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186화 - 폭풍 후 맑음
"헉!"
전기충격이라도 받는 것처럼 잠에서 깨어난 나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크윽.... 무슨...."
아직 몽롱하기 짝이 없는 정신,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소리를 흘렸다.
정신없는 머리속을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본 나는 방안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고... 조각상을 보고 난 다음에... 아...'
여신과의 만남과 그녀의 선물, 이제야 모든 기억이 돌아온 나는 그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여신에게....'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앙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나였기에 더욱 이질감을 느꼈다.
아무리 그녀가 오만할 수 있는 신의 입장에서 개미와 같은 사람들도 평등하게 대하는 모습을 봐서 호감을 들 수는 있다지만...
그때당시 내가 여신을 보고 느꼈던 감정들은 처음보는 사람에 대한 미약한 호감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어머니를 바라보는 듯한 감정 그 자체였다.
"우웁...."
다시 그때의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상기시키자 속에서 매스꺼운 신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이건... 명백히 이상했다.
사람 손에 길러지는강아지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처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침식하는 그 감정에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한에 부르르 몸을 떤 나는 창백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위해 한가지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신은 만나지 말자...'
정말이지 다시는 만나기 싫다.
끼이익...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시선을 돌리니 문 너머에는 두눈을 크게 뜬 스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스이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여느때와 같이 활기차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레이스 님! 일어나셨어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응... 내가 기절하고 얼마나 지났니"
"으음~ 이제 하루 정도 지났어요!"
"하아... 그래? 이안은 지금 어때?"
"주인님도 방금 일어나셨어요! 주인님이 일어나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하러 왔죠~ 헤헤헤 저 잘했죠?"
"훗 그래 그래 잘했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빠르게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빨리 이안이 있는곳으로 안내좀 해줄 수 있니?"
"네! 저만 따라오세요~"
앞서 걸어가는 스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이제 진짜로 이 도시에서 할일은 모두 마쳤다.
그리고 동시에 여정의 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크들의 성지, 그곳을 방문하고 남편의 비엔나 소시지를 좀 확대시키면 완전히 끝이겠지.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 도착하고 난 뒤를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이미 신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무슨 선물을 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무슨 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면 그녀와 같은 일족이 된다는 말을 꺼낸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일족....'
무슨 뜻일까.. 의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 신과 같은 일족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신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나 그 여신님의 일족이라니... 분명 좋은 꼴은 못볼 것이라 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우선 그 일족이라는게 뭔지 알아낸 다음에... 되도록 신을 만나지 않는 방향으로...'
"여기에요~ 주인님~ 그레이스 님도 깨어나셨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걸어가던 나는한 방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치는 스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남편과 대사제 님이 이야기를 나누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난 대사제 님을 보니 신과 만났을때가 떠올라 미리 경고를 해주지 않은 대사제 님에게 약간 화가났지만 꾹 참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레이스 괜찮아?"
남편의 걱정섞인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괜찮아."
그 순간 대사제 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신님께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경고하셔서 예기치 않게 두분을 불안하게 만들었군요."
난 불쑥 나한테 사과를 하는 대사제님의 태도에 꿀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직접 만났던 여신님의 태도를 알고 있었기에 결국 용서할 수 밖에 없었다.
대사제 님이 약간 안쓰러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고생이 많으시네요..."
"허허허... 그래도 즐거운 날이 더 많아서 괜찮답니다."
확실히... 즐거워 보이기는 한다.
대사제 님의 얼굴에는 피곤함도 분명 보였지만 그것을 상회할 정도의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으니깐.
내가 쓴웃음을 짓자 대사제 님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것을 받아들인 내가 의자에 앉자 대사제님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여신님을 만나뵙고 보상도 받으셨을 겁니다 혹시 어떤 보상을 받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신이 먼저 말해"
나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받은 보상은... 흠흠 바, 발기력이에요."
부끄러워 하며 말한 이안이 받은 선물은 생각 이상으로 별로였다.
발기는 약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그다지 필요없었기에 더욱 별로인 능력이었다.
'발기력이라... 말 그대로의 의미인가?'
그래도 그 여신님이 주신 능력인데 뭔가 다르지 않으려나?
라는 기대감을 품고 대사제님을 바라보자 대사제님은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신님도 이안 님을 마음에 들어하시나 봅니다. 그런 능력을 받으실 줄이야.."
"어... 좋은건가요?"
남편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는지 의구심 섞인 눈빛을 대사제 님에게 보냈다.
대사제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과 나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예 좋은 능력이지요. 그능력은 기력이 완전히 쇠하지 않는한 세우고 싶을 떄는 흥분도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발기를 시켜주고 생식기에 대한 강직도와내구성도 놀랄 정도로 높여준답니다. 하지만... 이거야 원 저희들이 드렸던 선물과 겹치는 군요... 어쩔 수 없죠. 다른 보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약은 그대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쏜살같이 설명하는 대사제 님, 신의 힘을 탐구할 때 만큼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순식간에 말을 쏟아내다 싶이 설명한 대사제 님은 뒤늦게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물어봤다.
"그레이스 님은 어떤 선물을 받으셨는지요?"
"어... 전 무슨 일족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내 말을 듣는 순간 두 눈을 부릅 뜨는 대사제 님,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일족이라뇨?!"
"어, 네?"
극도로 흥분해 콧김을 뿜는 대사제 님의 기세에 살짝 질린 내가 난처해하자 그는 자기가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숨을 고르며 다시 나를 쳐다봤다.
"방금 일족이라고 하셨습니까?"
"으음... 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여전히 두 눈에 불꽃과도 같은 흥분을 담은 대사제 님은 자리에 앉더니감탄사를 흘렸다.
"일족이라니... 수백년간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을 텐데... 허어... 우선... 죄송합니다. 여신님이 일족을 받아들인 건은 저도 살아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아 괜찮아요.그런데 일족이라는게 무슨 말이죠?"
"음 교인이 아니신 그레이스 님이라면 분명 모르실테지요. 일족이란 말 그대로입니다. 여신님께서 스스로와 같은 종족으로 그레이스 님을 받아들인다는 거죠."
"... 그 말은"
"예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그레이스 님의 몸은 천천히 신의 육체로 변하게 될겁니다. 몸이 더욱 더 마력에 적응하게 되고 힘이 강해지고 단단해지다 나중에는 마력과 완전히 동화되어 일반적인 물리적 공격으로는 상처조차 입지 않게 되겠죠. 말 그대로 몸 자체가 마력 덩어리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물리적 필멸자가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존재가 되는거죠. 정말이지 여신님께서 이런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을 살아생전 보게될 줄이야... 허어어...."
감탄사를 연신 흘리는 대사제 님의 모습에 난 드디어 스스로가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쩐지 굉장히 큰 부담을 느낀 나는 한가지 사실만큼은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들어보니 굉장히 큰 축복을 받았네요... 저... 그럼 이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냥 그런 식으로 몸이 바뀌기만 하고 끝인가요?"
나의 물음에 고개를 내젓는 대사제 님, 그는 한층 더 뜨거운 흥분을 두 눈에 머금은 채 말했다.
"아니지요. 설마 여신님의 축복이 거기서 끝나겠습니까. 흠흠흠 이제... 그레이스 님께서는 원하시면 언제든! 저 천상을 향해 승천하실 수 있는 자격을 얻으신 겁니다!"
".... 설마"
"예! 비록 말석이긴 하지만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영광이란 말입니까! 허허허 정말이지 부럽기 그지없군요."
그 순간 대사제 님은 떨떠름한 내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어느정도 침착해졌는지 내 눈치를 보며 나지막하게 물어봤다.
"...... 하지만 그레이스 님은 그다지 원하시지 않으신 것 같군요."
"하하.. 알아채셨나요?"
대사제 님의 말이 맞았다.
난 과분하기 그지없을 정도라 느끼고 있는 이 축복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
"..... 축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그건 의무가 아니죠?"
"네?"
"그... 승천... 인가 뭔가 하는거요. 굳이 신인지 뭔지가 되서까지 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요."
"아... 그, 허허허 보통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텐데... 으음... 그렇군요... 지금까지 승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예.... 올라기지 않아도 괜찮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승천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지만 말이죠... 으음..."
"그럼 정상적으로 늙기도 하나요?"
"으으으음....노화는... 아마 되지 않을겁니다. 마력 생물체가 되면 수명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으음... 늙어죽지는 않겠네요..."
"예..."
"감사합니다. 궁금했던 점은 전부 알았어요."
"으음... 알겠습니다."
내가 떨떠름하게 반응하자 대사제 님은 완전히 흥분이 식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난 신이 된다느니 그런 거창한 목표는 원래 없었다.
그냥 남편과 함께 즐겁게 여행을 하며 살아가다 고향에서 조용히 살고싶은 마음 밖에 없었는걸?
방안이조용해지자 남편은 우리 둘의 대화를 듣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자기를 버릴거라 생각했나? 뭐 그럴 생각은 진짜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저 모습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와중 남편이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보"
"응?"
내가 물어볼게 있냐는 듯 바라보자 남편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를 알고있는 여자를 야만인들의 숙영지에서 봤는데 여자들도 모두 구출했다며? 혹시 그 사람들 어디있는지 알아?"
..... 설마
"어떻게 생겼는데?"
"어... 보라색 머리카락에 이름은 니엘이라고 하던데?"
아... 다시는 만날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날줄이야...
재빠르게 난처한 마음을 숨긴 나는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아 니엘... 으음.... 그 사람들은 어디있는지 모르겠는데..."
"아! 야만인들에게서 구출한 여성분들이라면 제가 알고있습니다. 갈곳없는 분들이라 저희들이 보호하고 있었죠 원하신다면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내가 별로 원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는 듯 떨떠름해 하자 침울해졌던 대사제 님이 기회가 왔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은 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