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이종족들의 땅으로
꽈르릉!
고요한 숲 속에 우렁찬 번개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우스에게 받은 능력을 이용해 내가 광신도들의 거점에 지어진 건물에 번개를 꽂아버린 것이다.
"모두 돌격!"
내 선제 공격 이후 판도라의 지휘 하에 성기사들이 일제히 돌격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수많은 광신도들이 건물과 지하에서 달려나왔다. 무슨 광신도 생성이라도 하는건가. 잡아도 잡아도 끝도 없이 나오네.
물론 수가 많다고는 했지만 그 수준이 그냥 오합지졸 모임 수준이었기에 광신도들은 성기사들에게 무참히 쓰러져갔다.
가끔 성기사들이 고전할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와 미아, 세희 중 한명이 나서는 순간 제거당해버렸다. 아무리 강해봤자 우리한테는 안되지. 클라스가 달라 임마!
어느덧 상황이 정리된 것 같다.
"후우.....이걸로 여기도 다 처리한건가?"
나는 쥐고 있던 광신도의 머리를 집어던졌다. 이미 죽은 시체였지만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머리가 그대로 박살나버렸다.
"시발. 뭐 이리 많아? 지금까지 몇 군데나 순회했는데도 가는데마다 바글바글하네.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하는 짓거리는 바퀴벌레보다 더하지만.
아카데미 습격으로부터 어느덧 3개월, 우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광신도들을 토벌하고 있었다. 3개월간의 실전을 거치며 나를 비롯해 미아, 세희 모두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광신도들의 피로 샤워를 한 내게 판도라가 다가왔다.
"이걸로 마지막 거점까지 전부 토벌 완료했네요. 일단 저희 측 정보에 의하면 이 곳이 마지막이니까요."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아뇨, 저희가 완료한 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토 내에서만 해당하는 거에요. 이젠 이종족들의 영역도 가야죠."
아.....나 미노는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어!
"그래도 다들 지치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조금 휴식을 취하기로 해요. 저희 측 성기사들도 상당히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것 같고요. 다음 토벌은 이주일 후에 다시 시작하도록 해요. 그 전까지 이종족들의 땅에 도착해주세요. 그곳의 수도에 있는 오딘의 신전에서 다시 모이는 걸로 할게요."
오.....이주일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둘에게도 말해 줘야지. 오딘의 신전이라니 이종족들은 북유럽 신화의 신들을 주로 믿는건가?
하긴 원래 신화에서도 그리스 신화보다는 북유럽 신화에서 이종족들이 많이 등장했었으니 그럴 수 있지.
그 순간 땅이 들춰지며 거대한 괴수가 나타났다. 하반신은 애벌레에 상반신은 거미의 모습을 한 징그러운 괴수였다. 저것들을 관리하는 광신도들까지 몰살당하면서 괴수들이 풀려난 듯 했다.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뭘 기르고 있던거야?
괴수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것은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본능대로 날뛸 뿐이었다.
"크오오오!"
괴수는 크게 포효하며 자신의 거대한 거미 다리를 휘둘렀다. 저거에 보통 사람이 맞으면 그대로 사/람이 되어버릴 거다. 혹은 산산조각나서 ㅅ/ㅏ/ㄹ/ㅏ/ㅁ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판도라를 감싸안고는 갑옷을 발현시켰다. 아테나의 방어 능력을 결합시킨 갑옷이었기에 괴수의 다리는 팅 소리를 내며 허무하게 튕겨져 나가버렸다.
한 번 때렸으면 한 번은 맞아야지? 이번엔 내 차례다 이 괴수 새끼야. 딱 대.
"뒤져 괴수새꺄."
아테나의 방어 능력을 갑옷의 전신에 결합시켰던 것처럼 주먹 부근에 아레스의 공격 능력을 결합시키고는 괴수의 머리를 향해 내질렀다.
괴수도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것인지 자신의 다리들로 얼굴을 보호하려 했지만 내 주먹은 다리들을 스티로폼 뚫듯 부드럽게 부숴버리고는 그대로 머리까지 날려버렸다.
머리가 날아갔으니 이젠 뒤졌겠......아직도 움직이네?
심지어 잘린 부근에서는 유충 같은 날벌레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설마 저걸로 번식하는거야? 이 광신도 새끼들 도대체 뭘 만들어 놓은거냐고! 씨발 나 징그러움 내성 없다고!
이 모습을 디x에 올린다면 혐오스러운 짤로 유명해졌을 거다. 저건 베어 그X스도 불가능 외치겠다 야.
역시 벌레 새끼들 잡을 때는 물리 속성보다는 불 속성이지!
나는 헤스티아가 부여해준 능력을 사용해 거대한 불꽃을 일으켜 괴수의 몸과 그 주변을 싸그리 불태워버렸다. 초기에는 이 능력만 썼다 하면 주변에 불이 번져버려 난리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번짐 없이 내가 원하는 곳만 불태울 수 있게 되었다.
저 벌레 괴수 아주 그냥 잘 탄다~!
괴수의 몸체에서는 점액질이 뿜어져 나오며 자신에게 붙은 불을 꺼보려 한 것 같다만 신의 힘이 깃든 불을 겨우 괴수의 점액 따위로 끌 수는 없었다.
결국 괴수의 몸체와 날벌레들은 전부 불타 없어져버렸다. 별것도 아닌 주제에 최후의 수단 같은 건 쓸데없이 많아가지고 사람 성가시게 하네.
"저....저기.....미노 님....이젠 다 정리된 것 같은데 놓아주세요....."
"아. 죄송해요. 잊고 있었네요."
황급히 내 품에 안겨있던 판도라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것에 대한 내성이 없는건가. 어머니같은 자애로운 성녀의 귀여운 면을 본 느낌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마망에 환장하는건가.
그런데.....이게 무슨 시선이지?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온 건지 미아와 세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또 여자를 꼬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건 불가항력이었는데 말이지.
"미아! 세희! 이만 가자!"
나는 거대한 새로 변신한 후 둘을 등에 태우고는 그대로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거라고 해서 바람을 타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생각보다 퍼덕이는 게 체력을 많이 소모하더라고. 걷는 것보다 더 힘들어. 다시는 새를 날로 먹는 동물이라고 뒷담하지 않겠습니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남을 태울 수 있고 지형지물에 영향을 안 받는다는 것 정도?
어느덧 날아오른 지 4시간이 되었다. 힘들다 힘들어. 4시간동안 한번도 안 쉬고 팔을 휘두르면서 달리는 기분이다.
"이쪽으로 쭉 가면 돼?"
"네. 이대로 도시가 보일 때까지 날아가다가 그때 내리죠."
"아 근데 지도는 진짜 믿을 게 못되던데.....예전에 비아그라 캘 때도 지도의 거리 비율 엉망이었잖아."
"그래도 방향은 일치하니까요."
"지도 상 거리는 얼마쯤 돼?"
"음.....이 속도대로라면 8시간 후 도시가 보이겠네요."
존나 머네. 힘들어 죽겠는데 조금만 쉬자고 할까?
"얘들아. 나 이대로 날아가다가는 날개에 힘빠져서 그대로 추락할 것 같은데 조금 쉬다가 가면 안될까? 안전하게 비행해야지."
"안돼요. 쓰러질 정도로 더 날아요. 힘빠져서 그대로 떨어져도 여보는 제가 구할게요."
"주인님 아까 성녀를 은근슬쩍 꼬시려 했잖아요. 이건 그 벌이에요."
이럴 때만 드럽게 잘 맞아요. 평소에는 자기가 정실이라 우기면서 겁나게 싸우더만.
"얘들아 나 진짜 힘든데. 내려간다?"
"안된다니까요?"
점점 힘이 빠진다. 나 진짜 추락해? 진짜 떨어진다?
결국 한계치를 넘은 내 날개는 그대로 경직되어 버렸다. 그다음은? 뻔하지. 추락한다!
안돼! 죽고싶지 않아! 내 사인이 탈진에 의한 추락사라니 너무 허무하잖아!
그 순간 무수한 비수들이 우리를 감싸며 낙하 속도를 늦춰주었고 바닥에 살포시 내려주었다.
일단 살긴 살았는데.....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부당한 노동착취를 시켜야겠어? 그냥 조금 쉬게 해줬으면 더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었잖아.
나는 오늘을 잊지 않을거야. 오늘을 비행 총파업의 날로 삼겠어. 독박비행 멈춰!
"오늘은 여기까지만 날아가고 조금 쉬도록 해요. 주인님도 지쳤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백날 부려먹어 놓고 이제와서 선심쓰는 척 하는 거 봐라?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싯팔!
"우웩 우에엑...!!"
한계치까지 강제로 노동한 부작용인지 뒤늦게 위장 속 내용물이 역류했다. 이 짓거리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한다니 씨발.....
철새들이 날아가던 중간중간 쉬던 이유가 있었구나. 쉬지도 않고 날아가려니 진짜 정신 나갈 것 같네.
"여보는 그래도 좀 쉬고 있어요. 먹을 걸 잡아올테니."
미아는 그 말을 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소같이 생긴 몬스터들을 잡아왔다. 겉모습만 보면 소고기가 떠올라서 군침이 싹 돌긴 하는데.....잠깐 소고기? 설마 이번에도 소고기 먹다 돌연사 하는 건 아니겠지?
미아는 순식간에 소의 손질을 마쳤다. 이게 전직 가정주부의 실력인가? 손질 실력이 아주 예술적인걸? 고기 색깔 영롱한 거 봐라. A+등급인데?
영롱한 고기를 보고 있자 미아는 나를 한대 툭 쳤다.
"여보, 뭐해요? 안 굽고."
교통수단에 이어 버너 취급이야? 남편을 이렇게 찬밥 취급해도 돼?
흑흑....내가 이러고 삽니다. 그래도 뭐 어떡하겠어. 시키면 해야지.
· · ·
"이제 그만 굽고 여보도 좀 먹어요."
드디어....! 먹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으면서 굽기만 했었는데 드디어 맛보는건가! 짬처리 같은 느낌이지만 뭐 어때.
잘먹겠습니다!
콰앙!
내가 첫 고기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거대한 괴수가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거대한 두더지 같이 생긴 괴수였다.
괴수가 튀어나오면서.....고기들은 땅에 그대로 널부러져 버렸다.
씨바아아아아아알!
아직 먹어보지도 못했다고! 고기를 앞에 둔 청년의 마음을 짓밟다니! 절대 용서못해!
콰르르르릉!!
극대노한 나는 그대로 번개를 일으켜 괴수에게 꽂아버렸다. 순식간에 전기구이가 되어버린 괴수는 그대로 절명해버렸다. 괴수의 시체에서는 엄청나게 구린 냄새가 풍겨왔기에 차마 저걸 먹을 수는 없었다.
흑흑.....내 고기......
내심 바닥에 떨어진 저 고기들을 주워먹을지 지적 생명체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세희가 나를 부르더니 고기를 나누어주었따.
"여기 좀 남았어요. 이거라도 드실래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소고기 진짜 예술적이더라. 단순 굽기만 했는데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소고기보다 훨씬 맛있었어. 입안에 들어간 순간 먹는다는 감각이 아니라 마신다는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막힘없이 순식간에 넘어가더라. 다들 함 무봐라!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출발해 한참을 날아가 결국 이종족들의 영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는 역시더라. 지도 이 개새끼. 8시간이라며. 8시간은 지랄. 18시간 걸렸다. 이런 십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