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납치당한 왕자님(4) (64/78)



〈 64화 〉납치당한 왕자님(4)

눈을 뜨자 보인 건 낯선 천장.....이 아니라 두 개의 언덕이었다. 부드러워 보이는걸?

눈 앞에는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이 보였다. 어느 순간  손은 자연스레 그 언덕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주물주물

오.....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아주 환상적인 촉감이다. 젤리 만지는 것 같아. 이대로 평생 만지면서 지내고 싶다.

"언제까지 만질 거에요? 그렇게나 제 가슴이 좋은거에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교장 선생님의 가슴이었구나. 상당히 크시네......

아니 이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또 하고 싶은 건가요? 역시 힘이 넘치네요."

"아니, 이번엔 나랑 해야지!"

슈브는 꽁냥대듯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을 질투라도 하는 것처럼 급하게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결국 질투심에 불타는 슈브의 강제착정애무에 속절없이 당하며 헤으응거리기만 하는 나였다....

· · ·


그렇게 며칠간 밥먹고 자고 정액을 싸는 나날만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돼지가 되어버리겠어.

이렇게 사는 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미아도 만나고, 세희도 만나고, 루다, 실비아 등등도 만나고.

탈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식사 시간이나 수면 시간, 자유 시간 때 주위를 돌아다니며 몰래 관찰하기 시작했다.

관찰 결과 이 세계는 해와 달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일정 시간마다 어두워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하며 낮과 밤을 재현하는  같다.

거기에 늘 기온이 일정하다. 일교차란 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니.

여긴 대체 어떤 곳일까.....또다른 세계인걸까?

"응? 내가 만든 세계야. 나와 내 부하들 전용 차원이지."

"그렇구나. 대단하네. 세계도 창조하고."

"그렇지?"

음, 슈브가 만든 세계구나. 그러니까 인공적으로 기온도 조절할 수 있었던거고. 친절하게 답변해줘서 고마워.

잠깐.

"네가 만들었다고?"

"응.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많지. 많아. 그리고 내 생각 마음대로 읽지 말라고!"

생각해 보니 그녀는 내 생각을 읽을  있었다. '몰래'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했구나. 나는 그동안 대체 무엇을....

그녀는 내 의도를 알면서도 딱히 뭐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계에 대해서 잔뜩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 곳은 평생 일정한 기온이 유지된다고 한다. 단순 하루 기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수준이 아니라 평생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구분도 없다고 한다. 원하면 사계절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지만 딱히 하진 않는다고.
계절 구분이 없으면 생명체는 어떻게 자라는가 물어봤더니 자기 권능으로 키운다고 한다. 역시 생명의 어머니답네.

"그런데 여기에서 원래 세계로 가는 방법은 있어? 나 돌아갈 수는 있는거야?"

"왜 돌아가려 하는거야?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인데? 나랑 네 신혼집."

"아니, 그래도 아직 두고온 것도 있고....."

"뭘 두고왔든 없어도 괜찮아. 정 필요하면 내가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여기에 있어. 성심성의껏 길러줄....아니 돌봐줄테니까."

확실히 그녀가  말만 보면 이곳은 평생 놀고 먹고 미녀들과 떡만 치는 내 이상적인 장소긴 하다.
그렇지만......내가 주도적으로 풍족한 삶을 쟁취하는 것과 자유가 박탈된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은 크게 다르다.

"으음......아직은 충분히 누리지 못해서일까? 나중에 다시 물어볼게. 그때는 다른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어."

그녀는 그렇게 성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기 직전 뒤돌아보더니  마디 해주고는 마저 돌아갔다.

"아,  수준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어. 그러니 방법을 찾는다는  쓸데없는 헛수고는 안해도 돼."

· · ·

또 욕망에 충실한 며칠을 보낸 후 나는 슈브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 같은 존재는 몇명이나 있어?"

"글쎄?  안 세봐서 모르겠는데. 수십은 넘지 않을까? 네가 아는 러브크래프트에 나오는 신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존나 많겠네.

"강현아, 한 가지 제안할  있어. 너도 우리들처럼 되지 않을래?"

"우리들이라니?"

"내 권속이 되라는 말이야. 그럼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어."

막대한 힘이라니.....그럼 이곳을 나갈 수도 있는 건가? 대충 그녀의 제안에 혹한 듯 행동하고 힘을 받은  배신하고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좋은 생각 같은데?

......라고 생각할  같습니까? 슈브 양? 그렇게 티 나게 제안하면 중학생도 안낚이겠다.
보나마나  대신 이 세계를 나갈 수 없다거나 세뇌되거나 그러겠지.

칫.

그녀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정곡을 찔렀나 보다.

"역시 너무 티났나? 그럼 다르게 이야기할게.  권속이 되면......내 처녀를 완전히 가져갈 수 있다고? 나, 크툴루, 그리고 다른 녀석들까지 전부 네 아래 깔아뭉개고 암컷으로 만들어버릴  있어. 어때? 우리 모두를 허덕이게 만들고 싶지 않아?"

목적을 간파당하자 그녀는 바로 전략을 바꾼  같다. 대놓고 유혹해서 알고도 스스로 권속이 되는 걸 선택하는 걸 유도하는 계획인 것 같다.
그런 것 따위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내가 이런 전략에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면......제대로 생각하셨습니다.

남자는 좆에 지배당한 생물이란 말이야. 누구보다 뛰어난 미색을 가진 여자, 그보다는 못해도 상식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 혹은 여자들을 내가 안을 수 있다?
남자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욕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게 남자니까.

"나.....난........
그래도 안 할거야! 안해! 다시 제안하지 마! 안한다고! 백날 제안해도 안 할거야!"

"그 말은......내가 싫은거야?"

그녀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이대로 두면 내가 위험하다! 나는 급하게 수습용 멘트를 던졌다.

"아니, 나는 분명 널 좋아해. 하지만 내 힘 스스로 널 안을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할 거야. 그때 당당하게 네게 돌아와 너를 안겠어."

내가 말했지만  저질 프로포즈 같은 대사네. 그래도 슈브라면 이런 말에도 감동해주지 않을까?

"그렇구나. 나를 그렇게 쉬운 여자로 알고있었구나. 그런 진부하고 뻔한 대사로 내가 감동할  알았어?"

맞다 시발. 얘 생각 읽을 수 있었지. 허허.....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겠구나.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나는  존중해 주려 했었는데......괘씸해서 안되겠어. 강제로라도 내 권속으로 삼겠어."

돌연 지면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오더니 내 팔다리를 휘감았다. 시발 무슨 촉수가 땅에서 나오냐?

일단 빠져나오자. 이대로 꼼짝없이 당할 순 없지. 발악이라도 하자! 나와라, 적혈 갑옷!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귀기 발현이 되질 않는 거지?

"흐응....특이한 기운을 쓰네? 그래봤자 못 쓰겠지만."

귀기를.....알고 있다고? 미노타우로스의 피를 이은 자 외에는 쓰지 못할텐데?

"푸훗, 미노타우로스는 생명이 아닌가? 나는 모든 생명의 능력을 쓸 수 있어. 생명의 어머니란 그런 거니까. 그리고  모든 능력의 극한까지 사용할 수 있지. 즉, 네 초보 수준의 기운 따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단 말이야."

"허......"

허무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발악 자체도 불가능한건가? 너무 불공평하잖아.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안 아플거야. 내가 어떻게 강현이 너를 아프게 하겠니? 네가 아픔을 느끼면 그걸 지켜보는 나는 더더욱 아픈데. 오히려......정액 퓻퓻할 정도로 엄청 기분 좋을걸?"

· · ·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이상도 벌어지지 않았다. 권속이 되었다고는 해도 정말 아무 대가도 없던건가?
나는 살며시 눈을 떴고 내 앞에는 한 여자가 나와 슈브 사이에 서서 슈브와 대치하고 있었다.

"아.....네년이 방해하는 거야? 프레이야?"

"당신의 이번 행위는 도를 넘었어요. 일반인을 납치해 강제로 권속으로 삼으려 하다니요. 세계의 균형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 생각인가요?"

"강현이만 가질 수 있으면 상관없어. 그러니까 비켜."

"저희가 상관있어서 안되겠네요.  비키겠어요."

"저희?"

"균형을 지키기 위해 온 건 저뿐만이 아니라서요."

그 순간 엄청난 빛이 지면을 강타했다.  빛 속에서 나타난 건....

"주인님! 괜찮으세요?!"
"여보, 괜찮아요?"

세희와 미아였다.
뭐야....둘이 여길 어떻게 온거야?

"두 사람이 여긴 어떻게 온거야?"

"그거야 저희들이 갈  같이 데려갔으니까 그렇죠?"

그녀들의 뒤에서 단 한번 들었던, 그러나 절대 잊을 수 없는 미성이 들렸다. 이 목소리라면 설마....!

"오랜만이죠? 미노 님. 직접 보는 건 그 때 정신세계 이후 처음이네요."

"아프로디테 님!"

왜 저 여신님이 거기서 나와?

"우욱.....멀미나.....적응안돼....."

"참아 아르테미스. 지금 진지한 상황이니까."

"엄청나게 불쾌한 공간이군."

아프로디테의 뒤를 이어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하였다.
각자가 한 말을 보면 둘은 알 것 같다. 아폴론 여신과 아르테미스 여신. 나머지 한명은 누구지? 다른 여신들과 동격의 존재로 보이는데....

"별의별 잡년들이 다 나오는구나. 그렇게까지 나와 강현이 사이를 갈라놓아야겠어? 이래서 잡스러운 것들은....."

"야, 최서현."

"응? 뭐야 너. 그 이름 어떻게 알아? 강현이가 말해줬어?"

"주인님을 납치한  네년이냐?"

"그렇다면?"

"죽어."

세희는 즉시 창을 내질렀다. 엄청난 풍압이 슈브를 덮쳤고 슈브의 뒤로 엄청난 면적의 땅구덩이가 생겼다.

"거친 여자는 매력이 없는데."

슈브는 세희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한 듯 시종일관 여유로운 채였다.

훙훙!

세희는 이어 창을 X자로 교차하며 그녀를 베었다. 주변에 크게 베인 자국이 생길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바람의 칼날이었지만 이전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슈브에게는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네 년도 지구 출신이야? 강현이랑 연관이 있던 여자인가?  말고 그런 년이 있었단 말이야? 열받네?"

내가 눈치챘을 때에는 슈브의 촉수가 세희의 복부를 관통한 후였다.

"당장 멈춰라! 슈브 니구라스!"

"뭐야 아테나. 먼저 덤빈 건 이 년이라고. 나는 응수한  뿐이야. 네년의 구역질나는 냄새가 이 년에서도 나는 것 같은데 네년의 사도인거야? 따까리 관리  똑바로 하지 그래?"

슈브는 그대로 세희를 던져버렸다. 그녀는 그대로 땅에 쳐박혔지만 죽지는 않은 듯 얕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테나는 자신의 사도가 무참하게 당한 것에 분노를 느낀  주먹을 꽉 쥐었지만 겉으로는 평정을 연기했다.

".....우리들의 용건을 전하겠다. 지금 당장 미노를 해방해라."

"싫다면?"

"""싸우는 수밖에(요)."""

슈브의 도발적인 반문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는 즉시 전투 태세를 취했다.

"네가 거절할 수 있나? 애초에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면 내 용건을 들은 직후 우리를 다 죽여버렸을 거다. 그렇지 않다는 건 쓸데없는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 아닌가?
어차피 수락할 거라면 곱게 수락하고 자존심이라도 세우는 게 낫지 않나?"

역시 지혜의 여신, 아테나답다. 그녀는 말로 슈브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 아이를 강제로 이 차원에 계속 데리고 있으면 그 대가로 당신의 차원이 봉괴된다는 걸 알잖아요? 지금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텐데."

프레이야는 슈브를 타이르듯 말했다.

두 여신의 설득에 슈브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제안을 수락했다.

"......좋아. 데려가...'지금'은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슈브는 순식간에 내게 안기더니 내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목덜미에 무언가 새겨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내 각인이야. 나는 언제나 이 각인을 통해 너를 바라볼 거야."

관전용 각인이라 이건가.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괜찮겠지....?

"돌아가죠."

프레이야는 주문을 영창했고 발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마법진에서는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왔고 발 밑으로 부유감이 느껴졌다. 마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이었다.
잠시 후 나는.....아카데미(가 있었던 곳)에 돌아와 있었다.

"잘 돌아왔어요 여보."
"다행이에요 주인님."

그렇게 나는 슈브의 차원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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