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2주간의 휴식(1)
도시 입구에는 경비병이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참......어마어마했다. 입장하려는 사람이 많은건지 검문 일처리가 더럽게 느린건지.
한참을 기다려서야 우리 차례가 되었다. 검문? 패 하나 내밀면 즉시 통과라고. 판도라의 증명 및 전 아카데미 학생, 거기에 용사인 세희까지. FM대로 하면 더 욕먹어요.
처음 도시 도착했을 때 생각나네. 그때도 실비아한테 받은 증명패 덕에 프리패스였는데.
입구를 지날 때 둘의 외모를 뻔히 보고 있던 경비병들의 얼굴이 참 볼만했다. 꼬우면 나보다 잘생기고 능력있던가.
도시 안에는 수많은 이종족들이 있었다. 인간들의 영역에 속한 네오 시와 달리 이종족들의 영역에 속한 이 도시는 이종족들이 절대다수였다.
응? 뭔가 이상하다. 이종족이라고 해도 외형은 대체적으로 인간과 유사할 줄 알았는데.....일부는 아예 동물 머리다. 호랑이 수인이 아니라 그냥 두 발로 걷는 호랑이인데?
대체적으로 남자만 그런 것 같긴 한데.....여자도 그런 경우가 있나? 퍼리는 제 취향의 한~~참 바깥에 속해있는데 말이죠.
레아도 데리고 오면 좋았을텐데.....자신과 같은 이종족들을 여럿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테니까.
레아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냐고? 네오 시에서 루다랑 지내고 있을 거다. 토벌 일에 애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에게 맡겼다. 어쩌다보니 보모 취급이네. 레아가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얼마나 떼를 쓰던지......결국 야반도주해버렸다. 다음에 보기가 무서워진다. 다음에 만나면 "아저씨는 누군데 아는척이에요?" 같은 말로 대꾸하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내상을 입을 것 같다.
"어차피 수도 정도야 워프게이트를 사용하면 금방 갈 수 있을테니까 좀 놀다 갈까?"
"응? 자네들 혹시 모르는 건가? 이 도시에는 워프게이트 같은거 없어!"
우연히 옆을 지나가던 흰색 나시를 입은 수인 아저씨가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갔다. 오지랖 떠는 아저씨 복장은 저 모습인게 전 차원 국룰인가?
"어쩌죠? 금방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저씨, 여기서 수도까지 마차 타고 간다면 며칠 걸려요?"
"대략......8일? 내가 저번에 갈 때 그 정도 걸렸으니."
마차로 8일이면 여유롭네. 수도에서 모이는 날까지 13일 남았으니까 며칠은 쉬고 가도 될 것 같다.
"아저씨, 여관이 어디있는지 아세요?"
"여관 찾고있어? 내가 좋은 곳 가르쳐줄게! 니플 시 최고의 여관을 알려주지! 여기 서비스 한번 받고 나면 다른 곳 못갈걸?"
뭔가 쓸데없이 홍보가 과한데.....뒷광고 받으셨나.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여관 관계자다. 너무 노골적으로 홍보하잖아.
그리고 도시 이름이 니플 시야? 설마 nipple? 참 애매한 이름이네. 젖꼭지 영어잖아. 바스트 언덕.....푸쉬 숲......니플 시까지.....이걸로 합리적 의심 3스택 적립했다. 이러다 도시 이름이 섹스인 곳도 나오겠어!
아무튼 우린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한 여관에 도착했다. 수수하게 생긴 여관이었다. 네오 시에서 묵었던 호텔과는 좀 비교되긴 하지만 느낌있는 모습의 여관이었다.
"여보! 내가 맘대로 싸돌아 다니지 말고 일이나 거들라 했죠! 게다가 그 옷차림은 뭐에요! 사람들한테 개망신당하고 싶어요?!"
여관에 들어가자마자 안에서 카랑카랑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진짜 못살아! 이 양반이 지금 이딴 옷차림으로 어딜 나가서 누굴 데려오겠다고....! 어머. 손님이신가요? 어서와요~"
와.....이것이 중년의 노련한 표정관리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편 갈구고 있었으면서 뒤에 서있는 우리를 보자 순식간에 나긋나긋하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세 명이래. 좋은 방 하나 내줘."
"남녀인데 주책맞기는.....손님들? 방 몇개 드릴까요?"
""두 개요.""
내가 답할 새도 없이 둘이 먼저 대답해버렸다. 나는 한 개가 좋은데 크흠....
"여보랑 내가 같이 잘 테니까 세희 양은 혼자서 방 써요. 넓게 쓸 수 있으니 좋죠?"
"아뇨. 주인님을 지키는 건 제 의무에요. 저는 늘 주인님이랑 같이 있어야 하니까 당신이나 혼자 쓰죠?"
둘 사이에 숨 막힐 듯한 냉랭한 분위기가 풍겼다. 나는 알고 있어. 저기에 끼어들다가는 바로 잔소리 듣고 쭈구리가 된다는 걸. 이럴때는 얌전히 결론이 나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3개월 동안 셋이서 한적도 있으면서 왜 화해라는 걸 모르는 걸까?
"거 당신 능력 있구만! 저 예쁜 처자들이 자네한테 그렇게 매달리다니! 나도 전성기 때는 자네 정도의 인기였는데....어쩌다 한 여자한테 코가 꿰여서는....."
"뭐라고요? 당신은 빨리 따라오기나 해요!"
아저씨가 미아와 세희의 기싸움을 보고 주접떨기는 했지만 바로 아주머니에게 퇴치당했다.
둘이 한창 대치하고 있을 때 나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몰래 다가가서 방은 한개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두 개로 잡았다가는 인원 배치를 어떻게 하든 난리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절대 내 개인적인 욕망이 들어간 게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얘들아. 싸움 그만하고 방에 올라가기나 하자. 짐 풀고 나가게."
"그래서 여보는 누구랑 같이 방 쓸 거에요? 당연히 저겠죠?"
"아니. 셋이서 같이. 최대한 넓은 방으로 골랐어. 두 명, 한 명으로 나누면 누가 혼자 자게 되든 불만을 제기할 거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셋이서 하는....아니 자는 게 낫지. 불만있으면 말해. 혼자 넓은 방 쓰게 해줄게."
둘은 내 결정에 불만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자기가 빠지면 쟤가 나랑 잔다는 생각에 차마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 · ·
"미아 너, 아직까지도 새로운 검 못 정했지?"
"네....아직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
"그럼 밥 전에 새 무기나 둘러보러 가자. 원래 진짜 희귀한 무기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는 법이야."
우리는 그대로 대장장이 거리로 향했다. 들어오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더위가 느껴질 만한 계절은 아닌데 이 거리에 오자마자 땀이 절로 난다. 드워프가 무기를 잘 만든다는 클리셰는 이 세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드워프네.
"전부 다 들러보자. 시간은 많으니까."
첫 번째 가게로 들어가자 수많은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검, 창, 도끼, 메이스 등등 없는 무기가 더 드물었다. 내가 무기를 보는 안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척 보기에도 날이 예리하게 살아있어 괜찮아 보이는 무기들이었다.
"어서옵쇼! 찾으시는 무기가 있으십니까?"
"검을 좀 둘러보고 싶어요."
"아 검사시군요! 그럼 이 쪽으로 오시죠!"
미아는 한참이나 진열된 검들을 보고 있었지만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듯 구매하지 않고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 첫 번째 가게는 꽝이었던 것 같다. 괜찮아. 아직 가게들은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곳의 가게를 들러봤지만 미아는 검을 하나도 고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는 무기는 하나쯤 있을만 한데 얄짤없더라.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게 좀 구석진 곳에 분위기 있는 매장이 하나 있어서 숨은 명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들어갔더니 그냥 망하기 직전이었던 매장이었던 거다.
아니 솔직히 음침한 분위기의 약간 낡은 가게가 있으면 숨은 명장의 숨은 역작이 숨어있는게 보통 아니야? 그냥 품질이 쓰레기라 판매가 안되서 망해가는 가게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결국 모든 가게를 둘러봤지만 건질만한 무기는 하나도 없었다. 아쉽네. 한 곳 쯤은 명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절 수 없지. 나중에는 수도의 대장장이 거리라도 가보자.
"오늘은 날이 아닌가봐. 밥이나 먹으러 가자."
· · ·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둘의 외모는 정말 사기적인 것 같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남자들의 시선이 둘의 얼굴에 그대로 꽂힌다.
물론 내 얼굴도 상당히 잘 생겼기에 여자들의 시선을 강탈하기는 했지만.
여자들은 미아와 세희에게, 남자들은 내게 질투의 시선을 계속해서 보냈다. 전생에서는 받지 못했던 이런 시선! 오히려 좋아. 내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니까.
그래도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은 없어서 다행이다. 예전에 네오 시에서는 양아치들이 시비 걸어온 적이 꽤 있었는데. 좆간 오늘도 1패 적립...
시선은 식당에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아니 다들 밥이나 드세요. 우리 얼굴 그만 바라보고.
"잠깐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자리에 오자 한 남자가 둘에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저희랑 합석하시겠어요? 남자들뿐이라 좀 칙칙한 자리라 두 분 같이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와주신다면 분위기가 확 살 것 같은데."
"아뇨. 안 가요."
"관심 없으니까 꺼져."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지만 둘이라면 왠지 저 추근덕거리는 남자를 재기불능할 정도로 줘팰 것 같아서 바로 난입했다.
"아직 식사 안나왔지? 둘이 뭐하고 있었어? 이 남자는 누구고?"
"저희도 모르는 남자에요. 초면에 갑자기 말을 걸어서요..."
남자는 내 등장에 당황한 듯 얼이 빠진 얼굴로 서있더니 내게 사과하고는 급히 멀어졌다.
남친 있는 여자들한테까지 들이댈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행이네.
· · ·
-엑스트라 남자 시점-
나는 식당에서 내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얘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여자랑 인연이 없는 녀석들이라 우리 전부 다 연인이 없었다. 있어본 적도 없었고.
그런데 식당에 두 여자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봤던 여자는 여자가 아니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들어았다.
옆에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지만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야, 저 여자들 존나 이쁘지 않냐?"
"저 여자 중 한명이라도 꼬시면 100만원 줌."
"니 얼굴에? 현실을 봐라."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꼬셔보기 콜?"
"""콜!"""
진 것은 나였다. 역시 제안한 놈이 지는 건가?
나는 힘겹게 용기내어 그녀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호옥시 만에 하나라도 그녀들이 수락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래봤자 순식간에 까였다. 한번 더 들이대볼까 고민하던 찰나,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이 여성들은 눈앞의 남자의 일행인 것 같았다. 쉬벌....존나 잘생겼네......역시 세상은 외모지상주의라니까....
"아....일행분이 있으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급히 도망갔다. 너무나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얘들아 나 대차게 까였다...."
"우리도 봤어 병신아 큽.... 우리 주제에 어떻게 저런 여자들이랑 놀겠냐? 현실을 보자."
"결국 오늘도 남자끼리만 먹겠네....."
절절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씁쓸함에 밥이 쓰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