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화. 브람 대장간
나는 루나가 알려준 길로 걸어가면서 마침내 모험가 조합에 도착했다. 모험가 조합은 3층높이의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는데 외관은 온갖 낙서와 오물이 묻어있었고 나무판에는 '아침의 모험가 조합 -> 병신 집단' 이라고 적혀있었다. 끝의 병신집단은 누군가가 일부러 적어놓은 것 같았다.
(예감이 안좋아)
초반부터 부푼기대는 와장창 깨진 상태에서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대기에는 공기가 아니라 온갖 욕설과 음담패설이 떠다녔고 정체모를 노락 액체들이 수증기마냥 흩뿌려지고 있었다. 벽은 무수히 많은 곳이 깨지고 부서졌으며 그걸 덮기 위해 수많은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목재로 된 바닥에는 벽과 마찬가지로 부서지고 박살난 곳이 많았으며 그 틈을 토사물들이 채우고 있었다.
그 안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고해댔다. 어떤 남성은 테이블을 여성이라고 착각한 것인지 정신 나간 듯이 허리를 흔들어대고 있었고, 또 어떤 근육돼지 남성은 팬티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몸이 격하게 흔들릴 때마다 팬티에 거봉도 같이 흔들렀다. 고개를 돌리니 테이블에서는 남성이 검을 빼들고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 맞다면 이럴 수는 없어)
돼지우리도 이보다는 더 깨끗할 것이다. 사실 돼지는 매우 깔끔떠는 동물이다.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 내 어깨에 묵직한 팔이 둘러졌다. 고개를 돌리니 더크의 얼굴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베르크의 얼굴이 보였다.
"오오!! 살아돌아왔구만? 뒤진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하하하하하!!! 베르크, 자네 은화 1닢 나한테 줘야겠구만!!!!"
"이런 젠장! 더크 이 놈과의 내기에서 내가 질줄이야, 크흠"
아마도 놈들은 내 목숨을 가지고 내기를 걸었던 모양이다. 존나 상종못할 개새끼들이다.
"자네 아직도 그 일로 우리들한테 악감정을 품고 있나?"
살기어린 내 눈을 보고 더크가 말을 걸자 나는 매우 퉁명스럽게 답해주었다.
"내가 그 일을 잊으면 사람새끼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쯧쯧쯧, 사람이 그렇게 좀팽이 같아서야 어디 모험가 일을 제대로 하겠나?"
"뭐야, 당신이 내가 모험가가 되려 한다는 걸 어떻게 아는거야?!"
"자네가 동굴에서 말하지 않았었나?"
그러고보니 동굴에서 이놈들한테 모험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 당신이 신경쓸건 아니잖수, 볼일 다봤으면 난 이만"
"자네 모험가 등록하는 법은 알고 있나? 크흠"
뒤에서 들려오는 베르크의 물음에 나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접수처에서 등록해야된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접수가 이루어지는 알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나지막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네, 우리들이랑 저기 테이블에 같이 앉지 않겠나? 내가 모험가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크흠"
"갑자기 이렇게 잘 대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녀석들의 음흉한 속내가 무엇일지 두려웠다. 동굴에서 어린애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던졌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뭐 원하지 않는다면야 우리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네만, 크흠"
"그 제안 받아들이지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나는 녀석들과 테이블에 동석하여 모험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먼저 모험가를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나무토막이 필요하네, 크흠"
"나무토막이요?"
"이걸세, 동화 1닢주면 내 자네에게 주지, 크흠"
(에라이 새끼야, 바로 장사 들어가는것 보소?)
나는 동화 1닢을 주고 나무토막을 샀다. 그러자 베르크는 동화 1닢을 주머니에 쑤셔넣고서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제 그 나무토막을 들고 저기 저 한가운데에 놓인 가판대가 보이나, 저게 바로 이 조합에서 하나밖에 없는 접수처인데 저기서 나무토막을 건네주면 동전으로 만들어줄걸세, 크흠"
"동전? 최하등급인 나무동전 말입니까?"
"그렇다네, 지금 바로 가서 만들고 오시게나, 크흠"
베르크의 말대로 나는 가판대로 가서 나무토막을 인상이 험상궃게 생긴 털복숭이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남성은 뒤에 있던 대머리 남성에게 그것을 넘겨주고서는, 그 자신은 종이와 펜을 꺼내들며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
"예?"
"이름!!!!"
(뭐지 미친 새끼인가?)
"고.레오입니다"
"특기"
"특기라... 특기가..."
"특기!!!!"
(씨발!! 특기가.... 특기가... 아!)
"달리기"
여태까지 주궁장창 달려왔으므로 달리기 실력만은 자신있었다.
"등록 완료, 이거 받고 꺼져라"
남성은 대머리 남성에게 건네받은 동전 모양의 나무를 내 얼굴에 던졌다. 얼굴에 맞은 나무 동전은 이내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순간 검을 빼들고 놈의 목구멍에 기도구멍을 하나 더 만들어줄까 고민했지만 참기로 하고 바닥에 나무동전을 줍기로 했다.
내가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을때 더크와 베르크는 함박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더크는 귓가에 미소를 걸고서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어때? 신고식치고는 괜찮지 않았나?"
"죽일 뻔 봤습니다"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툭하고 말을 뱉어냈다. 뻥 안치고 놈을 죽이는데 동화 1닢을 준다면 기꺼이 할 생각이 있었다.
"저 녀석은 여기 모험가 조합들 중에서는 명물 중의 명물이지, 그 나무동전은 줄로 묶어서 목에 걸라고"
"여기? 모험가 조합은 하나밖에 없는거 아닙니까?"
"고레오 이 친구야, 빵집 조합에 모든 빵집이 속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간판의 모험가 조합이 아니라 '아침의'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던 거였다.
"모험가 조합들은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 하나 이상씩은 존재하네, 이곳 메리온 교국도 모험가 조합이 서너개는 넘을 정도로 그 수가 많지만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네, 크흠"
"한 마디로 모험가라는 조직 안의 모험가 조합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인겁니까?"
"바로 그거지! 이해가 빠르구만, 크흠"
"제가 이래뵈도 눈치로만 먹고 사는 놈입니다"
남들 다 욕처먹고 있을때 나만 슬그머니 빠져나온 적이 많았었지.
"그건 그렇고 모험가 등록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되는데 어떻게 일을 받으면 되는겁니까?"
내 물음에 더크가 테이블 위에 서서 소리치고 있는 남성을 가리키며 답했다.
"저 놈이 소리지르고 있을때 다가가서 내가 하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그게 끝입니까? 뭐 의뢰지라던가 그런건 따로 없는겁니까?"
베르크는 좀 전에 시킨 포도주 병을 입에 부어댄 뒤 내 물음에 답해주었다.
"보통 모험가들은 모험단을 꾸린 뒤 주변의 자신을 널리 홍보하면서 의뢰인을 찾으러 다니지, 그리고 의뢰인을 찾으면 조합에서 서로 의뢰내용이나 보수같은 것들을 조율하면서 서류에 작성하면 의뢰발주가 끝나는거네"
"보통 의뢰 시장에 가서 물색하면 되네, 크흠"
(그런식으로 조합은 의뢰인과 모험단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수수료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일테지, 그러면 문제는...)
"그럼 모험단에 속하지 않은 모험가는 어떻게 일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또 모험단은 어떻게 만드는거죠?"
"동메달레스트가 되야만 모험단을 만들거나 가입할 수 있어서 그 밑의 등급들은 의뢰를 발주받은 다른 모험단이 제시하는 의뢰로 일을 찾는거지, 저 남성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라고, 크흠"
[씨발 새끼들아!!!우리 들쥐 모험단에서 미끼역할을 할 남성을 모집하고 있다!!!]
[우리 들쥐 모험단에게 발주들어온 의뢰는 서문 밖 삼 마일 지점에서 광산을 점거하고 있는 코볼트 떨거지들을 죽여버리는 일이다!!!]
[미끼 역할은 광산에 들어가 코볼트들을 끌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간단하지 않나, 씨발새끼들아아아아아!!!]
남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욕은 하는겁니까?"
포도주와 함께 나온 견과류 안주를 손가락으로 퍼먹으며 더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야지 가장 빠르게 모집할 수가 있지, 남자 새끼들은 욕을 섞어가며 말해줘야지 말귀를 잘 알아처먹는 족속들이라구"
(과연... 납득했다)
"여자 모험가는 없습니까?"
보통 이세계 소설에서는 여자 모험가들과 하렘을 차리곤 했었다. 그런 일말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품고 있었다.
"여자? 위층으로 올라가보라고"
더크의 말에 나는 구석에 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로 올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일층하고 이층하고 분위기가 그렇게 다를 수가 있죠?"
"그거야 좆달린 놈들은 일 층에서 모여살고 가슴달린 년들은 이층에서 모여사니깐 그런거 아니겠는가?"
더크의 합리적인 추론에 나는 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내가 본 이층의 풍경은 벽이라든가 바닥의 상태가 일 층에 비해 본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온통 여자들 밖에 없었는데, 대부분 수녀 또는 로브를 뒤집어 쓰고 머리에는 장신구를 한 여성 모험가들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멀쩡해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귀가 뾰족했고 몇몇은 머리에 짐승 귀가 달려있었으며 키가 엄청 큰 여자들도 있었다.
이층을 보고나서 일층으로 내려가보니 남자들 중에서도 그런 특징을 가진 놈들이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별다른 특징이 없는 좆달린 새끼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이층 냄새 참 향긋했는데...)
"이봐 친구, 뭘 그리 멍 때리고 있는 건가?"
더크의 물음에 나는 정신을 차린 뒤 대장간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등록도 했으니 이제는 서코트와 새 검도 살 겸 모험가 생활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할 시간이다. 더크는 내 물음에 프에레마라는 이름의 대장간 골목을 알려주었다.
"거기가 가장 질좋고 값싼 물건들이 많다구"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건물을 나가 프에레마 골목으로 향했다.
< -- 25. 브람 대장간 -- >
프에레마 골목에 들어선 나는 무기와 갑옷을 전시해놓은 가게부터 시작해서 대장간으로 보이는 곳에서 망치를 두들겨 대고 있는 베르크와 같은 드워프들이 많이 보였다.
"이야~ 입어보고 싶다!"
유리창 너머로 전시된 은색의 판금갑옷은 중세영화에서 봤던 기사의 갑옷과 일치했다. 어릴 때 이런 갑옷을 입는게 소원이었었다.
"근데 존나 비싸네"
갑옷 밑에 붙여진 종이에는 '30 금화'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혹시나 다른 것들도 다 이런 가격인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중에 있는 돈은 은화 30닢과 동화 50닢 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챙겨오는건데)
하지만 지나간 일이었으므로 나는 하는 수 없이 수중에 돈으로 살 수 있을 만한 것이 있기를 빌며 믹스본이라는 이릉의 무기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시오!"
앞에 놓여진 판매대에 서있는 드워프가 나를 보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에 나는 가볍게 인사한 뒤 양 옆으로 난 선반들 위에 올려진 상품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3 금화] [20 금화] [40 금화] [150 금화] .......
살 수 있는게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게 주인에게 물어봤다.
"저기 은화 30닢으로 살 수 있을만한 상품이 있습니까?"
"뭐야? 돈도 없으면서 여기를 왜 쳐 기어와!!"
내 물음에 그는 인상을 팍 찡그린 채 매몰차게 답했다. 순간 조합의 접수처 직원에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고자 했지만 간신히 참고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면서 때깔 좋은 갑옷을 착용한 남성이 들어오자 드워프는 내가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며 그 남성을 환대했다.
(갑자기 서글퍼지네)
돈 없는 자의 설움만 느낀 채 나는 골목을 배회하며, 수중의 돈으로 살 만한 물건이 있는지 둘러보았으나 살 수 없는 가격이거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격 앞에서 다시 한 번 좌절했다.
그렇게 그냥 있는 장비들 갖고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아저씨!"
"누구야? 어디서 부르는거지?"
"아저씨!"
갑자기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 있는 촉감에 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색 머리의 잘생긴 외모를 가진 청년이 미소를 지은 채 서있었다.
"아저씨, 내가 좋은 대장간 소개시켜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