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화. 암컷의 포효
개운하게 한 발 빼고난 뒤 텐트로 돌아오자 릴리가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왼 손을 올렸다. 오른 손은 내 아들을 어루만졌기 떄문에 예의 상 왼 손으로 했다.
"릴리 씨, 기다리셨나요?"
"......"
그녀는 내 말에 침묵으로 일관한 채 노려보기만 했다. 내가 아까 전의 한 행동으로 인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아까 전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러니 화푸세요"
"....."
"그럼 이제 조사하러 가보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녀를 애써 무시한 채 나는 그레이슨을 찾아가 호수 조사를 하러 가겠다고 말한 뒤, 그녀와 함께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호수를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들은 대화 일절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그녀에게 일을 주제로 한 대화를 시도했다.
"릴리 씨는 베스티어 악어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없어요, 그런 이름의 악어가 있다는 것도 이번 의뢰를 통해서 처음 안거에요"
내 예상대로 그녀는 일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말한 그녀의 물음에 나는 미소를 띄우며 답해주었다.
"베스티어 악어는 저보다 거대한 체구의 진흙색 악어로 두꺼운 가죽, 재빠른 움직임, 흉포함을 가지고 있는 놈입니다"
"그,그런 악어를 저희들이 유인해야 되는건가요?!"
그녀의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서는 시원스럽게 말해주었다.
"유인하는 건 제가 할테니 릴리 씨는 다른 일을 맡아주시면 됩니다"
"어떤 일을 맡으면 되는 건가요?"
"그건 조사가 끝난 뒤, 텐트로 돌아가서 말해드리겠습니다"
"예... 근데 저,저기 제 머리 위에 손 좀 떼주시지 않겠어요?"
"아아, 죄송합니다"
릴리의 말에 나는 얼른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뗐다. 순간 잊고 지냈던 마야와 멜레나에게서 보였던 얼굴이 그녀에게서 보이자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었나보다. 내가 손을 떼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 입을 다물었다.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들은 다시 침묵한 채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 정도 걷자 호수가 보이더니 그 주변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베스티어 악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놈들은 돌맹이마냥 다닥다닥 붙어서는 흙바닥에 배를 문질러대고 있었다.
"저게 베스티어 악어인가요?"
그녀는 놈들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내게 물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암컷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자 했다. 그녀가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암컷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저렇게 놈들이 많은 무리인 경우 암컷이 있습니다"
"암컷이요?"
"암컷인 베스티어 악어는 출산율이 매우 저조해서 개체 수가 별로 없죠, 그래서 무리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맡습니다, 저기 저 놈들의 우두머리도 필시 암컷일 겁니다"
"그럼 저기 있는 악어들의 대부분이 다 수컷들이라는 소리인가요?"
그녀가 놀랍다는 듯이 물어보자 나는 수컷과 암컷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수컷은 머리에 뿔이 없고, 암컷은 머리에 자잘한 뿔들이 나있죠, 저하고 릴리 씨는 그 뿔이 난 악어를 찾아야 합니다"
"저기 저 악어를 말하는 거죠?"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아까 말한 특징을 가진 악어가 있었다. 그 악어는 입을 벌리더니 주변의 있던 악어들이 가져온 음식을 받아먹고 있었다.
"굉장히 잘 찾으시네요, 맞습니다, 저게 암컷입니다"
"근데 저 암컷은 다른 악어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받아먹네요, 왜 그런거죠?"
"수컷들이 암컷과 교미를 위한 목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군요, 그런것치고는 너무 공주 같은데요?"
"맞습니다, 공주. 저걸 보면 인간이나 짐승이나 공주라는 병신 족속들은 하나같이 지들 따까리들이 주는 것들을 받아 처먹는 년인건 똑같나 봅니다"
공주 이 씨발새끼들은 다 죽여야 된다. 특히 엘베 그 모가지를 따도 시원찮을 년은 꼭 능지처참을 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올바른 정의 구현이다. 그러고보니 유르베 공주는 예외로 쳐야겠군. 그녀는 나를 구해준 아주 고마운 공주이니까.
"욕을 많이 하시는군요..."
그녀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모험가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욕 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그래도 욕은 하고 싶지 않아요, 욕을 하다보면 제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릴 것 같거든요"
"그럼 저는 고.레오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미,미안해요, 그런 뜻으로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농담으로 맞받아칠텐데, 그녀는 사과를 해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녀는 아무리봐도 모험가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제는 고마웠어요, 하소연도 들어주시고, 위로도 해주신데다 제 몫의 불침번까지 대신 서주시고...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고난 뒤 대답해주었다.
"갚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이제 조사도 다했으니 텐트로 돌아갑시다"
어차피 암컷이 한 마리 밖에 없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았으니 더 이상 조사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우리들은 호수를 뒤로 한 채 텐트로 발검음을 향했다.
-
텐트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그레이슨에게 조사한 내용들을 알려주었다. 내용을 전해들은 뒤 그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암컷이 있을 줄은 알았지, 근데 뭐 딱히 신경쓸건 없지 않나? 예전에 인어 년들을 토벌했을 때처럼 나무로 가둬둔 뒤 불태워 죽이면 되잖아?"
"그건 인어년들이고 지금은 베스티어 악어라고, 암컷 놈은 경계심이 매우 강해서 내 유인작전에 안 걸릴거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호수로 도망칠거야"
"우리들만 좆되는 거지"
내 우려에 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일단 부딪히보고 보는 그의 성격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신경써야한다는 것에 짜증이 났나보다.
"그럼 뭐 좋은 작전이라도 있냐?"
"있지, 만약에 암컷이 호수로 들어갈려하면 릴리 씨가 스켈레톤을 사용해서 막으면 돼, 막는 동안에 우리가 빨리 수컷놈들을 처치한 뒤 암컷을 처치하러 가면돼"
"이 땅꼬마 네크로맨서가? 어제 닭뼈마냥 산산조각 난 스켈레톤 못봤어?"
"암컷한테 무시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제 리카르본은 닭뼈가 아니에요! 당장 사과하세요!!"
욕이 튀어나올려 하는 그의 주둥아리를 손으로 틀어막은 뒤 나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해줬다. 어찌됐든 지금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하나 득 될 게 없다. 이번 작전은 그녀의 도움이 있어야지 손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릴리 씨, 불타는 스켈레톤을 만들 수 있으시죠?"
예전에 같이 의뢰를 한 모험단에서 네크로맨서가 불타는 스켈레톤을 창조한 것을 보았다.
"예, 당연하죠! 몇 마리나 소환하면 되겠어요?"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자신만만해하는 그녀에게 나는 암컷을 막을 수 있을정도만 창조해달라고 했다. 그래봤자 그녀의 실력과 숙련도로 보아 4~ 5마리가 끝일 것이다.
"릴리 씨, 반드시 암컷을 호수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저만 믿으세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뭐 그녀를 믿어야지 않겠는가?
< -- 35. 암컷의 포효 -- >
나와 릴리는 호수로부터 불과 이 십여걸음 안되는 거리의 떨어져있는 숲속에 몸을 숨긴 채,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녀석들을 주시했다. 암컷은 아직 호수로 들어가지 않은 채 주변의 수컷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저 년, 펨돔 플레이를 즐겨하는구만... 개씨발 미개한 짐승새끼가 즐길 줄은 아네)
"릴리 씨, 제가 유인하고 난 뒤, 바로 암컷을 포위하시면 됩니다"
내 옆에 앉아있던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호,혹시 암컷 곁에 수컷들이 있으면 어떡해요?"
"수컷새끼들은 암컷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저를 악착같이 쫓아올 겁니다"
"... 암컷한테 잘 보일려고 바둥바둥대는게 뭔가 불쌍하게 느껴지네요"
(그게 좆달린 자의 불쌍한 숙명이지)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리고 저 멀리서 아무 저항도 못한 채 괴롭힘 당하고 있는 수컷악어들이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졌다.
눈물을 한 번 훔친 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릴리 씨, 살아서 봅시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그녀는 내 손을 마주잡으며 환한 미소로 답했고, 나는 그 미소를 뒤로 한 채 서둘러 놈들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내가 놈들의 앞에 등장하자, 악어들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초록색 동공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 새끼들 지금 내가 얼마나 강한 놈인지 가늠해보고 있구만 그래, 강하게 나가야겠어)
"씨발 새끼들아!!! 내가 왔다, 빨리 반겨줘야지?"
나는 검을 뽑아들고서는 놈들을 향해 휘둘러댔다. 그러나 놈들은 울부짖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얌마!! 움직여 봐봐, 겁쟁이 새끼마냥 쥐 죽은 듯이 있지 말고!!"
[크르르르르르르]
"이 짐승새끼들, 한 번 눈이 멀 정도의 맛좀 봐야겠는걸?"
허리춤에서 빼낸 단검을 제일 앞에 있는 놈의 눈동자에 날려 박아넣자, 그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무서운 속도로 나를 쫓아왔다. 그와 동시에 놈의 주변에 있던 다른 악어들도 나를 향해 쫒아오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은 꼭 맛을 봐야 반응을 한다니까"
[크르르르!!!! 크르르르!!!!!]
"잘 쫓아오라고!!!"
꽁무지 빠지게 도망치던 내 뒤로 돌연 엄청 큰 굉음소리가 들려왔다.
[쿠와아아아아앙!!!!!]
그 소리를 기점으로 내 뒤를 쫓아오던 놈들이 울부짖음을 멈추더니 망부석 마냥 꼼짝도 않은 채 나를 지그시 노려보기만 했다.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굉음이 나고 있는 곳을 쳐다보니 암컷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필시 나를 쫓아가려는 수컷악어를 말리려는 걸 것이다. 씨발년이 감은 좋아가주고.
"에라이 썅, 좆됐네..."
날 쳐다보고 있는 놈들의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아마 암컷이 바락바락 혼을 내고 있는 거겠지. 불쌍한 새끼들.
"니들은 씨발, 수가 몇인데 고작 암컷 한 마리한테 깨갱하냐? 수컷의 수치같으니라고, 그냥 나가 뒤져라"
나는 검을 제일 앞에 있는 놈의 콧구멍에 쑤셔박았다. 쑤욱 들어가는게 기분이 좋았다.
[크아아아아!!!!!!!]
"크크크, 네놈 콧구멍 처녀는 내가 가져가버렸네?"
놈은 코에서 피를 바닥에 흘러넘치도록 뿜어대면서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놈의 입은 크게 벌려져 있었다.
"좋았어!"
허리춤에 찬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꺼내든 나는 이내 부싯돌과 철편을 꺼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가주 주머니에 불을 붙여 놈의 입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수컷놈들은 미친듯이 달려들 것이다. 불을 싫어하는 녀석들이니깐.
"받아라 새끼야!!!!"
[크르르르!크르ㅡ..... 크르르르르르!!!!!!]
내가 목구멍에 집어 넣은 가죽주머니가 자신의 내장을 태우고 있는 것인지, 놈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면서 나를 잡아먹을 듯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수컷들도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튀어야겠군"
놈들의 무서운 추격에서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한순간이라도 멈칫하는 순간에는 이 놈들에게 살가죽을 찢겨지면서 잡아먹힐 것이다.
"그레이스으으으은!!!!!! 준비해라!!!!!!!!!!!"
숲속에 매복해 있을 그에게 준비신호를 알린 뒤 미친듯이 달렸다. 숲으로 들어갈 때 한 놈이 내 왼발의 신겨져 있는 가죽부츠를 물어서 지금 왼발은 맨발 상태이다. 가죽신발이 두꺼워서 다행히 발은 안잘렸다.
숲속에 놈들이 완전히 다 들어오자 나는 자르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양 옆의 자란 큰 나무들이 놈들의 한가운데와 앞 뒤로 쓰러졌다. 케이크 모험단이 미리 나무 밑동을 간당간당하게 남겨 놓은 채 잘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던져라!! 얘들아!!!!!!"
어디선가 갑자기 그레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화염병이 놈들을 향해 날라들었고, 몸에 맞은 화염병들은 불길을 내뿜으며 활활 타올랐다. 병에 기름을 가득 채워넣기 때문이다.
[쿠오오오오!!!!!!]
"다 쳐 죽여버려!!!!"
케이크 모험단이 도끼를 치켜든 채 놈들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얼른 암컷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암컷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