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7화. 전투 (7/106)



〈 7화 〉7화. 전투

< -- 11. 더크와 베르크 --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그들이 앉아있는 모닥불로 다가가 멋대로 바닥에 철푸덕 앉고서는 방금  한 말에 대해서 물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뻔뻔해지기도 해야 한다.


그들은 이런 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이내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내게 물었다.

"데르트 제국군은 대전투 이후 우리보다 먼저 후퇴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는 내 가슴팍에 그려진 문양을 보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에 나는 재빨리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켄타우로스를 쫓다가 그만 본대하고 헤어지는 바람에 꼼짝없이 죽을 뻔한 저를, 카리오트 교단에서 발견해서 치료해주었습니다"

"흐음... 신참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까 전 내가 말한 물음에 대해 답해주었다.

"카리오트 교단 이 개새끼들이 이곳에 진을 치는게 가장 안전하다고 지랄발광을 해대니 고용된 우리들이야 무슨 힘이 있겠나?"


"고용됐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음? 데르트 제국의 병사가 그것도 모르나...  신참이라고 했으니까 이쪽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를 수도 있지, 설명해주자면 우리는 모험가고 카리오트 교단에서 마왕군을 토벌할 군사를 모으기 위해 우리들을 고용한거지"


(모험가? 마왕군?... 정말이지 이세계스럽네... 이참에 이 사람들한테서 세상 돌아가는 것좀 배워야 겠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데르트 제국 병사 고.레오입니다"

"고.레오? 가문명이 특이하구만?"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나는 더크네, 여기  퍼마시고 있는 땅딸보 드워프는 내 친구인 베르크"

덥수룩한 잿빛 머리카락에 투박한 외모, 턱에는 수염이 듬성등성 난 거구의 남성은 자신을 더크라고 소개한 뒤 옆에 있는 대머리에 수염이 턱을 완전히 덮은  푸짐한 외모인 자그마한 체구의 남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베르크라고 소개해주었다.

"가문명은 없습니까?"

"그런거 없네, 이 녀석이나 나나 부모 없는 고아출신들이니까, 크흠"


베르크는 모닥불에 장작을 던져넣으며 시원스럽게 답했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사과한 뒤 모험가에 대해서 물었다.

"모험가는 뭐 악마의 군세를 토벌하거나 그런 일을 하는겁니까?"

내 물음에 더크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내게 말했다.

"악마의 군세? 자네 교단사람인가?"


"아닙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더크 대신에 베르크가 설명을 해주었다.

"악마의 군세는 교단새끼들이나 부르는 명칭이지 우리같은 모험가나 용병들은 마왕군이라고 부르지"

"교단은 왜 마왕군을 악마의 군세라고 부르는 겁니까?"


"종교적인 이유로 마왕을 악마로 칭하고 있어서 마왕이 이끄는 군대를 그런식으로 부르는 거라네, 자세한 건 교단놈들한테 물어보라고, 크흠"


베르크는 다시 술병을 입에다 퍼부었다. 얼마나 퍼부어댔는지 입밖으로 술들이 흘러넘쳤다.


"베르크 씨, 그럼 하피나 켄타우로스 같은 놈들도 악마의 군세입니까?"

베르크는  물음에 입에 묻은 술들을 소매로 슥 닦은 뒤 설명해주었다.


"마왕군에 가담한 놈들만을 싸잡아서 악마의 군세로 말하는거지 가담하지 않은 놈들은 그냥 괴물이라고 부르네"
"가령 예를 들면  기어다니는 개미도 마왕군에 가담하면 그때부터 악마의 군세로 불리어지는거지"

땅바닥을 뽈뽈뽈 기어다니는 개미 한 마리를 두 손가락으로 잡은 베르크는 설명을 마친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터뜨려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더크에게 말을 걸었다.

"더크 씨는 교단을 싫어하나봅니다? 아까 교단새끼라고 말한 걸 보면..."

"전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는데 지금  지경을 만든 저놈들 때문에 싫어졌어"

그는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고서는 입술을 흰 천막 쪽으로 내밀었다. 고개를 돌려  천막을 바라보니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 앉아서 아직까지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더크를 바라보니 그는 바지춤에 넣은 손을 코에 갖다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더크는 내 시선을 느끼고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차분하게 코에서 손을 떼고서는 다시 바지춤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끝으로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쳐다봤다.

(마왕에다 모험가에다 용사에다 마물에다... 씨발것, 이러다 수인에다 엘프, 드래곤, 오크, 서큐버스, 리치, 뱀파이어, 레이스 등등 판타지 소설에서 봤던 거 전부 나오는거 아니야? 물어봐야겠다)

나는 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에 대해 존재하냐고 그들에게 물어보자 더크는 바지춤에서 빼낸 손을 코에 갖다댄 채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은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렇게 절망하던 도중 그가 돌연 덤덤한 목소리로 자신이 아까 답한 것에 실수로 잘못 말한 것이 있다고 했다.


(제발 다 없다고 해줘)

"드래곤은 수 백년전에 자취를 감춰버려서 지금은 없지"

(오!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적어도 하늘에서 불벼락을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깐 말이야, 씨발!)

나는 착잡한 마음을 숨긴 채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저희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마왕군을 다스리는 마왕은 누구입니까?"

"쿠쿠스라고 요즘 이곳 카밀란스 산맥에서 무서울 정도로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마왕  하나이네, 크흠"


"마왕  하나?"


더크의 대답에 나는 당황하고서는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혹시 마왕이 여러 명인겁니까?"

"당연할 걸  묻는겐가? 크흠"

그 대답에 착잡한 마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왕이 여러명이라... 마왕이 씨발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라...  새끼들은  세계정복이라도 한답니까?

"그렇다네, 근데  새끼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세계정복할 시간은 없을걸세, 크흠"

 물어봤다가는 자살충동이 들까봐 나는 입을 다물고서는 모닥불만 쳐다봤다.


부우웅ㅡ 부우웅ㅡ 부우웅ㅡ


그 순간 막사 내에서 호곽소리가 들려왔다.








-- 12. 전투 -- >







"씨발, 마왕군 이 개새끼들!"

더크는 옆에 놔둔 대검을 집어들고서는 호각이 불려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뒤에서는 베르크가 도끼와 방패를 한 손에 각각 쥔 채 따라 달려갔다.

"미친... 좆같은..."


흰 천막에서는 수녀들과 사제들이 지팡이를 집어든 채 더크와 마찬가지로 호각이 불려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떡하지... 나도 따라가야 되나?)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검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밤공기에 검 손잡이의 표면은 차가워져 있었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분주히 달려가는 교단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순간 멜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도 두려운 것인지 눈을 크게  채 지팡이를 가슴께에 끌어안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몸을 돌려 사람들을 뒤따라 갔다.

"씨발... 어린 여자애도 싸우러가는 마당에 여기서 뭐하는거냐!"

나는 서둘러 호각이 불려지는 곳으로 달려갔다.




-


호각이 불려지던 곳은 이 절벽울타리 안에서 유일한 길목이 나있는 방향의 세워둔 나무 목책 옆의 망루에서였다. 망루 안에서는 기사가 호각을 계속 불어대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가는 정세를 살폈다. 목책 주변으로는 기사와 모험가, 수녀와 사제들, 천사 문양이 가슴팍에 박힌 갑옷을 입은 교단 소속으로 보이는 기사들이 보였다.  속에는 대니얼 대주교와 멜레나, 더크와 베르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목책 밖에서 점점 크게 들려오는 괴성과 울부짖음을 듣고서는 두려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암담한 분위기속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막사내에 울려퍼졌다.


"악마의 군세가 몰려온다!! 모두 칼을 빼들고 성전을 준비하라!!!!"

소리가  곳을 쳐다보니 대니얼 대사제가 검을 높이 치켜들고서는 주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겁먹지 말아라, 우리들은 모두 대천사 카리오트 님의 행운을 받는 자들이다!!"


대사제는 주변의 있던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와 격려를 복돋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어깨를 두드리던 그는 돌연 망루위의 올라가더니 밑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에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전투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매들이여!! 전사들에게 성스러운 보호막을 펼쳐주십시오!!!!"

대사제의 지시에 따라 수녀들이 지팡이를 들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안 있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몸에 순백색의 막이 형성됐고 이내 망루에서 다시 대사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들은 이곳에 악마의 군세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데 우리들이 반대로 그들에게 토벌될 것인가?!!"

"아닙니다!!!"

교단기사의 대답을 시작으로 수녀들이 따라 대답을 했고 그 뒤를 이어 모험가들과 기사들이 차례차례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망루에서 다시 대사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형제자매들이 누구입니까? 형제자매들은 행운의 대천사 카리오트님에게 악마로부터 세계를 지킬 일생일대의 숙명을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천상의 수많은 권좌 중 행운의 자리에 앉아계신 대천사 카리오트 님에게 우리들의 의지를 보여드립시다!!!!!"


[와아아아아!!!!!!]

대사제의 연설에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방금 전의 암울했던 분위기는 단숨에 사라졌다.


"자 얼마든지 와보거라!! 악마ㅡ"

돌연 대사제의 말소리가 끓기더니 바닥에 뭔가가 탁하고 꽂혔다. 나는 소리가 난 그곳을 쳐다봤다. 망루에 있어야 할 그가 배에 창이 박힌 채 땅바닥에 꽂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일대가 잠잠해졌다. 어느 누구도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밖에서는 마왕군이 내지르고 있는 괴성과 울부짖음만이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천막 안에서 연습한 것이 도움이 됐었는지 아주 매끄럽게 검집에서 검이 뽑아져나왔다. 검을 쥔 채 목책을 바라봤다. 그리고 목책은 단숨에 무너졌다.


[끼아아아아악!!!!!!]

[쿠오오오오오!!!!!!]

무너진 목책에서 대량의 켄타우로스와 하피 등의 괴물들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던 괴물들이 전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젠장!!!!!!"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줄행랑을 치던 나는 옆에서 날라오는 무언가를 맞고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부딪힌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 무언가는 하체가 잘려나간 기사의 몸통이었다. 기사의 몸통에는 머리가 잘려져 나가 있었다.

"으아아아악!!!"


그 모습에 나는 황급히 그것을 옆으로 밀쳐낸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피에 의해 몸이 난도질당하면서 입에 피분수를 뿜어대는 기사부터 시작해서 켄타우로스의 의해 배에 창이 꽂힌 채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는 모험가들이 보였다.


수녀와 사제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수녀들은 머리에 큰 뿔이 달린 악귀같이 생긴 거한들에 검에 의해 몸이 세로로 양단된 채 도미노 마냥 쓰러졌다. 사제들은 신체부위중에서 유독 팔만 거대한 도깨비 같은 외모의 괴물에 손아귀에서 찰흙처럼 짓이겨 졌다.

"죽는다... 죽는다... 젠장할... 미친... 여기가 어디지?"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 나는 순간 공황장애가 왔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폭포수 같이 흘러내렸고 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쿠어어어어어어!!!!!!]

그때  앞으로 사제들을 죽인 괴물이 달려오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도주로를 찾기위해 미친듯이 고개를 돌려댔다. 그러다가 대사제의 시체 앞에서 울고 있는 멜레나가 보였다. 그 소녀의 뒤에는 수녀를 죽인 악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내 가죽 주머니에 담겨진 마야의 손가락 마디와 손톱이 떠올랐다. 감옥에서 내게 꽃을 선물하며 환하게 웃던 마야의 미소가 떠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악!!!!!!"

주변에서 비명이 들려도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난도질 당하고 잘려져 나가는 시체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울고있는 소녀와 소녀 뒤에 있는 검을 치켜들고 있는 악귀만이 내 눈에 생생히 보였다.

"씨발 저리 꺼져!!!!!"

나는 놈의 얼굴을 향해 검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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