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48화. 한밤의 대화 (48/106)



〈 48화 〉48화. 한밤의 대화

< -- 53. 한밤의 대화 -- >





 자리에서 자고 있는 랄라를 노려보면서, 이 년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유하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제가 나가서 잘게요"

"원래 이 여자가 자야되는데 그 쪽이  나갑니까?"

이 미친 년은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


"제가 나가서 자겠습니다"

유하연은 뭔가를 말할려 했지만 무시하고 냉큼 밖으로 나갔다. 외간여자와 몸을 부대껴서 자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자는것이 더 나았다.

밖으로 나오니 숙영지에는 군데군데 횃불이 켜져있어 밤인데도 환했으며 병사들이 물샐 틈 없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졸지 않고 부릅뜬 눈이 군기가 바짝 잡혀있었다.


"에휴 내 신세야"

나와있는 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궁시렁대며 천막을 폈고, 생각도 정리할 겸해서 모닥불 앞에 앉았다.


(유하연이라... 순박한 사람을 내 손으로 죽여야 되다니, 내키지가 않네)


아무리 집 살 돈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도 분명 지구에서 평화로운 삶을 보냈다가 느닷없이 이세계로 소환되는 바람에, 나처럼 갖은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자기네들이 소환해놓고서는, 능력이 마음에 안든다고 죽이려 하다니... 악마같은 새끼들)

한참가량 욕질을 해대다 이내 어떻게 죽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첫 번째 권능을 사용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한밤중에 몰래 그녀를 꾀어서 죽이면 될 것이다. 병사들과는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는 일들이 많을테고, 미친 년은 곯아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방해의 여지는 없었다. 계획을 순식간에 세워버리자 입속에서 무언가가 맴돌아 그대로 내뱉었다.

"오케이, 그렇게 하자고"

"오케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유하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분명 아까 전의 오케이라고 말하셨죠......?"


"........... 저는 그런  한적 없는데요?"


"거짓말! 제가 분명 톡톡히 들었는걸요?!"

그녀의 외침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연 씨, 저랑 친구 됩시다"

"예?"

 번째 권능을 발현해 이 상황을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저한테 갑자기 친구하자고 권유하시는 건가요?"

(뭐야, 권능이 안통하는건가?!! 그럴리가 없을 텐데... 권능이 안통하는 대상은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만...)

그러고보니 천막에서 아내들 얘기를 했을 때 똘망똘망하게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 떠올랐다. 나에 대해 호감을 품지 않은 이상은 낼 수 없었던 눈빛이었다.

(....... 조졌네)

"그것보다도 제 질문에 빨리 대답해주세요"
"지구에서 쓰던 단어를 고.레오씨가 어떻게 알고 있는거죠?"

"어...... 그게 그러니깐..."

"혹시 고.레오씨도 이세계에 갑자기 소환되어버린 지구인인가요? 그렇죠,  말이 맞죠?!"


눈물 젖은 그녀의 눈빛으로 인해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말하고 입막음을 철저히 한 뒤, 임무 도중 죽여버리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마,맞습니다, 근데 지구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고 계신겁니까?"


"그게 시,실은..."


"여기서 말할 게 아니라 제 천막에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눌까요?"


내 제안에 그녀는 선뜻 수락했다. 그녀는 천막 안에 들어와 앉고서는 주변을 흘깃거리며 소곤거리듯이 말을 꺼내었다.

"사실 저는 용사예요, 지금은 신분을 위장하고 모험가 신분으로 와 있는 상태죠"


"그러시구나, 근데 왜 신분을 숨기면서까지 여기에 와계신 겁니까?"


"에흐리스께서 저보고 실전경험을 쌓으라고 말씀하셔서 여기로 보내졌어요"

"용사면은 엄청 강하시겠습니다?"


"...... 사실 엄청 강하지는 않아요... 조금 강하다고 해야될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던 그녀는, 재빨리 얼굴에 환한미소를 채우고서는 내게 질문을 걸었다.

"고.레오씨도 그러면 저하고 마찬가지로 용사로 소환당하신 건가요?"


"저는 잘못 소환된 탓에 감옥에 갇혀있다가 겨우겨우 탈출해서 지금 모험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계셨다구요?! 너무한거 아니에요? 자기네들이 억지로 소환해놓고서는..."

처음으로 과거를 털어놓고, 공감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뭐, 그래도 지금은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깐 상관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결혼할 여성분도 두 분씩이나 계신다고 하셨죠?"
"저하고는 다르게 잘 적응하시고 계신 것 같네요, 부러워요"

"아무래도  년씩이나 살았으니 적응을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죠, 하연씨는 이세계에 온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일년 정도 됐어요, 처음에는 영화나 소설로만 봤던 일이 저한테 일어나니깐 좋았었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더라구요"

(공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
"용사시니깐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마니우스씨 하고는 다르게 저는 능력이 별로 안좋은데다 싸움도  못 해서 맨날 찬반 취급만 당했어요"

"능력이 뭔데요?"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수줍은 얼굴을 하며 품에서 조그마한 솜 인형을 꺼내들었다. 지구에서 봤었던 곰인형과 똑같았다. 이런 모습의 곰인형은 이세계에 없었으므로 그녀가 손수 만든 인형일 것이다

"제가 직접 만든 인형인데,   움직여볼게요"

바닥에 내려놓은 곰인형에게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곰인형한테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나오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인형술인가)


곰인형은 두 발로 일어서고는, 아장아장 걸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저는 인형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 이 능력을 사용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내 무릎까지 올라온 곰인형은 이내 가랑이 사이로 뛰어들어왔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반디트가 했던  처럼, 광대들이 즐겨하는 인형극하고 별반 다를게 없었다. 존나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활용력과 응용력에 따라 능력은 천지차이인 법이지)
"혹시 골렘이라든가 그런 것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예를 들면 다수의 골렘을 움직여서 싸움을 시킨다든가"

"아쉽게도 제가 직접 만든 솜인형만 움직일  있는데다, 움직이는게 고작이라 싸움은 못해요"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능력이다. 제국이 왜 그녀를 버리고자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같다.

"......"

"고.레오 씨가 봐도 정말 형편없는 능력이죠?... 그래도 저는 이 능력이 마음에 들어요"

그녀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였다.


"보육원 생활을 하면서 외로울때마다 인형하고 같이 놀면 혼자가 아닌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항상 인형이 사람처럼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능력을 가지니깐 정말 좋은거있죠?"


(그만 말해, 죽이기가 더 힘들어지잖아)

"근데 여기 사람들은 제 능력이 쓸모가 없대요, 싸움에 도움도 안되는 쓰레기 같은 능력이라고..."


여태까지 쌓여왔던 감정들이 복받쳐 오르는지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속에 담아놨던 울분들을 토해냈다.


"이세계에 용사로 소환되면 지구에서하고는 다르게 쓸모 있고 가치있는 사람이  줄 알았는데... 결국은 지구하고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과는 다르게 싸움도 못하는데다 겁도 많고 잘하는거 하나 없는 제 자신이 싫어요"

"혹시 어떤 종류의 소설을 보셨습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눈가를 슥슥 비빈 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등학생이 이세계ㅡ"

"하연 씨는 평화에 찌든 학생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세계에 와서 잘 적응할거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그거는 아니지만..."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무 살이요"

"이쪽 세계에서 사람 죽여본 적 있으십니까?"

"예?! 그럴리가요... 그런 적 없어요"

"사람을 패본적은요?"


"아니요... 없어요"

"그러면 하연 씨가 적응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평화주의자이신 하연 씨께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한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치만 고.레오 씨는 적응하셨잖아요?"

"그거야 제가 지구에 있었을 때, 악착같이 살려고 버둥대는 바람에 볼거 안볼거 다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조금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소환되자마자 구더기 같은 감옥에서 범죄자 새끼들하고 같이   가량을 갇혀지냈으니 적응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또한 초장부터 시체는 질리도록 많이 봐온데다, 커즐린때는 미치광이처럼 사람들을 죽여댔다. 반디트를 만났다. 적응이 안되는게 더 이상한 것이다. 페르디난드 같은 경우에는 중세시대에 살았던 놈이었으므로, 자신이 살았던 세계에 괴물이 추가된 것 뿐일테니 손쉽게 적응할  있었을 것이다.

"소설하고 현실은 다른 법입니다, 절대로 하연 씨가 못나서 그런게 아닙니다, 오히려 정상입니다"

"그,그런건가요?... 고마워요"
"저한테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준 사람, '임라리스'님 말고는 없었어요"

(이걸 따뜻한 말로 여기면은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살아온건지 가늠조차 안되는군)
"'임라리스'님과는 매우 친한 사이였나 봅니다?"


"예, 저를 언니처럼 따르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임라리스'님이 아니라 여동생처럼 느껴질때가 많았어요"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서는, 지구에 살았을때의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끝마친 뒤에는 내 과거를 얘기해달라고 하길래 말해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서는 우리들은 오늘 나눴던 대화들을 비밀로 할 것을 약속한 후 잠을 자기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앉은자리 그대로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얼떨결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보육원 출신의 천애고아인 그녀는 세상의 풍파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소심한 성격의 처자였지만,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보다 더 힘든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나랑 똑같이 이세계에 소환돼서 수많은 시련들을 겪었다. 이러한 점들이 무심코 내가 그녀를 위로하게 만들었으며, 그녀의 삶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를 죽이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내가 반디트의 손에 의해 입막음당하게 된다. 릴리와 루나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죽이는 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그녀의 순수한 미소가 마음에 걸려 쉽사리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 -- 54. 아침 점호 -- >



부우우웅ㅡ 부우우웅ㅡ


나팔소리에 번뜩 눈을 뜨고서는 검을 움켜쥐었다.


"젠장할! 괴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긴장된 마음으로 천막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서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습에 재빨리 무장을 갖춘 상태로 뛰쳐나갔다. 다른 천막에서도 모험가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었다.


[모험가들은 모두 아침 점호에 참석하도록, 제일 늦게 오는 자는 배식해주지 않을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숙소 앞에서 병사가 큰소리로 외치는 말에 랄라와 유하연이 자고 있을 천막을 쳐다봤다.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도대체  하길래 안나오는거야?!)

헐레벌떡 달려가 천막문을 열어젖히니 대자로 드러누워 자고있던 랄라와 그 사이에서 힘겹게 몸을 빼내고 있던 유하연의 모습이 보였다. 후드를 벗은 유하연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의 긴 머리로, 앞머리는 눈썹까지 오게끔 일자로 반듯하게 잘라져 있었다. 얼굴은 어제 봤던대로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하연 씨, 빨리 나오셔야 됩니다"

"예! 랄라 씨는 제가 깨울게요"


그녀는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서는 자고 있었다.

(미친년이 진짜)
"이봐요, 좀 일어나시지?"


발을 잡고 흔드니깐 그제서야 그녀는 눈을 번뜩 뜨고서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안 일어나시니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빨리 일어나시죠"


"..... 안 그래도 일어날려 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뜰려나 그녀는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한 채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어제 내가 보여준 따끔한 맛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나보다.


(드디어 성깔을 좀 죽이나 보네)


"빠,빨리 나갈게요!"

"하연 씨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보니깐 벌써  준비하셨구만"

말함과 동시에 미친 년이 갑자기 나를 째려보자, 나도 같이 째려봤다.

"왜 째려보십니까?"

"....."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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