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화. 기습(2)
마을에 도착한 우리들은 촌장의 안내로 볏짚 창고에서 여독을 풀었다. 수녀인 조라는 자신의 안방을 내드리겠으니 거기서 주무시라는 촌장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서는 우리들과 같이 볏짚창고에서 함께 여독을 풀었다. 테스는 배낭에서 가죽 물주머니를 꺼내더니 입에 들이붓고서는 고블린 토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의뢰주의 말대로면은 고블린 새끼들은 필시 이 근방에 땅을 파서 토굴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커, 소규모로 빈번하게 약탈하러 오는걸 보면 최근에 생겨난 무리들인 것 같고 말이야"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 소규모로 빈번하게 쳐들어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같이, 자기네들을 토벌하기 위해 온 모험가들을 끌어들이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곳은 카밀란스 산맥의 초입부하고 그리 멀지 않으니 쿠쿠스 마왕군놈들의 지시를 받을 확률이 높아, 예전에 고블린 토굴을 토벌하러 갔다가 마왕군놈들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뒤질 뻔했던 적 기억 안나?"
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뭐라 끼어들만한 경험도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군장에서 꺼낸 가죽 주머니에 든 물을 마시기만 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고만 있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서 조용히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와 대화에서 결정된 사항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직 해가 저물려면 멀었으니 일단은 근방을 뒤져보면서 토굴의 흔적을 찾아보자구"
미세의 말에 테스가 이어서 말했다.
"저와 테스가 깊숙이 들어가볼테니 수녀님은 고.레오와 함께 마을 부근의 숲들을 조사해주십시오"
"맡겨만 주세요!"
조라의 힘찬 대답에 나 또한 힘차게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들은 두 조로 나뉘어 토굴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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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들을 뒤져보며 나와 조라는 주변에 토굴의 흔적이 있는지를 눈에 불을 키며 찾아댔다. 하지만 토굴의 흔적은 커녕 조그마한 구멍조차 없었다. 나는 터벅터벅 숲을 걸어가면서 바짝 긴장된 마음을 풀어보고자 조라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조라 씨도 이번 의뢰가 처음인가요?"
그녀의 모습은 내 모습과 마찬가지로 잔뜩 겁먹고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예... 올해로 치유기사단원이 돼서 실전은 처음이에요"
그녀는 내가 말을 걸자 긴장을 한결 누그러뜨린 기색을 보이며 나긋나긋하게 답했다.
"고레오 씨도 처음이신가요?"
"예, 어제 모험가 등록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가문명이 참 특이하네요, 성이 한 글자인건 처음 봤어요"
"하하하, 조라씨, 근데 교단사람들은 다 가문명이 없는 겁니까? 앞에는 이름인것 같고, 뒤에는 대천사님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걸 종종 봤는데"
"아 그건요... 교단사람들 대부분이 고아출신인 까닭에 그런거예요, 부모도 모르니 가문명은 당연히 모를테고해서 교단에서 이름 뒤에 대천사님의 존함을 붙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저희들은 대천사님들의 자식들이 된거예요, 제 이름이 조라 크레아고니까 저는 전쟁의 권좌에 앉아계신 대천사 크레아고 님의 자식이 된 셈이죠"
그녀는 자신이 고아라는것을 밝히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호감을 느끼며 더욱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치유기사단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대체 뭡니까? 성당기사단 같은 겁니까?"
나는 일전에 봤었던 고압적인 태도의 성당기사단들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분들은 오직 남자사제들만 될 수 있어요, 제가 속한 치유기사단은 오직 수녀들을 대상으로만 선발하는 기사단이죠"
"치유기사단은 치유주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수녀들을 대상으로 선발한 기사단으로 아까 말한 성당기사단이나 성천기사단, 성기사분들을 지원 및 보조하는 역할을 하죠"
"뭔가 많네요?"
"후후후,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성당기사단은 모험가분들과 똑같이 마물을 토벌하는 사람들이고 성천기사단은 그들의 상위호환인 조직이죠, 또 성기사분들 같은 경우에는 저희 치유기사단과 마찬가지로 수녀들을 대상으로 선발한 조직이지만 치유주문이 아닌 단련된 육체와 검술로 성녀님을 지키는 근위대와 성당의 경계임무를 맡고 있답니다"
(과연, 교단내의 독자적인 무력집단이 존재한다는 소리구만, 그럼 교국은 군대라는 조직이 없는건가?)
"교국은 그럼 그분들의 손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겁니까?"
"... 그건 아니에요, 교국에는 수많은 교단들이 존재하고 그 교단내에서도 수많은 기사단이 존재하지만 정작 교국을 지키는 자들은 데르트 제국의 군단병들이에요"
"제국군은 항상 저희를 감시하고 경계하죠"
"제국에서는 믿고 있는 대천사님이 계십니까?"
"제국에서는 황제가 곧 대천사라고 믿으면서 독자적인 황제 교단을 만들어 왔었어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데르트 제국의 행보가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다.
(황제권과 교황권의 충돌이라... 완전 중세시대의 정치 상황과 비슷하구만)
나는 급격히 어두워진 이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자 했다.
"카리오트 교단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행운의 권좌에 앉아계신 대천사 카리오트님을 모시는 교단이면 잘 알고 있죠, 쿠쿠스 악마의 군세들과의 싸움에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신 분들이시잖아요"
(한치의 물러섬이 아니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학살됐다고 보는게 맞지)
"카리오트 교단은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대전투에서 추기경님은 물론 대주교와 대사제님들도 많이 전사하시는 바람에 지금은 상황이 많이 안좋을 거예요"
(멜레나가 잘지내야 할텐데)
그녀는 내 잦은 물음에 기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레오 씨는 다른 모험가 분들하고는 다르게 교단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군요?"
"혹 이참에 대천사 크레아고 님의 가르침을 받으시ㅡ"
"해가 저물고 있네요! 오늘은 이만 철수해야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해가 지면서 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우리들은 볏짚창고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테스와 미세는 벌써 도착해서는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가죽 주머니에서 입술을 뗀 테스가 우리들을 보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부근에 있는 개울에서 녀석들이 만든 토굴을 발견했습니다, 앞에서 물고기를 잡는 놈들을 봤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내일 당장 토벌하러 가는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미세가 술을 마셔서인지 볼이 붉어진채 대답했다.
"그렇겠죠"
"아까는 악마의 군세의 수작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일단 상황ㅡ"
"일단 그건 제쳐두고 의뢰부터 하고봐야죠, 저희들이 의뢰받은게 고블린놈들을 토벌하는 일이니깐"
그의 대답에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은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지팡이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나 나나 이래라 저래라 할 말한 위치는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자 촌장은 음식을 한아름 안고서는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창고에 건네주었다. 우리들은 그 음식들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며 피로를 풀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불침번을 정하자는 테스의 발언에 제비뽑기를 통해 순번을 정하고서는 잠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고.레오, 그러고보니 그 배낭은 뭔가? 신기하게 생겼구만"
군장에서 양털담요를 꺼내고 있던 내게 테스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물어왔다.
"브람 대장간에서 샀는데 신상품이랍니다"
"브람 대장간? 그건 어디있는건가?"
"프에레마 대장간 골목에 있다고 했습니다"
"많이 가봐서 아는데 그곳에는 그런 이름의 대장간이 없던데?"
"좀 깊은 곳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나중에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테스는 고맙다며 내 등을 두드리고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라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고.레오씨, 실례가 안된다면 저도 같이 데려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데려가드리죠"
조라는 내 답에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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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밤하늘 아래 달빛에 의지한 채 나는 창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숲속을 관찰했다. 볏짚창고는 마을의 가장자리에 놓여져 있어 마을 전체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놈들이 있다는 토굴의 방향과 일치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불침번을 서면 놈들의 침입을 조기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불침번은 오랜만이네... 전역한 지 꽤 됐으니 말이야"
둘 번초에 걸린 나는 테스 다음으로 불침번 역을 수행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의 시골에서조차 보기힘든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이었다. 그러고 있으니 문득 미세가 날 깨우러 왔을때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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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고.레오, 나 자야되니까 빨리 일어나라고]
(씨발... 일어났으니까 어깨 흔들지마)
"예... 일어났습니다"
[그럼 수고해]
"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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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게 군대에서 불침번 했을때와 똑같은 행동에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과연 모험가가 내 길이 맞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이 길 말고는 이세계에서 살아갈 만한 자본이나 기술이 내게는 없었다. 이세계 소설을 보면 지구에서의 기술을 남용해가면서 성공한 삶을 살았던데 나는 그런 기술조차 터득하지를 못했다. 애초에 컴퓨터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기술들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니 몸뚱이로 떼우는 수밖에.
(야한 생각이나 할까? 그러면 시간 빨리 가던데...)
그렇게 나는 델타의 언니와의 첫키스, 조라를 대상으로 한 음탕한 망상들을 해가며 시간을 축냈다. 그리고 폴에 담긴 모래가 다 떨어지자 서둘러 조라를 깨우러 갔다.
(이런 젠장...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굉장히 몹쓸 상상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럽군)
"조라 씨... 조라 씨... 불침번 해야죠"
나는 그녀의 귓속말로 깨우려 했으나 일어나지 않자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하고 쳤다. 그러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덮고 있던 천쪼가리를 가슴께까지 끌어안고서는,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누,누,누구세요?"
"접니다, 고.레오"
"아... 고.레오 씨였구나, 죄송해요, 이제 제 차례인거죠?"
그녀는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정돈한 뒤 어질러진 자신의 침낭들을 정리했다. 막 잠에서 깬 그녀의 모습은 남심을 자극할 정도의 외모였다. 하체가 저려왔다.
"그럼 전 이만"
"저기 고블린들이 나타나면 어떻해하죠?"
두려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순간 아차ㅡ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걸 안 전해드렸었네요, 고블린들이 나타나면 이 호각을 불면 됩니다, 그러면 저희들이 바로 깨서 물리치는 겁니다"
"알았어요,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이제 저만 믿으시고 푹 주무세요"
그녀의 믿음직한 말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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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우웅ㅡ!!!
"으으으... 뭐지?"
"어서 일어나게 고.레오! 고블린이 나타난 모양이야!!"
"예?!"
호각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옆을 스쳐지나가던 테스가 한 말에 놀랐고, 테스가 양날 도끼를 쥐고, 미세는 창을 꼬나든 채 문지방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황급히 그들을 뒤쫓아갔다.
그들을 뒤쫓아 볏짚창고에서 나오자마자 여러 마리의 초록색 피부의 난쟁이 크기인 고블린들이 마을을 쏘아댕기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테스와 미세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조라는 고블린들에게 자신의 파란색 머리채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녀를 구해야 된다!
"씨바알!!!!"
[꾸익?!]
검을 쥔 채 달려오는 내 모습에 놈들은 당황했는지 손에 잡았던 머리채를 놓고서는 나무 곤봉을 든 채 마주 달려왔다. 나는 첫번째로 달려온 놈의 배를 발차기로 걷어차버린 뒤, 두 번째로 달려오는 놈의 곤봉을 검으로 막았다. 이 새끼들의 힘이 약한건지 내 검은 놈의 곤봉을 밀어내고서는 그대로 어깨를 내리 그었다.
[꾸에에에엑!!!]
"닥쳐!!"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끓기 위해 나는 울부짖고 있는 놈의 침이 고여있는 목구멍에 검을 내리꽂았다. 그러자 홀로 남은 고블린 한 마리가 그녀의 곁으로 가서 곤봉으로 위협을 가했다. 마치 자신을 건드리면 이 여자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려치겠다는 협박같아 보였다.
[꾸웨에에에엑!!!]
"알았으니까 그 곤봉은 치우라고, 못생긴 새끼야"
[끼기이이이!!!!!]
"치우라고 새꺄아아아!!!!!"
[꾸웨에에에에에에에!!!!!!!!!!!]
푸욱ㅡ!
놈이 그녀의 머리에 곤봉을 내려치려는 순간 놈의 추악한 얼굴에서 창이 관통되어 나왔다. 미세가 놈의 숨통을 끓어버린것이다.
"씨발놈이 존나 짖어대네"
빨간 안광을 번뜩이는 놈의 눈알에 창을 찔러박으면서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관심을 끓고서는 서둘러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어대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내 몸을 끌어안고서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어정쩡하게 앉은 채로 그녀의 울음을 받아들였다. 갈 곳 잃은 손만이 허공에서 얕게나마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