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6화. 카리오트 교단 (6/106)



〈 6화 〉6화. 카리오트 교단

-- 10. 카리오트 교단 -- >



"으으으으.....으응?"


팔뚝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나는 눈을 뜨고 그 온기가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머리에 수녀님들이 쓰는 베일을 뒤집어쓴 어떤 여자애가 내 팔뚝에 밝게 빛나는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빛은 순백색의 새하얀 빛이었다.

"누구야!!!"


내 갑작스런 고함에 여자애는 놀랐는지 뒤로 발라당 자빠진 채  먹은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왜 그,그러세요?

"씨발! 여기는 어디야!!"

나는 미친듯이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왠 천막 같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공간 가운데 세워진 지지대처럼 보이는 나무기둥에는 등불이 걸려져 있어 어두운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여자애를 쳐다봤다.

입고 있던 옷은 지구에서 보았던 수녀님들의 복장과 똑같았는데 다른 점은 가슴팍에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날개 달린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눈은 푸른 눈동자에 인형같이 예쁜 외모였으며, 머리카락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체형은 마야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다. 딱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애였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나는 흥분했던 마음을 진정시킨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 아이야, 여기는 어디고 너는 누구니?"

소녀는 내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여...여기느,는 카,카리,리오트 교,교단의 마,막사 아,안이,입니다, 그,그리고 저,저는 메,멜레나 카,카리오트 수녀라고 하,합니다"


(구조된건가... 그건 그렇고 엄청  더듬네, 아까  때문에 겁먹은건가?)


나는 조금  온화한 목소리를 내어 팔뚝에 나 있던 상처가 말끔히 사라져 있는 것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너가 치료해준 거야?"


"예, 나,낭떠,떠러지에서 떠,떨어져,져 계,계시기,길래 저,저희 마,막사로 옮겨와,왔어요... 부,부족한 시,실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히,힐을 거,걸어드.드려,렸으니 이,이제 안아프시,실거예,예요"

"그래? 고맙다"

멜레나의 기특한 대답에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볼이 빨개지더니 횡설수설 말하기 시작했다.


"외,외간 나,남성이 수,수녀의 머,머,머리르,를 쓰,쓰다드,드듬는 거,건 부,불겨,경죄, 가,가,감사는 카,카리,리오트 니,님한테... 그,그,그게 머,머리 쓰,쓰다드,드,듬어주셔도,도 저,전혀 기쁘,쁘지 아,않으니까 오,오해하,하지 마,마세요"


"말 엄청 더듬는데... 혹시 어디 아픈거야?"


 말의 수녀는 힉하고 숨소리를 내더니 이내 의기소침해져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벼,병 아,안걸려,렸는데,데 벼,벼병 안거,걸렸느,는데....."


"이 아저씨가 미안하다, 그러니까 그만 울어라, 응?"
"이야! 멜레나가 치료해주니까 정말 팔이 하나도 안 아픈데?"

나는 팔을 붕붕 돌리며 소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소녀는 눈물을 흘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내 가슴 속에 순식간에 어른이 어린 여자애를 울렸다는 것에 대해 죄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야단났네, 어떻게 달래면 좋지?)

펄럭ㅡ


내가 난감하고 있을   천막안으로 사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오더니 울고 있던 소녀에게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은 말투로 달래주었다. 그러자 소녀는 울음을 멈추고서는 남성의 뒤에 숨어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부녀사이 같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중년 남성에게 정체에 대해 물었다.

"사제로 보이시는데... 누구신지?"


"저는 카리오트 교단의 대주교 대니얼 카리오트입니다"


"... 그 카리오트 님은 신인겁니까?"

"으음? 행운의 권좌에 앉아계신 대천사 카리오트 님을 모르시는 겁니까?"

(대천사라고? 대천사 미카엘 같은 존재인건가?)

"이상하군요... 카리오트 님을 모르시다니"


대니얼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나는 서둘러 말을 둘러대기 시작했다.


"아이고ㅡ 이런, 제가 방금 전에 일어난 바람에 비몽사몽했나봅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방금 전에 일어나신 줄도 모르고 결례를 범했군요, 사흘 밤낮을 혼절해계셨으니..."


(사흘 밤낮? 하긴 죽기 일보 직전이긴 했었지)

그는 내 둘러댄 말을 진심으로 믿은 건지 온화한 미소로 돌아와서는 내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몸은 괜찮으신지요?"


"저기 서 있는 멜레나 수녀한테 힐을 받은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근데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계셨을  머리가 세 개인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서코트를 입고 계셨던데,  최근에 벌어진 대전투에 참전한 데르트 제국의 병사이신지?"

(데르트 제국? 그건 뭔 나라냐?... 일단 그렇다고 말한 뒤 굴러가는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죽다 살아날뻔했습니다"

"동감입니다, 정말이지 치열한 전투였지요"

그는 그 말을 한 뒤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 나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전투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워낙 정신없이 켄타우로스를 쫓는 바람에"


"아하 그래서 전투지에서 벗어난 곳에 쓰러져계셨던 거군요... 전투 결과는 저희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대전투로 저희들은 이곳 절벽울타리에 갇혔습니다"

"절벽울타리요?"

"삼면이 절벽으로 빙 둘러쳐진 채 유일한 길목은 한 방향 밖에 없는 고립된 곳을 표현합니다"

(이런... 구사일생으로 목숨부지했더니 또 이런 개같은 상황에 놓이다니)
"그러면 주변에는..."

"주변에는 악마의 군세들이 사방에 매복해 있습니다, 사흘 전 매복작전으로 켄타우로스 부대를 격파했습니다만 아직 도처에 수많은 군세들이 산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그러고보니 여태까지 성함도 안물어봤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사제의 물음에 그의 뒤에 숨어있던 소녀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진짜 이름이 아닌 변형시킨 이름으로 답하기로 했다. 진짜 이름을 대면 리베왕국에 발각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감옥에서 탈출한 탈옥자 신세였다.


"그....고레오입니다"

"고레오? 가문명은 없습니까?"

(가문명도 있어야 되는거였어? 가문명이라... 성씨 같은걸 말하는거겠지)
"고.레오 입니다"


"아하 가문명이 '고' 셨군요, 특이한 가문명이군요"


"좀 특이합니다"

문득 가문명 하니까 마야의 이름이 생각났다. 마야의 이름 앞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마야 같이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또는 없는 아이들은 가문명을 붙이지 않는 건가 보다. 아님 그냥 마야가 부모의 가문명을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 고레오 님, 데르트 제국군은 전략적 후퇴를 하였고, 이에 다른 교단들도 철수했지만 저희들만은 때를 못맞추는 바람에 지금 악마의 군세에 의해 고립된 상황입니다. 부디 다시 검을 들고 위기에 처한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악마의 군세와 맞서싸우는 자들을 돕는  데르트 제국의 한 명의 병사로서 마땅히 해야  의무입니다"

"감사합니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대주교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도망갈 데도 없다.

-


대사제가 천막에서 나간 뒤 멜레나는 구석에 난 수납장에서 내가 입고 있었던 서코트와 사슬갑옷을 건네주었다.

"서,서코트,트는 깨,깨끗이 빠,빨았어,어요, 사스,슬갑오,옷에 무,묻어있더,던 피도 깔끄,끔히 다,닦았구,구요"

시체에서 뺏어입었던 피로 얼룩진 서코트와 사슬갑옷은 몰라볼 정도로 깔끔해져 있었다.


"혹시 너가 해준 거야?"

"나,남는 시,시간에... 따,딱히 하,할 것도 어,없고 해서,서 한거예,예요"

소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빨리 칭찬해달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귀여운 소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 멜레나야"


"예..."

내 칭찬에 소녀는 볼이 빨개진 채 황급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소녀가 나가고  뒤 나는 침대에 붙였던 엉덩이를 떼고서는 사슬갑옷과 서코트를 갈아입기 시작했다.  착용한 뒤에 허리춤에 검까지 차니 마치 중세시대에 나오는 기사같아 보였다. 처음 입었을 때에는 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데다 상황도 상황인만큼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멋진 포즈를 지으며 허리춤에  검을 단칼에 뽑아들었다. 하지만 익숙치 않은 탓에 검은 검집에서 엉성하게 뽑혀져 나왔다.


"연습 좀 해야겠는데... 이러다가 거짓말이라도 들통나는 날에는 죽도 밥도 안된다고"

나는 중세영화에서 나오는 기사들의 모습과 똑같아지고자 수십 번을 검집에서 검을 뽑으면서 반복 연습을 했다. 한참을 연습한 끝에 얼추 모양새가 갖춰지자 이번에는 검술훈련에 들어갔다. 영화에서  장면을 토대로 검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 상태에서 앞의 가상의 적이 있다는 가정하에 내려치고 베는 연습을 했다.


그런 식으로 훈련을 마친 뒤 나는 바깥 바람을 쐬고 막사 상황도 살펴볼  천막 밖을 나갔다.


밖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있어 천막 곳곳에 횃불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횃불에서 나오는 불빛을 통해 천막의 규모가 꽤 크다는 것과 나와 같이 서코트를 입은 남자들, 또는 강철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보였으며 그들 사이의 몇몇 남성들은 찌그러지고 움푹 파여진 갑옷이나 조잡해보이는 가죽으로 된 견갑과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남성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들은 하나같이 험상궃고 무서웠으며 일부는 넋을 놓고 있었고, 일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좌절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완전 초상집 분위기인데?)

나는 최대한 남자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구석진 곳으로만 걸어가며 막사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다른 천막과는 다른 흰 색깔 천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날개 달린 천사의 그림이 그려진 천막이 보였다. 그 앞에서는 수녀들과 남자 사제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기도라도 하는건가?"

수녀들 틈에는 앳된 얼굴의 멜레나도 보였다.

"그런데  어린애가 이런 전장에 참가한거지?"


나는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뭔가를 열심히 중얼거리고 있는 멜레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막사를 둘러보러 갔다. 이윽고 나는 높게 솟아오른 절벽으로 막힌 길목에서 도착한 뒤 위를 쳐다보았다. 존나게 높았다. 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대사제가 말한 대로  면이 전부 존나게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이 광경에 내가 서있는 이 공간이 감옥같이 느껴졌다.

"와... 어떤 미친새끼가 이곳에다 막사를 지을 생각을 한거지?"


"교단 새끼들 아니겠는가?"

어이없어 하던 내 옆에서 털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가죽 견갑에다 가죽 흉갑을 착용한 거구의 남성과 사슬갑옷위의 가죽조끼를 걸친 자그마한 체구의 남성이 절벽 근처에서 모닥불을 피워  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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