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납치당한 왕자님(1) (61/78)



〈 61화 〉납치당한 왕자님(1)

미노가 납치된 후 모두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를 받아들이지 못한 듯 멍하니 교장이 있던 위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여보...? 어디로 갔어요....?"



미아는 그들이 사라졌던 장소만을 더듬고 있을 뿐이었다.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으로 길바닥을 더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처량해보였다.

"여보.....여기에 있죠? 숨어있는거 재미없어요....빨리 나와줘요....."

"빨리 나와요......저 이런거 별로 안좋아해요......"

"계속 안나오면.....엄마 화낼거에요...!"

"이대로 나오지 않으면  다른 남자 만나버릴 거에요......? 빨리 와서 붙잡아줘요....."

"제가....제가 잘못했어요... 다른 남자 따윈 손도 대지 않을테니, 아니 눈길도 주지 않을테니 빨리 나와요......"


"미아 교관, 조금 진정하ㄱ...허억!"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미아의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건지 다른 교관이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순간 보인 그녀의 살벌한 눈빛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표현이 오로지 저 눈을 위해 존재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눈빛이었다.

대놓고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는 미아와 달리 천세희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창을 들고 서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괜찮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만' 이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무수한 자괴감과 자기비하가 범람하고 있었다.

'왜 지키질 못했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온거지?'


'그를 지키지 못한다면 내 존재 가치는 도대체 뭐지?'



그렇게 강대한 힘을 가졌으면서 막상 중요한 순간에 미노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 그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래도 내가 살 가치가 있는 년일까?'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그를 지키지 못한 내가?'


"저.....저기!"


"잠깐만 우리 말을 들어줘요!"

정신이 붕괴되어가던 그녀들을 잠시 멈춘 건 활을  쌍둥이 소녀들, 스피나와 세르피나였다.




미아와 천세희는 옆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하지만 눈동자는 공허한 두 쌍의 눈이 그녀들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둘은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힘겹게 말을 떼었다.

"미...미노 님은 적에게 붙잡혀 갔어요. 하지만 바로 죽이진 않았잖아요. 그렇다는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요?"

"그.....그러니까 미노를 빼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적들이 어디로 갔는지만 알면....그를 다시 찾아올  있을지도 몰라요!"


"그......그렇다고 해도 교장 아니지 적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전혀 모르지 않나! 적은 슈브라는 자의 추종자인것 같다만 그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방법이 있는가?"

"그건 저희도 잘......"


"헛된 희망을 알려줄 거라면 애초에 알려주지를 말아야죠....!"



미아의 눈에 순간 희망의 불빛이 비추는가 했지만 이내 다시 절망으로 물들었다.


"여러분, 아테나 님이시라면 좋은 해답을 제시해 주실지도 몰라요. 일단 그 분께 신탁을 받아보도록 해요. 아테나 님이라면 '슈브'라는 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가만히 듣고 있던 판도라가 제안을 했다.



"그런데 '슈브'라는 자에 대한 정보를 가진 자가 있는가?"




"본명 슈브 니구라스. 미노의 전생을 알고 있는 여신. 전생의 그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여신. 제가 본 최강의 존재."

천세희는 미아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지구에서의 그를 알고 다른 세계에 와서도 그에게 아는 척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여자라.....



'딱 한명밖에 없네. 최서현. 그 년이네. 건방지게  오빠, 아니 주인님한테 살금살금 꼬리치던 썅년. 지구에서도 그렇게 거슬리던 년이 여기서도  방해해?'



천세희는 슈브에 대한 살의를 불태우며 창을 거세게 쥐었다.



"우선 아테나 님의 신전에 가보도록 해요. 저는 다른 신께도 도움을 요청해볼게요."


· · ·



한편 레아는 강당의 사람들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녀는 자면서도 식은땀을 줄줄 흘려댔다.




그녀의 꿈 속에서는 미노가 정체모를 어둠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안돼....! 아빠 가지마!'

'날 두고 가지마!'



번쩍ㅡ

"하아.....하아......악몽을 꾸다니....."

"아빠.....아빠 어디있어....?"

악몽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몸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몸을 얽매던 실의 일부가 풀린 듯한 느낌이었다.

· · ·




여기가......어디요?



요즘따라 이 말을 자주 하는  같다. 왜이리 정신을 잃었다 깼다 하는 일이 많은건지 원.




나는 왜 여기있는 거지?

잠시 진정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 날의 진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광신도 무리를 개박살내고 마지막 한 명이 마지막 발악을 했지만 교장 선생님이 그걸 막았고......교장 선생님이 나를 공격하고 납치했었지....

교장은 그때 슈브를 알현했다고 했지. 전체적인 말의 뉘앙새도 자신은 슈브의 신자라는 것 같고.

어......그러니까 나 납치당한거네? 왜지?




흠......교장이 슈브를 위하는 신자고, 그녀가 나를 납치했으니까 결론은......나를 슈브에게 바치기 위해 나를 납치했다? 내가 공물이냐? 시발....

그럼 여기는 슈브가 나를 데려가려던 세계?



그런데 여기 진짜 어디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것은....

무수한 괴물의 눈동자, 그리고 촉수들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악! 씨발!!! 저게 뭐야!!"




저것들 진짜.....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가장 기괴하게 생긴 몬스터들이다. 지금까지 본 고어짤, 커뮤사이트 새벽글 낚시짤 전부 눈앞의 몬스터들에 비하면 귀여운 사진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혐오스럽게 생겼다.




"어? 미노 군. 일어났어요? 먹을 걸 가져왔는데  먹을래요? 잠시  슈브 님께 갈 테니 든든하게 먹어둬요. 곧 체력  써야 할테니."



흉측한 몬스터들 사이로 나타난 건 교장이었다. 아니 이젠 교장도 아니지. 뭐라 불러야하지?


그녀는 밥상을 한가득 들고왔다. 촉수로 거대한 식탁을 들고 오는 모습은 참......식당일 하는 인간화한 문어같았다.



"교장...아니지. 저기.....여성분?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교장 선생님이라 불러주세요~제 이름은 여자의 비밀이랍니다?"

"전에 크툴루 어쩌고 하셨던 것 같은데...."


"물론  안에 깃든 크툴루는 완전히 저에게 동화되었기에 제가 곧 크툴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만......이름이 너무 남자같잖아요! 분명 저도 제 예쁜 여자이름이 있다구요!"

"그럼 그 여자 이름을 알려주시는게....."

"그건 여자의 비밀이라구요."



 대화해봐야 의미도 없는 말만 반복될 것 같아서 나는 빠르게 주제를 전환했다.

"교장 선생님, 그나저나 저 몬스터들 좀 어떻게 해주세요. 체할  같아요. 밥먹는데 저런 혐오스런 모습을 들이대면 어떻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진심으로. 아무리 맛있어도 고개를 들어  몬스터들 보는 순간 그대로  쏟아내 버릴 것 같다.


저런 것들을 보고 꾸준히 밥을 먹고 삼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정신 공격에도 면역일 사람일 거다.

"후우......하등한 것들이 누굴 방해하는 건지......"



그녀는 자신의 촉수를 휙휙 휘둘렀고 촉수가 닿을 때마다 나뭇잎이 바스러지듯 몬스터들이 쓰러지고 조각났다.



혐오스러운 몬스터들이었지만 막상 무기력하게 스러지는 모습들을 보니 동정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저기.....그래도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 아닌지....?"

"네? 저런 하급 무지성 괴물들 녀석들 따위가 미노 님의 평안한 식사보다 중요할 리가 없잖아요? 당신은 슈브 님의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세상에서 유일한 분이시고 저것들은 발에 차일 정도로 넘치는  같은 존재들이라구요."

아무래도 여긴 지구나 이세계 이상으로 신분제도가 확실한 것 같다. 별의별 사유로 막 죽이네....



그녀가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지만 일부러 티내지 않기 위해 밥먹는데만 집중했다.


결국 밥을 다 먹고야 말았다. 불편한 자리일텐데 밥이 넘어가느냐고? 존나 잘 넘어가더라. 밥을 못 먹겠다 말하기에는 너무 맛있는 밥이었어.


"아~배부르다."

"이 많은 걸 다 드셨네요. 역시 미노 군이네요."

"그나저나 이전에는 미노 학생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미노 군인가요?"

"미노 군은 이제부터 슈브 님의 공물이에요. 더 이상 아카데미의 학생 따위가 아니죠. 그러니 미노 학생이라 부르는  어불성설이죠.
아, 혹시 미노 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서 서운하신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노 군이 공물에서 슈브 님의 남편이 되신다면 그 즉시 님 자를 붙여드릴게요."

알고 싶지 않은 TMI까지 알아버렸다.




"자, 이제 가죠. 슈브님께. 공물로서 바쳐지는 거에요. 기쁘죠?"

아니.....공물이라니....내가 공물이라니!

그래도 남편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먹히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단 죽는 건 아니니까 안심.....인가? 아무튼 불행 속 다행이네.


나는 교장의 촉수에 정성스레 들려서 슈브에게 인도되었다. 그녀는 나를 들고 거대한 고성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복도를 한참이나 지나 한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있던  여성이 몸을 일으켜 우릴 바라봤다. 흑발에 염소의 뿔, 슈브였다. 칠흑 속에서도 빛나는 그녀의 붉은 눈은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매혹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안이었지만 그녀만큼은 똑똑히 보였다. 빛을 내뿜는 것도 아니었으나 어둠조차 그녀의 아름다움을 숨기지는 못했다. 역시 얼굴 하나는 내가 본 모든 여자중에 가장 예쁘다니까? 하는 짓만 얌전하면 몰라도.



"슈브 님, 미노 군을 데려왔습니다."

"수고했어. 문 닫아. 나가지는 말고."



 나가지 말라 하는건데. 나 도망가는거 붙잡으라고? 애초에 도망갈 생각도 없네요. 불가능한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주의라.




"음.....슈브....?  나를 잡아오라고 시킨거야?"

질문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물어볼  물어봐야겠다. 그녀의 의향을 알아야 의향대로 처신을 하지.



"으음.....너랑 해보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그녀는 팔을 한가득 벌리고는 거대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무심코 내 눈앞에 있는게 무한한 힘을 가진 여신이라는 걸 잊고 귀엽다고 생각해 버릴 정도였다. 역시 예쁜 사람이 하면 모든 행위가 행위예술이 되는 것 같다.




"우선은......그때 못다먹은 고기, 지금 마저 먹자!"


"예?"


상상도 못한 대사에 무심코 멍청한 소리를 내버렸다.


"기억 안나? 소고기! 너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얼마든지  테니까 먹어."


어느덧 그녀와 내 앞에는 불판이 나타나 있었다.

시발 이럴 거면 밥 안먹고 오는건데. 배부르다고 안먹는다 하면 죽겠지?



나는 어쩔  없이 억지로 고기를 입에 쑤셔넣었다. 맛있긴 맛있네.




"휴~ 맛있었다. 지구에서 원래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그지?"

"어? 어.....그렇지..."

"뜬금없이 왜 소고기 먹었는지  어이없지? 나같아도 그랬을거야. 그래도....그때 트럭 때문에 고기 먹다가 끊겨버렸잖아. 그 날, 끝까지 같이 먹고 싶었어."



이런 소박한 소원이라니. 이런 것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그러니 납치같은 난폭한 방식은 좀 안했으면.




"정말? 얼마든지 해줄거야? 그럼 나 더 하고 싶은 것 있는데.....해도 돼?"

"얼마든지."



내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는 나를 자신의 침대로 끌고 가 밀어뜨렸다.



"어?"


"그 날, 중간에 끊겨버렸잖아. 나, 그 이후를 하고싶어."



아무래도 나는 오늘 여신과의 섹스를 하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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