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1화. 광란
"이제 진정 좀 되셨나요?"
황급히 내 품에서 떨어져서는 볼을 빨갛에 물들인 조라에게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가녀린 몸매와 옷 너머로 느껴지는 여체의 부드러움만이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물었다.
"예... 갑자기 안겨서 죄송해요... 다른 뜻은 없고 그냥 무서운 마음에..."
그녀는 내 눈을 피하면서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노년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이이이발!!! 모험가님들, 고블린 저 씨발새끼를 언제 토벌하러 가실겁니까?!!"
촌장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테스와 미세에게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습니다!! 제국군 그 개새끼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토벌하러 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교단새끼들은 마왕놈한테만 신경을 쓰고서는 저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믿을건 모험가님들 밖에 없습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의 울분에 테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차분하게 말해주었다.
"걱정마십시오, 저희들이 다 알아서 고블린 이 씹새끼들을 도륙내버리겠습니다, 그러니 촌장님께서는 의뢰비나 잘 챙겨주시면 됩니다"
"의뢰비는 걱정 하덜덜 마쇼!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드릴테니까"
그렇게 테스는 촌장의 푸념을 한동안 들어주었고 미세는 죽은 고블린의 시체를 창으로 찔러대며 확인사살을 했다. 나는 일어설 힘조차 없는 그녀를 창고안까지 부축해 침낭에 눕혀주었다. 침낭에 누우면서도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게 아까 고블린들한테 끌려갔던 기억이 잊혀지지가 않나보다.
< -- 28. 광란 -- >
해가 떠오르자마자 우리들은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난 뒤, 엉덩이 모험단이 찾은 고블린놈들의 토굴로 향했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개울 근처에는 널따란 크기의 구멍이 흙으로 이루어진 비탈면에 파져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토굴 밖으로 나온 놈들이 안보이는군"
테스가 토굴 주변을 경계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에 미세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틈을 노려 빨리 토벌작업을 시작하는게 좋겠어"
그 말을 기점으로 그들은 토굴을 향해 뛰어갔고 나와 조라도 황급히 그들을 뒤쫓아갔다. 토굴에 도착한 우리들에게 토굴 입구 옆의 기대어 앉아있는 테스가 말을 걸었다.
"이제부터 토벌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수녀님, 오늘은 어제처럼 고블린놈들한테 끌려갈 일이 없을테니 안심하세요, 그리고 고.레오 자네는 이제부터 미끼역할을 수행하면 되네"
"토굴에 들어가서 놈들을 입구까지 유인해오게, 잠잠한걸 보면 고블린 새끼들은 가장 안쪽에서 곯아떨어져 있을 확률이 크니 깊숙히 들어가서 난동만 부려주면 알아서 달려들걸세"
"알겠습니다"
"아 참, 만약 놈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서는, 주춤거린다면은 몇 놈 죽이면 이성을 잃고 미친듯이 달려들거야, 미개한 새끼들이지만 의리는 있는 병신 같은 놈들이니깐 말이야"
"인지했습니다"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맸고 있던 내게 미세가 무뚝뚝하게 말을 뱉어냈다.
"여기까지 오다가 중간에 뒤져자빠지지 말고, 그러면 일이 복잡해질테니까"
"흐흐흐, 걱정 붙들어 매십쇼, 이래 봬도 달리기 하나 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그거 참 다행이군"
뛰어갈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나는 토굴의 입구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옆에서 조라가 응원을 보내왔다.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돼요"
테스가 등을 팡팡 두드리며 호쾌하게 말했다.
"뒤지지 말고 살아 돌아오게"
나는 긴장을 떨쳐버리기 위해 잇몸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지금 바로 만나러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전속력으로 토굴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뒤에서 미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렀다.
"아주 훌륭한 자세야"
-
한참을 달리다가 숨이 차오르자 나는 질주를 멈추고서는 잠시 숨을 골랐다. 토굴의 깊이가 상당한지 안쪽으로는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이에 나는 허리춤에 꽂은 미리 만들어둔 횃불대를 꺼내고서는, 철편에 부싯돌을 부딪치며 불을 붙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봤던 기억이 도움이 되었다.
불이 붙은 횃불을 들고 나는 햇빛이 들어오는 구간을 지나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이러고 있으니까 알피지 게임하고 있는 것 같네)
횃불에 비춘 토굴 안은 축축하고 공기가 습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자 정체모를 썩은내와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맡는것만으로도 화를 불러 일으킬정도의 악취였다.
(이 망할 새끼들은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걸어도 걸어도 놈들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활발히 분비되고 있을때 재빨리 임무를 마쳐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은 끝에 저 앞의 두 갈래로 이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왼쪽 통로는 악취가 심하게 났고 오른쪽 통로는 악취가 덜 났다. 이로 미루어보아 나는 왼쪽이 놈들이 자고 있을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판단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젯밤 놈들하고 싸웠을 때 맡았던 그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왼쪽 통로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통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자 넓은 공간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다수의 시체를 보았다.
바닥에는 밧줄에 온 몸이 꽁꽁 묶여진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은 부식중인지 뼈에 살점이 군데군데 붙여져 있었고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은 말뚝이 항문에서 입까지 관통된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는데 이 여성은 죽은지 얼마 안됐는지 살아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따. 이뿐만 아니라 도처에는 잘라진 팔 다리가 널부러져 있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도 보였었다. 이런 광경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토악질을 해댔다.
"우웨에에에에엑!!!"
"허억ㅡ 허억ㅡ 이런 미치ㅡ 우웨에에에에에엑!!!!"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바닥에 계속 아침에 먹었던 것들을 뱉어내면서 나는 위액의 역한 냄새와 시체의 냄새를 동시에 맡게 되었다. 정말이지 잊지 못할것 같은 냄새였다.
[흐흑... 흑흑... 흐흐흐흑]
정신이 날라갈 것 같은 상태에서 구석에서 들려오는 왠 여성의 울음소리의, 나는 온 몸이 얼어붙은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횃불을 비춰보았다. 구석에 알몸의 여성이 무릎을 가슴께에 끌어안은 채 앉아있었다. 여성의 몸은 자잘한 상처와 멍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 거기 누구요?"
내가 소리치자 여성은 무릎에 처박은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여성은 잿빛 머리카락의 죽은 눈을 하고 있었고, 얼굴은 시커멓게 부어오른 멍때문에 원래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혹시... 여기 납치된 겁니까?"
(고블린 이 새끼들은 인간 여성을 강간하기 좋아하는 종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성은 내 물음에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내 눈만을 쳐다보았다. 분명 입으로는 흐느끼고 있는데 눈은 매말라 있었다. 그 괴리감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치링ㅡ
(일단 만약을 대비해 검을 뽑아야겠다, 이 참극으로 미쳐버린게 분명해)
정신병자들은 어떤 돌발행동을 할 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검을 꽉 쥔 채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성은 자신의 바로 앞에 내가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행동만을 반복했다. 어깨를 만져도 반응이 없자 가슴을ㅡ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가슴으로 향하던 손을 내린 뒤 나는 곧장 그녀가 앉아있는 곳의 맞은편에 있던 구멍을 발견하고서는 그리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커다란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바닥에는 수십마리의 고블린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놈들의 사이 사이에는 자그만 체구의 여자애들이 옷이 벗겨진 채 엎어져 있었다. 또한 저 멀리 앞에는 거대한 체구의 고블린이 대자로 드러누운 채 코에서 굉음을 뿜어내며 자고 있었다.
(어떡하지... 빨리 소리를 질러야 되는데 입이 떨어지지를 않아)
망설이고 있던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날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면서 입을 벌리려고 했다. 그런 여자애의 모습에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소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서는, 다른 한 손으로는 소녀가 발버둥을 치지 못하도록 몸을 붙들어 맸다.
"아저씨는 너희들을 구해주러온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겁먹지 마"
내가 귓속말로 속삭인 말에 여자애는 발버둥을 멈추고서는 얌전해졌다.
"그래 정말 착하구나, 근데 뭘 가리키는거야?"
소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빨간 안광으로 나를 노려보고 서있는 고블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씨발"
[꾸웨에에에에엑!!!!!!]
"닥쳐!!!"
나는 그대로 놈의 입에 검을 쑤셔박은 뒤 재빠르게 자리를 일어났다. 바닥에서 자고 있던 고블린들이 나를 노려본 채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일단은 어그로는 끌었군, 이제 튀자)
뒤돌아 도망치려던 그때 나가려던 구멍을 향해 거대한 나무 곤봉이 날아와 앞을 떡하니 가로막았다. 뒤를 돌아보니 고블린들이 양옆으로 비켜서면서 생겨난 길목을 걸어오는 거대한 체구의 고블린들 두 마리가 보였다. 그놈들은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전체가 빨간색으로 뒤덮인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르]
[크르르, 쿠라라라라라!!!!]
순간 거대한 나무 곤봉을 집어든 놈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놈을 향해 나는 결전을 준비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권능도 있겠다 해볼만 해)
"씨발놈아!!!!! 와봐, 추악한 새끼야!!!!!"
두 번째 권능이 발현되면서 몸 안의 힘이 넘쳐오르는게 느껴졌다. 놈의 힘과 대등해진것이다. 나는 그 힘을 이용해 검으로 놈이 내리치는 곤봉을 막았다. 녀석은 내가 자신의 곤봉을 막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다시 흉포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미친듯이 곤봉을 위아래로 흔들며 검을 마구 쳐댔다.
"씨발!!!! 이러다 깨지겠다!!!!"
[쿠오아아아아!!!!!!]
챙그랑ㅡ!
나는 깨져버린 검을 버린 뒤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놈은 내가 피했던 곳에 강하게 곤봉을 내리쳤다.
"허억ㅡ 허억ㅡ 뒤질뻔 봤네!! 젠장 무기가... 무기가..."
나는 눈알을 굴러대며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구멍 앞의 떡하니 버티고 선 거대한 나무 곤봉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나는 즉각 나무곤봉을 양손 가득 들고서는 내게 날라드는 곤봉을 막아냈다. 놈의 힘과 내 힘은 호각, 무기도 똑같은 마당에 좀전처럼 맥없이 부서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대치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내 옆을 향해 거대한 체구의 다른 한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얌마!!! 나랑 친구하자!!!!!"
첫 번째 권능이 발현되자마자 놈은 내게 날리려던 주먹을 내린 뒤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놈에게 부탁 한가지를 했다.
"여기 있는 이놈 좀 말려줘봐"
[꾸으으으]
친구가 된 놈은 내 부탁대로 대치하고 있던 놈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내 곁에서 떼어놓았다. 나는 그 때를 노려 곤봉을 치켜들고서는 발버둥치는 놈의 발등을 내리쳤다. 으깨진 발등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터져나왔고 놈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곤봉을 놈의 머리에 내리찍었다.
콰드득ㅡ!!
놈의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살점과 뇌수가 흩뿌려졌다. 나랑 친구가 된 놈은 쓰러진 자신의 동료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놈에게도 똑같이 곤봉을 휘둘러 무릎을 박살내버렸다. 놈은 무릎을 끓고는 고개를 숙였다. 숙인 놈의 뒷통수를 향해 곤봉을 내리찍자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는 그대로 죽었다.
거대한 두 놈이 죽자 일순 주변이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외쳐대던 고블린들의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 뿐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곤봉을 집어던지고 박살난 검을 주숴 들었다.
이틀 전의 산 은화 6닢짜리의 검이 첫 의뢰에서 부서져 버렸다. 은화 6닢이 공중분해되었다.
"씨바아아아아알!!!!!!! 이 개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꾸웨에에이가아기엥!!!]
내 외침에 놈들은 혼비백산 구멍을 통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걸로 놈들을 토굴 밖으로 유인한다는 의뢰는 완수한 셈이다.
"추악한 새끼들... 대가리가 죽으니까 존나 토끼는것좀 보소"
실실 쪼개면서 나는 고블린들이 도망치고 난 뒤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헐벗은 아이들의 피부에는 피멍과 베인 상처가 그득했다.
"얘들아아!!!! 아저씨가 못된 놈들 혼쭐냈으니까 이제 여기서 나가자!!!!"
처음에는 내 말에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가 구멍을 나가려하자, 내 뒤를 놓칠세라 헐레벌떡 쫓아왔다. 구멍을 나가자 미쳐버린 여성도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피리부는 사나이 고레오라... 멋진걸?)
두 갈래로 난 곳에 도착하자 오른 쪽 통로가 돌로 무너져내리면서 막혀져 있었다. 토굴을 나오자 사지가 절단된 채 새까맣게 타죽은 고블린놈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에서 테스와 미세가 피칠갑이 된 채 서 있었고 조라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는데 토굴에서 나온 나를 보자마자 다급히 뛰어오더니 다친 곳은 없냐면서 눈물바람으로 물어봤다.
아름다운 여성이 흘리는 눈물은 참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