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화. 기습
"이봐 거기 따라오라구"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미세라는 이름의 코가래만 달린 철 투구를 쓰고 있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 일어나더니 내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나는 얼른 그의 옆으로 달려가 접수처를 향해 같이 걸어갔다. 그는 사슬갑옷만을 입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접수처에 도착한 그는 왼편 책꽂이에 껴져있는 종이를 집어들더니, 오른편에 놓여져있는 잉크병에 담긴 깃털펜을 꺼내들고서는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내게 그 종이를 넘겨주었다.
"거기 빈칸에 이름만 적어"
그의 말에 나는 종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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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엉덩이 모험단'은 '나무동전 고레오'를 고용하시겠습니까? 예]
[의뢰인 '엉덩이 모험단'은 '나무동전 고레오'에게 일이 성공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은화 1닢'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까? 예]
[의뢰인 '엉덩이 모험단'은 '나무동전 고레오'가 일이 성공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접수처에서 돈을 수령할 수 있도록 '은화 1닢'을 모험가 조합에 맡기셔야만 합니다, 따르시겠습니까? 예]
[의뢰인 '엉덩이 모험단'에게 고용된 '나무동전 고레오'는 수령받을 대가에 20%를 모험가 조합에 지불하셔야만 합니다 - 필수]
['나무동전 고레오'는 의뢰 이행중 다치는 부상,사망에 대해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질 것입니까? 예]
['나무동전 고레오'는 만약 의뢰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모험가 조합에서 불이익을 내릴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의뢰를 이행하시겠습니까? 예]
[의뢰 이행 중 죽은 사람이 한 명 이상일 경우 모험가 등급 심사에 불이익이 갑니다. 이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의뢰자 - '엉덩이 모험단' : 브렌달 테스, 데임 미세, 대행자 - '나무동전 고레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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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나 갈취한다고? 이거 완전 날강도 새끼들인데??)
은화 1닢이 적당한 의뢰비인지는 모르겠지만 20%는 내게 큰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가는 한순간에 쫄보새끼라고 소문이 날까봐 빈칸에 이름을 적고서는 다시 그에게 주었다. 그는 종이를 쓱 흝어본 뒤 아침의 모험가 조합의 명물남에게 건네줬다. 명물남은 종이를 홱 낚아채더니 그에게 '됐으니까 꺼져'라고 답했다.
"네 새끼는 내가 꼭 죽여주마"
명물남에게 수북한 턱수염에 침을 튀겨가며 욕설을 내뱉은 미세는 뒤돌아서 그대로 양날도끼를 들고 있는 남성인 브랜달 테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나도 부리나케 쫓아갔다.
"좋아! 오늘은 매우 빠르게 구했구만!!"
내가 가까이 오자 테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는 함박미소를 지었다.
"사슬갑옷을 입고 있는 나무동전은 흔하지 않지, 오늘은 운수가 좋구만 그래?"
"저번 나무동전 놈처럼 초반부터 뒤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미세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하자 나는 그가 말한 초반부터 뒤진 놈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런 내 마음은 모르는지 테스는 내 등을 연신 두드려대며 왠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고.레오라고 했나? 고.레오 친구여, 이 모래주머니를 받게"
"이게 뭡니까?"
"이걸 모른단 말인가? 폴 아닌가?"
(그래서 그게 뭐냐고 씹새꺄)
"아아아~ 폴, 폴이지 참. 하하하하, 내 정신 좀 보소"
"휴우ㅡ 띨빵한 새끼인줄 알고 식겁할 뻔했네... 그럼 다시 여관에서 보도록 하세"
(어디가?)
"그러죠..."
그 말을 끝으로 엉덩이 모험단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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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야아아아!!!!!"
말랑말랑 여관으로 들어온 나는 서둘러 루나를 찾아댔다. 여관은 접수처에 서 있는 루나의 아빠인 말리온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루나야, 고레오씨가 널 찾는구나"
내 외침에 그가 접수처 뒤에 난 주방에 대고 말하자 그 안에서 루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루나는 내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아저씨 저를 왜 찾는건데요?"
"루나야! 아저씨 좀 도와줘!!"
나는 소녀에게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천 주머니를 내밀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모험가 조합에서 이번에 같이 일을 하기로 한 모험단이 폴 인가 뭔가 하는 천 주머니를 줬거든? 그래서 폴이 뭔지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볼려고 그러는데"
"아빠한테 물어보시지 왜 굳이 저한테 물어보시는거에요?"
(그거야 너희 아빠한테 물어보면 날 띨빵한 새끼라고 생각할 테니까 가장 안전하고 믿을만한 너한테 물어보는거라구)
"제발 그러지말고 루나야, 알려줘라, 응?"
등에 돌격군장을 맨 채 이마에 땀을 뻘뻘 흘려대는 내가 불쌍했는지 루나는 손수건을 내밀면서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려드릴테니까 저기 테이블에 앉으셔서 땀이나 닦으세요"
"정말이지?! 고맙다 루나야!"
나는 존나 무거운 돌격군장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조합에서 여관까지 돌덩이를 맨채 달려오니 현역시절 중대장이 연대장에게 잘 보일려고 행군 마지막 코스에서 급속행군을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대장 그 개ㅡ
"아저씨 물 드세요"
"고맙다 루나야, 네가 최고다!!"
나는 물을 개걸스럽게 마신 뒤 루나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폴은 말이죠, 약속의 증표에요"
"약속의 증표?"
"모래가 들어있는 천 주머니를 폴이라고 말하는데, 주머니 밑을 보시면 자그마한 구멍이 뜷려 있을 거에요"
소녀의 말대로 천주머니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뜷려있었고 그 구멍으로 모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래가 다 떨어지기전에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하거나 하는 등 사전에 계획된 여러 행동들을 하는거에요"
(모래시계같은거구나, 시계가 없다고 했으니까)
"그럼 전 이만 바빠서요"
소녀는 설명을 마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맙다는 내 말도 무시한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무안해져있던 내게 말리온이 다가왔다.
"저 애가 저래도 고.레오씨가 오시고 난 뒤로 표정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요? 전에는 어땠길래..."
"딸애가 여덟살 때 '밝은 빛 여관'이 생기면서 생계가 어려워지자 제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충격이 컷었는지 말수도 적어지고 성격도 내성적이 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말수도 많고 생기발랄한 아이였는데..."
그는 테이블에 천주머니를 건네고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고.레오씨가 온 뒤부터는 조금씩 말도 트이고 미소도 가끔씩 지어보이더군요... 부디 제 딸애를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그게 무슨..."
"일하면서 중간 중간에 드시라고 삶은 달걀하고 육포 몇 점 좀 넣어봤습니다"
내 손을 움켜잡으면서 그는 자신의 딸애를 잘 좀 봐달라는 말만 하고서는 어깨를 한 번 주므른 뒤 다시 접수처로 돌아갔다. 돌아간 뒤에는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쳐다봤다.
(혹시... 날 사윗감으로 삼으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나는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음식이 든 천 주머니를 군장에 쑤셔넣은 뒤, 서둘러 여관을 나가서는 조합으로 향했다.
-
"제때 왔군!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로구만!!"
조합에 들어가자 테스가 날 반겼다. 그의 주변에는 미세와 왠 수녀 한 명이 서있었다. 수녀의 가슴팍에는 천사가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슴팍이 참 컸다.
"이 여성은 우리들이 사전에 고용한 크레아고 교단의 치유기사단원이네, 이름은 '조라 크레아고'라고 한다네"
"반갑습니다, 고레오 씨"
머리에 베일을 쓰고있던 조라는 에메랄드 색의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면서 핑크빛 입술로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이에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허리를 숙이면서 그녀의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고있는 늘씬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 전체를 가리는 수녀복과는 다르게 다리를 드러내는 수녀복을 입고 있는 굴곡진 몸매인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참아야 되느니라)
나는 음욕이 끓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재빨리 일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때 테스가 조라에게 뭔가를 말하더니 그녀의 배낭을 쥐고서는 내게 다가왔다.
툭-
"조라 수녀님의 배낭도 자네가 짊어줘야겠네"
"예? 그게 무슨..."
"음? 설마 모르ㅡ"
"아! 압니다!! 알아요!! 하하하, 이놈의 정신머리란!!"
"그렇구만... 그럼 잘 부탁하네"
테스는 내 등을 두드리고서는 자기 짐을 챙기러 갔고 앞쪽에서 조라는 내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어깨 작살나는 날이겠구나)
< -- 27. 기습 -- >
"많이 힘드시죠?"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농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조라는 자신의 가방을 대신 든 채로 걷고 있는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앞뒤로 군장을 매고 있는 마당에 괜찮을 턱이 없지만 그래도 예의상 괜찮다고 말해줬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조라 씨가 왜 미안해합니까? 제가 하는게 당연한 겁니다"
내가 왜 이 수녀의 배낭을 대신 매고 있어야 되는건지 아직까지도 그 누구 하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리가 부러지려고 할때즈음 앞쪽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서 등에 맨 군장에 몸을 기대었다. 앉자마자 다리의 누적된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고 군장에 기댄 허리가 쫙 펴지면서 개운함이 느껴졌다.
(아... 천국이 따로없네)
휴식으로 피로를 풀고 있던 내게 그녀가 손수건을 들고 이마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뭐랄까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느낌에 아드레날린이 과다분비되는 것처럼 몸의 피로가 사라지더니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제가 들어야 되는데 테스 씨가 수녀는 짐을 들지 않게 하는것이 모험가 세계의 불문율이라고 하셔서요"
(오! 드디어 이유를 들었군)
"그...렇...군.....요"
점점 눈이 감겨오면서 완전히 눈이 감기려 할때 머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몽롱했던 정신이 다시금 맑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내 머리에 푸른 빛이 감도는 손을 얹어준 채 기도문같은것을 읊어대고 있었다.
"수녀님... 이게 대체...?"
"'원기회복'의 주문이에요, 머리를 맑게 해줌은 물론 몸과 마음의 피로도 풀리게 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수녀님"
진짜로 그녀의 주문이 없었다면 눈을 감음과 동시에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문이 끝나자 앞에서 이동하자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일어선 뒤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곁에서 딱 붙어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여자의 칭찬은 남자를 춤추게 하는 법이지)
얼마만큼을 걸었을까 반즈음 눈이 풀린 상태였던 나는 저 멀리 앞에서 도착했다라는 테스의 목소리를 끝으로 미친듯이 가파른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만 넘으면!! 여기만 넘으면!!)
"고.레오 씨 그렇게 급하게 올라가면 다쳐요!!"
"저 녀석 미친건가?"
"힘이 남아도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저번 놈처럼 맥없이 죽지는 않겠어"
주변 일행들의 말소리는 무시한 채 나는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내리막길 끝에는 벽은 돌로 지붕은 볏짚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 주변을 크기가 제각각인 나뭇가지들로 엮어져있는 목책들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이 보이자마자 나는 또다시 미친듯이 내려가서는 돌부리에 걸려져 밭을 구른 끝에 광란의 질주를 멈출 수가 있었다.
"도착했다아아아아!!!!!!!!!!"
"너처럼 기운넘치는 나무동전놈은 처음보는군"
내 옆을 스쳐지나가던 미세가 툭하고 말을 뱉어냈고 테스는 소리를 질러대는 내 모습에 호탕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이런곳에서 쓰러지면 안된다고"
"알겠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 내게는 아직 미끼임무가 남아있다. 행군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