먹에 얼굴을 맞으면서 바닥에 나뒹굴렀다. 쓰러진 내 배에 올라탄 그녀는 두 손으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조합장에서 만났던 그때처럼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 목을 졸라댔다.
"끄웨에에엑ㅡ 끄으으으으윽ㅡ"
"두 분다 그만하세요!"
유하연의 만류에도 그녀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목을 졸라댔다.
(좆같은 년아! 내가 같은 수법으로 두 번 당하면 사람새끼가 아니지)
주먹에 온 힘을 담아서 그녀의 옆구리에 박아넣었다. 다행히도 먹혀든 것인지 목을 조른 그녀의 손아귀에 담긴 힘이 약해짐을 느꼈다. 이 기회를 틈타 재빨리 그녀의 두 손을 잡고서는 그대로 밀쳐냈다. 밀쳐낸 뒤에는 다급히 상체를 일으켜 미친 년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체내에너지가 발현되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내 주먹을 맞고서도 바닥에 자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 노려보고 있었다.
"죽여버릴테다"
"어디 한 번 죽여봐라, 미친 년아"
그 다음부터는 이성을 상실한 채로 미친듯이 싸워댔다. 주먹이 날라오면 나도 주먹을 날렸고, 아픔이 느껴지면 그녀한테도 똑같은 아픔을 선사해줄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렇게 한참을 싸운 끝에 이성이 돌아오자 나는 바닥에 자빠진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크으윽...... 씨발... 존나 아프네"
아프지만 그래도 미친 년을 찾기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무 벽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미친 년의 얼굴은 멀쩡했고, 단발의 개털머리만이 엉망진창 되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 어린 살기도 변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씨... 빨.... 나 아직, 콜록ㅡ!... 아직 진거 아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뒤, 주먹을 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날 한 번 노려보더니 그대로 바닥에 옆으로 돌아 누어버렸다.
"패배를 인정하는거냐? 그런거냐고?"
"....."
그녀는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꼬리가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다.
"흐흐흐ㅡ 콜록ㅡ! 콜록ㅡ!... 크으으윽... 흐흐흐흐, 이제 누가 위인지 알겠ㅡ 콜록!"
계속 기침이 나와 목을 풀고서는 침을 탁 뱉으니 피가 잔뜩 섞여서 나왔다. 턱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손으로 쓰윽 흝어보니 피가 흥건히 적셔져있었다.
(어지러운데....)
눈 앞이 침침하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몸에서는 한기가 돌았다.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