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3화. 혈투 (13/106)



〈 13화 〉13화. 혈투

< -- 19. 권능의 발현 -- >


스켈레톤들과의 싸움 이후 우리들은 천장으로 이어진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얼마나 높은지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마치 막사에서 봤었던 존나게 높은 절벽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상황속에서 등에 업혀있던 멜레나가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저 때무,문에 마,많이 히,힘드시,시죠?"

"멜레나야 너때문에 힘든게 아니라 계단때문에 힘든거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진짜로 소녀때문에 힘든것이 아니었다. 소녀의 무게는 등에 매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가벼웠다. 진짜로 힘든 것은 끝이 보이질 않는 계단 탓이 컸다.

"아,아저씨느,는 왜 벼,병사가 되,되신거,거에요?"

소녀는 이마에서 흘러내리고 있던 내 이마를 손으로 훔치면서 물었다.

"내가 왜 병사가 됐냐고?"

"예"

(이걸 설명할려면 이세계에서 소환된 날부터 설명해야되는데...)
"병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길래"


"그래,래서 토,토벌대에 차,참가하,하신 거에,에요? 도,돈 마,많이 벌려,려고?"


(그렇게 되나?)
"뭐 그렇지, 멜레나야, 그럼 너는 왜 수녀가 된거야?"

내 물음에 수녀는 목에 두른 팔을 더 세게 감싸쥐더니  볼과 자신의 볼이 맞닿게끔 했다.

"가,갓난아,아기여,였을때,때 카,카리오트 대서,성당 아,앞에 버려,려져 이,있었대,대요, 그,그래서,서 어리,릴때부,부터 성다,당에서 자라,라면서 수,수녀가 되기,기로 하,한거에,에요"


"... 그렇구나"


"가,가끔씨,씩요 어,엄마, 아빠,빠가 왜,왜 저르,를 버리,리고 가,간건지 구,궁금해,했었어요, 내,내가 호,혹시 마,말더드,듬는  때,때문에 버리,린건가,가하는 새,생각도 하,하고..."


소녀는 울먹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오래세월을 그런식으로 생각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문제가 있어서 버려진거라고.

"갓난아기인 너가 말더듬는걸 어떻게 알아? 그런 생각 하지말라고, 너를 버린 부모가 그냥 쓰레기에다 무책임한 새끼들인거라고"


나는 멜레나 같이 착한 아이를 버린 부모년놈들한테 화가 나서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책임하게 애를 낳고서는 물건마냥 갖다버리는 개버러지 새끼들 같으니라고.


"우리 멜레나가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데! 힐로  팔도 고쳐줘, 옷도 빨아줘, 지팡이 없이도 신성한 세례? 그것도 하고, 이렇게 다재다능한 애를 버리다니,  버린 부모는 아마 지금즈음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이런 훌륭한 딸내미를 버렸다고 말이야!"


"그,그래도 저,절 나,낳아주,주신 부모니,님이시,신데 요,욕을 하느,는건..."

"멜레나야 낳아줬다고 다 부모가 되는게 아니야,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줄 때 비로소 부모가 되는거지, 가끔씩은 싸울때도 있곤하지만 그런 과정들 거쳐서 진정한 부모 자식이 되는거지ㅡ 아암!"

소녀는 더욱더 내 볼에 밀착하고서는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그런거,건가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멜레나야, 널 버린 부모때문에 너무 신경쓰지마, 지금 너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을 신경쓰라구"

내 말에 소녀는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아,아저씨.... 고,고마워,워요, 그,그런 마,말 해준 사라,람 대사,사제님 마,말고는 아저,저씨 바,밖에 없어,었어요"

"흐흐흐흐, 이 아저씨가 명대사 제조기 아니냐"

"헤헤헤"


소녀의 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앞을 향해 올라갔다.


-




다리가 부서질려고 할때 즈음 우리들은 드디어 계단의 맨 꼭대기에 도착했다. 나는 자고 있는 멜레나를 깨운 뒤 도착 소식을 전했다.

"... 여,여기가 추,출구?"


소녀는 앞의 광경에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들의 앞에는 3m정도 되는 거대한 크기의 문이 놓여져 있었다. 문 양쪽에는 날개 달린 거대한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멜레나야 이거 천사아니야?"

"예... 어,어째서,서 이러,런 고,곳에 대,대천사,사님의 혀,형상이?"


소녀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천사를 믿는 교단의 수녀이니 만큼 이런 지하동굴에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에 놀란 것 같다


"일단 들어가보자, 어쩌면 밖하고 연결된 문일지도 몰라"


나는 소녀의 놀람을 뒤로 한 채 드디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면서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혔다. 살짝만 밀었음에도 문은 기름칠을 한 것 마냥 매끄럽게 열려졌다.

"드디어! 탈출...?"


"이,이게 대,대체?!"

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광경은 빛이 나는 돌들이 온 천장을 도배하고 있었고  아래에는 거대한 성이 얼핏 보였다.


"왠 성이 있지?"


우리들의 앞에는 성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한 절벽이 있었는데 절벽 아래를 쳐다보니 다 무너져내린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성이 있었다.

"문에는 천사그림에 안에는 왠 정체모를 고성이라..."


"아저씨... 저,저기 스케,켈레토,톤!"

소녀는 가리킨 곳에는 고성의 탑 주변을 배회하는 스켈레톤들이 있었는데. 그 스켈레톤들은 내 복장과 동일하게 사슬갑옷에 서코트를 입고서는, 검과 방패를 든채로 하염없이 똑같은 곳만을 배회하고 있었다.

"뭔가에 조종당하고 있는건가?"

 물음에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마도 리리,치가 조조,종하고 이,있는 스케,켈레톤들 일거에,에요, 스,스켈레톤한테,테 가,갑옷을 입히느,는 해,행위를 하느,는 존재,재는 리치,치밖에 어,없어요"


"리치라고?... 리치 엄청 쎄지?"

"예"


(그럴 줄 알았다)

갑작스럽게 네임드 괴물을 만나버린 나는 어떻게 하면 놈들하고 마주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결론은 일단 저 성으로 들어가야만 된다는식으로 도출되었다. 암만 둘러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을뿐더러 고성의 맨 뒷쪽에 동굴벽과 이어져 있는 통로형 건물이 보였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소녀에게 말했다.


"멜레나야 이제부터 우리들은 성으로 들어갈거야"


내 말에 소녀는 놀란 목소리를 내며 말리려 했다.

"예?! 그,그건 아,안돼요 서,성에느,는 부,분명히,히 리치,치가 이,있을 거라,라구요, 리,리치 정마,말 쎄,쎄요! 기사 스,스무며,명이 다,달라부,붙어도 이기,길까 마,말까하,한다구요!"

(기사 스무 명이라... 존나 쎈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 선택지 말고는 여기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구"

"그,그래도 서,성은..."

"멜레나야  잡아라, 이제부터 빠른 속도로 달릴거야"


나는 그 말과 함께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목을 달렸다.



-



[끼기기기긱]


[끼긱, 끼기기기긱]

"젠장, 사방이 놈들 천지구만"

"서,성에 드,들어가,가는건 무,무리이,일 거,것 같아,아요"

부서진 성벽의 잔해 뒤의 숨은 우리들은 고성의 측면 탑과 온전히 남아있는 성벽 일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스켈레톤들을 보고는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계책은 생각나지 않았으며 결국 숨은 자리 그대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부우우웅ㅡ!]

"뭐야?! 무슨 소리야?"

탑쪽에서 우렁찬 나팔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목에 가래가 끓는 목소리가 끓기면서 들려왔다.

[마.왕.군.토.벌.하.라]

그 소리와 함께 우리의 앞에서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인것은 놈들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틈이다, 지금 가야돼"

"예"


놈들이 성을 비운 틈을 타 우리들은 재빨리 성으로 들어간 뒤, 고성의 맨 뒷쪽에 동굴벽과 이어져 있는 통로형 건물로 달렸다. 하지만 도착해보고 나니 그 건물은 고성을 통해서만 들어갈  있는 구조였다.

"이런... 아무래도 고성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

"다,다른 방버,법을 차,찾으며,면 안돼,돼요? 서,성에는 분며,명 리치,치가 사,살고 있으,을텐데,데"


"... 놈한테 안들키게 조심히 가면 될거야"


멜레나를 안심시킨  나는 건물 옆의 무너진 성벽을 통해 고성으로 들어갔다. 고성은 절벽에서 내려다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돼 보였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고성의 뒷쪽에는 좀 전의 본 통로형 건물이 길게 연결되어있었다. 그리고 연결된 부분 옆에는 자그마한 쪽문이 나있었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겠다!"


주변의 스케레톤이 없는 틈을 노려 재빠르게 도착한 뒤에 문을 열었다.

끼익ㅡ

"아무도 없는  같은데?"


"아,아마도  빠져,져나가,간 거,것 가,같아요"

"이틈에ㅡ"


피융ㅡ 탁!

들어온 문 바로 옆에 난 통로형 건물로 들어가는 문으로 다가가려던 우리들의 바로 옆을 위에서 날라온 화살이 스쳐지나가더니 벽에 박혔다.


"씨발! 뭐여!!"

위를 쳐다보니 난간 위에서 밖에서 봤던 스켈레톤이 활을 들고 서있었다. 그때 들어가려던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스켈레톤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나는 미친듯이 달렸다. 얼핏  안을 봤는데  안에는 무수히 많은 스켈레톤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끼기긱!!!!]

철커덩ㅡ 철커덩ㅡ


뒤에서 들려오는 놈들의 비명소리와 입고 있는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들을 들으며 나는 발길 닿는대로 앞만 본 채 달렸다. 고성은 넓었고 앞을 향해 계속 달렸는데도 끝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렇게 달리다 앞에 스켈레톤들이 검을 앞으로 향한 채 우리들을 반기고 있었다. 나는 곧장 옆에 난 복도로 들어간 뒤 다시 미친듯이 달렸다. 그러다 앞에 거대한 공간에 도열해 있는 스켈레톤들의 무리들을 보고서는 황급히 벽뒤쪽으로 숨었다.


복도에는 다른 곳으로 갈  있는 통로나 문이 없었다. 뒤에서는 스켈레톤들의 다가오는 소리와 벽 너머에는 스켈레톤들이 사방천지에 깔려있는 상황이었다.


(꼼짝없이 갇혀버렸네...)

소녀는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돌연 허공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입자는 모습을 드러내라]


(뭐지? 무슨 소리야?!)


[벽 너머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빨리 모습을 드러내는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의 뒤쪽과 앞쪽에서 나의 군단들이 네놈들을 찢어 죽일테니 말이다]

(젠장! 리치인가... 잘만 하면 권능을 시험할 좋은 기회가 되겠어)

나는 등에 멜레나를 업은 상태 그대로 도열해 있는 스켈레톤 무리들 앞의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레톤들은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 목소리를  장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네 말대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너도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

[크흐흐흐, 데르트 제국의 병사와 등에 업힌건 대천사의 노예년인가]

그 말과 함께 목소리의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인남성만한 체구의 새까만 로브를 걸친데다, 뒤집어쓴 후드 아래로는 푸른색의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소매에서 나온 뼈로 된 손들은 각각 수정구슬과 해골지팡이를 들고 공중에 떠있었다. 모습으로 보아 분명 리치일 것이다.

[마왕 토벌대의 패잔병들인가?]


놈의 물음에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면서 권능을 발현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맞아, 놈들한테 쫓기다가 여기까지 왔지"

[크흐흐흐, 아무래도 도망칠 길을 찾은  같군?]

"그러게 말이야, 리치가 이곳에 있는 줄 알았다면 오지 말걸 그랬나 봐"


[리치라... 어리석은 필멸자 놈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지]


"그럼 뭐라 부르면 좋겠는데?"

[그걸 알려줄  싶으냐?]

 말을 끝으로 놈이 바닥에 착지하자 나는 권능을 발현하기로 했다.

(녀석과 친밀한 관계가 된다, 녀석과 친구가 된다)
"이봐 친구, 그러지말고 나한테 알려주면 안될까?"


"아,아저씨 지,지금 뭐하,하시느,는 거에,에요?! 치,친구라니"

소녀는 놀란 목소리로 반발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놈의 행동을 주시했다. 놈은 내 말을 듣고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권능이 발현된건가? 설마 발동이 안된거면... 씨발)
"야... 뭐라 말  해봐, 우리 친구잖아? 그치?"


"........."

"우리 친구 맞지?"

"물론이다, 내 오랜 친우여"


리치는 드디어 내 말에 반응하더니 좀전과는 부드러워 보이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 부르면 좋겠냐고 물어봤는가? 답해주지, 친우여"
"'테비라 오람 비란'이라고 불렀으면 좋겠군, 이것이 나의 이름이니 말이다"


"어,어,어,어째서 이르,름을?"

업혀있던 소녀의 당황한 목소리에 나는 긴장된 말투로 물어보았다.

"왜? 뭔가 위험한 거야?"

"리,리치느,는 자시,신의 이르,름을 저,절대로 가르,르쳐주지 아,않아요, 다르,른 자가 자시,신의 이,이름을 알게되며,면 그와 도,동시에 자,자신이 부리느,는 어,언데드들의 토,통제권을 사,상실하게 되거드,든요"


"그런거야?"

그러고보니 놈이 자신의 이름을 말한 뒤, 도열된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시선을 땅바닥으로 처박았었다.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 -- 20. 혈투 -- >






스켈레톤들의 통제권 상실과 지금은  친구가 된 리치에게 나는 질문을 했다.


"이봐 테비라... 아니다, 비란,  고성 뒤편에 난 통로는 어디로 연결된 거야?"

놈은 내게 차분한 어조로 답해주었다.

[지상과 연결되어 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지?]

"아~ 내가 여기서 나갈려고 해서 말이야, 괜찮다면 안내 좀 해주지 않을래?"

[... 물론이다, 나를 따라와라, 친우여]

"흐흐흐, 그거 정말 고마운데?"

그러다 돌연 리치가 내 등에 업혀있던 소녀에 대해 물어왔다.

[등에 업힌 자는 천사의 노예년 아닌가? 왜 자네의 등에 업혀있는거지?]

놈이 해골지팡이를 들어올리려하자 나는 재빨리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이 애는 말이지, 자네한테 선물로 줄려고 가져온거야"


[선물?... 아 제물인가? 그거  고마운 선물이군, 잘 받도록 하지]


"통로 문에 도착하면 건네주지!"

내 말에 놈은 내밀었던 손을 거둔 뒤 알았다고 답한 뒤, 안내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리치의 안내에 따라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등에 업혀있던 멜레나는 몸을 떨어대며 두려운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아,아저씨... 서,설마 리치,치라,랑 하,한패여,였던거,거에요?......... 그,그래서 저르,를 이,일부러,러 여기,기로 데,데려오시,신거 여,였구,군요!!"

소녀는 몸부림치면서 내 등에서 떨어질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치가 뒤를 돌아보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제물이 번거롭게 하는 것 아닌가? 얌전해지게끔 만들도록 하지]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런가? 흐음, 친우가 그리 말한다면야...]

놈이 지팡이를 내려놓자 난 한숨을 쓸어내린 뒤, 잔뜩 겁에 질린 소녀에게 놈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는 리치랑 친구도 아니고 너를 제물로 주지도 않을거니까, 제발 얌전히 있어줘... 아저씨 믿지?"


소녀는  얼굴을 한참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고서는 다시 얌전해졌다. 하지만  뒤로 소녀의 얕은 떨림이 전해져왔다.




-



"여기야?"


나는 리치가 내가 들어왔던 문의 옆에 난 나무 문 앞에서 멈추자 놈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 이곳이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 근데 아까 스켈레톤들이 어딘가로 뛰어가던데 대체 무슨 일이야?"


놈들이 말한 마왕군을 토벌하라는 얘기가 마음에 걸렸었다. 토벌한다는 말은 마왕군이 여기로 쳐들어왔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쿠쿠스가 지휘하고 있는 군세들이 나의 거점을 알아내고서는  죽이기 위해 쳐들어왔다, 쿠쿠스 그 놈은 내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았다고 날 탐탁치 않아했었지]


(세력 다툼인건가?)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자살  해줄래?"

30분이 지나면 그 전에 만났던 우리들의 존재를 깨달을테니 이곳에서 놈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놈은 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앟은 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가만... 보통 친구한테 자살하라고 말하지는 않잖아?)
"씨발....... 이봐 친구, 아까 말 때문에 화가 났다면 미안ㅡ"

[벗이여, 그 말은 들어줄 수가 없겠군... 나의 목숨은 나의 것이고ㅡ]
-
[네놈의 목숨은 지금 나한테 빼앗길 것이니 말이다!!!!!]

놈은 해골지팡이를 치켜들더니 바로 나를 향해 휘둘렀다. 지팡이가 휘둘러질때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연기에 닿으면 위험하다고 느꼈다.


"으아아악!!!! 젠장!! 권능이 풀린건가?!!!"


나는 재빨리 놈의 지팡이를 피하고서는 문을 열고 통로형 건물로 들어갔다. 놈은 죽기살기로 달리고 있는 내 뒤를 쫓아왔다.

[나의 군단이여! 놈을 붙잡아라!!!!!]

놈은  앞에 서있는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통제권을 잃은 리치의 명령을, 스켈레톤들이 그 지시를 따라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스켈레톤들을 재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이게 무슨?!!]

"씨발놈아 네놈이름이 테비라 뭐시기라매?!!!"


[어떻게 나의 이름을?!!!!]

"네가 방금전에 알려줬는데 금새 까먹은 거냐?!!"

[으아아악!!!!!!! 인간, 어떤 방법으로  이름을 알아낸건진 모르겠지만 네놈은 내가 꼭 죽인다!!!!!]

"이런 젠장!! 괜히 도발했나?!!"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무서운 속도로 나를 쫓아오고 있는 놈을 확인하고서는,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도망쳤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앞에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의 등장에 나는 절망했다.

"이런 미친!! 계단이 여기서 왜 나와!!!!!"

[크흐흐흐흐, 언데드인 이 몸은 지치지 않는다, 그러니 계속 도망쳐보거라!!!]

"이런 제기랄... 멜레나야 혼자서 올라갈 수 있지?"

내 물음에 소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아,아저씨 서,설마 리치,치랑 부,붙을려,려고..."

"꼭 살아라"

나는 그 말을 한 뒤 소녀를 계단 앞에 내려놓고서는, 검을 빼들고  멀리 달려오고 있는 리치를 향해 돌진했다.

[크하하하하!!!! 죽으러 오는구나!!!!!!!]


놈은 턱뼈를 크게 벌린 채 웃음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뭔가를 중얼중얼 대기 시작했다.


(뭔가 마법같은걸 날리는건가?!! 삼 분동안만 대등하게 싸우자고!!!)
"씨발 놈아!!!!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비겁하게 마법쓰지말고!!!!!!!!"


두 번째 권능을 발현한 나는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그러자 놈은 지팡이로 검을 막더니 돌연 중얼거리던 입을 멈추고서는 입을 열었다.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라, 광기의 축복]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놈은 크게 당황했다.

[뭐지? 광기의 축복!!... 이게 대체?!!!]


"흐흐흐, 뼈다귀 새끼야,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했지?"

나는 당황하고 있는 틈을 노려 놈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저지된 검을 뒤로  뒤, 놈의 갈비뼈를 향해 내질렀다.


[크아아아악!!!!!]

"흐흐흐, 뼈밖에 없는 주제에 아프긴 아픈가보지?"


[크으으윽... 고통의 축복이 걸려있거늘 어째서?]


"새끼야! 네놈의 버프는 지금 없다고!!!"

갈비뼈에 꽂은 검을 더욱 더 쑤셔넣었다. 그러자 놈은 더 큰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뒤져!! 뒤져!! 제발 뒤져줘!!!"


[크흐흐흐... 인간 새끼한테 뒤질 수야 없지!!!!]


놈은 자신의 갈비뼈에 꽂혀진 검을 손으로 잡더니, 다른 한 쪽손으로는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에 나는 검을 놓친  바닥에 자빠졌다.

"끄으으윽... 존나 아프네"

[감히 인간 새끼가... 인간 새끼가!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내 저주를 무효화시킨건지 모르겠지만 기필코 네놈을 곱게 죽이지 않겠다]


"병신새끼야... 주둥아리는 살아서 존나 떠드네?"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놈은 그런 나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놈을 향해 돌진했고, 놈은 지팡이를 위로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머리를 향해 내리꽂았다.

"꺼어어...."

지팡이를 맞았던 부위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눈을 가렸다. 눈에 피가 들어가면서 앞이 온통 빨갛게 보였다. 그대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어서 강한 힘이 나를 들어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날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뭔가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눈을 떠보니 나는 놈의 뒤에서 바닥에 엎어진 채 입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놈이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친게 틀림없다.


[불멸자인 내게 오랜만에 아픔을 느끼게 해주다니, 그 점은 칭찬해주지]

놈은 말을 하면서 갈비뼈에 꽂힌 검을 뽑고서는, 그대로 손에  채 내쪽으로 걸어왔다.


[아픈가? 필멸자여. 죽음에 굴복한 자여. 나약한 자여]

"....끄으으으 쿨럭! 쿨럭!"


말을 할려 했지만 입에서 피가 섞인 기침이 자꾸만 나와 말을  수가 없었다. 놈이 내 앞에 와서 검을 내 머리쪽으로 겨냥하고 있는 순간에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네놈의 눈알부터 뽑아주겠다, 크흐흐ㅡ 으아아아악!!!!!!]


놈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검에 의해 뜷려진 로브너머로 놈의 새까만 갈비뼈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나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놈의 뒤를 쳐다봤다. 멜레나가 지팡이를 움켜진  힘겹게 서 있었다.

[크으으으!!!! 으아아아! 이 창년이!!!!!]

"끄으으으윽...."

놈은 뒤돌아 자신을 공격한 소녀의 목을 손으로 강하게 졸랐다. 목이 졸려지자 소녀의 새하얀 얼굴색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죽여버려주마!!! 모가지를 꺾어주지!!!!]


(그만 둬... 씨발!! 움직여라 몸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일어선 뒤, 놈이 공격받으면서 떨궜던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소녀를 쳐다보고 있는 놈의 두개골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박아넣었다. 놈은 자신의 두개골에 검이 박힌 채 그대로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놈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피어올랐다가 금새 사그라들었다. 그러더니 놈의 몸이 가루로 되어버렸다.

"콜록ㅡ 콜록ㅡ!"

졸라지던 목이 풀려지자 소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연신 기침을 해댔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색도 점차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몸의 힘이 빠진 채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서는  목소리로 물었다.


"멜레나야... 왜 온거야... 그냥 갔었어야지"

내 물음에 소녀는 울면서 답했다.

"흐흑.. 흐끅... 아,아저씨,씨를 주,죽게 내버,버려 두,두고 시,싶지 아,않아서... 그래서... 흐끅..."


나는 고개를 들어 울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깨끗했던 수녀복은 어디가고 찢어지고 헤진 넝마차림의 어린 여자애가  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소녀의 발목은 심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흐끅.. 그리고... 그리고... 흐끅.. 내,내가 조,좋아하,하는 사라,람이 또 내,내 겨,곁에서 사,사라지게,게 되,될까,까봐.. 흐흐흑..."

"흐흐흐, 아저씨는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검을 지팡이 삼은 채 일어선 뒤 나는 소녀에게 등을 보인 채 무릎을 끓었다.

"엎혀라... 이제 집에 가야지"

"... 아저씨"


소녀는 내 등에 업히더니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목에 두른 소녀의 팔에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거다.

그대로 우리들은 아무런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소녀는 지쳐 잠이 들었는지 귓가에서 새근새근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리가 점점 후달려오기 시작했지만 꾹 참고 계단을 올랐다. 심각한 소녀의 부러진 발목 상태에 나는 더욱 더 힘을 냈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오고 있었지만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온 몸이 비명을 질러댈 때 즈음에 흐려진 시야에서 환한 빛이 보이더니 시원한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지하동굴에서 탈출했다.

나는 비틀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주변에는 나무나 풀들이 아니라 맑고 푸른 하늘과 그 속에 떠다니는 구름들이 보였다.

"뭐지... 왜 구름이... 이렇게 가까이... 보이는 거지?"


지금 서있는 이곳이 까마득한 절벽 위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하하... 하하"

절망이 온 몸을 휘감기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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