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24화. 커즐린(2) (24/106)



〈 24화 〉24화. 커즐린(2)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우리들은 횃불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횃불이 비추고 있는 곳에는 벽쪽으로 넓게 파진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사람이 갇혀있는 철창우리들이 있었다. 반디트는 동굴 벽에 꽂혀진 횃불을 집어들고서는 철창들을 비추어보았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건지 갇힌 사람들의 얼굴에 횃불을 가까이 비추고 있었다.


"누굴 찾고 있는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대답도  한 채 유심히 얼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한 철창우리의 열쇠구멍을 따더니 꾀죄죄한 몰골의 여성을 끄집어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성은 내가 고블린 토굴에서 봤던 미쳐버린 여성이었다.

"이 여자는 그..."

"이런 곳에 있었구나, 이 씨발년아"


그는 여성의 머리채를 우왁스럽게 잡고서는 바닥에 패대기쳤다. 여성은 낮게 신음소리를 내고서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여성의 눈에는 예의 그 매말라버린 눈이 아니였다.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 눈을 쳐다보면서 그는 여성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뭐하는 겁니까?!"

"보면 모르나? 죗값을 치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여자는 커즐린의 저주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 아닙니까!!"

"힘 없는 새끼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곤 하지"

목이 졸라지면서 점점 눈이 까뒤집혀져가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며 나는 부서진 검을 그에게 겨누었다.

"미친 새끼야 그만하라고"


검을 겨누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서는 이내 졸랐던 목을 풀었다. 풀은 뒤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게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군, 이리 주시게"

"새끼가... 이걸로  할려고!"


"목을 잘라 들고가야지 성문에 효수할게 아닌가?"


"이 새끼 완전 또라이 새끼네?!"

 말과 함께 나는 눈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눈이 밝아오자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게 아니라 바닥에 무릎끓은 채 침을 질질 흘려대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그는 내 부서진 검을 쥐고서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작에 줬으면 그렇게 침을 질질 흘리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는 무덤덤하게 말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검을 가녀린 여성의 목에 대고서는 스테이크를 썰듯이 자르기 시작했다. 여성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입안에 돌맹이가 가득 차 있어서 불가능했다. 공포와 고통에 젖은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에서 피눈물이 진짜로 나오긴 하는구나)

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태연히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마치 B급 영화에서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에서 고기 한 점을 잘라낸 그는 개운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다른 손은 여성의 잘린 머리가 들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크흐흐흐흐흐!!"

나는 미친듯이 웃어댔다. 워프를 통해 도착한 그로테스크한 시체들의 향연도 그렇고 절벽울타리에서 전쟁도 그렇고 이세계에 오고나서는 지구에 있던 나로서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많이 겪게되었다. 머리가 이상해질것만 같았다.


"웃는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군, 그만 웃고 얼른 여기를 빠져나가자고"


그는 머리를 여성의 몸통에서 벗겨낸 옷으로  감싼 뒤 횃불을 들고서는 앞으로 걸어갔다. 숨이 턱 막혔고  앞이 어질어질했지만 나는 몸을 일으키고서는 그를 뒤쫓아 걸어갔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분명 그럴 것이다.


 한참을 걷자 이번에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라미드에 층마다 뼈들이 즐비했고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창에 꽂혀진 사람이 보였다. 이전에 고블린 토굴에서 봤었던 말뚝이 항문에서 입까지 관통된 여성의 시체와 비슷했다. 옆에서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커즐린의 제단이군...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서 가야겠어"


말을 함과 동시에 그는 옆에 난 내리막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돌려준 부서진 검을  쥐고서는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는 피라미드에서 봤었던 뼈들보다 더 많은 뼈들이 즐비해있었다. 인간의 두개골이 제일 많이 보였다.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물로 희생된 걸까?


쿠웅ㅡ!

"젠장"

그가 뼈 속으로 몸을 숨기자 나도 똑같이 뼈무더기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앞을 보니 거대한 구멍안에서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고블린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해골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고 그의 뒤로는 고블린들이 인간의 머리채를 잡은 채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제일 앞에  있는 놈이 커즐린이라 불리는 고블린 저주술사일 것이다.


"하필이면 이때 제물의식을 하다니"

그의 말에 나는 놈들의 손에 들린 긴 창들이 들려져 있음을 보았다. 반디트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런... 놈들이 우리들을 눈치 챈 모양이군"

그의 말대로 놈들이 우리들이 있는 쪽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커즐린으로 여겨지는 고블린이 해골지팡이를 치켜들고서는 고래고래 외쳐대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모두 죽여라!!!!!]


[꾸웨에에에에엑!!!!!!!]

"아무래도 싸울 때인것 같군"

그는 곤봉을 들고서는 앞을 향해 돌진했다. 나 또한  얼굴에 고정한 채 돌진하고 있는 놈들에게 달려갔다. 여기서 죽기에는 너무 좆같은 곳이었다.

"씨바아아아알!!!!"

[꾸웨에엑!]


나는 신장차이를 이용해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하였다. 난쟁이같은 고블린들은 내 몸에 뒤로 자빠졌다. 자빠지지 않은 놈들은  몸을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멍들었던 부분에 다시 충격이 가해지자 고통이 밀려왔다. 부서진 검으로 놈의 정수리를 내리꽂았다.

[끄우에에에엑!]


"뒤져! 뒤져!! 뒤지라고오오!!!!"


나는 놈들의 정수리가 보이는 족족 꽂아넣었다. 부서진 검이 정수리에 꽂혀 안빠지자 그대로 깊게 박아넣었다. 검을 잃은 나는 주먹과 발차기를 사용해 놈들을 후려팼다. 놈들이  방을 때리면 나는 세 방을 때렸고, 놈들이 침을 튀기며 달려들면 나는 피를 튀기며 맞부딪쳤다.

"씨발! 씨발! 다구리 씨빨!!!"

[꾸에에엑!!!]


[꾸웨에에에에엑!!!]

계속해서 몰려드는 놈들의 공세에 나는 점점 몸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감각이 안느껴지고 있었다. 팔은 미칠듯이 저려왔으며 눈은 튄 피에 젖은  사물의 분간이 어려웠다. 놈들의 물량에 나는 뼈무더기에 쓰러졌다. 천장에 붙어있는 초록색 빛을 은은하게 뿜어대고 있는 광물들이 놈들의 추악한 육체에 가려져 안보이기 시작했다.


(젠장... 이런 식으로 뒤지는건가? 만약... 만약에 그때 조라  말대로 했다면 살았을지도)

(흐흐흐흐, 미친새끼! 그러면 조라씨가 죽잖아)

(아름다운 여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다니 이 얼마나 상남자스러운가!!!)

(씨발... 섹스도 못해보고 죽는건가?... 어쩌면 잘된일 일지도, 마야를 만날테니까)


(마야... 페르디난드... 엘베... 씨발!!! 그년놈들 죽일때까지는 못죽어!!!)

순간 앞에 천장에 초록색 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날 짓뭉개고 있던 놈들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봐! 아직 뒤지기에는 이르다고!!!  혼자서는 역부족이야!!!"

반디트가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몸은 물론 그가  곤봉에서는 물이 끓고 있는 것 마냥 수증기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에는 손난로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 역부족이고 자시고 그냥 뒤지겠는데?"

일어선 뒤 앞을 보자 고블린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의 뒤에는 커즐린이 검게 물들은 이빨로 내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네가 해줄 일이 있어"

그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나는 그를 쳐다봤다.

"저기  뒤에 있는 커즐린을 죽이고 와, 놈을 죽여야지 이 놈들이 겁을 집어먹고서는 도망칠거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저 맨뒤에 있는 놈을 어떻게 죽이라는거야?!!"


내 외침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놈들을 막고 있을테니까 자네는 피라미드로 올라가서 녀석이 있는데까지 가라고"
"명심해, 자네가 실패하면 나도 죽고 본인도 죽게 될테니까 반드시 죽여야 해"

"이런 젠장!!"


나는 그를 뒤로 한 채 서둘러 피라미드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커즐린을 죽이면 언블린을 죽였던 것 마냥 고블린 놈들은 꽁지빠지게 도망칠 것이고, 그러면 우리들은 사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올라간 뒤에는 놈에게 시선을 고정한  미친듯이 달려갔다. 놈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한 눈이 팔린것 같다. 이때를 노려 빨리 놈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된다.

(젠장할!!!!! 내 이세계 인생은 왜 이렇게 바람잘날이 없냐아아!!!!!!)

놈과 불과 채 50여걸음을 남겨두고 녀석은 나의 접근을 알아채고서는 옆에 있던 고블린들을 내보냈다. 고블린들이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내게 달려오자 나는 긴 다리를 움직여 놈들을 스쳐지나간 뒤, 부서진 뼈의 날카로운 부분을 놈을 향해 겨눈채로 돌진했다. 커즐린 이 새끼는 내 돌진에 당황한 것인지 입으로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며 해골지팡이를 내 쪽으로 향했다. 필시 저주를 내리는 것일거다.

"야  새끼야!!!! 입 다물라고!!!!"


두 번째 권능이 발현되면서 놈의 저주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놈의 배에 뼈를 박아넣었다.

[꾸ㅡ웨에에엑!!!!]


"빨리 뒤져어어어!!!!!"


뼈를 놓고 두 손으로 온 힘을 다해 놈의 모가지를 꺾어버림과 동시에 으드득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놈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죽은 커즐린의 시체를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미개하고 추악한 새끼들아아아아아아!!!!!! 네놈들의 좆만한 지도자가 뒤져버렸으니까 어여 도망치라고!!!!!!!!!!!"

[꾸윅?!]


[꾸웨에에에엑!!!]


놈들은 커즐린의 시체를 보자마자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반디트는 온 몸이 씨벌겋게 물든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것이 보였다.

"허억ㅡ 허억ㅡ 죽다 살아났네"

들고 있던 커즐린의 시체를 바닥에 떨군 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역시 이 자세가 가장 편안하고 좋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던 도중 문득 머리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끔찍한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씨이발!!! 머리가!! 머리가!!!!"


머리가 불에 달궈진 것처럼 뜨거웠고 망치로 두들기는것마냥 울려댔다. 그러다 돌연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때마침 근처에는 엎어져진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었다. 쇠고랑에 족쇄를 찬 채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꼭 모듬초밥 같아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뒤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때에는 코에 코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던 내게 반디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게 됐네, 커즐린을 죽이고나서는 심장을 찔러 죽여야 한다는 것을 미처 설명해주지 못했어"

뭔 소리인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니 주먹에 피를 묻힌 채  있는 그의 주변에는, 고블린한테 끌려왔던 사람들이 피떡이 된채 죽어있었다. 나는 그 참혹한 광경에 분노를 쏟아냈다.

"이 씨발새끼야!!!!  짓이지? 이 인간말종 같은 쓰레기 새끼야!!!! 니는 사람이 아니고 악마새끼야!!!"

내 분노에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가 기분이 쎄했다. 이윽고 들려온 말에 나는 기분이 쎄한것에 대한 이유를 듣게 되었다.

"커즐린은 죽고 난 뒤 자신을 죽인 자에게 광폭화의 저주를 거는 놈이지, 그래서 심장을 찔러 죽이거나 죽이고 난 뒤에 심장을 찔러야 되는 것이지"
"하지만 자네는 그 사실을 몰랐고 심장을 찌르지 않아 저주에 걸리고 말았지, 그리고 그 저주로 살인충동이 들게 되었고, 그 결과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인거네,  말 이해하겠나?"


그의 설명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에 깨질듯한 열기와 두통이 느껴졌던 기억도, 마음속에서 일었던 살인충동들도 전부 기억났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해버리면 내가 정말로 저기 있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여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될테니까.


"뭐, 그리 신경쓰지말라고, 이 녀석들은 커즐린의 힘을 강화시켜줄 놈들이었으니 죽어도 싸"

"너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거냐? 이  없는 새끼야"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목소리만은 덤덤했다. 내 물음에 그는 한  어깨를 으쓱이고서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답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안해도 돼, 왜냐하면 나는 강하니까, 힘이 있으니깐 말이야, 빨리 오라고, 안그러면 버리고 가겠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도 그를 뒤따라 가야한다. 군단장이라고 했으니 그를 따라가야 사람을 만나고 도시를 만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는가? 그래 그게 옳은 거다.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자행한 결과물들을 가로질러 갔다. 결과물의 중간중간에 눈물맺힌 아이들의 눈이 보였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얼굴이 보였다.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지만 나는 그래도 계속 걸었다. 그를 쫓아가야 한다. 나는 이세계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지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세계에서도 악착같이 살 것이다. 보란듯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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