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185화 - 폭풍 후 맑음
대성당에 왔을 때 스테인글라스에서 봤던 네토라레 여신의 조각상이 서있었다.
처음으로 조각상을 보고 느낀 감정은 아름답다는 것 단 하나뿐이었다.
네토라레 여신의 조각상은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었으며 그 섬세함은 옷주름에서부터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머리카락에 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만지는 순간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신의 조각을 보고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도 눈앞의 조각상에 감탄을 토해내며 두번째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 난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조각상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허허허 아름답지요?"
조용한 지하실 내부에 울려퍼지는 자부심 넘치는 대사제 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우린 힐끔힐끔 조각상을 흘겨보며 미안함을 들어냈다.
"죄송합니다. 조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얼굴을 붉힌 남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난 그런 남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남편과 똑같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확실히... 섬세하기 그지없네요... 이런 조각상은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나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의문에 대사제 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야 이 정도의 완성도는 본적 없으시겠죠... 신이 만드신 것이니 말입니다."
"신이요?"
내가 의아하게 물어보자 대사제 님은 상냥한 미소를 띄며 나의 의문에 답해줬다.
"네 신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신 신이죠. 허허허 장인의 신님이 사랑의 여신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바친 조각상이죠."
"아..."
아름다움을 칭송한 조각상이라... 과연 언제 받았을까.
문득 궁금증이 치솟았다.
오크의 좆집이 되기 전일까? 아니면 좆집이 된 후일까...
그런 나의 호기심을 느낀 듯 대사제 님은 조각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신님은 아름다운 조각상에 흡족해하셨고 그를 침실로 불러들였죠. 허허허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신 또한 인간과 다를바 없지 않습니까?"
"...."
대사제의 위치에 있는 성직자가 할말은 아니었다.
나와 이안은 난처하게 웃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대사제 님은 그런 우리들의 배려를 느꼈는지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사제의 위치에 있는 성직자가 이런 말을 하는게 조금 그렇지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허허허 여러분들도 곧 제가 이리도 신님들을 편히 이야기하는 이유를... 아실테니 말이죠."
순간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독....?!
반사적으로 몸에 회복을 걸었지만 몽롱함은 그 크기를 키워갈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경악했다.
독이 아니라고? 아니... 하지만... 어느새...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이미 내 몸은 느껴지지 않는 무엇인가에 잠식당한지 오래였다. 사고는 명료하지 못하고 호흡은 느려진다.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이 시야가 흔들리고 난 털썩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은 초대를 받은 것 뿐이니깐요. 허허허 이거 참 부럽기 그지없네요. 여신님께서는 제가 죽어야 만나주실 생각이신지... 이거이거 죄송합니다.... 그럼... 달콤하면서도 편안한 꿈 꾸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간신히 들어올리던 나는 이미 쓰러져 잠에 빠져든 남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담고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
"아이야...? 아이야... 일어나거라."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은 몽롱하고 사고는 뚜렷하지 못하다.
난 방금 전까지 뭘하고 있었지?
안개가 끼인 머리로 생각해도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기시감만의 드문드문 느껴질 뿐이었다.
왜... 이렇게 익숙한걸까.
툭 툭 끊기는 생각 속에서 언제 이런 기분을 느꼈는지 나른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전생이 기억났다.
매일 아침 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기 싫은 눈꺼풀을 떴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 비치는건... 얼룩진 천장.... 이었지만...
"아이야? 안일어나는데 괜찮은거 맞니?"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음... 다시 각성마법을..."
다시 귓가에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무겁기 그지없는 눈썹을 간신히 파르르 떨며 들어올렸다.
몽롱한 눈동자로 멍하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옮기니 그곳에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천 한장만을 몸에 두른채 반나체 상태로 서있었다.
벌꿀과도 같은 머리카락은 윤기를 머금고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었고 이목구비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배치라고 말하는 듯이 오밀조밀하여 보기 좋았다.
피부는 어찌나 반들반들한지 파리가 그 위에 앉는 순간 미끄러질 정도였고 가슴과 엉덩이는 압도적을 컸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밸런스에 딱 맞다 여길 정도였다.
그녀의 초월적인 외모에 정신을 못차리며 바라보던 나는 뒤늦게 그 옆에있는 진지한 외모의 딱봐도 오피스 걸 처럼 보이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의 옆에 서서 난처한 눈빛을 하다 정신을 차린 나를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 옆의 반나체의 아름다운 여성을 어디선가 본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눈을 뜬 나를 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 기억났다.
"사랑의 여신..."
"응? 후후후 날 알고 있구나? 어머나 나도 참 당연히 알고 있겠지. 이곳에 오기전에 보던게 내 조각상이었으니 말이야 후후후"
선물받은 조각상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뭔가 모자라보이는 여신님의 모습, 난 대사제 님의 그불경하다 느낄 정도의 태도가 이해가 가버렸다.
여신님은 자신이 선물받은 조각상의 어떤 부분이 자신보다 못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은 아주 디테일하기 그지없다는 것인지를 쪼잘거리며 설명하는 여신님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하자 여신님의 옆에 선 진지한 얼굴의 여자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여신님의 옆구리를 콕 콕 찔렀다.
얼마나 많이 주위를 줬는지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여자의 모습, 여신님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의 감촉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아, 험험 그래 아이야... 흠흠 미안하구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건 언제나 즐거워서..."
"아, 괘, 괜찮습니다."
이 여자가 그 모든 음행을 경험한 여자라니... 설마 유아퇴행을 한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성서에 쓰여진 이야기 속에서 표현되는 여신님의 모습과 지금 내 눈앞에서 말하는 여신님의 모습은 180도로 달라보이니깐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고맙구나 행군을 막아주고 나의 도시를 지켜준 일에 대해서는 백번 고마움을 표현해도 부족하다 여길 지경이란다."
"괜찮습니다. 우연히... 도와준거라서요."
"우연이라 해도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을줘야하는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란다."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신기하게도 신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아랫것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날 한명의 개체로써 사람으로써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신기했다.
신이라면 인간들은 전부 개미와도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나?
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가기도 했다.
최초로 대지에 발을 내딪은 여신임과 동시에 모든 자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여신, 그녀는 신도 사람도 짐승도 모두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야할 대상이다.
성서에 적혀져 있는게 반만 거짓말이라 해도 그녀의 차별없는 태도가 이해가 갔다.
"그래서... 난 보답을 주려고 하는데 괜찮니?"
난 군말하지 않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를 가득 담아 고개를 숙이는 나의 모습이 기꺼웠는지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순간 주위가 확 밝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 난 그녀의 인외스러운 아름다움에 무심코 감탄했다.
조각상만 봐도 아름다움을 느꼈는데... 이제보니 조각상은 그녀의 아름다움의 반에 반도 못담은 모양이다.
하긴 마음속의 아름다움은 어찌 담을 것인가?
외형의 아름다움만 담은 것만 해도 신의 경지에 오른 솜씨다.
"후후후 어쩜 이리도 예의바를까 아이 착해라."
슥슥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행동은 마치 아이를 귀여워하는 어미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난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당황했지만 곧 머리를 타고 흐르는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는것을 느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 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신은 신인가 보다.
아니면 그냥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든건가?
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시 한번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구나... 만약... 우연히 네가 그 도시에 없었더라면... 검은 말을 섬기는아이들에게 끔찍한 짓을 당했을거란다... 정말... 정말로 고맙구나.. 그 아이들을 구해줘서..."
약간 먹먹하게 잠겨있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 들려 살짝 눈동자를 들어올리니... 그녀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애처롭고 여리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신을 위로한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 꾹 참았다.
그 순간 옆에 서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주인님 시간이 없습니다."
"어머... 훌쩍 그랬니? 미안..."
".... 아닙니다."
"하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미안하구나 아이야..."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은 여신님의 모습에 마음이 애타고 나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을 입밖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욕망을 억눌렀다.
"아닙니다. 여신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후후후 착해라... 그래도 안된단다. 보답은 받고 가렴."
머리에서 손을 때는 여신님, 난 그 손길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움찔 몸을 떨었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곧게 편 여신님은 곧바로 내 이마에 그 곱디고운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아름답기 짝이 없는 입술을 달싹이며 천사가 노래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선언했다.
"지금 이곳에서 사랑을 담당하는 저는 선언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아이 그레이스는 저의 축복을 애정을 사랑을받고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과거부터 내려져온 절대적인 율법에 따라 적법한 선언으로 인정됩니다. 아가..."
"네..."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몽롱해진다.
난 흐릿한 눈빛으로 부드러운 눈빛을 나에게 보내는 그녀를 올려다 바라보며 난 멍하니 대답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정한 나의 아이로 다시 태어나겠느냐?"
"네...."
"후후후 좋구나... 많이 졸리니?"
더욱 잠이 몰려온다.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난 몽롱한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귀엽다는 듯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볼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녀의 손길에 난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에 볼을 부볐고 여신님은 더욱 기뻐하며 속삭였다.
"푹... 자렴, 다시 일어나면... 환영한단다 우리 일족이 된걸... 그리고... 후후후 다음에 만나면 더 깊디 깊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눠보자꾸나..."
"...... 네에에...."
부드럽게 내 몸을 감싸오는 벨벳과도 같은 어둠속에서 내 볼에 맞닿은 그녀의 손길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했고... 곧 내 시야는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