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화. 물음
< -- 29. 물음 -- >
고블린 토벌을 마친 뒤 무사히 마을로 돌아온 우리들은 촌장의 환대를 받으며 촌장집으로가 만찬을 즐겼다.
"이봐 고.레오, 도대체 토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네가 아니라 고블린놈들이 먼저 나온건가?"
"저도 궁금해요, 여성하고 아이들도 그렇고... 어떻게 된거예요?"
테스와 조라의 물음에 나는 토굴 안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거짓말을 가미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놈들이 자고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왠 거대한 체구의 고블린 두 마리가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그곳에 있던 고블린놈들이 겁에 질려서는 도망치고 있던 겁니다"
"거대한 체구의 고블린... 언블린을 만났구만, 하마터면 일이 아주 힘들어질 뻔했어"
"언블린? 그게 뭡니까?"
"대장 고블린인데 거대한 체구와 힘으로 다른 무리가 지어놓은 토벌을 빼앗아 자기 집으로 삼는 뻐꾸기 같은 새끼들이지"
"무지막지하게 쎈 놈들이라 여간 상대하기 까다로운 새끼들이야"
"정말 다행이에요, 고.레오 씨"
조라의 따뜻한 눈빛에 나는 볼이 빨개진 채 그녀에게 수줍게 물었다.
"조라 씨는 어떻게 고블린놈들을 처치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동굴 입구에 성스러운 방어막을 펼쳐서 뛰어오는 고블린들의 진로를 차단시킨 뒤 테스와 미세 씨가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러 처리했어요, 살아남은 고블린들은 제 신성한 세례로 모두 처치했고요"
두 손을 모은 채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칭찬해달라는 어린소녀의 모습과 똑같았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후후후, 감사해요, 그럼 전 먼저 일어나볼게요"
"토굴에서 탈출한 여성분과 아이들을 돌보러 가볼게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서는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갔다. 참 마음씨도 그렇고 뒷태도 그렇고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여성이다.
(조라씨랑 사귀고 싶다아아)
조라씨와 사귀고 있는 망상을 품으면서 식사를 이어갔다.
-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볏짚창고로 돌아온 우리들은 취침준비를 시작했다. 조라는 구석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을 다독이며 보듬어주고 있었다.
(성격도 착한데다 애도 잘보고 못하는게 없네!)
다시 망상의 나래를 펼치려던 그때 미세가 내게 대화를 걸어왔다.
"이봐 고.레오, 왜 모험가를 하려고 한거냐?"
그는 내 옆에 철푸덕 주저앉고서는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머니 안에서는 포도주 냄새가 났다.
"술 아닙니까?"
"술 안마셔?"
"마십니다, 없어서 못 마시죠"
나는 주머니를 받아들고서는 입에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마만에 마시는 술인지 꿀맛이었다.
"키야아아~ 맛좋다!"
"클클클, 뭘 좀 아네, 그 술 내가 직접 담근거라고, 그것보다 빨리 말해봐봐"
"왜 모험가를 하려고 한거냐... 돈도 없고 기술도 없고 가족도 없는 마당에 마땅히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모험가가 되려고 한겁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불쾌는 무슨... 모험가가 되려고 하는 놈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거지에 고아새끼에 못배운놈들이 할만한 일이 모험가말고 또 뭐가 있겠냐?"
"미세 씨는 그럼 왜 모험가가 되신겁니까?"
"나도 너와 마찬가지인 이유에서 한거지, 물론 나는 테스와 같이 모험가를 시작했지만 말이야"
그는 포도주를 입안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넣은 뒤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테스 저 녀석 하고 나는 어릴때부터 골목길을 배회하던 부랄친구야, 같이 도둑질도 하고 얻어맞기도 하면서 함께 자랐지"
울고 있는 여자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테스를 바라본 뒤, 그는 바닥에 발라당 드러눕고서는 내게 질문할 것이 없냐고 물어왔다.
"모험가에 대해서 물어볼 것 없어? 내가 알려줄게"
그의 물음에 나는 물어볼 것들을 생각한 뒤 질문을 시작했다.
"동메달레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됩니까?"
"모험단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어서 그런거냐?"
"그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흐음... 동메달레스트가 되려면 이번 의뢰처럼 모험단이 제시하는 의뢰를 받아들여서 꾸준히 의뢰를 성공시키면 돼, 아니면 너가 직접 의뢰를 찾아서 해도 되고 말이야"
"근데 모험단이 아닌 놈들에게 의뢰를 줄 사람이 있겠느냐만은"
"그러면 의뢰를 많이 하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군요"
"그건 아니지, 주변관계라든가 인품도 굉장히 중요해서 의뢰만 많이 한다고 되는게 아니야"
(인맥 쌓기란 말이지...)
"그럼 금메달 레스트나 은메달 레스트도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까?"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 등급부터는 선천적이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올라갈 수 있어서 목숨이 아깝지 않거든 포기하는게 좋을걸"
"선천적이거나 천부적인 재능이면..."
"엘프나 수인놈들말이야"
그러고보니 모험가 내에서 길쭉한 귀와 머리에 짐승 귀를 달고 있는 모험가들이 종종 보였었다.
"젊었을 적에는 나도 테스도 은메달레스트까지 올라갈까 생각해봤지만 결국은 목숨이 아까워서 동메달레스트에서만 머물고 있지"
"그 등급들은 올라갈려면 국가의 공헌할 정도의 업적을 쌓거나 승급의뢰를 치러야 되는데 그 의뢰가 아주 무시무시하지"
"대체 뭐길래 그렇게 무섭다는 겁니까?"
"마왕군 놈들의 진격을 저지하는 사 방벽의 방벽 수호자로서 일 년동안 복무하는 거지"
"방벽은 또 뭡니까?"
"방벽이란ㅡ"
미세의 말에 의하면 방벽은, 마왕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카로른 대륙을 둘러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기다란 방벽으로 사자의 방벽, 양의 방벽, 침묵의 방벽, 데르트 방벽이 있다고 했다. 또한 방벽을 지키는 자들을 방벽 수호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자발적 지원자, 범죄자, 정기적으로 보내지는 각국의 병사들, 승급을 위한 모험가들로 구성된 자들이라고 한다.
방벽 수호자들은 매일매일을 괴물과의 혈투로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적응한다고 했다. 놀라운 건 이러한 방벽들로 둘러싸인 대륙이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대륙 구분을 할때에는 대륙 뒤에 방벽을 붙여서 구분한다. '카로른 방벽'처럼 말이다.
"그 좆같은 곳에서 어떻게 일 년동안 복무할 수 있겠나, 거기 간 놈들이 돌아온 꼴을 별로 못 봤을뿐더러 돌아온 놈들도 하나같이 맛탱이가 갔더라고"
(씨발, 나는 동메달레스트에서만 머물러야겠다, 괜히 뒤지러 갈 수는 없지)
"그럼 저희 아침의 모험가 조합에는 금, 은메달레스트가 있습니까?"
"있긴 하지, 근데 성질이 워낙 괴팍한 새끼들이라서, 괜히 찾아가서 말 걸지말라고"
"뭐 그녀석들은 조합에도 잘 안나오는 녀석들이니깐 말걸 기회도 없겠군, 좆같은 새끼들"
그의 화난 듯한 말투로 보아하니 예전에 말을 걸었다가 된통당한적이 있나보다.
"미세 씨, 체내 에너지와 체외 에너지가 뭔지 알고 계십니까?"
"그거라면..."
그는 누운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키더니 두 손으로 여자애의 볼을 양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던 테스를 불렀다. 그의 부름에 테스는 우리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야~ 애들 피부는 정말이지 말랑말랑하단 말이야"
"테스, 이 녀석한테 그것좀 보여줘라"
"아아! 그거"
그는 바닥에서 손바닥만한 돌맹이를 한 개 집더니 움켜쥐고서는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한겁니까?!!!"
내 놀란 물음에 테스는 한바탕 웃고서는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체내 에너지는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고유 에너지를 말하는데 이 에너지를 끝없이 연마하고 다루면 이렇게 특정 부위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순간적인 괴력을 낼 수 있지, 근데 이건 약과에 불과해"
"어떤 놈들은 전신에 체내 에너지를 다루면서 모든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그걸로 회춘까지도 하지"
(그거 완전 환골탈태 아니냐?)
"무기에다 자신의 체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도 있고 말이야"
테스는 미세의 말에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저도 그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모든 사람들한테 있는거니까, 근데 다룰 수 있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그래서 기사나 우리같은 숙련된 모험가가 아니고서는 평범한 놈들은 다루기 불가능하네"
테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체외 에너지는 뭡니까?"
"체외 에너지는 주문술사나 저주술사가 사용하는 에너지로 대기중에 떠도는 에너지를 말하네, 저기 저 수녀 님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체외 에너지이고 말이야"
테스가 가리킨 조라는 그에 의해 볼이 잡아당겨져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교단에서는 대천사가 자기네들한테 힘을 부여해주신다고 주장하지만 주문술사나 저주술사와 똑같이 체외에너지를 몸속에 흡수해 방출함으로써 주문을 걸지"
"힐이나 여타 다른것도 죄다 체외 에너지를 사용하는거야"
(하긴 이퀼리브리오 님도 대천사들이 다 떠났다고 말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에너지라는 존재를 그들이 만들었다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체내 에너지를 다루는 우리같은 놈들과는 다르게 체외에너지를 다루는 놈들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돼,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몇 안되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단 놈들은 체외 에너지를 다루는 놈들이 많단말이야, 그래서 대천사들이 자기네들한테 힘을 부여해주신다고 믿고 있는거지"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의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체내 에너지를 다루는 것보다는 체외 에너지를 다루는게 더 가망이 있다고, 체외 에너지와 체내 에너지를 동시에 다루는 녀석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럼 체내 에너지를 다루려면 어떤 식으로 노력하면 되겠습니까?"
"명상하고, 싸우고, 먹고, 자고 하면 저절로 늘지 않겠나? 나나 테스도 딱히 누군가에게 배운게 아니라 저절로 써지게 된 거지, 괴물놈하고 싸우고 있을 때 처음으로 체내 에너지를 사용한 뒤부터 체내 에너지를 다룰 수 있게 된거고"
(맨 땅에 헤딩인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수녀 님! 불침번 순서를 정해야 되니 이리로 오십시오!!"
미세의 말에 그녀는 우리들 쪽으로 다가와 불침번 순번을 위한 제비뽑기를 하였다.그녀가 맨 촛번을 서게 되었고, 고레오는 다음 순번을 서게 되었다.
< -- 30. 레이번 반디트 -- >
"고레오 씨... 고레오 씨"
(하아... 씨발)
"예... 일어났습니다"
조라의 부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방어구와 무기를 점검한 뒤 그녀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문지방으로 걸어가 철푸덕 앉았다.
"이 짓거리는 군대에서도 여기에서도 익숙해지질 않는구나..."
할게 없던 나는 검집에서 날이 반토막 난 검을 뽑았다. 이것만 보면 눈물이 났다.
"산지 삼 일도 안지났는데, 내 인생 씨발"
"흐흐흑... 흐흐흐흐흑흑"
부러진 검으로 땅을 긁고 있던 그때 밭에 놓여져 있는 볏짚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섭게 왜 이래?)
나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볏짚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깜깜한 밤에 달빛만 비추고 있는 상황인지라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가까워져 갈수록 울음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거기... 누구슈?"
볏짚 너머로 정체를 물었지만 울음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결국 나는 볏짚 너머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너머에는 토굴에서 본 미쳐버린 여자가 앉아있었다.
"흐흐흐흑.... 흐흐흐흑흑"
여자는 예의 그 눈물없는 흐느낌을 내고 있었다.
"저기요, 여기서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내가 말을 걸자 여자는 돌연 나를 노려보고서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씨발 무섭게 왜 이러는거야?!)
"빨리 들어가ㅡ 끄아아아악!!!!!"
말을 하던 도중 허벅지에서 갑자기 강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벅지에는 화살이 박혀있었다.
"끄으윽ㅡ 끄으ㅡ 뭐야!! 뭐야?!!!"
주변을 둘러보니 여자는 숲속을 향해 달려갔고, 달려간 숲속에서 수많은 고블린들이 빨간 안광을 뿜어내면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나는 재빨리 허리춤에 찬 호각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부르는 와중에도 놈들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나는 부러진 검을 치켜든 채 기어가면서 조금씩 뒤로 후퇴했다.
[꾸웨에에에에엑!!!!!!!]
"씨발!!!!"
고블린 한 마리가 내게 달려드려 하는 순간 놈의 머리에 단검이 꽂혀들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테스와 미세가 무장을 한채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씨발!! 미세, 왼쪽 겨드랑이 잡아!"
테스는 미세와 함께 내 양쪽 겨드랑이를 붙잡고서는 창고쪽으로 끌고갔다. 숲속에서는 고블린들이 계속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이 창고로 돌아오자마자 테스는 조라를 불렀다.
"수녀님!"
그의 말에 반응해 그녀는 '성스러운 방어막' 외쳤다. 그러자 창고의 입구에 순백색 막이 쳐지면서 돌진해오고 있는 고블린들을 막아냈다. 진로를 막힌 고블린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순백색 막을 향해 곤봉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수녀님! 그 방어막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겁니까?!"
"그,그리는 오래 못버텨요!!"
미세의 질문에 그녀는 다급하게 외쳐댔다. 이에 가만히 서있던 테스가 내게 다가오더니 허벅지에 꽂힌 화살을 단숨에 뽑아냈다.
"끄아아아아아!!!!"
"수녀님! 얼른 힐을!!!!"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내 허벅지에 그녀가 서둘러 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문에 쳐둔 방어막은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