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23화. 커즐린
"수녀님!! 방어막이 깨지고 있습니다"
테스의 외침으로 공황에 빠진 조라는 지팡이만 움켜잡은 채 점점 금이 가고 있는 방어막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꾸에에에에엑!!!!!]
"우와아아아앙!!!!"
앞에는 고블린들의 고함소리, 뒤에는 구출한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나는 이 상황을 어떡해야할지몰라 초조함만 더해졌다. 그때 미세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더니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장 입다물지 않으면 네놈들을 저 새끼들한테 먹이로 던져줄테다"
"......"
"미,미세 씨! 아이들한테 그게 무슨?!"
조라는 그의 위협적인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며 외쳤다. 그러자 테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애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보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하는게 우선이야"
사방에서는 고블린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볏짚 창고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것 같다. 그렇다면 마을은 지금즈음 쑥대밭이 되있을 것이다. 그렇게 암울한 상황속에서 바닥에서 뚜껑이 열리더니 거기서 촌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보게, 얼른 이리로 내려오라고!!!"
촌장의 등장에 테스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촌장님, 꼼짝없이 당하신 줄 알았습니다"
"고블린들이 약탈을 당하면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각 집들마다 비상탈출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자 빨리 이쪽으로 내려오라고!!"
촌장의 들어오라는 손짓에 테스와 미세는 망설임 없이 제일 먼저 내려갔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가 먼저 내려가겠다며 앞다투어 내려가고자 했다. 이에 그녀는 아이들을 중재하며 차례차례 들어가도록 도와주며 흘깃 나를 쳐다보며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해요,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벽에 쳐둔 방어막의 모든 부위에서 금이 가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깨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다. 그리고 결국 방어막이 깨지고 말았다. 바닥에 난 탈출로를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를 조라가 내려보내고 있었다.
(젠장... 어떤 선택을 하는게 옳은 거지?)
"고.레오 씨! 어서 들어오세요, 제가 막고 있을게요!!"
그녀의 말에 나는 선택을 내렸다. 부러진 검을 들고 움켜쥔 채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그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검이 벌써 고블린 놈의 목젓을 꿰뜷고 있었으니까.
"이 새끼들아!! 여기는 못 지나간다!!!!"
[꾸웨에에에엑!!!]
한 놈이 곤봉으로 내 다리를 후려쳤다. 다리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검으로 위에서 날라오는 곤봉을 막았다. 옆에 있는 놈이 곤봉으로 갈비뼈를 향해 휘둘렀다. 입에서 헛숨이 터져나오더니 그대로 바닥에 두 손을 짚었다. 눈 앞에서 날라오는 곤봉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끄으으으..."
"이봐! 이봐!"
"끄으으...... 으음?"
뺨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져 눈을 뜨자 눈 앞의 회색 눈동자를 가진 중년 남성이 보였다. 남성의 얼굴 전체에는 X자로 길게 난 흉터가 있었고 매부리코에 입술은 두툼했다.
"드디어 일어났군"
"으으으... 여기는"
주변을 둘러보자 벽에 걸려진 두 개의 횃불들을 통해, 온통 철창으로 둘러싸여진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에는 내가 갇힌 곳과 똑같은 모양의 철창우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헐벗은 남녀 2명이 부둥켜안은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철창우리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나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야?"
"커즐린의 소굴이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모습은 장신의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짧은 쟂빛 머리칼의 정수리 부분에 몇 안되는 머리카락들이 살랑거렸다. 그는 옷을 벗고 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통이 점점 가라앉자 나는 정신을 차리고서는 그에게 물었다.
"커즐린이 뭡니까?"
그의 말에 나는 경계심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뭔가 그를 보고 있으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분이 더러워졌다.
"커즐린은 저주 주문에 능통한 고블린 저주술사로 거대한 토굴안에서 수 많은 고블린 무리들을 지배하지, 그때문에 고블린 영주라고도 불리는 놈이지"
".....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놈한테 잡혀온 겁니까?"
"그런 셈이지, 혹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흐느끼는 여자를 본 적이 있는가?"
"그걸 어떻게...?"
내 대답에 그는 두툼한 입술을 활짝 열어젖히고서는 미소를 지으며 잇몸을 만개했다. 그의 미소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크흐흐흐흐, 씹어 죽일 년, 내게 했던 짓과 똑같은 짓을 또 했군"
그는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손을 깍지끼고서는 몸을 앞 뒤로 흔들었다.
"그 년을 고블린 토굴에서 구했었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데르트 제국의 군단장 '레이번 반디트'다, 지금은 철창에 갇혀있는 신세이지"
(데르트?!)
반디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그의 몸은 흉터로 가득했다. 아마도 무수히 많은 전장을 누비면서 겪은 영광의 훈장들일것이다.
"군단장이신 분께서 여기에 왜 갇혀계신겁니까?"
"쉿!"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댄 그의 모습에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는 철창 밖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블린들을 쳐다봤다. 놈들은 손에 쇠고랑과 족쇄를 쥐고 있었다.
[꾸웨에에엑!!]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앞의 철창에 갇혀있던 남성이 놈들의 손에 끌려나오면서 살려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들은 남성을 땅에 눕히고는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성이 비명을 질러대자 뒤에 서 있던 다른 녀석들이 여성을 우리에서 끌고 나오더니 짐승처럼 범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울부짖을때마다 고블린들의 괴성과 함께 살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크흐흐흐, 오늘은 볼거리가 넘쳐나는군"
그는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을 바라봤다. 쟂빛 턱수염이 듬성듬성 난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보다 이 남자의 표정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흘렀을까 남성은 피떡이 된 채 기절해 있었고, 여성은 눈이 까뒤집혀진 채 실신해 있었다. 놈들은 그런 남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가면서 들어왔던 문을 통해 나갔다. 놈들이 나가자 그는 철창에서 손을 떼고서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왜 끌려가는지 아나?"
그의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쳐다보며 나는 긴장된 어조로 답했다.
"모,모릅니다"
"저놈들은 커즐린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지, 그러니 저놈들은 여기서 개돼지 마냥 사육되고 있는거라고"
(이런 미친새끼하고 같은 공간에 갇혀있다니... 얼른 여기를 빠져나가야 되는데)
"오늘은 바닥이 너무 더러운데? 창년이 흘린 애액이 넘쳐흐르고 있군"
바닥을 보니 횃불에 비쳐져서인지 투명한 액체가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액체에는 하얀액체와 피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어서 바닥을 닦아야 할텐데 말이야"
영문모를 소리만을 지껄이면서 그는 고블린들이 나간 문만을 쳐다봤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고블린 한 마리가 마른 헝겊과 나무 통을 들고 들어오자 그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뭐하자는 플레이지?)
이윽고 고블린이 바닥에 있는 액체들을 닦고 있는 것을 쳐다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내게 주먹질을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주먹질에 얼굴을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반디트는 쓰러진 내 몸 위에 올라타고서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케케켁켁ㅡ켁!"
나는 내 목에 감긴 그의 두 손을 풀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은 더 쎄게 내 목을 졸랐다.
(뒤...뒤지....)
눈 앞이 하얘질때즈음 갑자기 목에 졸리는 감각이 사라지더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콜록ㅡ! 콜록-! 우웨에에에엑"
숨이 마셔짐과 함께 헛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헛구역질을 한 뒤, 젖은 눈으로 내 목을 조른 놈의 존재를 찾아댔다. 놈은 철창너머로 손을 뻗어 좀 전의 본 고블린의 목을 졸라대고 있었다. 고블린은 비명을 못지르는 대신 발버둥을 치며 저항하다가 이내 추욱 늘어졌다.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겠군"
그는 죽은 고블린의 시체를 철창안으로 욱여넣고서는 이빨로 놈의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콜록ㅡ 콜록ㅡ 이 씨발새끼야... 지금 뭐하냐?"
"정말 고맙군, 자네 덕분에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겠어, 나 혼자 철창에서 개지랄을 떨어봤는데 놈들이 원체 다가오려 하지 않았었거든"
반디트 이 새끼는 동문서답을 해대며 물어뜯은 손가락을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참을 뜯어낸 살을 뱉어내자 그의 손에는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하연 손가락 뼈가 들려 있었다.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다!"
반디트는 그 말만을 되풀이하면서 손가락 뼈를 철창 문의 열쇠구멍에 집어넣고서는 이리저리 돌려댔고, 이윽고 철컥 소리가 들리더니 철창 문이 열리게 되었다. 그 모습에 내 목을 조른 이유가 고블린이 나를 죽이려 드는 자신을 말리기 위해 철창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어렴풋이 알아챘다.
"자네도 나랑 같이 가겠나?"
그는 철창 문을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미친놈 같지만 일단 나가고 보는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날 따라오라고"
"잠깐만, 여기 있는 사람들도 구해줘야지"
"일단 우리들부터 빠져나가세, 그래야 도시에 가서 도움을 요청할 것 아닌가?"
"...... 그런가?"
그의 말에, 나는 도축을 기다리고 있는 가축마냥 철창우리에서 시체마냥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본 뒤, 눈을 질끈 감고서는 문으로 나갔다. 문 밖에는 동굴 안쪽으로 이어진 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옆에는 탁자와 수납장이 놓여져 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아까 전 끌려간 남성이 얼굴에 부서진 검이 꽂혀진 채 죽어있었다. 그 부서진 검은 내 검이었다. 나는 그 검을 뽑고서는 손에 움켜쥐었다.
"이봐! 여기 자네것들 맞지?"
반디트는 수납장에서 꺼낸 사슬갑옷과 서코트, 바지를 내게 던졌다. 내가 입었던 것이다. 나는 얼른 그것들을 입기 시작했고, 그도 수납장에서 꺼낸 옷가지들을 걸치기 시작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뒤에 그는 수납장을 밀어젖히기 시작했다.
"일전에 놈들이 이 장소에서 물통을 들고 가는 모습을 봤지, 아마 여기 뒤에 수로가 흐르고 있을 거야"
그의 말대로 수납장 뒤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들이 오기전에 빨리 들어가세!"
늑대머리가 달려있는 생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그를 따라 나는 구멍안으로 들어갔다.
< -- 31. 커즐린 -- >
물이 흐르고 있는 수로의 양 옆에 난 좁다란 길을 통해 우리들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식으로 걷고 있으면서 나는 철창에서 못 들었던 대답들을 듣고자 나무곤봉을 들고 있는 반디트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그 여자를 고블린 토굴에서 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신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앞을 쳐다본채로 심드렁하게 답했다.
"나도 그년을 구하다 이렇게 잡혀온거지"
"도대체 그 여자는 뭐하는 년입니까?"
"내가 커즐린에 대해 말했었지? 그 년은 커즐린의 저주에 걸려 세뇌당했지"
"정신지배 계열의 저주로 감정과 사고능력을 상실한 채로 토굴에 있다가 토벌하러 온 모험가나 병사들이 자신을 구출하면 커즐린과 연결된 지배고리를 통해 위치를 알려주지"
"그래서 고블린 새끼들이 그 년만을 건들지 않았던거구나"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구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대주교와 수녀, 그 대천사의 노예새끼들이 한사코 구하라고 하는 통에 결국 위치가 발각돼서 이 지경 이 꼴이 난거야"
"무슨 일을 하시고 계셨던 겁니까?"
"조금있으면 벌어질 쿠쿠스 새끼하고의 재결투를 위해 카밀란스 산맥을 정찰중에 있었지, 자네도 보아하니 모험가 같아보이는데 토벌대에 참가했었나?"
"모험가는 맞는데 참가는 안했습니다"
이 반디트라는 남자와의 대화를 끝내기 위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아무런 대화도 없이 저 멀리 보이는 횃불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