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2화 - 성장기
그레이스 SIDE
"후우......"
난 단검에 묻은 핏물을 휙 휙 흔들어 털어내고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회복되었음에도 욱신거리는 듯한 어깨에 약간인상을 찌푸리며 시체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 순간 꼬맹이가 나에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레이스!! 조심해!!"
녀석의 말에 경계심이 극도로 치솟은 난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마지막 전 고블린이 찢어진 배에서 내장을 덜렁이면서 증오로 가득찬 눈으로 나에게 창을 찔러왔다.
'아.... 좆됐네....'
내 심장을 향해 정확히 노려오는 창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단검을 든 팔을 앞으로 던져버리고 옆으로 빠지려고 했지만 이미 창은 내 팔 정도의 거리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최대한 몸을 움직여 쇼크사로 단번에 죽지 않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 나를 밀치는 것과 뜨거운 피가 내 얼굴에 튄것이 느껴졌다. 이안이 나를 밀치고 대신 창을 맞았다는 사실을 옆구리에 창이 찔러넣어져 쓰러지는 이안을 보고 알아차렸다.
두근! 두근! 두근!
느리게 쓰러지는 이안의 모습에서 강도의 손에 의해 쓰러지는 할아버지가 오버랩된다. 심장이 주체하지 못하고 뛰기시작한다. 손이 떨린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다시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패닉에 빠진 난 절박하게 녀석에게 달려갔다. 남아있는 모든 회복능력을 연속해서 사용했다. 그 순간 나의 머리속에 뒷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솟아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느끼며 회복능력을 사용할뿐 이었다.
'제발...... 죽지마..... 제발...... 날 떠나지 말아줘..... 제발...... 날 혼자 두지 말아줘....'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미 난 이안을 전생을 포함해 이번 생의 가족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마음 속에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난 뒤늦은 후회가 나의 마음을 가득채우는 것을 느꼈다. 비탄과 절망으로 뒤덮인 난 그저 후회할 뿐이었다.
옆구리에 꽃인 창이 서서히 빠지면서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습에 미친듯이 뛰는 가슴으로 떨리는 손을 코에 가져다 대니 미세하게 숨결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떨리는 나의 몸은 이안을 꽈악 끌어안아 따스한 체온을 느끼자 빠르게 진정되는 듯 했다.
그때하고는 다르다 그저 무기력하게 어둡기 그지없던 나의 인생을 비추던 빛이 사그라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와는 다르다.
지킬 수 있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속에 짙게 내려앉은 비탄과 절망을 몰아냈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이안을 애뜻하게 바라본 난 고블린의 몸에서 단검을 뽑아든 후 이안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올린 뒤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
얼마나 주의를 돌아다녔을까 난 운이 좋게도 동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앞에 작은 냇가까지 있어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모은 뒤 동굴 내부에 마력을 조작해 작은 불을 피우자 따스해지는 동굴을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가 냇가에서 몸에 묻은 핏물들을 씻겨냈다.
물기를 머금어 반짝이는 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머리카락을 쥐어짜내던 난 이내 물기를 탈탈 털어내고는 온기를 쬐기 위해 불길에 가까이 다가갔다.
따스한 불길을 느끼며 쭈구려 앉은 난 허벅지에 뺨을 기대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녀석을 차분히 바라봤다.
과거 난 녀석이 얻어맞는 모습을 보고 나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녀석은 나보다 나은 녀석이다. 적어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못 하고 우는꼬마는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의 미형에 몸은 어찌나 마른 것인지 저 몸으로 도대체 어떻게 순식간에 나한테 달려올 수 있었는지 의문점만 들었다
'..............'
난생 처음 할아버지와 이 세상에 낳아준 부모님을 제외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닥불의 불꽃이 나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왠지 부끄러워져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 일어나면...... 고맙다고..... 해야지....'
어쩐지 피곤하기 그지없는 하루에 나도 모르게잠에 빠져들었다.
* * *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다. 그러자 내 눈앞에는 이안의 아름다운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순간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날 꼬옥 껴안고 있는 이안의손길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잠시 얼굴을 붉히고는 녀석의 얼굴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오똑한 코에 잡티 하나없는 새하얀 피부 속눈썹은 길게 자라 있었으며 입술은 앵두같이 붉은 색깔을 띄고 있었다.
녀석의 입에서 세어나오는 옅은 숨소리가 나의 얼굴을 간질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왠지 심장이 거칠게 뛰는 느낌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이내 이 상황이 NTR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순애 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거칠게 뛰는 가슴 붉어지는 얼굴 그리고 아름다운 녀석의 얼굴......
'아.....나 이 녀석을 좋아하는 건가?'
어렴풋이 윤곽만 들어나는 생각이 명확한 형태로 들어나자 난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킨 난 어째서인지 녀석의 앵두같은 입술에서 시선을 땔수가 없었다.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에 난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난 뜨거운 숨결을 나지막히 내뱉으며 촉촉하게 젖은 몽롱한 눈빛으로 천천히 이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랑말랑한 이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덮었다.
말랑말랑한 이안의 입술 미약한 땀 냄새 비릿한 피 냄새가 뒤섞여 나의 코를 자극했다. 혀로 녀석의 뜨겁기 그지없는 입술 사이를 열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굳게 닫혀있는 녀석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며 계속 입술을 혀로 노킹하던 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난 봐버렸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있는 녀석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느껴졌다.
'으으읏!!!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그레이스으!!'
살며시 입을 땐 난 폭발할 듯 붉어진 얼굴로 자연스럽게 다시 눈을 감아 자는 척을 했다.
"그레이스...."
무시했다. 전생을 포함해 이 정도로 강렬히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그레이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안의 말을 무시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순간 나의 턱에 녀석의 손길이 느껴졌다. 내 턱에 닿은 녀석의 손길은 따스했다. 난 직감적으로 녀석이 뭘 할건지 알아차렸다.
두근 두근 두근
어찌할 줄 모르는 듯 떨리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난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 감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녀석의 뜨거운 숨결이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이안도 긴장했는지약간 떨리는 손길이었다.
그리고...... 그의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나에게 닿았다. 버드키스를 몇번 하던 그는 이내 혀로 나의 입술을 노킹했다. 내가 살짝 문을 열자 그의 입술이 천천히 뱀처럼 나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추릅♥ 쪼옵♥ 쪽♥ 추릅♥
'이안...... 이안......! 사랑해..... 사랑해...... 영원히...... 놓치지 않을 거야........ 흐읏♥'
그의 혀가 나의 혀가 서로를 얽매이며 뒤엉켰다. 어느순간 동굴 내부는 서로의 혀가 뒤엉켜 침을 교환하는 소리로 가득찼다. 그 소리가 못내 자극적이어서 보지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허벅지를 비볐다. 이안의 모든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 어디있니~~~!! 이안~~~!! 들리면 대답하렴!!"
그 소리가 우리둘의 정신을 일깨웠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우리는 서로의 입에서 혀를 떨어트렸다. 침으로 이루어진 은색 실이 길게 늘어지다 끊어졌다.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힌 난 황급히일어나며 말했다.
"어... 어서 가자 어른들이 우리를 찾는 거 같아"
"으.... 으응"
그리고 입술을 매만지며 나른한 숨을 몰아쉬었다. 첫키스의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서로 어색한 몸놀림으로 걸어가던 그때 이안이조심스럽게 나의 손을 감싸쥐었다.
움찔 놀란 난 곧 이안의 손을 거부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며 마주 깍지끼고는 같이 걸어갔다.
이안의 손은..... 굉장히 따스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과 슬픔이 서린 눈동자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결국 7일간 근신처분을 받게된 난 방에 들어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난...... 형편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안이 날 밀치지 않았다면? 만약..... 이안이 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만약...... 만약......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사실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내가 지고 나서 이안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바로 내가 죽고난 뒤 이안이 죽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죽는건...... 할아버지 이후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비록 내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전투를 복기해보자 난 형편없이 싸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든 운에 맡기고 통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정신을 가지고 행동해서는 밖에 나가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만큼 형편없는 전투였다. 곰곰히 생각했다. 어찌하면 더 강해질 수 있는지 이제 14살의 나이인 난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안일하게 자위만 하며 생활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