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47화. 유하연 (47/106)



〈 47화 〉47화. 유하연

< -- 52. 유하연 -- >

"이제 좀 개운하네!"

주먹에서 피가 배올 나올때까지 때리니깐 꿀꿀했던 기분이 금새 풀리는것이,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내들에 대한 걱정도 눈 녹듯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들이 어떤 여자들인데 그런 천박한 짓거리를 하겠는가? 오히려 그녀들을 조금이나마 의심한 내가  병신같았다.

"밥 좀 처먹고 잠이나 자야겠다"

병사들이 대신 불침번을 서고 있으니 오늘은 마음 푹 놓고 자도 된다.



-

주먹에  상처들을 쪽쪽 빨면서 숙소에 도착하니, 낮보다  많은 수의 모험가가 모닥불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에 허기가 져서 빨리 지정된 천막으로 갔다.

"뭐야, 천막에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천막주변에 모험가들이 득시글거렸는데, 자세히 봐보니 누군가를 손가락질 하면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어떤 또라이 새끼가 내 천막 앞에서 싸움질 하고 있는거여?!)


욕 박을 준비를 단단히 갖춘 채 서둘러 천막으로 향했는데, 가서 보니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모닥불 앞에서 날고기를 씹어먹고 있던 랄라를 욕하고 있었다.

[저 년 저거 남자들 후리고 다니는 창년아니야?]

[누더기 같은 머리에 장신의 체구를 보면 딱 맞네, 맞아!]

[새벽의 모험가 조합 지부장한테 몸 대줘서 동메달레스트가 됐다는 소문이 있던데]

[존나 수치스럽네, 저딴 년이 모험가라니, 씨발!]


[날고기를 생으로 먹는것 좀 봐, 미개한 짐승새끼 같으니라고]

그들의 조롱과 비방섞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녀의 성격상 개지랄을 떨면서 여기 있는 이 녀석들하고 대판 싸웠을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닥불만을 쳐다 본  날고기를 물어 뜯었다.


"커흠!"

식사도 해야 하니 그들을 돌려보내고자 헛기침을 크게 하며 주의를 끌었다. 주의를 끄는데에 성공하자 이내 입을 열었다.

"거 남의 천막 앞에서 몰려있지 말고 각자 자기 천막들 가시죠"


"니 새끼가 뭔데 우리한테 가라 마라냐? 설마 저 년하고 같이 의뢰하러 온거냐? 좆만아"

오징어 같은 새끼가 누런 이빨을 열어대며 아가리를 터니깐 기분이 갑자기 더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입에  한사발을 장전시켰다. 그의 목에는 동메달이 걸려있었고, 등에는 거대한 망치가 매여져 있었다. 싸우면 내가 이긴다.

"그러면 어쩔건데? 어쩔거냐고 추악한 새끼야!"


"뭐, 추악? 이 씨발좆새끼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입 열지마, 냄새가 씨발 여기까지 풍기네. 니는 치약 살 돈도 없냐?!"

이 세계의 치약은 동물의 뼈를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후 약초를 섞은 것이다. 왠만한 거지새끼가 아닌 이상은 누구나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이 저렴한데다, 틈만나면 국가와 교단에서 전염병 예방 차원으로 공짜로 뿌려대곤 한다.


"공짜로 뿌려대잖아,  받아서 양치  하고 살아!!"


"오늘 니 죽고 나 죽고다 병신새끼야!"

"병신아! 좀 참아, 저 새끼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거냐?"

망치를 집어든 채 내게 달려오려던 그는, 옆에서있던 동료로 보이는 놈에 의해 제지당하자 얼굴이 시뻘개진채로 씩씩댔다. 그 놈 표정보다 지금은 옆에 있던 새끼가 했던 말이 더 흥미에 와닿았다.

"내가 누군데?"


"아침의 개새끼 과감한 고레오 아니냐?"

"개새끼? '과감한'은 맞는데 개새끼는 갑자기 왜 튀어나와! 뒤질래?!"


주먹을 치켜들자 그는 다급히 입을 열고서는 설명을 추가했다.

"네가 동메달레스트  명을 찢어죽이기에서 잔인하게 죽여버린 일로 붙여진 별명이라고, 개새끼처럼 달려들면서 짐승마냥 죽이는 놈이란 뜻에서"

"아 그래?......... 잠만......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주둥아리를 놀려대!!!!"


듣고 난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순 사람을 미친새끼로 만들어 버리는 별명이었다. 그래서 진짜 미친놈이 뭔지 보여주기 위해 웃통을 까고 포효를 지르자, 그 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놈들도 미친 새끼를 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걸음 물러났다.


포효가 고함으로 변하자 두 걸음 물러서더니, 이윽고 병사들이 찾아와 소동을 진정시켰다.


"애미 씨발, 한 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네놈들 모가지가 내일 목책 위에 마늘 마냥 주렁주렁 매달리게 만들어  테니깐 어디 다시 한 번 해봐봐"


우르르 몰려와서는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니 모험가들 뿐만 아니라  또한 입을 다물고는 얌전히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동네 힘 쎈 형들 말을 들어야지.


"어유! 씨바것 존나 배고프네"

모닥불에 앉아 군장에서 꺼낸 음식들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내게 물어왔다.


"니 정말 미친새끼냐?"

"도와줘도 지랄이네?"


동네 형들도 있겠다,  참에 이 년한테 쓴소리 좀 단단히 해줘야겠다.


"뭐야?!"

"아니, 욕 처먹고 있는걸 미친 놈인것처럼 연기해가면서 말려줬건만 고맙다는 말은 커녕 미친 새끼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건지"


 말에 그녀는 살기어린 시선으로 나를 노려만 볼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성격파탄자까지는 아닌가보다. 그냥 원체 속에 화가 많은 미친 년이다.

"저는 당신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다 설사 싸운다 해도 득 될게 뭐가 있겠습니까? 기왕 같이 의뢰하는거 얼굴 붉히지 말고 잘해봅시다 좀"


그녀는  말을 무시한 채 묵묵히 날고기만 베어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야생 늑대와도 같아 보였다.

(늑대도 뼈다귀를 던져주면 물어다 줄까?)

호기심이 들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진짜로 한다면 그때는 진심 칼부림이다.



-


그녀와 불편한 식사시간을 보내던 도중 로브를 입은 한 여성 모험가가 우리들쪽으로 다가오더니, 소심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기... 여기가 아침의 모험가 조합 숙소인가요?"


"누구십니까?"

역으로 물어오자 당황한 것인지 모자를 뒤집어 쓴 그녀는,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려고 했다. 그래서 일어나서 어깨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누구냐니깐?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지"


어깨를 붙잡히자 그녀는 몸을 심하게 떨더니, 이내 주춤거리면서 답했다.

"모,모험가요...... 물어보니깐 아침의 모험가 조합을 찾으라고 해서......."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 여자, 유하연이 틀림없다.

"그렇군요, 여기 앉으세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얼른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서는, 자기소개를 한  구워진 육포조각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육포조각을 받아들고서는 조물락 거리기만 할 뿐 먹질 않았다.


"육포 싫으십니까?"


"예?...... 아,아니요, 좋아해요"

내가 지그시 쳐다보며 묻자 그녀는 그제서야 육포를 입안에 넣고서는 오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예?... 그건 왜......"


(저 미친년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이름을 왜 물어보는거냐고 지랄을 해대네. 어릴 때 이름 말해서 뒤지게 처맞았던 적이라도 있었던 건가?)
"이름을 알아야 부를 때 수월할 것 아닙니까? 저기요라고는 할 수는 없잖아요"

"아...... 제 이름은 유하연이에요"

(응? 가명을 안썼잖아? 그래서 반디트 그 개새끼가 아무 말도 없었던 거였군)


유하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지락거리고 있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육포조각을  개 더 건네며 재차 질문했다.

"어디 조합 소속이십니까?"

"....... 그...... 기억의 모험가 조합이에요"

"등급은요?"


"동메달레스트예요... 수색 임무를 의뢰받고 왔어요"


(라는 설정이겠지? 참 거짓말을 못하는 처자일세)

옷자락을 꾸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참 보기 안타까웠다. 이런 순진한 처자를 죽여야 되다니 마음이 안좋았다. 고통없이 단칼에 죽여줘야겠다.

"그렇군요... 근데 천막에  명이 들어가기에는 많이 좁을텐데 이를 어쩌나"

"니가 나가서 자면 되겠네"


(씨발년이 진짜)

옆에서 미친년이 한 말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고 제비뽑기를 제안했다.


"두 명은 천막에서, 나머지  명은 밖에서 자기 천막 펴서 자는 겁니다"


"저기.. 저는 천막이 없는데요..."

"제가 빌려드릴테니 걱정 마십쇼, 그럼 전부 동의하는 걸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제비뽑기 결과 미친년이 밖에서 자는 것으로 결정났다.

"씨발!!! 다시 해, 다시하자고!!"


"애새끼처럼 굴지말고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시죠"


"이 새끼! 니가 일부러 나 걸리게끔 한거지?!!"


미친년은 내 멱살을 움켜잡고서는, 한대 칠 기세로 몰아부쳤다. 그래서 나도 한대 칠 기세로 눈을 부라리며 낮게 깔은 목소리로 답했다.

"지랄 염병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라고, 씨발년아"


"너가 내 손에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더는 못 참아, 오늘 니 죽고 나 죽고다)
"죽여보라고, 누가 뒤지나   해보자 어디"


살기를 내뿜은 채로, 멱살을 잡은 미친년의 손을 움켜쥔 후 그대로 들어올렸다. 저번에는 이 년 힘이 존나게 강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약했다.

"끄으으윽..."


그녀는  손을 뿌리치고서는 손목을 어루만졌다. 손목에는 시뻘건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에 머리가 점차 식어가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있어 차분해졌다.

(저년을 힘으로 이기다니... 어떻게  거지?)
(설마 드디어 나도 체내에너지를 구현할 수 있는건가?!)


그러고보니 이알과의 찢어죽이기때 보여줬던 힘과 토벌전에서 검으로 휘파람꾼 오크의 정수리를 깊게 박아넣은 것, 또 최근에는 동메달레스트의 정수리에 검을 쑤셔넣음은 물론 벽을 부실 정도의 괴력을 행사했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때 체내에너지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때 미친년이 갑자기 욕질을 해가면서 호수쪽으로 달려갔다. 나와의 힘겨루기에서 졌다는 것이 분했나보다. 귀여운 년 같으니라고.

드디어 체내에너지를 발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저 미친년을 이겼다는 일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신나게 포도주를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술맛이 일품이었다.

"하연씨도  모금 드실렵니까?"


"술은  먹어서요..."

"그러시군요"

나는 달려나간 미친년을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쁘장한 얼굴의 어려보이는게 스무 살 초반 나잇대의 여자로 보였다.

나보다 어린 년을 죽여야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기분이 하락했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한다.

-


한밤중이 되어서야 우리들은 천막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왼편은 유하연이, 오른편은 내가 누워있었다.


(외간 여자랑 같은 공간에서 자고 있다니... 누가 보면 바람피는 줄 알겠네)


유하연은 낯선 남자랑 같은 공간에서 자고 있다는게 무서운 것인지 몸을 뒤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에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구석에 몸을 말아넣은 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하연 씨, 저 유부남입니다. 그러니깐 그렇게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부남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서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아내 자랑을 실컷 늘어놓으며 답해주었다. 처음에는 무표정하게 듣다가 릴리와 루나가 처음 만났던 일을 들려주자 그녀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릴리라는 여성분은 대단하시네요, 남편이 다른 여성과 교제하는 것을 말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시다니..."


"평생 사랑해줄겁니다, 그래서 제가 허락을 받고 루나네 집에 쳐들어갔는데ㅡ"

펄럭ㅡ!

"여기서 잘거야"


천막의 문이 젖혀지더니  안에서 미친 년이 들어와 내 자리를 빼앗고서는,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이 년의 이런 행동에 당황한 기색으로 급히 물었다.


"이러면 안되지, 제비뽑기로 정하지 않았습니까?!"

"몰라, 난 그런 거 한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잠시후 뒷통수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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