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15화. 메리온 교국 (15/106)



〈 15화 〉15화. 메리온 교국

성당기사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에게 강제로 끌려온 나는 어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는 동굴로 들여보내졌다. 모닥불 근처에는 사제복을 입은 금발머리에 잘생긴 남성  명과  끌고온 남성하고 같은 갑옷을 입고 있는 남성들 여섯 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다. 동굴 입구 근처에는 남성 두 명이 손을 검집에 댄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려는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입니까? 베란트 경"

사제복을 입고 있는 남성의 물음에 베란트라 불린  목에 칼을 겨누고 있던 남성은 나를 바닥에 강제로 무릎을 끓히게 한 뒤 근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쿠쿠스 악마의 군세를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합니다, 등에 업힌 수녀복을 입고 있는 여자애는 카리오트 교단의 수녀라고 했습니다, 엘라임 주교님"

"카리오트 교단?  교단이라면 일주일 전에 교국으로 돌아온 모험가에게서 절벽울타리에 갇혀 전멸당했다고 들었는데 생존자가 남아있었나 보군"


(모험가? 더크와 베르크  씨발새끼들을 말하는 건가 본데)

엘라임 주교라고 불린 남성은 무릎 끓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기사에게 칼을 거두라고 명한 뒤, 등에 업혀있는 수녀를 쳐다봤다.


"이 소녀는 분명 카리오트 교단의 수녀가 맞아, 교국에 있었을 때 대니얼 대사제의 곁에 딱 붙어있었던 소녀와 얼굴이 일치해"

"맞습니다! 이 애는 멜레나라는 이름의 수녀입니다, 저기 엘라임 주교님, 부탁이 있습니다만  애의 발목 좀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세계의 성직자들은 분명  힐 능력을 사용할 줄 알것이다. 그러니  앞에 있는 이 주교도 분명 힐을 쓸 줄 알것이다. 그것도 높은 직책에 맞는 수준의 힐을.

내가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간청하자 주교는 인자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수녀님의 상처를 치유하고 난 이후에 당신의 상처도 봐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주교님!!"

"흐음... 발목이 부러졌군요, 부러진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숲속을 헤매고 다니셨던 겁니까?"


멜레나의 발목에 감겨있던 풀줄기를 풀면서 주교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교님, 멜레나는 괜찮은 겁니까?"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우선은 멜레나의 발목상태가 더 중요했다.

"상태가 안좋긴 하지만, 제 본 힐을 걸면 괜찮아질 겁니다, 부러졌던 뼈도 금새 붙을거고요... 한데 이 멜레나 수녀님의 몸에 저주가 걸려있군요?"

(저주라고?... 설마 리치하고 싸웠을 때 녀석이 멜레나의 몸에 저주를 내린건가?)
"도대체 어떤 저주가?!"

"중급에 해당하는 기면의 저주입니다, 대상자에게 깨지 않는 영원한 잠을 선사해주죠"
"보통은 정신력이 강한 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저주입니다만, 수녀님의 몸상태로 봤을 때 걸리기 쉬울만한 저주였을 것입니다, 근데 이 정도의 중급 저주는 리치나 중급 네크로맨서 급 정도가 되어야지 사용할 수 있는 저주인데 혹 군세에 리치가 참전해 있었습니까?"


(리치와 싸웠다고 하면 권능까지 말해야 되는데... 의심받을 만한 말은 안하는게 좋겠어)
"워낙 혼잡한 상황이기도 했고 쓰러져 있는 이 수녀님을 업고 도망치기에만 바빠가주고 미처 확인하지를 못했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토벌대에서 어떤 직책으로 참가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주교의 물음에 주변의 있던 기사들이 하나 둘씩 검집에 손을 갖다댔다. 여기서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황천길 건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설정상 데르트 제국의 병사라고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제국은 철수한지 오래였었고, 그렇다는 말은 나는 지금 탈영병 신분이라는 소리인데 군법에서 탈영은 즉결처분이다.


(이런 미친... 뭐라 말하지? 뭐라 말하지?...... 그래 모험가!! 지금 서코트도 안입고 있으니까 들킬 일은 없을거야!!!)
"모험가로 참전했습니다"

답변에 주교는 푸른색 눈동자로 지그시 쳐다보더니, 이내 수긍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상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모험가분께서 목숨을 걸고 수녀님을 구해주시다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주교는 내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모닥불 근처로 안내했고, 그와 함께 기사들도 검집에서 손을 뗐다. 모닥불에 같이 앉게 된 나는 주교의 물음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고.레오입니다"

"고.레오? 신기한 가문명이군요"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조합소속이 어떻게 되십니까? 필시 데르트 제국 아니면 저희 메리온 교국 소속일듯 싶습니다만"


(메리온 교국이라 말하면 가는김에 날 거기로 안내해줄지도 몰라)
"메리온 교국 소속입니다"


"호오! 그러면 저희들이랑 같이 동행해서 가시면 좋겠군요"


"그,그래도 되겠습니까?!"

"되다 마다요, 자비의 권좌에 앉아계신 대천사 피테란데님께서 저희에게 고레오 모험가와 멜레나 수녀를 만나게 한것은 당신들을 구하라고 명하신 것일테니까요"


주교의 백번 지당한 말에 나는 감격했다.


(대천사 피테란데님 만세!!)






-- 23. 메리온 교국 -- >






아침이 되자 피테란데 교단 사람들은 메리온 교국으로 향했다. 이에 나도 깔끔히 나은 멜레나를 업고서는 그들을 따라갔다. 멜레나는 아직까지도 자고 있었다. 어젯밤 엘라임 주교가 설명하기를 저주를 풀고 며칠은 지나야 깨어난다고 했다.


나는 제일 앞에서 걷고 있는 엘라임 주교에게 질문을 했다.


"주교님, 주교님은 여기에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건 네놈이 알거 없다!"

기사의 성난 말에 주교는 그를 말리고서는 인자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조금 있을 쿠쿠스 악마의 군세와의 결전을 위해서 이곳 부근의 지형과 정세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직 놈들은 이곳에까지 세력을 확대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의 답변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절벽울타리를 점령한 놈들의 외침을 들었는데, 놈들은 그곳을 기점으로 전초기지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전초기지? 그런 곳에 말입니까?"

"예,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흐음... 꽤나 성가시게 됐군요"

주교는 내 정보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는, 그 뒤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그 이후로 일절의 대화 없이 교국을 향해 걸었다.

노을빛이  무렵 앞에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은 족히 25m 높이의 순백색의 벽돌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간중간에는 기다란 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성벽 주변에는 물이 가득 찬 해자가 파여져 있었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성문 앞에는 해자를 건널 수 있는 도개교가 내려져 있었다. 도개교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쌍둥이 망루탑이 양쪽으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와 미친... 이게 진짜 성이구나, 유럽에 온 거 갔잖아?)

고단한 삶에 치여 여행 한 번 가볼 생각조차 못했던 내게 앞에 놓여진 유럽 중세풍의 성은 가히 경탄할만 했다. 얼마나 새하얀지 눈이 멀 정도였다. 경탄에 차 있던 내게 주교가 물어왔다.

"메리온 교국에 다왔군요, 고.레오 님, 신분증은 가지고 계십니까?"

(신분증? 그런 거 없는데요...)
"전투에서 잃어버리는 바람에..."


"제가 신원증명을 해줄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수녀님을 구해주신 분한테 빚을 받다니요, 충분히 받았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요"

나는 그렇게 주교의 도움으로 메리온 교국의 성문으로 들어갔다. 성문 위 성벽에는 활을 든 서코트 차림의 남성들이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씨벌... 뭣도 모르고 들어왔다가는 고슴도치 될 뻔했네)

성문에 들어온 뒤 나는 저 멀리 세워진 외성벽보다는 조금 낮은 순백색의 내성벽을 보고서는 또 다시 감탄했다. 내성벽 표면에는 천사의 형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중 방벽 구조인 콘스탄티노플 성하고 비슷한 구조인것 같은데?)

대학생때 학점을 채울려고 꾸역꾸역 들었던 서양 건축사가 도움이  줄은 몰랐다. 이해는 하지 않고 그냥 머릿속에 쑤셔넣은  공부했던 경험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잠깐동안 지구에서의 추억에 잠겨있을 때, 옆에서 주교가 내게 인자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고.레오님, 저희들은 이만 대성당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수녀님은 저희들이 안전하게 카리오트 교단으로 돌려 보내겠습니다"

"아... 예..."


나는 업고 있던 멜레나를 기사에게 넘겨준 뒤, 씁쓸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이렇게 작별인사도 없이 헤어지니 뭔가 마음이 걸렸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소녀는 돌아갈 집이 있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이제부터 여기서 만들어가야만 한다.

"주교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저야말로 교단의 수녀아이를 구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그럼 이만... 대천사 피테란데 님의 자비가 당신에게 찾아오기를"


주교의 작별인사를 끝으로 나는 도시 안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일단은 가지고 있는 수중의 돈으로 숙소를 구한 뒤 모험가 조합에  모험가 등록을 해야 할 것이다.  이세계 소설은 항상 초반에는 이런식으로 하던 것 같았으니 말이다.

"드디어... 드디어... 사람냄새가 풍기는군!"


주변의 건물들은 순백색의 성벽과는 달리 다채로운 색깔을 드러낸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어떤 건물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어떤 건물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겨왔다.


"도시의 냄새는 지구에서나 여기에서나 똑같군, 항상 양면성을 품고 있지"

나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스쳐지나가, 갑옷을 입고 있는 남성을 지나쳐, 허름한 누더기 옷을 걸친 채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있는 아이들을 흘깃 쳐다보며 길을 걸었다.

꼬르륵ㅡ


"음... 뭐라도 먹어야지 안되겠다"

나는 배를 채우기위해 주변을 둘러보다 닭구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노점가게로 걸어갔다. 가죽천막을 넘기면서 안으로 들어가자 한 중년 여성이 화로에 나뭇가지에 꽂힌 고기들을 굽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이거 하나에 얼마에요?"

"동화 2닢"


(반말은 씨발... 선 넘었지)
"이거 뭐냐?"

"닭꼬치인데 살거유?"


"그래, 2개 줘봐라"

나는 가죽 주머니에서 동화 4닢을 꺼내어 푸짐해보이는 중년 여성에게 건네주고 닭꼬치 2개를 건네 받았다. 손에 쥔 닭꼬치는 기름에 반지르를한 윤기가 나고 있었다.

(와 얼마만에 조리된 음식이냐!)

들뜬 마음에 가죽 천막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옆으로 누군가가 밀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들고 있던 닭꼬치 2개가 벽돌이 깔린 바닥에 떨궈졌다.


"씨발!!!! 아직 한 입도 못먹었는데!!!!"

눈 앞에서 동화 4닢이 공중분해되자 나는 눈이 까뒤집어진  가죽 천막을 열어젖히고 엎어진 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엎어진 놈은 주황색 단발머리의 마른 체구를 가진 남자애였다. 놈의 주변에는 바구니에 든 사과들이 쏟아져있었다.

(어린애?...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지)
"야, 네놈때문에 동화 4닢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거든... 그러니까 갚아야지?"

좆달린 새끼들은 초장부터 쎄게 나와야 말귀를 알아처먹는다. 말이 안통한다? 다음에는 주먹이 날라갈 것이다. 그게 바로 남자들의 세계다.

"죄... 죄송해요"


놈은 바닥에서 주춤주춤 일어나더니 바구니에 쏟아진 사과들을 담더니 울먹이면서 말했다.

"씨발놈아, 사람하고 대화를 할때는 눈을 쳐다보고 말해"
"내가 지금  쳐다보고 있거든? 그럼 네놈도 날 쳐다봐야 되지 않겠냐?"

내 말에 놈은 바구니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어깨를 떨어대고 있었다.

(오호라~  씨발럼이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야!"


내 외침에 돌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년 여성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에구, 다 큰 남자가 어린 놈을 잡고있네, 에휴 한심스러워라~"

피가 묻어있는 사슬갑옷 차림에 내가, 검집에서 검을 조금 빼자 중년 여성은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점점 인성이 개같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지! 나는  건드린 놈들한테만 좆같게 구는거라고!!)

다시 한  자신의 신념을 깨달은 뒤, 나는 아직도 아무  없이 바닥에 앉아있는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잡고서는 날 쳐다보게끔 만들었다. 그러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오르고 있는 여자아이의 갸름한 얼굴이 보였다.

"서... 설마 너 여자냐?"

"흐흐흑.. 흐흑.. 예.. 흐흑"

(이런 좆같은... 여자애면 그런 식으로 안했지!)
"아... 좀 전에는 욕해서 미안했다, 순간 화가 나서 말이지"


좆달린 새끼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어린 소녀들한테는 너그럽고 자상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지금까지 별의 별 미친년놈들을 많이 봐온 나로서 어린 소녀만큼 가장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지성체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러운 걸 많이 접한 나로 인해 어린 소녀의 순수함이 더렵혀지면 안된다... 는건 다 개소리고 사실 마야 때문이었다. 마야로 인해 델타도 그렇고 멜레나도 그렇고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들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짓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죄책감으로 인해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지금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공중 분해 되버린 동화 2닢은 금세 잊어버리고서는 지금 나는 이 소녀를 달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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