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토벌 작전 (3)
"지금 피해 상황은 어느 정도지?"
"서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앙에 있는 의식의 제단까지 무너진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성 안의 어느 곳도 안전해지지 못할 겁니다."
"그......성 안에 침입한 적들의 수가 몇인 것이냐....? 도대체 쳐들어온 토벌대의 수가 몇이길래 우리가 이렇게 손도 못쓰고 당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당하느냔 말이야!"
"세....세 명입니다."
병사의 보고에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던 남자는 주먹을 내리쳤다.
"삼백 명도, 삼십 명도 아닌 세 명? 겨우 세 명 따위에게 당한다고? 우리들이! 겨우! 세 명한테! 당했다는 것이냐는 말이다!"
"지...진정해주십시오! 대신관 예하!"
"어떻게 진정하란 것이냐! 우리들의 형제들이 적들에게 무참히 당하고만 있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이냐!"
"일단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저희들이 금방 저들을 처리하겠습니다!"
그를 달래던 자들이 방을 나가려는 순간, 벽에 대각선으로 실금이 그어지더니 그 선을 따라 그대로 벽이 잘려나갔다.
"여기에 있었군요. 숨겨진 방이 있을 줄이야. 어쩐지 호화로운 건물 치고 사람이 너무 적다 싶었어요."
미아는 두 마리의 거대한 황금빛 새와 함께 나타났다. 그녀의 금빛 머리칼은 태양의 빛을 받아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당신이 이 곳의 고위 간부 혹은 최고 직책일 확률이 높겠네요. 마침 잘됐네요. 본보기가 좀 필요했는데."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새 한 마리의 몸이 밝게 빛나더니 여러 마리의 작은 새들로 분할했다. 그리고 그 분할한 새들은 근처의 광신도들에게 날아가 가슴을 관통해버렸다. 정확히 심장이 있던 부위를 관통해버려 가슴 한켠에 구멍이 뻥 하고 뚫려버린 그들은 순식간에 절명해버렸다.
"크허어억!!"
"감히 우리 형제들을! 이런.....불경한 년! 죽어라!"
순식간에 죽어버린 광신도들의 모습에 분노한 다른 광신도들이 미아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들 또한 그녀가 휘두른 검에 의해 그대로 그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어버렸다.
여러 명이 당해버리자 광신도들과 미아 사이에 대치 구도가 만들어졌다.
"잠깐. 다들 물러나라. 저 여자는 위험하다. 너희들로서는 상대도 되지 않을 터,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오오......게레이즈 님께서 직접 나서시다니....이걸로 저 여자도 끝이군요!"
광신도들의 사이로 걸어나온 게레이즈가 불린 남자는 허리춤에 한 자루의 장검을 찬 남자였다. 판도라가 상대했던 비그리온과 대조적으로 겉모습이 근육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덤벼라 여자. 꽤나 화려하게 해준 것 같지만 검사로서의 일기토에서 나를 이기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요. 여보가 말해주기를 혓바닥이 길면 실속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뭐라....!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입을 놀리는 거냐! 바로 간....."
서걱-
게레이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질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미아가 단숨에 검을 휘둘러 그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속에 남자는 대처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몸이 갈라져버렸다.
"역시 여보가 말하는 건 항상 옳다니까요. 역시 말 많은 녀석치고 실속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이런! 게레이즈님까지.....그나마 방심한 지금이라도 덮쳐야...."
그러나 그녀의 등 뒤에 서서 가만히 있던 황금새가 달려들어 미아를 공격하려는 광신도들을 발톱으로 꿰뚫어버렸다.
"이걸로 다 처리했네요. 남은 건 당신뿐.....어?"
대신관이 있었던,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사제,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자리에 있는 방의 비밀 통로로 도망간 후였다.
"이걸 놓쳐버렸네요. 이렇게 안일하게 하다니....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네요. 물론......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못 가겠지만. 일단 놓친 건 놓친거고.....할 건 마저 해야겠죠?"
미아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건물째로 잘라버리고는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 · ·
"허억.....허억.....수정구 연락도 전혀 되질 않다니....! 빨리 도망쳐야....."
대신관은 어느덧 성 밖으로 나와 도망치고 있었다. 비밀 통로는 성 밖으로 연결되어있기는 했지만 통로의 출구로부터 말이 있는 근처의 마굿간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마굿간을 향해 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신체능력이 워낙 허약했기에 매우 느릿느릿했다.
그리고 그 느릿느릿한 도주를 하늘 위에서 모두 보고 있던 올빼미가 있었다.
후우-
올빼미의 나즈막한 울음소리가 고요한 숲 속에 울려퍼졌다.
· · ·
"용케 한 놈 탈출했네. 움직임을 보면 전투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도망간 거지? 방심한 건가?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네."
세희는 자신의 올빼미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펴고는 나무에 기대어 놓은 자신의 창을 집어들었다.
"얼마든지 도망쳐보라고. 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 · ·
"허억...허억.....드디어 마굿간이다...!"
그는 말을 한 마리 꺼내와 그 말의 등에 올라탔다. 말 타는 법 정도는 긴급 대피를 위해 미리 배워놓았기에 어느 정도는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이 소식을 알려야 하는 긴박감 속에 출발하려는 찰나, 그의 위에서 여성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창을 쥔 소녀, 세희였다.
"당신, 뭘 그렇게 급히 도망가고 있는거야?"
더없이 맑으면서도 한없이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나왔다. 그녀의 묵직한 살의에 신관의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나.....나는.....네년같은 쓰레기들을 정화하기 위해 이곳에 강림한 신의 사제다!"
그는 품 속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고는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그를 감싸주었다. 연기는 반경 10m를 넘게 퍼져나갔다. 덕분에 신관의 어느 쪽으로 달리는지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연기 따위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이래서 눈에만 의존하는 것들이란....."
"이랴!"
잠시 후, 연기 속에서 말을 탄 신관이 튀어나오고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방심했군! 네 년이 아무리 빨라봤자 사람! 말의 속도에 따라오지는 못할 터! 네년의 그 방심이 토벌대의 목을 죄어올 거다!'
그녀는 하체에 힘을 주고 그대로 신관을 향해 달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달린 그녀는 순식간에 말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신관의 머리를 조준하고는 창을 내질렀고 그 창은 그대로 신관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이후 창날에서 퍼져나오는 마나의 격류가 신관의 몸에 흘러들어갔고 그의 몸은 공기를 과하게 불어넣은 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버렸다.
"이걸로 도망자 처리는 끝났네. .......응? 몇 명이 더 도망치고 있는 건가? 성 안에서는 대체 뭐하는건지.....결국 뒤처리는 내 몫이네....."
그녀는 발걸음을 떼었고 이윽고 도망자들의 짧은 비명만이 숲 속에 울려퍼졌다.
· · ·
한참을 광신도들을 처치하며 돌진한 끝에 결국 성 전체를 관통하며 토벌이 끝났다. 광신도들의 무력은 별 것 없어서 딱히 전진에 막힘이 있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냥 성 내부가 더럽게 넓어서 꽤나 시간이 걸렸다.
성 중앙에 있는 의식의 제단(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잠시 기다리자 미아와 세희, 판도라도 이 곳으로 걸어왔다.
"간단하게 끝났네. 성의 규모가 크긴 했지만 솔직히 광신도 개개인의 수준은 이전 거점들의 광신도들과 그닥 다를 바 없어서 시시한 토벌이었어."
"아뇨, 아직 안 끝났어요. 여기, 그러니까 제단이 있던 곳 지하에 무언가가 느껴져요."
세희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다른 감각에 집중했다.
그러자 땅 아래에서 바람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바람이 분다는 건.....빈 공간이 있다는 거잖아?
"그러게. 확실히 이 아래에 지하 동굴이 있네. 저들의 숨겨진 소굴일지는 미지수지만. 그건 그런데.....어떻게 들어가지?"
"여보, 잠깐 비켜봐요."
미아는 거대한 망치를 형성하고는 그대로 땅을 향해 내리쳤다.
즉시 굉음이 울려퍼지며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피어났다.
"콜록. 어우. 입구를 만든 건 좋은데 다음번부터는 이런 식의 방법은 쓰지 말자. 내 폐는 소중하다고."
그래도 일단 지하로 들어갈 구멍은 생겼네. 우리는 그대로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지하에 있던 건....
작은 감옥에 갇힌 수많은 포로들이었다.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감옥에 갇힌 그들의 눈은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정신붕괴 마법이네요. 이 마법에 당한 사람들은 모든 이지를 상실하고 그저 살아 숨쉬는 고기인형이 되어버리죠. 의식을 위해 반항없는 제물을 만들겠다고 이런 마법에까지 손을 댈 줄이야...."
"정신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마법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약간의 손실을 각오하고 어떻게든 복구할 수 있었겠지만.......이들은 너무 오래 방치당했어요. 적어도 제 수준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광신도들을 행태는 어떻게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냐. 원래 괴담밖에 없던 새끼들이긴 했지만. 애초에 지들이 믿는 신도 잘 모르는 새끼들이 별 이상한 짓은 다해요.
"솔직히 저 상황은 그야말로 죽지 못하는 상황일 뿐이에요. 미노 님, 부디 저들에게 안식을 주시겠어요?"
판도라의 부탁에 나는 헤스티아의 불꽃을 일으켜 감옥과 갇힌 포로들을 화염으로 감쌌다. 그들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몸이 불에 타들어가도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삶을 살기를.
이후 다른 거점의 위치나 주요 기밀 정보같은 것들을 찾기 위해 지하 동굴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딱히 건질 만한 정보는 없었다.
"일단은 저희 측 토벌은 완료되었으니 다른 토벌대에게 연락을 좀 해볼까요?"
동굴에서 나온 후 판도라는 자신의 수정구를 꺼내들어 각 토벌대를 이끌던 드워프와 깐프에게 연락을 걸었다.
[오! 벌써 끝난건가? 제일 큰 규모의 거점이었는데 제일 빠르구만! 첫 만남부터 짐작은 했지만 역시 보통 남자는 아니군!]
드워프의 토벌대는 아직 진행 중인 듯 수정구 너머로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 마법의 폭발음 등이 울려퍼졌다.
[이런! 나도 참전해야 할 것 같아서 더 말하긴 어려울 것 같구만! 이후 토벌이 완료되면 다시 연락하겠네!]
한편, 깐프는 연락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뭐지? 연락 받을 여유도 없을 정도로 급한 상황인가? 설마 역으로 전멸당한 건 아니겠지? 당할 것 같으면 후퇴해서 도망가지 못하게만 막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에이, 그래도 설마 전멸은 아니겠지.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자꾸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