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2화. 제안 (42/106)



〈 42화 〉42화. 제안

< -- 55. 제안 -- >



"들어가기도 뭣하고..."

방문을 열고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릴리와 루나는 아직까지도 침대에 누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에 들어가기 애매해진 나는, 여관을 나가 정처없이 밖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멜레나가 떠올랐다.


"이참에 잘 지내는지 보러가야겠다"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진 카리오트 대성당으로 발검음을 옮기던 도중, 머리핀을 팔고 있는 상점 앞에 우뚝 멈추어섰다. 이왕 만나러 가는 김에 선물도 줄 겸, 유심히 진열대를 내려다보았다.

데르트 제국의 상징부터 시작해서 교단 상징들의 형상을 한 머리핀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카리오트 교단의 상징을  머리핀도 있었다.


"이거 얼마입니까?"

그 머리핀을 집어든 채 젊은 여성에게 물어보니, 동화 10닢이란다.  쪼끄만한게 동화 10닢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시원스럽게 돈을 건네줬다. 이윽고 선물까지 든 채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단을 향해 걸어갔다.

대성당 앞에는 어김없이 성기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면서 서있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용무를 밝혔다.

"수고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예전에 멜레나 수녀님한테 신세를  일이 있어서 그런데, 면회가 가능하겠습니까?"


"누구신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수녀에게 면회를 요청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흰색 셔츠와 갈색 긴 바지를 입고 있는 나를 위아래로 흝어보며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침의 모험가 조합, 철 동전 고.레오입니다"


"고.레오?"

눈썹을 씰룩거리는 그녀에게 옆에 서있던 여성이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이더니, 잠시 후 그녀는 쌀쌀맞은 태도로 내게 말했다.

"당신이 멜레나 수녀님을 구해준 일은 고맙게 여기지만, 이렇게 멋대로 찾아와서 면회를 요청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더군다나 멜레나 수녀님은 내년에 성녀의 반열에 오르실 분이시므로 이성과의 만남은 전면 금지입니다"


"성녀님이 되신단 말입니까?!"


올해로 맏수녀가 된 소녀가 성녀가 된다는 말에 두 귀를 의심했다. 성녀는 대성당을 지키는 장으로써, 그 지위와 권력이 교단의 직위중에서 대표자인 추기경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직위였다. 또한 수녀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으니 놀랄 수 밖에.

"멜레나 수녀님은 올해로 겨우 맏수녀에 오르신 몸 아니십니까? 근데 어떻게 바로 성녀가 되시는 것인지..."


"대천사 카리오트님의 계시를 전해들은 추기경님의 뜻입니다"


(이퀼리브리오님한테 들은 정보와 내 추측으로 미루어볼때 대천사는 다 떠나고 없을텐데 뭔 계시를 내려? 지랄하고 자빠졌네...... 진짜로 계시를 내린건가?)
"그렇구나..."


이럴  알았으면 진작에 만나러 오는 것인데 하고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성녀가 됐으니  지낼것이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머리핀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뭡니까?"

"멜레나 수녀님에게 목숨을 빚진 은혜가 있어서 미약하게나마 갚고자 하는 마음에"

"이성이 건넨 물건은 받을 수는 없습니다,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그녀는 매몰차게 머리핀을 내게 들이밀었다. 이 년들은 정말이지 앞뒤가 콱콱막힌게, 똥구녕도 막혀있는게 아닌가하고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어, 한참동안을 실랑이한끝에 겨우겨우 건네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앞으로 이런 무례한 행동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이, 예이)


고개를 약간 숙인 후 나는, 다음 행선지인 모험가 조합으로 발길을 향했다.



-


벌컥!

역시 조합에 들어갈때에는 문을 부서질듯이 열고 들어가는게 제맛이다. 조합의 1층은 언제나와 같이 난장판이었다.


"루카스 그 새끼는 어디있지?"

조합에 찾아온것은 다름아닌 비안이 그에게 한 고백의 결과를 듣고싶어서였다. 과연 그는 조이를 골랐을지 비안을 골랐을지 존나 궁금했다. 한참을 둘러봤는데도 안보이자, 옆에 있던 놈에게 물어보니 오늘 조합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새끼, 설마 비안이 고백한 일 갖고 끙끙대고 있는건가?"

"어이 고.레오, 조합장이  찾는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저 멀리서 조합 직원이 내게 말을 걸어와 답해주었다.

"날  찾는데?!"


"씨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빨리 처올라가기나 해!"


듣고보니 맞는 말이어서 냉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당도하니 조합장이 머무는  앞에서, 수녀를 찾으러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어깨를 밀쳤던 수인 년이 서 있었다. 그녀는  존재를 눈치챘는지 노란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갈색의 단발 개털머리에다 상의는 늑대가죽을 둘러쓰고, 하의는 무릎까지만 오는 반바지를 입고 있는게  그때 그년이었다.


(종아리 근육이 존나 미쳤네)

그녀의 맨 종아리는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평범한 여성의 종아리하고는 차원을 달리했다. 팔은 판금보호대로 둘러싸여져 있어 보질 못했지만, 필시 팔 또한 근육으로 도배되어 있을것이다. 필시 배도 근육ㅡ

"뭘 꼬라보냐?"

"예?"


긴 앞머리에서 번뜩이는 그녀의 살기어린 눈동자와 험한 말투에, 순간 벙찐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언제 꼬라봤다고 그러시는지..."

"방금 내 가슴 쳐다봤잖아"

"아... 그건 등급이 어떻게 되시나해서 쳐다본거였습니다,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녀의 목에는 자그마한 동메달이 걸려있었다. 이년이 내뿜는 위압은 다른 동메달레스트들과는 그 기세가 남달랐다. 내 답변에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앞에 서고는, 눈빛싸움을 신청했다.


(이 년 진짜 맛탱이가 갔나? 왜 이러는 거야?)

키도 우라지게 큰게 내 키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내가 10cm 조금 더 컸다.


"저기...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너, 저번에 내 어깨 치고 간 새끼지?"


"그건 제가 아니라 그쪽이 먼저 치신거죠, 말은 바로 합시다"

"씨발!!!"

갑자기 그녀는 내 멱살을 움켜잡고서는 그대로 벽에 밀어부쳤다. 그와 동시에 벽과 충돌한 등에서 둔탁한 통증이 몰려왔고, 멱살이 잡힌 목에서는 헛숨이 입밖으로 토해졌다.


(이 새끼가 돌았나?!)


멱살을 잡은 그녀의 한 손을 두 손으로 풀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새끼 팔 힘이 상상을 초월했다. 수인  몸뚱아리만 존나 쎈 새끼들 같으니라고.

"케엑! 케엑ㅡ 사,살려주세요!"


"말은 바로 하자고? 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지?"

(누군줄 알았으면 내가 그딴 말을 했겠냐?!)
"죄,죄,죄송합니다! 다,다시는.. 케에엑ㅡ"

눈이 까뒤집혀질려하자 그녀는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미친듯이 들이마셨다. 공기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히으윽ㅡ 히으윽ㅡ 히으으으윽ㅡ"

"한 번  까불었다가는 그때는 진짜로 죽인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공기를 탐하고 있던 그 순간, 조합장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조합장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네들, 안들어오고 뭐하나?"

그의 반짝이는 대머리를 보니 다시 사고회로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합장 앞에서 약한 꼴을 보였다가는 승급에 여러모로 악영향을 끼친다.

"별거 아닙니다 조합장님. 근데 무슨 일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태연한 척 말을 건네며 나는 자연스럽게 미친 년을 스쳐지나가, 조합장과 함께 문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고서나서 소파에 앉으니 미친년도 뒤따라 들어와서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는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친사람하고는 상종하지 않는게 좋다.


"고.레오, 불과 며칠전에 오크부락을 토벌하고 왔었지?"


가운데 상석에 놓여진 소파에 앉은 조합장은 날 쳐다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 우람한 체격인 그가 여직원이 건네준 컵을 들고 마시는 모습이 꽤나 안어울렸다.

"제가 직접 의뢰를 신청해서 토벌하고 왔습니다만"

"철동전 모험가인 네크로맨서를 구할려고 말이지?"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내게 그녀와 결혼이라도 할 거냐고 물었다.


"올해 안에 결혼할려고 합니다"

"결혼? 진짜로 하는거냐?!"

"결혼식  조합장님도 오셔가주고 축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새끼가 나보다 더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는데"


이제서야 조합장은 근엄한 표정에서 평소의 유쾌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내 어깨를 연신 두드려댔다.

"빌어먹을 새끼 같으니라고... 뭐 그건 됐고, 내가 자네들을 이렇게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청원의뢰때문에 그래"


"도대체 누가 의뢰했길래 조합장님께서 직접 저희들에게 알려주시는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테이블에 묵직한 돈주머니를 던진 뒤, 나지막하게 말했다.

"데르트 제국, 그것도 처형자 군단으로 불리우는 제 4군단의 군단장 레이번 반디트가 청원의뢰를 보내왔어.  돈주머니는 의뢰비의 일부고 나머지는 그 자가 직접 줄거야"

(그 미친 놈이 왜 나한테...)
"의뢰 내용 좀 알려주실  있겠습니까?"

"쿠쿠스 마왕군의 잔여세력을 소탕하는 임무일세"


쿠쿠스 마왕군은 3년 전 데르트 제국의 복수전으로 괴멸된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잔여세력이 남아서 재기의 때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나는  소탕 임무에서 수색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저는 그럼 수색조 역할을 맡으면 되겠군요"


"그렇지! 자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수색조로서의 성과는 탁월해, 그래서 내가 반디트 그자에게 자네를 추천해줬었지"


"그럼 이 녀... 이 여성분은 무슨 일때문에 여기  자리에 같이 있는겁니까?"

"그녀는 매우 탁월한 추적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같이 수색임무를 수행하면 제격일거야"


"얼마나 큰 소탕작전이길래  명씩이나 필요한겁니까?"


잔여세력의 수가 많지 않아 소탕작전은 매우 소규모의 인원으로 이루어진다. 저번 소탕작전 때 교단기사 30명 남짓한 인원과 함께  경험이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토벌전이 아니고서야 수색인원은 1명으로도 충분하다.


"그게 말이지, 마왕군의 잔여세력을 소탕한다는 미명하에 카밀란스 산맥까지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것 같아"
"열 개 군단을 이끌고 출정한다고 하더군"

이름 모를 대천사가 잠들어 있다고 알려진 카밀란스 산맥은 아주 오래전부터 교국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구역으로, 금광과 은광을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들이 매장되어져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제국이 이곳에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 개 군단을 이끌고 출정한다는 소리는,  기회에 산맥을 자기네 세력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것이 데르트 제국의 군단은 카로른 대륙에서 무적의 군대라 불리우는 군대였다. 열 개 군단이면 메리온 교국즈음은 단기간에 함락될 정도로 강하다.


"교국이 가만히 있질 않을텐데..."

"자기네 도시의 모험가 조합을 쓰지 않고, 굳이 교국의 속한 모험가 조합을 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자기네 소속의 모험가 조합이 제국의 편을 들어주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이군요"


"그렇지! 하여튼간 제국 이 새끼들은 치밀하면서도 교활하단 말이야"
"교국에 자기네 군단을 상주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부까지 치고 들어오면 교국은 손발 다 잃은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지"

(세력싸움에 끼어드는 건  껄끄러운데 말이지...)

"고.레오, 우리 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조합의 모험가도 올테니 이 기회에 우리 조합의 명성을 드높여봐봐"
"이번 임무만 잘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너를 동메달레스트로 승급시켜주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벌떡 일어선 채로 물어오는 내게, 그는 잇몸을 훤히드러낼 정도로 미소짓고서는 답해주었다.

"지금까지 자네의 높은 신용도와 의뢰성공율, 인지도, 그리고 찢어죽이기에서 동메달레스트 두 명을 죽여버릴 정도의 실력을 종합해봤을 때.. 승급해도 충분해"


"반드시 명성을 드높이고 오겠습니다, 흐흐흐"


"좋아! 다음 주 첫째날까지 쾨스 호수로 가라고, 반디트가 지휘하는 4군단이 그곳에다 숙영지를 건설하기로 했으니깐"

"분부 받들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숙인 뒤, 테이블에 놓여진 묵직한 돈주머니는 남겨둔 채로 문을 열고 나갔다. 미친 년 또한 이어서 나갔다.

(이런 제기랄... 이 미친 년하고 임무를 같이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겠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왕지사 이렇게 된거 좆같은 마음을 접어두고, 임무기간동안  지내보도록 노력해야만한다. 이번 임무에 내 승급이 달려있다.

"저는 고.레오라고 합니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씨발! 그건  묻는데?!!"


(씨발년아, 임무시작하기 전에 통성명은 기본이라고 나무동전 때 안배웠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다시  번 물어보았다. 이 년이랑 붙으면 내가 지는건 하늘이 알고 대천사가 안다.


"이름을 알아야 서로 부를때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놈 저년ㅡ"

"나한테 '년'거리면 죽여버리겠다"

멱살잡힌채 그녀의 살벌한 시선을 온몸에 받으면서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끄덕거림에 멱살을 풀고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포루로 족의 '플레타 랄라'다"


그녀는  말을 끝으로 빠른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포루로 족이라.... 그러고보니 늑대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었구나"

포루로 족은 한 마디로 늑대 족이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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