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44화. 아르베 대성당 (44/106)



〈 44화 〉44화. 아르베 대성당

(지가 이름 말해놓고서는 부르지 말라는 건 무슨 심보지?)
"이름으로 안부르면 그럼 뭐라 부릅니까?"


랄라는 내 물음에 짜증이  것인지 테이블을 쾅하고 내리쳤다. 테이블이 스티로품마냥 박살낸게, 이 년 힘은 동메달을 넘어선 수준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동메달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그녀가 아무 말도 안하자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임무에 관한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일곱번째 날에 쾨스호수로 가야 된다는 건 알고 계시죠?"

"첫째날까지 가는 거잖아?"


구릿빛 피부의 다리를 꼬면서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존나 꼴릿해서 화가 났다. 이딴 미친년한테 이런 훌륭한 몸매가 있다니...

"첫째 날까지 쾨스호수로 가는 건 맞는데,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서 짐도 풀고 천막도 치고 굴러가는 상황도 미리 파악하고 그러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네 알 바는 아니겠지만 내  바라고 씨발)
"다른 조합의 모험가들이 먼저 왔다면 저희 조합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때는 그땐거지"

거만한 표정으로 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말을 잃었다.  년은 지금 내 속을 박박 긁으면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하고 시험해보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메달레스트가 이렇게 빡대가리일리가 없다. 보통의 동메달레스트들은 내가 이런 말 하기도 전에 지들이 먼저 솔선수범한다. 더크 그 게으른 새끼도 밥 벌어 먹고 살려고 일에 관해서는 한없이 진지해진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동메달 님은 제가 마음에 안드십니까?"

"어, 존나 마음에 안들어"

혹시나하고 물어봤는데 역시나였다.  년은  싫어하고 있다. 그녀의 답변에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어봤다.

"제가 대체 왜 마음에 안드시는 겁니까? 어제 일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일전에 어깨 부딪힌 것 때문에 그런겁니까?"


"네 얼굴이 맘에 안들어"

내 얼굴 존나 잘생겼는데, 짐승새끼가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대니 빡이 돌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년 이빨을 옥수수 털듯이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었다.

"저도 그쪽 맘에 안듭니다, 각자 따로 출발하죠 그럼"


더 얘기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테니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얼굴이 홍당무가 된채로 주먹을  말아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얼른 1층으로 내려왔다.


하여튼간 우라지게 무서운 년이다.

-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술병을 딴 채 입에 들이부어댔다. 미친 년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더러웠다. 물론 아내들이 해준 서비스는 빼고.

"루카스 이 새끼는 뒤졌나 나타나지를 않네?"

주위를 둘러봤으나 루카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금은보화 모험단 자체가 안보였다.


"누굴 선택했는지 궁금한데 말이지"


턱에 팔을 괸 채 멍때리고 있던 도중 계단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미친 년이 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앞에 도착한 후에는, 날 찢어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할말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채 물었다. 여차하면 칼부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녀는 매우 기분이 안좋아보이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언제 출발할거야?"

"예?"

"언제 출발할거냐고!!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처먹어!!!"

"아아ㅡ 모험가 조합에 있다가 아침종이 울리면 바로 출발할려고 하는데..."


"그래?"

 말만   그녀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한 마음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완전히 또라이 년은 아닌것 같아 내심 마음이 놓였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됐지"

술병을 들이킨 뒤, 조합을 나가 아르베 대성당으로 향했다.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결혼식을 올릴것이니 미리 알아봐야 한다.










< -- 58. 아르베 대성당 -- >





내성벽으로 들어온 후 곧장 피테란데 대성당 쪽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성당 바로 옆에 아르베 대성당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길 들어갈 일은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릴리와 루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35년 모솔인생인 내가, 이 두 팔을 벌린 채 자애롭게 쳐다보는 천사의 그림이 새겨진 문 앞의 올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두 여자를 안고,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온 이 상황이 감개무량했다.

대문 앞에는, 옆 피테란데 교단과는 다르게 성기사가 없었다. 이는 아르베 교단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믿고있는 교단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병신새끼가 아니고서야 이 교단에게 행패를 부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일어나서도 안되었다.  교단중에서 유일하게 데르트 제국에게 비호를 받고있는 교단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딸랑ㅡ 딸랑ㅡ

옆에 놓여진, 종과 연결된 금색줄을 잡아당긴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문이 열렸다. 대문의 안에서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뒤집어 쓴 수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셨는지요?"


"제가 올해 안에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미리 결혼식장  볼려고 하는데 가능할런지요?"

"대천사 아르베님은 사랑에 빠진 자들이 찾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대문을 활짝 열고서는,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앞에 삼면으로 둘러싸인 회색 벽들이 높다랗게 서있었다. 각 면의 벽들에는 기다란 문이 나있었다.

"이 문들은  뭔가요?"


"왼편에 놓인 문은 겁탈과 간통이 의심되는 남녀를 심문하는 밀실로, 오른편에 놓인 문은 겁탈과 부정을 저지른 남녀를 가둬두는 감옥으로, 중앙에 놓인 문은 결혼식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녀의 설명을 들어서인지 왼편과 오른편에는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들어가면 부정을 탈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이러한 내 찡그린 표정에 그녀는 자그맣게 웃으며 서슬퍼런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대천사 아르베님은 겁탈과 간통을 저지른 남녀들을 엄히 처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희들 또한  같은 짓을 저지른 남녀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임으로써  죄를 달게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레오님은 절대로!... 그런 짓을 저지를 분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물론이죠! 믿으셔도 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놈이 겁탈과 간통을 저지른 놈들입니다, 쳐죽여도 시원찮을 년놈들!"

진심을 다해 존나 혐오한다.

"그 마음 변치 마시기를..."

"제 뼈가 가루가 되어서도 변치 않을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대성당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며 나를 중앙에 놓인 문으로 안내해주었다.


"들어가시죠"


그녀의 안내로 중앙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감탄했다.

'아르베의 현현'이라 불린 홀은 공간이 넓고 거대했으며 중앙의 양 옆에는 넓고 기다란 계단이 나있는데 계단참마다 연단이 서있고, 거기서 수녀가 앞에 있는 남녀 한쌍에게 뭔가를 읊어주고 있는 것을 보면 결혼식이 계단참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장은 판테온과 같은 돔 구조로서, 중간에 뻥 뜷린 구멍사이로는 강렬한 햇빛이 들어오면서 공간 전체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이를 통해 흙으로 이루어진 바닥에서 나무와 풀들이 초록빛을 내뿜으며 자랄 수 있었나보다.

벽에 나있는, 여러 대천사들의 형상이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마치 내가 대천사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중에서도 제일 가운데에 있는 아르베의 형상이 그려진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결혼식을 하고 있는 남녀들을 축복해주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괴...... 굉장하군요...... 제가 대천사님들하고 같이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항상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천사님들은 저희들의 곁에 머물고 계십니다"

(진짜로 그렇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은데...)
"그렇군요...... 혹시 결혼식 비용은 얼마나 합니까?"

 물음에 그녀는 쾌활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서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부부간의 신실한 사랑과 화목을 이루는 것으로 대신 받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대천사 아르베님이 원하시는 것일테니"


(공짜라... 정말 좋은 대천사다!)
"제가 대천사 아르베님이 원하시는 것을 평생 쥐어드리겠습니다, 흐흐흐"

"당신은 참 재밌는 분이시군요"


"성녀님!!"

함박미소를 짓고있던 도중 저 멀리서, 달려오면서 성녀님이라고 부른 수녀의 모습에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여기에 성녀님이 어디있다고...... 설마?!)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만난 수녀들은 베일로 얼굴 전체를 가리지 않았었는데, 앞에 서 있는  수녀는 베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왜지?

"성녀님, 또 나와계셨던 것입니까?"

내 물음은 수녀의 말로 인해 깨닫게 되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여자가 바로 성녀님인 것이었다. 성녀였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에게 얼굴을 보이면 안되므로.

"죄송합니다! 성녀님이신줄도 모르고"


냉큼 고개를 숙였다. 성녀 앞에서 주제도 모르고 욕설을 입에 담은 죄, 이성접촉불가인데 바로 옆에서 대화를 건 죄, 신성모독으로 처벌받아도 마땅했다.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났고, 목구멍이  막혀왔다.


(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좆됐다!)

"고개를 드세요"

결혼도 못해보고 좁은 철장에 가둬진 채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상까지 하고 있었던 내게 성녀가 인자한 목소리로 명했다. 명을 내렸으니 응당 따라야 하는 법. 냉큼 고개를 들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게 있으니 당신에게 죄는 없습니다"

"......."

아부를 떨어야 하는 때인데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알고보니 뇌속에서 그냥 입처닫고 있으라고 명령어를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왔는데 불편하게 끼치신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재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순간 성녀의 표정이 외로워보였지만, 단순히 착각한 것이라고 여겼다. 아르베 교단은 전원이 수녀로 구성된 조직으로 추기경이 아닌 성녀가 최고 대표자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여기서 여왕과도 같은 존재임과 동시에 명실공히 모든 여성들의 우상인데, 그녀가 뭐가 외롭겠는가. 성녀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질 뻔 봤네)

이마에 식은땀을 훔치고서는, 결혼식을 하고 있는 남녀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지않아 내가 저 자리에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 35살 노총각 아들이 드디어 장가갑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가를 슥슥 비비고서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루카스가 보였다. 그 옆에는 주문술사 조이가 서있었다.


"저 새끼들 결혼 하는거냐?!"
"그래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거였구만"

그들 주변에는 같은 모험단원들이 박수를 쳐주며 축복해주고 있었는데, 비안만이 보이지를 않았다.


(결국 조이를 선택했구만... 비안이 참 딱하게 됐군)


루카스는 조이의 어깨에 망토를 둘러주고서는, 입맞춤을 했다. 이 의식은 결혼식의 끝마무리 때 하는 행동이었다. 가서 축복의 말이라도 해줄까 생각했지만, 식도 다 끝난 마당에 굳이 찾아가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뒤돌아섰다.


뒤돌아 서려다가 문득 저 멀리 난간 구석진 곳에 분홍색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비안이었는데,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서로를 껴안고 있던 루카스와 조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이 살벌한게 뭔 일 생기는거 아냐?"


걱정되는 마음에 다가가려 하자, 그녀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를 한 번 쳐다보고서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 뭐 설마 별 일이라도 있겠어?"


어깨를  번 으쓱이고 가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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