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188화 - 북쪽으로 그리고...
이른 아침 우린 도시 외곽에서 대사제님과 클로디아씨 그리고 아마니아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막 동이터올라 희미한 빛이 비추는 정문앞에서 난 아마니아에게 의문을담아 말했다.
"정말 여기 남아도 괜찮겠어?"
남편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면서 아마니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기는 했지만 원래 있던 애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어서 난 약간이지만 걱정을 담아 물어봤다.
그런 나의 물음에 아마니아는 씁쓸하지만 확실한 의지를 머금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아요. 걱정... 해주셔서 고마워요."
"으음... 그래...? 뭐 네가 정했으면 난 따로 할 말은 없지만...."
"하하하 이번 일을 통해서... 저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지 확실하게 깨달아버렸는걸요? 혼자... 뒤처질 수는 없겠죠..."
아마니아는 살짝 눈동자만 돌려 눈물을 글썽이는 클로디아 씨와 세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편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나를 바라보며 힘차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언젠가이안 형처럼 되고 싶네요..."
".... 글쎄 후후후 이안 처럼 되기에는 힘들지 않으려나?"
"하하하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해요."
나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아마니아는 웃으며 긍정했다.
자학적인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내가 살짝 놀라자 아마니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전... 알게된 것 뿐이에요. 이안 씨와 같은 사람은 될 수 없다는걸... 하지만... 이안 씨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제가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면... 언제라도 만나주실 수 있나요?"
"후후후 그래 나중에라도 내 고향에 와 우리 종족의 특산품을 실컷 먹여줄테니깐."
"하하하 그거 기대되네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와중 옆에서 스이가 대뜸 치고 들어오며 외쳤다.
"동생!! 누나는 잊은거야?!"
"스이 누나... 하하하 그럴리가요."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눌 수있도록 옆으로 비켜선 나는 곧 클로디아 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클로디아 씨를 바라보니 그녀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글썽 매달고 남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이안 씨... 한 가지 약속... 해주실 수 있나요?"
남편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든지 아련하기 까지 한 클로디아 씨의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언젠가... 다시 만나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던 클로디아 씨는 돌연 남편의 귓가에입술을 붙이더니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속삭임을 들은 남편은 살짝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의아함을 담아 바라보자 남편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은 클로디아 씨는 남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던 세실은 멍하니 있다 화들짝 놀라며 클로디아씨에게 말했다.
"어, 엄마... 설마...!"
"응? 무슨 일 있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실의 모습에 클로디아 씨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랬구나아앗!!"
"어머 어머 얘도 참 이제 남편도 있는데 품위없이..."
"뭐야 뭐야 언제부터 그런거였어?!"
"음... 그러네... 하반신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너를 업고 왔을때 부터?"
"으읏! 엄마... 항상 내가 로맨스 책 볼때마다 뭐라고했으면서...!"
둘의 시트콤 같은 대화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순간 옆에 다가온 대사제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클로디아... 저 아이가 드디어 진짜 사랑이 뭔지 깨닫게 되었군요. 허허허"
"아 대사제 님..."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지 대사제 님도 마주 고개를 정중히 숙이며 말했다.
"북쪽으로 가시는군요..."
대사제님의 말에 난 따분하다는 듯 서있는 니엘을 흘겨보며 말했다.
"친구 도와주는 셈 치려고요."
"음 그렇군요... 북방은 넓은 초원과 시도때도 없이 혹한이 몰아치는 곳이죠. 저의 선물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선물... 이요?"
내가 의아하게바라보며 물어보자 대사제 님은 흡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대지를 두 다리 하나만 믿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법이죠. 클로디아 씨?"
그리고 세실과 대화를 나누던 클로디아를 불렀다.
클로디아 씨는 대사제 님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성벽 뒤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잠시 후 우리들은 그녀의 뒤에서 따라오는 것들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뒤에는... 6 마리의 말과 그 말 위 안장에 얹혀진 묵직해보이기 그지없는 짐들이었다.
놀란 우리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대사제 님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디 받아주시지요."
"하, 하지만...."
"허허허 여러분들은 저희 도시를 구원해주신 분들인데 어떻게 빈손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받아주시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은혜도 모르는 놈들 취급받을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에는 고개까지 숙이면서 말하는 대사제 님의 모습에 우리들은 거절할 수 없었다.
말 위에 올라탄 우리들은 도시를 떠나면서 뒤를 돌아봤다.
언제나와 같이 이제는 익숙하기 까지 한 도시의 문 앞 대사제 님과 클로디아 씨 그리고 아마니아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쾌락과 쉽게 증발해버리는 사랑이 흘러넘치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 사랑에 거짓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달은 나는 일행들과 함께 손을 들어올려 흔들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 * *
북방으로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공기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평소 얇게 입고 지내던 세실은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었고 난 마력옷을 입고 있었기에 딱히 껴입지는 않았다.
드문드문 보이던 숲도 점차 사라지더니 이제는 시야 끝까지 광활하기 그지없는 초원이 펼쳐졌고 우린 그초원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초원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중간에 지나친 사슴... 이라고 해야하나? 전생의 사슴과 비슷하게 생긴 다리 여섯달린 녀석들의 무리를 지나친 것을 제외하면 정말이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뭐 황량한 초원을 바라보는 것도 계속 보다보니 정들기 까지 했지만... 참기 힘든게 하나 있었다.
바로...
위이이잉...
"이런 씹..! 엿같은 모기 새끼들!!"
바로 엿같은 좆기 새끼들이다!!
씨발!
어둑하기 그지없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난 좆같은 모기 새끼들을 조지기 위해 모기 퇴치 풀을 잔뜩 모닥불안에 넣어버렸다.
곧 매캐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조금이지만 좆같은 좆기 새끼들의 엿같은 소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앞장서서 나아가던 니엘도 한달에 걸친 방황 끝에 완전히 의기소침한 상태로 변한지 오래였다.
"분명 이 근처인데... 왜 없지...? 언덕을 지나면 분명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가지고 온 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자신감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중얼중얼 거리는 그녀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도대체 그 이종족 문화 교류를 위한 놈들은 어디에 있으십니까? 이종족 박사 나으리?"
"..... 꼭 그런식으로 말해야 되겠어?"
아니 무슨 지가 분명 확실하다고 여기까지 이끌었으면서...
나의 비꼼에 얼굴을 구기는 니엘, 난 염치없는 그녀의 행동에 마찬가지로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어찌 말해야할까 분명 이 근처라고 말한게 벌써 일주일 전이야. 가지고 온 식수도 식량도 곧 있으면 다 떨어진다고 자 그럼 이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응? 여기에 있는거라고는 좆같은 잡초와 좆같은 모기밖에 없는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좆같은 모기가 99.9퍼센트 나의 좆같은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
내가 얼굴을 구기며 날카롭게 바라보자 할말이 없어졌는지 니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숙인채 지도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들은 나와 니엘의 대화를 듣고 어느정도 공감하는 바는 있었는지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을 때 남편이 니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니엘...?"
".... 왜"
이미 한달 넘는 여행동안 말을 튼지 오래였기에 니엘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고집스레 지도만을 보며 말했다.
"그레이스가 한 말이 맞아... 이제 식량도 식수도 부족해 이대로 돌아다닌다 해도 우린 말라죽을 뿐이야. 포기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우선... 식량과 식수라도 다시 보충하러 돌아가자 그 뒤에 니엘 너가 말한이종족 부락을 찾아보는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주변 도시에서 네가 말한 부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 사람들한테 정보도 모아보자 어때?"
부드럽기 그지없는 남편의 제안에 니엘도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 조용히 지도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남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집스러운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살짝 얼굴을 붉힌니엘은 입술을 삐쭉내밀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응..."
드디어...
도시라면 편안한 침대도 그리고 좆같은 모기도 없겠지.
휴...
결국 고집을 꺽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니 역시 전부 바뀐 것은 아닌 것 같다.
능청스러워지고 부드러워진 것은 맞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생각, 결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실행력 하나만큼은 기사였던 시절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생각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솥을 꺼내들었다.
"좋아! 결정! 내일부터는도시나 찾아보자,후우... 우선 밥이나 먹자"
대충 불위에 솥을 올려놓은 나는 그 안에 물과 말린 후 빻은 곡물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여기에 오늘은 돌아가기로 결정한 날이니깐 후후후 채소도 좀 넣어야지.
한달 동안 숙성된 탓일까 약간 물렁거리는 배추 비스무리한 채소를 썰어 스프 안에 넣은 나는 천천히 저어가며 끓이기 시작했다.
스프 수면 위로 기포가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여기에 추가로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품질만큼은 훌륭하기 그지없는 육포를 꺼내 날카로운 단검으로 한입 크기로 썰어 넣었다.
왜 음식을 내가 만드냐고?
그야... 여기서 그나마 먹을만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없기 때문이다.
이안, 내 사랑스러운 남편은 요리를 만들랬더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맛을 낼 수 있는지 시기 그지없는 스프를 만들어내고 스이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재료를 어떻게 써는지도 모르는걸?
세실은 뭐... 성지에서는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만 먹고 살았기에 물은 손에도 대지 않았다.
남은건 나와 니엘인데... 니엘은 알다싶이 기사다 여행을 다닐때도 저급 육포를 씹으면서 끼니를 때우는게 전부였다.
그나마 요리 다운 요리를 해본 것은 나 혼자 뿐... 어찌보면 당연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뭐... 나도 요리를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간 정도는 맞출 수 있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스프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확실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조심스럽게 맛을 보니 육포에서 올라온 짭짤한 맛과 곡물가루를 넣어 약간 걸죽한 식감이 그래도 먹을만은 하다.
대충 먹을 것을 완성한 나는 점심에 육포 쪼가리로 때운 탓에 든든한 국물을 원하는 일행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빵을 스프에 찍어 부드럽게 만든 다음 먹던 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내일은 부디 도시에서 음식다운 음식을 먹으며 좆기들의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랬지만...
두두두두두...!!
어둠 속에서 대지가 울리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서는 니엘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