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 탈출 (4/106)



〈 4화 〉4화. 탈출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다!!!!"

"철창에 갇힌 놈이 어떻게 날 죽일 수 있다는 거지?"

페르디난드는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대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걷는 도중 그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마야라는 꼬마애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구"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유유히 계단을 올라갔다.


"씨이이이이바아아알!!!!!!!!!"

나는 주먹에서 피가 배어나올때까지 미친듯이 철창을 쳐댔다.


-- 8. 탈출 -- >


페르디난드가 가고 난 뒤 나는 마야의 손톱과 손가락 마디를 만지작거리며 반즈음 정신을 놓았다. 이제는 구멍에서 소녀가 나타날 일이 없을테니 시간도 일수도 알 수 없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고 시간개념도 상실된  비참한 곳에서 나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죄수들의 음담패설과 자신이 한 범죄에 대한 자랑섞인 말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페르디난드가 마지막으로 한 말만이 귓가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아! 그 마야라는 꼬마애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구]


"씨발새끼들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왜 사람 말을 못믿는거냐고"


나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소녀가 가져다 준 꽃을 보았다. 꽃은 바짝 매말라져 있어서 건들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런 꽃을 보고 있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웃자 지하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미친놈아 조용히 좀 해!!]

[뒤질래? 조용히 해라!!]


[여기가 니집 안방이ㅡ]


"닥쳐!! 닥쳐!!!!!!!!!!! 개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나 기분 존나 더러우니까 건들지 말란말이야!!!!! 닥치라고!!! 닥쳐!!!!!!! 아가리를  찢어버리기전에 닥치라고!!!!!!!!"


내가 광기섞인 외침과 함께 주먹으로 있는 힘껏 벽을 치자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죄수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이정도 했으면 이 구역에 진짜 미친새끼가 나라는 것을 그들도 톱밥밖에 안 든 그 띨빵한 대가리속에 충분히 새겨넣었을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역시 무료한 지하감옥에서 죄수들과의 욕배틀은 최고의 유흥거리였다.


-


탕! 탕! 탕!


익숙한 소리에 나는 얼른 잠에서 깨고서는 철창을 바라봤다.


"마야야?!!"

철창너머에는 마야가 아닌 2왕녀 리베 마르네 유르베가 우울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씨발! 왜온거야?!"


어차피 제물로 뒤지거나 여기서 병들어 뒤지거나 어쨌든 뒤질 운명, 나는 내키는대로 말을 싸질렀다.


"저번처럼 그 아가리에서 탈출얘기 꺼내려고 온거야? 씨발 공주년아!!"


공주새끼는 다 뒤져야 된다. 특히 엘베 그 씨발년은 아주 처참하게 도살당해야  것이다.

"그...... 미안"

유르베는 눈물을 글썽이며 갑자기 내게 사과했다. 소녀의 사과에 나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미안? 이 씨발년아!! 니들 공주새끼들은 그 주둥아리에서  말만 하면  들어주는줄 아나본데, 난 안 그렇다고,  줄 알아? 난 니년 따까리가 아니니깐!!!!"

"무엄하다!!!"

그녀 뒤에  남 기사가 검을 뽑아들고서는 내게 겨누었다.

"무엄? 이 빡대가리 새끼야!! 제물이 될 나한테 검을 겨누고 있는 니새끼가 더 무엄하다는 생각은 안하냐?!!!!!"

나는 한참을 지랄발광하다 제풀에 지쳐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한바탕 지랄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런 나를 향해 소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만 괴로운 줄 알아?... 너만 괴로운 줄 아냐고!!!!!"


소녀는 갑자기 호통을 치더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구할려고  직속 호위기사도 죽었단 말이야!!! 그 아저씨... 임신한 아내도 있었는데...  위험한 부탁에 선뜻 들어준 착한 아저씨인데... 너만 괴로운거 아니야!!! 나도 괴롭다고!!!!!"

소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망치로 강하게 맞은 것 같았다. 그래... 날 구하려다 화살에 맞고 죽은 남자가 있었다. 내 옆에서 머리에 화살을 맞은 채 피를 흘리던 시체가 바로 이 소녀의 기사였다.


그 생각이 번뜩 들자 나는 끓어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고 앉은 자세로 바꿨다.


"미... 미안"

내 사죄에 소녀는 말을 멈춘  눈가를 소매로 슥슥 비벼댔다. 그렇게 철창 너머를 두고 우리들은 침묵에 잠겼다.


"날 왜 탈출시켜주려 한거야?"

나는 침묵을 깨고 소녀에게 물었다.

"너는 공주잖아... 엘베 그 년하고 자매아니냐?"


내 물음에 소녀는 자그맣게 미소를 흘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배다른 자매야... 언니도 나를 싫어하고 나도 언니를 싫어해"
"그리고 내가  구해주려 한건 사람을 제물로 삼아 용사를 소환한다는게 끔찍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저...정말 사람을 제물로 삼아 용사를 소환한다고?"

"맞아... 정말 끔찍해! 몇 번이나 아버지하고 오빠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된다고 설득해봤는데도 전혀  말을 듣지 않아... 항상, 항상 언니 말만 듣고 언니가 하는 행동만 옳다고 여겨!"


소녀는 다시 설움이 터져나오려는 것인지 소매로 눈가를 슥슥 비벼대고서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언니는 정말 나쁜 년이야, 언니가 카로른 대륙에서 가장 나쁜 악녀라는것에  목을 걸어도 될 정도로 존나 나쁜 년이야"


"그래, 네 언니가 존나 나쁜 미친 년이긴 하지"


나는 소녀의 말에 호응하며 미소를 흘렸고 소녀 또한 내 말에 미소를 흘리더니  발치에 뭔가를 톡하고 떨구었다. 그런  소녀는 큰소리로 이제 가보겠다고 외치고서는 성큼성큼 계단으로 걸어갔다.


소녀와 기사가 모두 나간 뒤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재빠른 속도로 소녀가 떨구고 간 것을 집어들고, 구석으로 몸을 밀착시킨 뒤 확인했다. 조그만 머리핀 2개였다.


(이걸로 문을 따고 탈출하라는건가?)

나는 얼른 머리룰 굴리면서 지구에서 봤었던 자물쇠 따기 기술영상을 떠올렸다.

"씨발... 일단 해보자"

얼핏 기억나는 지식에 의지한 채 나는 열쇠구멍에 'ㄱ'자로 구부린 머리핀 2개를 끼워넣은 뒤 이리저리 돌려댔다. 그렇게 한참을 돌려대다 찰칵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씨발!!!!)


나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려댔다. 다시 한  탈출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조용히 철창밖으로 나왔고 구석에 난 구멍을 쳐다봤다.

(마야야...)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놈들에게 발각된다면 그 자리에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것이다. 마야를 떠올리게 하는 소녀의 손톱과 손가락 마디뼈는 내 주머니에 넣고서는 죄수들이 모두 자고 있는것을 확인한 뒤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있던 병사들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유르베, 고맙다!)


나는 서둘러 기사가 안내해줬었던 길로 달려가며 워프가 있는 건물을 향해 갔다.

끼익-

어찌된 영문인지 건물의 문이 열려있었다. 필시 유르베가 열어둔 것 일거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기가 아닌 곳이라는거다.


거대한 문을 열기 전 나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먹다 이세계로 소환당한 것부터 시작해서 감옥에서의 생활, 마야와의 만남... 당황스럽고 힘든 경험들이었지만 좋은 추억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당사자인 소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제발 살아있어줬으면 좋겠다, 제발...

그 모든 경험과 감정, 소망을 머릿속에 저장해  채 나는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득 뒤를 쳐다보니 위층 난간 위에서 유르베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끝으로 나는 문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의 흡수당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허어억!!"


잠결에 숨이 막혀오자 나는 황급히 눈을 떴다. 왠 털뭉치 같은게  앞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지금 등을 보인  엎어져있는 상태에서 털뭉치 같은것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뭐야! 이건!!"

나는 황급히 털뭉치 같은것에서 얼굴을 떼고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울창했고 바닥에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시체와 괴물 같은 것들이 피를 흘린 채 한데 뒤섞여 있었다. 이에 나는 지금 자신이 앉아있는 털뭉치 같은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존나게 큰 늑대였다.


"으아아아악!!!!!"

나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괴물 늑대의 등에서 내려와서는 미친 듯이 고개를 돌려댔다. 이 광경으로 보아 여기서 한바탕 전투가 벌어진 것 같았다. 그것도 사람하고 괴물사이에서 벌어진 전투같았다. 그 말인즉슨 이곳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란 소리였다.


"이런 썅!...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이런 좆같은 곳이라니"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니 목이 잘린 시체부터 시작해서 상하체가 분리된 시체, 머리가 반토막이 난 시체 등 원형을 유지하는 시체가 거의 없었다.

"우웨에에에엑!!!"


그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나는 욕지기가 밀려왔고 결국 바닥에 토사물을 쏟아냈다. 먹은 것이라고는 검게 탄 빵밖에 없어서 토사물의 색깔도 까맿다.

"젠장할, 시궁창 같은 곳에서 탈출했더니... 또 시궁창 같은 곳에 오다니"


나는  기구한 팔자에 자조하며 죽어있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단 이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라든가 자신을 지킬 무기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가장 멀쩡해 보이는 검과 돈이란 돈들은  다 긁어 모았다. 지금 시체들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살고 봐야된다.


이세계에서의 화폐는 동전인 것인지 죄다 은화나 동화같은 동전들밖에 안보였다. 검들도 죄다 검 손잡이에 정체모를 상징이 그려져있거나 어떤거는 천사처럼 보이는 조각상이 박혀있었다.

"어쩌면 중세시대하고 비슷한 세계일지도"


그레이트 헬름이나 노르만 투구를 쓰고 가슴팍에는 천사와 같은 문양이나 상징같은게 새겨져있는 갑옷을 입은 시체들은 중세시대에 나오는 기사들의 무장과 비슷했다.


나는 일단 상징이나 조각이 박혀져있지 않은 단조로운 형태의 일반적인 검을 집어 골랐다. 그리고 갑옷으로는 주변의 죽어있는 기사가 입고 있던 사슬갑옷과, 그 위에 걸쳐진 가슴팍에 머리가 세 개인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서코트를 뺏어있었다. 주머니에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은화와 동화들을 쑤셔넣고서는 남은 동전들은 버리기로 했다.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짐들을 다 챙긴 뒤 뒤돌아 서려는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돌연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뭐야?!)

 소리에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산처럼 쌓인 시체들 사이로 빨간 날개 같은게 퍼덕거리고 있었다.


(좆됐다! 좆됐다! 분명 괴물인게 틀림없어!)


나는 떨리는 두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잡은 채 조심조심 발걸음을 놀렸다. 그때였다.


[끼야아아아악!!!!!]


날개가 퍼덕이는 장소에서 여성의 괴성이 들려왔다. 그 괴성은 계속 이어졌다.


(저거 설마 자기네 동료들 부르는 소리 아니야?!)

불안한 마음에 나는 검을 치켜든 채 서둘러 괴성이 이어지는 장소로 달려갔다. 시체들을 엄폐물 삼아 그곳을 쳐다보니  팔에 새의 날개가, 발에는 새의 발 같은것을 한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애가 누워있었다. 알몸의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애는 다리 한 쪽이 부러진 채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저거 하피 아니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역사책으로 접했던 하피의 모습과 똑같은 여자의 모습에 나는 검손잡이를 고쳐쥐었다.

(죽일까? 죽여야 되긴 하는데... 빌어먹을, 어떻게 죽이지? 뭔가를 죽여본 적이 없는데)

개미는 죽여본적이 있지만 그보다  큰 생물은 죽여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느닷없이 사람 체구의 생물체를 죽이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 큰일났네, 빨리 결정해야되는데...)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나는 무심코 검을 시체의 갑옷에 부딪히고 말았다.


챙~!


[끼야아아아악!!!!........]

챙 소리에 하피는 울부짖는 것을 중단하더니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노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좆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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