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습격(3)
나는 경기장 통로를 전력으로 달렸다. 달리던 중간에도 광신도 녀석들이 기습을 걸어왔지만 손쉽게 공격을 흘리고 한 대씩 후려갈겨줬다.
우선 향해야 할 곳은....대피소로 간다!
녀석들이 말했던 슈브와 제물. 그리고 광신도들에 대한 책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광신도 녀석들이 오늘 경기장을 습격한 목적은 다수의 인간을 확보해 슈브의 강림을 위한 제물로 써먹기 위함일 것이다.
즉,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대피소는 녀석들이 몰려들 1순위 장소일 것이다!
대피소는 지금 속도로 달린다고 하면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그때까지 사상자가 나오지 않아야 할텐데......
그때였다.
돌연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후우웅! 퍼어어엉!!
급히 허리를 젖히자 얼굴 위로 불덩어리들이 날아갔다.
불?
불덩어리들은 형태가 변하더니 화염의 벽으로 변해 통로를 막아버렸다. 화염 마법인가?
아니, 화염에서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연의 순수한 불.
마법이라기에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고 자연발생이라기에는 너무나 인공적인 불의 움직임......
결론은 딱 하나 뿐이다. 주술사.
"광신도들 사이에 주술사도 있을 줄이야."
"훌륭한 움직임이더군. 마나도 없는 순수한 불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던거지?"
"본능. 그냥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을 뿐이야."
나타난 건 붉은 머리카락의 미남이었다. 저 놈이 불을 쐈던 주술사인가?
"너, 상당히 강하더군. 다수의 우리들을 일격에 학살한 걸 보면 분명 보통 녀석은 아닐테지."
"아이구~칭찬 아~주 감사합니다?"
내 비꼼을 진짜 칭찬으로 들은건지 무시한건지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네 놈이라면 분명 우수한 소재로 삼을 수 있겠지. 제물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정말......딱 한 마디가 떠오르는 녀석이다.
'그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릅니다.'
"야."
"일부 종교인들이 왜 민폐라고 불리는 줄 알아? 니들같이 지들만의 좆같은 사이비 신념을 남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야. 이 개새끼야."
녀석은 내 급발진 대사를 머리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듯 멍하니 서있었다.
"제물이니 뭐니 인신공양이라는 쓰레기 제도는 니들끼리 알아서 하시고, 일단 한대 맞고 시작하자."
나는 순식간에 적혈 갑옷을 해방하여 몸에 두르고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뭣...?!"
내 돌진 속도를 예상하지 못한 건지 녀석은 한 마디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뱉을 뿐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고 녀석의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후....진짜 개같은 녀석이네. 광신도 새끼들은 이래서 문제야. 지들이 뭐가 문제인지 진심으로 모른다니까?"
그 때, 머리가 박살난 녀석의 시체가 화염으로 변하더니 나를 덮쳤다.
갑옷 덕에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나는 당황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분신이었던 건가.....?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이야.
"우리 신도들이 스러져가는 걸 보면서 네 놈의 힘이나 속도 정도는 파악했다. 주술사가 근접 권사를 상대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숭고한 행위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둔한 생물답게 멍청하기 그지없구나."
슈욱....쾅!
나는 다시 한번 녀석에게 달려들어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어 내장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지만.....그 또한 분신이었다. 시체는 또다시 불로 변해 나를 덮쳐왔다.
화염의 위력이 상당히 강하긴 했지만 내 적혈 갑옷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무사한 것과 별개로 상당히 열받는다. 농락당하는 게 상당히 빡친다고!
주술사 녀석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박살내다 보면 언젠가는 녀석의 마나가 떨어지겠지!
나는 계속해서 녀석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주술사의 분신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녀석의 마나는....도대체 얼마나 남아있는거지?
이대로 가다가는.....내 귀기가 먼저 소진되어버릴 것 같다. 귀기가 없어지면.....저 녀석의 공격을 버티지 못할 터!
귀기 사출을 쓰려고 해도 녀석의 본체가 어딨는지 모르니 소용이 없을 거고.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젠 포기한 건가? 지금이라도 얌전히 항복하고 제물이 된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마."
········있다! 방법!
녀석의 본체가 어딨는지는 모르겠지만......실시간으로 화염 분신을 계속 소환하려면 분명 멀리 있지는 못할 거야!
그렇다면......주변을 통째로 날려버려주지!
귀기의 사출이 아닌.....폭발이다!
나는 양 뿔의 사이에 대량의 귀기를 모았다. 사출을 위한 귀기 그 이상으로 엄청난 양의 귀기가 모였다. 날릴 필요가 없으니 양을 조절할 필요도 없지.
"꺼져 씨발아. 착한 사이비는 뒤진 신천지일 뿐이야."
나는 응축된 초대량의 귀기를 그대로 터뜨려버렸다.
제자리에서 폭발했기에 나를 중심으로 엄청난 기세로 귀기의 폭풍이 퍼져나갔다.
· · ·
화염의 주술사와 미노가 한창 싸우고 있을 무렵,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서는 몇 명의 남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특징이라 하면 머리 색깔이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갈색 등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들 중 노란 머리의 남자는 상당히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냐?"
"그 녀석이 자기 혼자면 된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나. 조금은 믿고 기다리게."
"빨리 죽이고 제물을 확보해도 모자랄 판에 혼자 시간낭비하며 즐기고 있는 녀석을 내버려 두라고?"
"······."
"가만히 있는 건 그렇다고 쳐. 우리들의 마나까지 전부 다 끌어쓰고 있잖냐! 지금 우리 중 나 빼고 마나 남은 놈 있어?"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불꽃의 주술사가 쓰고 있는 속성 분신은 막대한 양의 마나를 정령에게 지불해야 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없이 분신을 생성한 그 때문에 다른 주술사들의 마나는 거의 고갈나있는 상태였다.
"가만히 내버려두다가는 내 마나까지 전부 다 쓰겠군! 이러다가 제물 확보는 커녕 우리들이 당해버릴 거다! 난 더이상 못 기다려! 당장 내 번개의 주술로 녀석을 전기구이로 만들어주지!"
그 순간, 멀리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그게 그들이 인생의 최후에 들은 소리였다.
· · ·
······귀에서는 삐 소리만이 들렸다. 귀기는 내게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었지만 폭발 자체의 충격파와 굉음은 무시할 수 없었기에 감각이 잠시 마비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씩 감각이 되돌아오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은.....말 그대로 소멸한 상태였다.
주술사도, 벽도, 천장도 전부 사라져있었다.
······이정도 위력일 줄은 예상 못했는데.
설마 대피소까지 날아간 건 아니겠지? 거리가 얼만데. 설마.
얼마를 더 달려 결국 대피소에 도달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 대피소는 무사히 남아있었다.
대피소의 문은 신원을 확인한 후 자동으로 열렸다. 역시 최첨단 시스템, 마법답다.
그런데 나야 학생으로 정식 등록 되어있으니까 이렇게 자동문이라 쳐도, 아카데미 학생 외의 사람들은 신원 확인 어떻게 한거지?
후에 들은 사실이지만 대피소는 처음에는 상시 열려 있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안에서 문을 한 번 닫으면 신원 확인된 사람 외에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마법 시스템답게 빈틈은 없는 모습이다.
대피소 문이 열리자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무수한 눈동자가 나에게 주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수백, 수천 명이 미어캣마냥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는데 이거 상당히 무섭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내 모습을 확인하자 사람들은 안심한 듯 외쳤다.
"미....미노 선수다! 이젠 안전할 거야!"
"사....살았어!"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불쑥 나오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미노 님, 만나서 영광인데 혹시 악수 한번만 가능하십니까?"
갑자기? 내 경기 보고 팬이 되어서 악수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럴 수 있고 악수 자체야 별 거 아닌 행위지만......너무 뜬금없지 않나? 수많은 적이 대규모로 침공해온 이 시국에?
그리고.....내 직감이 외치고 있다. 저 사람은 위험하다고.
"악수해도 되겠습니까? 악수해도 되겠....니까? 악수....되겠습니까? 악수해....되....까? 악수.....악수......악수....악수....악수!!"
남자는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몸이 부풀어 올랐다.
씨발. 이건 대체 뭐야.
존나 흉물스럽다. 살덩어리가 부풀어 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 어떨 것 같은가? 심지어 피부도 부패하여 녹색으로 변색되고 있다. 진짜 내가 본 어떤 광경보다 혐오스럽다.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던 사람들도 도저히 참질 못하겠는지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보기 힘들 정도로 혐오스러운 광경인데 저들이야 어떨까.
저 놈의 몸에서 불길한 마나가 대량으로 느껴진다. 마치.....폭발할 것 같이 작게 뭉치고 있다.
만약 저게 터진다면.....폭발이 터졌다. 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 같다. 아마....이 대피소 절반은 날아가지 않을까?
어쩔 수 없네. 저게 터지기 전에 소멸시키는 수밖에.
날려서는 안된다. 소멸시켜야 한다.
나는 적혈 갑옷을 형성했다. 전신 갑옷은 아니고....오른팔 부근에만.
예전에 미아와 겨룰 때 썼던 기술처럼.....일부에만 갑옷을 발현시켜 그 부분에 담을 수 있는 모든 귀기를 담는다!
그때와 같은 원리의 기술이지만 위력도 정교함도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쿠우우우우우웅ㅡㅡㅡㅡ!!
엄청난 위력이었지만 주변에는 일절 충격파가 퍼지지 않았다. 오로지 눈앞의 살덩어리에만 집중한 공격. 모든 주먹의 위력은 저 살덩어리에만 전해졌다.
다량의 귀기가 서린 주먹을 받은 살덩어리는 그대로.....분해되어버렸다. 부서졌다. 터졌다. 이런 것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분해되어버린 것이다.
"휴우.....씨발 좆되는 줄 알았네....저거 터졌으면......"
"어......방금 건 대체 뭐였습니까?"
"설명해드리자면 복잡합니다. 일단 밖의 상황부터 짧게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미지의 적들에 의해 아카데미가 습격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적들의 전체적인 수도, 평균적인 전력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있는 한, 여러분들은 무사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게 나뿐이니 부족한 어휘력으로라도 안심을 주는게 중요하다.
말재주가 없어 사람들을 안심시킬 순 없지만 패닉에 빠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어?
짝....짝....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아아!"
내 연설같지도 않은 연설에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박수갈채는 자신들을 지켜줄거라는 무의식적인 기대의 표출이겠지.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와 그 무력을 목격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그 때, 갑자기 대피소의 벽이 무너졌다.
"여기에 있었나? 제물들?"
절망의 목소리가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