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16화. 모험가 조합 (16/106)



〈 16화 〉16화. 모험가 조합

"몇 살이야? 바구니에  건 사과니?"

내 온화한 목소리에 소녀는 더욱 더 어깨를 떨어댈 뿐이었다. 내가 소녀였더라도 화를 내다가 갑자기 친근한 척 구는 남자에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점점 더  모습이 소녀의 머릿속에서 싸이코패스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아! 여기 떨어져 있는 닭꼬치 먹는데에 지장 없거든! 봐봐"

나는 얼른 바닥에 떨어진 닭꼬치를 집어 들고서는 입에 쑤셔넣었다. 입안에서 닭고기 맛과 흙맛이 뒤섞여 환상의 맛을 자아냈다.

"봐봐? 먹었지! 그러니까  갚아도 된다구!!"

하지만 그러 내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인지 소녀는 어깨를 떨어댐은 물론 나를 공포에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면서 온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순간 아차 했다.

(...... 이러니 이 나이먹고도 여자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지, 센스가 완전 개쓰레기네, 한강으로 뛰어내리자)

그러나 한강은 여기에 없었고 나는 다시 기운을 내서 소녀를 달래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돈으로 회유해볼까 한다.


"애야, 내가 동화 1닢 줄테니까 혹시 이 근방에 좋은 여관 있으면 소개시켜줄래?"

동화 1닢을 준다는 말에 소녀는 떨림을 멈추고서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일어난 뒤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여관이라면 하나 알고 있긴 한데..."


"정말! 그럼 알려줄 수 있어?"

"예..."


소녀가  말에 답해준 것에 기뻐하며 나는 소녀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소녀는 한 건물 앞에 멈추어섰다. 소녀의 앞에는 허름한 생김새의 커다란 목재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그 건물 옆에는 하얀색의 벽돌로 지어진 6층정도 되어보이는 높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높다란 건물의 입구 위에는 '밝은 빛 여관'이라고 적힌 나무판이 걸려있었다.

"이야~ 여관이 으리으리하네"


나는 그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옆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에 멈추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소녀가  바짓춤을 잡고서는 손가락으로 목재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 저거야?"

"예..."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소녀를 따라 목재 건물 가까이 다가갔다. 목재 건물 입구 위에는 '말랑말랑 여관'이라고 적힌 나무판이 걸려있었다.

"말랑말랑 여관이라... 저기가 더 좋아보이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옆 건물을 가리키자 소녀는 내 등을 밀고서는 강제로 들어가게끔 했다. 말랑말랑 여관의 안은 허름한 외부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났다. 벽에 걸린 양초를 꽂은 촛대가 넓은 중앙홀을 아늑하게 비춰주었고, 한쪽에는 돌로 된 벽난로가 목재를 태우고 있었다. 맨 앞에는 접수처로 보이는 듯한 널찍한 테이블과 양 옆으로는 따뜻한 색의 목재 테이블과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접수처에는 희끗한 머리에 푸근해보이는 인상을 한 배불뚝이 남성이 서 있었다.


갑자기 소녀는 앞으로 달려가더니 그 남성에게 안겼다. 남성은 자신의 배에 안겨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모습이 마치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으로 보였다.


(아마도 소녀의 아버지인가?)

나는 접수처로 걸어간 뒤, 남성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성 또한  얼굴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여관 주인인 '라그란 말리온'이라고 합니다"
"손님, 여기에 얼마나 묵으실려는지요?"

남성의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리온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하루 정도 묵어보고 괜찮으면 장기간 투숙도 고려해볼까 합니다"

"그러시군요... 저희 여관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루 숙박비는 동화 4닢입니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루나야, 손님을 방까지 안내해드리렴"


"...네에, 아빠"

(역시 부녀관계였구만)

나는 루나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걸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상하게도 중앙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장사가 그리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에요"

소녀는 가장 맨 끝 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2층을 쭈욱 둘러보니 양 쪽으로 문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복도의 폭이 좁은 대신에 깊이가 큰 공간을 가지고 있는게 아마도 2층은 숙소전용이고 넓은 공간인 1층은 중앙홀로서 손님접대나 식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것일테다.


끼익-

문을 열고 안을 둘러보니 왼편에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실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내 바로 옆에는 큰 수납장이 한 개 놓여져 있었고, 침대 양옆에도 2개의 작은 수납장들이 놓여져 있었다. 내가 지구에서 살았던 원룸하고 얼추 비슷했다.

(이세계에서도 원룸 생활이라, 기가막히는군)

루나가 쭈뼛쭈뼛거리며 문을 닫고 나간 뒤, 나는 좀 더 자세히 방을 둘러봤다. 자그마한 실을 확인해보니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한 쪽에는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놓여져 있었다.


(바가지로 물 퍼서 볼일 본거 내리라는 소리군, 굉장해... 재래식은 훈련장에서 쓴 이후로는 다시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착잡한 마음과 함께 문을 세게 닫은 뒤, 나는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감옥에서 습관이 된 것인지 바닥에 드러눕기만 하면 대자로 드러눕게 된다. 이 자세가 가장 편안하고 온 몸의 피로가 풀리는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얼마만에 집 다운 곳에서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보는거냐!"

침대는 밀짚이나 건초를 넣은 것인지  특유의 냄새가 났지만 푹신하니 상관없었다. 이렇게 누워있으니 지난 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탈출ㅡ 쫓김ㅡ 구출ㅡ 도망...


"아 개씨발 좆같은 이세계 인생이었네"

그런 식으로 분노가 치밀어오를때즈음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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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

"으으으.... 멜레나냐?"

아저씨라는 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서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루나가 물이 담긴 조그만 나무통을 들고 서있었다.


"그 나무통은 뭐여?"

잠이  깬채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서는 소녀에게 물었다.

"혹시 씻을 물이니?"

"예, 아저씨는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시니까 공짜로 해드리는거예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나무통에 든 물을 쳐다보며 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돈을 내야되는거야?"

"예, 동화 2닢만 내면 데운 물을 방까지 갖다드려요"


"혹시 식사도 돈을 내는거니?"


"예, 목욕하신 뒤에 식사하시러 내려오실거예요?"


"... 배고프기도 하고, 그러지 뭐"


내 대답을 끝으로 소녀는 바닥에 나무통을 내려놓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사슬갑옷을 벗은  면바지와 셔츠를 벗고서는 통에 걸려진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았다.

"샤워기 씨발"

-



개운하게 몸을 닦은 뒤 나는 다시 땀에 절은 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이럴거면 뭐하러 닦았나 하고 자괴감이 들었지만 존나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삐걱ㅡ 삐걱ㅡ


내 거구에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내려가면서 계단은 삐걱소리를 내었다. 나는 1층에 내려온 뒤 접수처에 가 말리온에게 식사에 대해 물었다.


"식사좀 할려고ㅡ"


"예! 저희 말랑말랑 여관은 아침과 저녁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식사메뉴판을 보여드리죠!"

그는 다짜고짜 내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어디보자... 담백고소 세트 동화 5닢, 촉촉바삭... 에이 썅!)
"여기 이 세트는 도대체 뭐죠?"


"아하~ 담백고소 세트는 베이컨과 계란 후라이로 구성되어 있고, 촉촉바삭 세트는 야채 수프와 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포도주   동화 3닢, 사과주 한 병 동화 3닢, 견과류 안주 동화 5닢... 술은 마시지 말아야겠다)
"담백고소 세트로 주세요"


"얼른 요리해서 갖다드리겠습니다!"


주문을 한 뒤, 나는 구석에 나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렇게 테이블에서 생각에 빠진 채 하염없이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소녀가 음식을 들고 내 테이블에 올려두자 생각을 멈추었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뒤돌아 가려는 소녀를 불러세운 뒤 방금전까지 생각해둔 질문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 화폐의 가치부터 알아야겠다. 소녀에게 싸이코패스 새끼에다 멍청한 새끼로까지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애둘러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름이 루나 맞지? 혹시  은화로 안주 몇개를 시킬  있니?"


"술 드시게요?"


내가 은화를 꺼내어 보여주자 소녀는 멀뚱멀뚱 쳐다본 채 말했다. 이에 나는 혹시 같은 메뉴를 많이 시키면 할인을 해주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둘러댔다.


"으음... 그건 아빠한테 물어봐야 되는데요?"

"그러니? 그럼 만약에 너가 가격을 정한다면은?"

"그러면... 은화 한 닢이면 안주 네 개를 사는거니까... 동화 두 닢정도는 깎아줄 용의가 있을 것 같아요"


(은화 1닢이 동화 20닢이라는 소리란 말이지)
"그럼 금화 한 닢으로 주문한다면?"


"으음... 설마 금화로 시킬리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게 있잖아?"


"그러면... 은화  닢의 안주  개니까... 금화가 은화로 스무 닢의 가치니까, 그러니까... 팔십 개니까... 그러면 얼마를 깎아줘야 될까?...으으으..."

"루나야! 혹시 여기에 시계는 없니?"

내 갑작스러운 외침에 소녀는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안정을 되찾고는 내 물음에 답해주었다.

"시계가 뭐에요?"


(뭐야, 없는건가?... 괜히 물어봤네, 어쩌지?)
"......... 여기 사람들은 보통 언제 일어나니?"


소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대개 아침종이 울리면 일어나요, 아빠나 저는 여관일때문에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지만요"


"아침종이라... 점심, 저녁종도 있니?"

소녀는 더더욱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점심종은 없고 저녁종은 있어요, 저녁종이 울리면 사람들은 주로 저녁식사를 해요"


(아침종이 울리면 기상, 저녁종이 울리면 저녁식사라... 그걸로 아침, 저녁을 구별하나보네)


"알려줘서 고맙다, 루나야 너가 최고다"

"... 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감사를 표하는 내 행동이 쑥스러웠는지 소녀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면서 답한 후 황급히 뛰어갔다. 아무래도 닭꼬치 노점앞에서 벌어졌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창문을 통해 본 달빛에 비춰진, 내성벽에 양각된 천사의 형상이 신성스러워 보였다. 말리온의 말대로 이 방이 여관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인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 -- 24. 모험가 조합 -- >






댕댕

밖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나는 감은 눈을 떴다. 이게 어제 루나가 알려준 아침종이라는 것 같다.


"이세계인들은 항상  종소리를 듣고 하루를 시작하는건가? 거지같네"


똑똑똑


"아저씨, 식사하실거예요?"

아무래도 여관에 있는 손님이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어서 그런지 집중관심을 받고 있었다.


"뭐 그래야지"


나는 그렇게 말한  침대에서 일어나 사슬갑옷을 두르기 시작했다. 사슬갑옷은 어제 깨끗이 닦아서 그런건지 새것처럼 반짝였다. 두른 뒤에는 허리춤에 검을 찼다. 서코트가 없는게 좀 허전했는데, 나중에 대장간 같은데에서 사야겠다.

방을 나간 뒤 나는 중앙홀로 내려와 촉촉바삭 세트를 시켰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루나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잠깐 루나야,  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서려던 소녀를 불러세운  나는 모험가 조합이 어디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저씨 모험가 아니셨어요?"

"응? 아아아... 실은 이번에 모험가가 되볼려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무덤덤하게 조합의 위치에 대해 알려주었다. 알려준 뒤에는 곧장 뒤돌아갔다.

(어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건가? 씁쓸하군)

앞으로는 절대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빵을 들고서는 수프에 찍어먹기 시작했다. 이번 음식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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