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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화 〉187화 - 폭풍 후 맑음 (188/190)



〈 188화 〉187화 - 폭풍 후 맑음

"그레이스 씨? 오래간만이네요?"

".... 어쩌다 이런 곳 까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어라 반갑게 맞이해주실 줄 알았는데... 인사도 안받아주시고 조금 실망이네요."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걱정 마세요. 저 그렇게 마음이 작은 여자가 아니니깐요. 사과 받아드릴게요."

난 눈앞의 여자를 보고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전만 해도 딱딱하고 차가운 성격을 가지고 있던 니엘은 어느새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장난스럽게 말을 할 정도로 유해져있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남편이 기억을 잃기 전의 일을 말하지는 않았을까 살짝 고민했지만 곧 바보같은 생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면 그렇게 태연하게 나를 대하고 자기 기억을 알고 있는 여자를 찾을리가 없지 않은가.

난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여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 오래간만에 니엘 씨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는데 잠시 둘만 있게 만들어줄 수 있어?"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능글맞은 미소를 띈 니엘을 번갈아 바라보던 이안은 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응 알았어 나중에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

 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난 니엘을 쏘아붙이듯 노려봤다.

"왜 이곳에 있으신거죠?"

"네? 그야 야만인들에게서 저희들을 구하신건 그쪽아닌가요? 당연히 도움을 받았으니 이곳에 있는거죠. 아 정말 위험했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으으 야만인들에게 무슨 꼴을 당했을지..."

점점 길어지는 니엘의 말을 끊은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잖아요. 분명 고블린 같은 놈들한테 따먹히고 싶어서 여행을 다닌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 분이 왜 동쪽에 오신거죠?"

"아하... 정말이지 정도 없으시네요... 오래간만에 만나서 하시는 말이 그런거라니..."

".... 정말 성격 많이 바뀌셨네요..."

"뭐...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깐요. 아무튼! 그런건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건 제가 이곳에 있고 당신이... 이안  사람한테 모든 걸 말 안했다는거죠."

"..... 그래서 뭐 협박이라도 하실려고요?"

"어머 저 그렇게 천박한 사람 아니에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니엘의 모습에서는 기사의 완고한 면모는 티끌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미소짓고 있는 입과는 다르게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는 그녀의 눈은 마치 상인과 같이 자신이 가진 지식을 높은 가격으로 받으려는 냉철함과 여유로움을 품고 있었다.

정말이지... 많이 변했네...

그녀의 저런 미소를 보고 누가 기사라 생각할까.

백이면 백 기사보다는 상인을 연상할 것이 분명했다.

난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그래서 원하는게 뭔가요."

"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니엘, 여신을 만난 순간 부터 지금까지 잔뜩 피로함이 누적된 나는 더 이상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었기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시간 낭비는 그만하죠. 빨리 원하는게 있으시면 말해주세요. 돈? 안전한 장소? 아니면... 뭐 다른거라도 원하신건가요?"

"흐응... 정말 뭐든지 주실건가요?"

능글맞게 웃는 니엘, 피곤함이 몰려와 대충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더 이상 장단 맞출 생각 없어 보이는 나의 모습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니엘은 상큼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레이스 씨는 저와의대화가 지겨우신가봐요."

"....."

"네 네 알았습니다. 딱히 많은걸 원하지는 않아요. 그냥...  가지 일만 도와주세요."

야릇하게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에 어쩐지 불길함이 내 마음속에서 꽃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난 이어지는그녀의 제안에 얼굴을 찌푸릴  밖에 없었다.

* *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뒤에서 니엘이 속삭였다.

"약속... 잊으시면 안돼요?"

"하아... 정말이지... 변한듯 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네요. 걱정마세요. 잘 이야기 해볼테니깐요."

"아싸~ 후후후 아 정말 기대되라..."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혼잣말에는 정말이지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는 듯 흥분과 들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절로 골이 아파오는 것을 느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아 이야기는 잘 끝났어?"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응 미안 여보 오래간만에 만나서 조금 오래 이야기 했네"

"네 네 죄송해요 이안 씨 정말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후후후"

즐겁다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한 그녀의 모습이 자기와 만날 때와는 사뭇 달라 잠깐 움찔거린 이안이 말했다.

"다행이네요."

"네 네 정말 운이 좋았어요... 아! 그리고 감사 인사가 늦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구해주셔서... 잡혀있던 분들도 모두 이안 씨한테 감사하고 있어요."

"아, 그, 괜찮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러분들을 도와줄 생각보다는.."

"쉿... 이럴때는 천만의 말씀을요 아가씨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요... 라고 말하는거라구요. 킥킥킥"

니엘이 남편의 입술에 손가락을 착 달라붙이더니 싱글싱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흠흠... 천만의 말씀을요 아가씨 도움이 됐다니 다, 다행이군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이안은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곧 그녀가 말한것과 똑같이 말했다.

"잘했어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작작 좀 하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죠?"

"아내분이 질투하시네요. 후후후"

"하아... 원래 당신 기억 잃었을 때 일은 이야기 하기 싫었는데..."

능글맞은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설레 설레 저은 나는 미리 말을 맞추어 두었던 기억을 잃었던 날들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진실 속에 거짓말을 섞었다.

 여관에서 만나게 된 니엘, 우연치않게도움을 주고 난  던전으로 내려간 이야기부터 그곳에서 발견한 재단까지.

재단을 조사하던 와중 무너지는 땅 난 여기서 거짓말을 살짝 섞었다.

"떨어지고 나서 우리가 보게 된건 무수한 고블린들이었어. 우린 혈투 끝에 간신히 고블린들의 무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고 몇일동안 굴 속을 돌아다녔지."

"네 저희들은 탈출하기 위해서 고블린 소굴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듯 말한 니엘의 도움에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말을 이었다.

"소굴을 해매던 우린 결국 희미하긴 하지만 바람이 느껴지는 곳을 발견했고, 몇일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못먹은 채 방황하던 우린 결국 그곳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그곳에서 발견한건..."

"고블린 로드였죠."

"그때 벌어진 전투중에 당신의 머리가 다쳤고 밖으로 나오고 난 뒤 니엘과 해어졌어."

"전 급하게 할일이있었거든요."

할일이야 있었겠지.

단지 그 할일이 고블린 같은 이종들과 떡치는 거라서 문제지만.

싱긋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어 마음속으로 대꾸하며 그녀를 흘겨본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겨우 도시로 돌아와서 당신의 상태를 확인할 때는 니엘과 만난 순간부터를 전혀 기억을 못하더라고 솔직히... 몇일이나 제대로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으면서 싸운 기억을 되찾을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당신 그때 엄청 심하게 다쳤었어. 그래서 말 안한거야..."

모든 이야기를끝낸 내가 미안하다는 듯 남편을 바라봤다.

"그래도... 미안 말해줬어야 했는데..."

"아니야 괜찮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나저나..."

감회가 깊다는 듯 니엘을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정말 무슨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는거 아닌걸까요? 하하하"

기분좋게 웃는 그의 모습에 잘 속여넘겼다고 생각한 나는 니엘을 조금 난처하게 만들어줄 생각을 가지고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나 말이야. 아 그런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어보자 니엘은눈썹을 살짝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더니 곧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악동같은 미소를 지었다.

...? 뭐야 왜 저렇게 웃는거지? 갑자기 엄청 불안...

"아 사실 저 몬스터들하고 섹스하는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고블린들을 보니깐  이상 못참을 것 같아서 곧바로 산에 살고 있는 다른 몬스터 찾으러 갔어요."

미친....

난 두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폭탄과도 같은 그녀의 발언에 순간 조용해지는 방안, 남편은 갑작스럽게 과격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발언에 자신이 잘못들었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

"..... 어.... 네? 저, 자, 잘못들었는데... 다시 한번 더..."

예기치 않게 니엘의 독특한 취향을 강제로 알게된 이안이 얼빠진 표정으로 어색하게 물어봤고 니엘은 그런 남편의 모습과 두눈을 질끈 감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상태에서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말했다.

"아 잘못들으셨어요? 저 몬스터하고 섹스하는거 좋아해요."

"......"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남편의 얼굴에 그런 말이 들어나는 것만같았다.

난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도와달라는 듯 시선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대뜸 그런 말을 하는건 조금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다시 제 취향을 알려주는 것도 귀찮고... 이안씨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안 씨도 제 취향은 알고 있었으니깐요. 거기다 미리 알고계시는게 좋지 않나요?"

"네... 그,그건 그렇네요... 하, 하하"

"그렇다고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요."

"아이고 네에...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너무 능글스러워진 그녀의 모습에 앞으로의 여정이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 나는 다시금 진심을 담아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면서 난처한 미소를 짓고있는 남편에게 본목적을 말했다.

"여보"

"어, 어어 응?"

아직도 니엘의 독특한 취향 폭로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던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니엘 씨 도와줄 있을까?"

"응?"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의아해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실은 그때 우릴 도와준것도 반쯤은 내 잘못때문에 그런거거든... 그때 내가 재단을 조사하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런 일이 없었을텐데... 내 실수 때문에 그런 일을 겪은 것도 엄청 미안해서... 그... 괜찮다면 오크들의 성지에 가기 전에 한곳만 들려도 괜찮을까?"

내가 눈치를 보며 부탁하자 그 모습이 꽤나 생소했는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남편은 곧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런거면 괜찮아 도와주자. 그리고 나도 빚이 있으니깐."

"빚?"

빚질 일이 있기는 한가? 음... 야만인들 숙영지에서 무슨 일 있었나?

내가 의아해하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신하고 같이 야만인들한테 갔을 그.. 조금 부끄럽지만 여자분들이 모여있는 곳에 우릴 안내한 야만인이 데리고 갔었거든... 흠흠 그때 조금 도움을..."

얼굴을 붉히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난 이해했다.

 거기서 여자하고 떡쳤구나.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네 좋아 그럼 니엘 도와주는걸로 결정... 맞지?"

"응 상관없어. 여신님의 축복도 있으니깐... 되도록 여유롭게 가도 괜찮아."

"응. 니엘 씨 그래서 어디로 가시나요."

우리들의 대화를 미소를 띈 채 지켜보고 있던 니엘은 나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여기서 더 북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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