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습격(2)
한편 미아는 레아와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둘은 결계가 버텨주고 있을 때 도망갔기에 적의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미아는 교관으로서 비상 시 외부의 적과 싸울 의무가 있었다. 실제로 언제나 비상사태를 대비해 검을 가지고 다녔으니까. 미아 자신도 싸울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울 수 없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손을 꼬옥 잡은 작은 늑대족 소녀, 레아와 함께였으니까.
맞잡은 손에서 작은 압력이 느껴졌다.
"아빠는 어딨어....? 같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레아는 불안한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맞잡은 손에서도 떨림이 전해져 왔다.
'대피소로 데려다줘야하나?'
'아냐....대피소라고는 해도 수만 명을 다 수용할 수 있을리가 없어. 일단은.....같이 이동하는 수밖에. 한명 정도는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 거야. 내 검이라면 손을 쓰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고.'
'우선 여보를 만나서 합류하자. 둘이라면 좀 더 적들에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겠지.'
미아는 레아를 안아들고는 대피소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무수한 인파 때문에 막힐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인파 사이사이의 틈으로 물흐르듯 부드럽게 지나갔다.
쿠웅!
"하! 여기에 있었군!"
"네놈들 전부! 제물이 되는거다!"
천장을 부수고 두 명의 광신도들이 뛰어들었지만 어느새 해방되어있던 미아의 비수들이 그들에게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결승전이 치뤄질 예정이었던 경기장 중앙에 도착하자 그녀의 눈 앞에 보인 건 반으로 갈라진 수십 구의 시체들 뿐이었다.
'아이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미아는 레아의 눈을 살포시 덮었다.
'시체들 중 여보는 없었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구조하러 이동했다는 거겠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한 거지?'
"킁킁....저쪽에서 아빠 냄새 느껴져."
레아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늑대 수인인 그녀에게 냄새로 추적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특히 미노의 경우 체취가 독특했기에 냄새가 더욱 잘 맡아졌다.
그때 마법진에서 다시 한 번 빛줄기가 쏟아졌다.
'나타난 건......인간?'
"아직 남아있었군!"
"강한 년이라면 우수한 제물이 될 거다!"
"그 분의 강림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그 분? 제물? 강림? 대체 무슨 소리지?'
혼란스러웠던 그녀의 머릿속에 미노가 해주었던 광신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만명의 제물.....그녀의 강림.....설마 이번 습격의 목표가!!'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목적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는 겁니까?"
"죽음 따위가 아니다. 그 분의 강림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지. 네 년도 생각이란 걸 한다면 기뻐하며 영혼을 바치도록."
정신과 의사가 듣는다면 즉시 입원치료를 권장할 정도의 헛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는 광신도였다.
미아는 십수년을 거짓으로 꾸민 채 살아왔던 만큼 타인의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었다.
'저들의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다.'라고 자신의 감이 외치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저들은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서 슈브 니구라스의 강림을 다시 한 번 하려는거야! 한 장소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오늘만큼 저들에게 적기는 없었겠지!'
"겨우 그딴 걸 위해서 무수한 사람들을 해치려 하다니...!"
"그딴 것? 그 분의 강림보다 숭고한 일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하는 거지?"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당신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냐. 쓰레기일뿐. 쓰레기는......치워버려야 해."
미아 주변에 떠다니던 비수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뭉친 비수들은 거대한 검, 망치, 창, 도끼 등 다양한 무기의 형태로 변하더니 광신도들을 내려찍었다.
콰앙! 쾅! 쾅! 쾅!
눈앞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힘에 광신도들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으깨질 뿐이었다.
카앙!
"꽤나 하는 모양이군."
미아의 공격을 막아낸 건 대머리의 남자였다. 몸에는 괴상한 문신이 덕지덕지 있는 흑인이었다.
'양 손으로 비수를 막아냈다는 건.....권사인건가.'
"네 년이라면 제물로 쓸 수도 있겠지만......씨받이로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군. 얌전히 잡힌다면 거칠게 굴지는 않겠다!"
'나는 여보의 것인데 더러운 것들이 감히!'
"거절한다!"
미아는 거대한 용을 두 마리 생성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용은 대머리 남자를 향해 그대로 머리를 내리박았다.
그녀는 적이 권사인 순간 승리를 직감했다.
권사와의 전투는 질릴 정도로 많이 했으니까. 거리 조절을 하는 법, 효율적인 공격, 공격 회피 및 반격 방법 전부 알고있다. 그녀가 지금까지 겨뤄왔던 상대는 극한의 신체 능력을 가진 권사였으니까.
권사가 공격을 하려면 그대로 상대에게 근접해야 한다. 즉, 권사를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리를 주지 않는 거다.
그 방법은 두 가지, 자신이 멀어지거나 상대가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미아는 자신의 주위에 가시벽을 생성했다. 자신은 가시 벽 속에 숨어 원거리에서 용만 조종하며 적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체력이 먼저 바닥난다! 도망치거나.....뚫고 나가거나....! 수십 명의 '우리'를 죽인 적도 남아있을 터! 여기서 부상을 입을 수는 없다! 도망간다!'
도망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대머리였지만 그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어느샌가 계획을 눈치챈 미아가 그의 주변에 가시 벽을 더 생성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는 벽이 쳐져있었고, 위에는 용이 덮쳐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
"이.....건방진 년이.....! 이런다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대머리의 전신에 있던 문신이 빛을 발하더니 그에게 폭발적인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천권살]!"
그는 전력을 다해 벽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변에는 무시무시한 풍압이 일었다. 주먹에 가격당한 벽은 그대로 무너져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의 주먹에도 가시가 박혀 손이 성하진 못했지만 그는 일단 도망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 같았다.
"여기로 빠져나ㄱ....."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다른 한 마리의 용이 그대로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용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무수한 비수들이 그를 난도질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용이 그를 지나칠 때쯤 그의 몸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있었다.
"끄으으으........"
"아직도 살아있는 건가요? 쓰레기 주제에 명이 질기네요. 사라지세요."
벽을 해제한 미아는 거대한 창을 생성하여 그에게 던졌다.
"신이시여!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칩니다! Finis autem animae(영혼의 최후)!"
콰아아아앙!
돌연 그의 몸이 부풀더니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짧은 순간에 비수로 방패를 형성해 폭발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방패 너머로도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하려 하다니 끔찍한 존재들이군요."
꾸륵꾸륵-
그 때 폭발했던 시체를 중심으로 붉은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수십, 아니 백 구가 넘는 시체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시체들은 뭉치면서 큰 덩어리로 변모했다.
그 후, 덩어리는 공룡의 형상으로 변했다. 공룡의 피부는 썩은 시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풍기는 냄새도 매우 고약했기에 절로 얼굴이 찌푸러졌다.
대머리가 최후에 발동한 마법, Finis autem animae(영혼의 최후)는 자신의 영혼을 매개체로 하여 주변의 시체와 영혼들을 전부 규합시켜 저주받은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시전자는 영혼까지 소멸되기에 어떠한 부활, 환생 등을 할 수 없고 시전자 주변에 수많은 시체들이 있어야만 발동 가능한 마법이기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법이었다.
"하아......진짜 광신도들은 최후까지 저항한다는게 이런 뜻이었군요....."
그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용을 생성하여 공룡을 향해 날렸다.
용은 그대로 공룡의 몸통을 관통했고 시체 공룡의 몸 중앙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하지만, 날아간 조각들은 금세 다시 돌아가 파손된 부분을 복구해버렸다.
"재생 능력까지 갖춘 건가요? 그렇다면 재생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부술 뿐!"
비수들은 검, 창, 도끼, 바늘, 용, 아이언 메이든, 메이스, 모닝스타, 활, 망치 등 무수한 양의 무기로 변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무기로 공격해도, 어떤 타격을 가해도 공룡은 그대로 재생할 뿐이었다.
"크어어어어......"
공룡은 자신의 차례라는 듯 입을 크게 벌렸고 그 입에서는 검은 안개가 퍼져나갔다.
푸화아아악!
딱 봐도 맞으면 안될 것같이 생긴 안개가 바닥에 닿자 그대로 바닥이 녹아내렸다.
"!!!"
미아는 황급히 부유하는 발판을 만들어 위로 올라탔다.
"적은 무한으로 재생.....나는 한방만 맞아도 위험.....승리 조건이 너무 어렵다고요....."
"지성이 없는건지 움직임은 되게 단순해서 한 대도 맞지 않을 자신은 있다만 마나가 바닥나면.......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이대로 물러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아직 경기장에는 마저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이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량으로 사상자가 생길거야. 그러니 반드시 막는다!'
결의를 다진 미아가 다시 한번 공격을 날리려는 순간 머리속에 특이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엥? 뭐야. 주인이 바뀐건가?}
'이 목소리는 뭐지?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야, 야, 야! 나다! 니가 들고있는 검!}
{내가 알던 사용자와 다른 것 같군. 아무튼 반갑다.}
'아....반갑습니다?'
{네가 원하는 건 저 괴물을 물리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거신 이유가 뭡니까?'
{내 힘도 제대로 못 다루면서 의욕만 넘치는 게 꼴사나워서. 살짝 도와줄까 하고.}
미아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녀도 나름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기에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검의 발언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겁니까?'
{목소리가 사나워졌네. 성격 나쁜 여자로군. 아무튼, 도와주는 방법은 간단해. 저 녀석을 없앨 수 있는 마나를 사용하면 되는거잖아?}
'지금까지 계속 마나를 두른 비수를 날렸습니다만.....하나도 통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네가 평범한 마나를 날렸으니까 그렇지. 내 힘을 쓰면 저런 것 따위 순식간에 없앨 수 있다고.}
'그럼 당신의 힘은 어떻게 쓰는건가요?'
{넌 팔을 올리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하고 다니냐?}
말투 하나하나가 밉상이다. 미아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패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번만큼은 내가 도와주지. 잘 기억했다가 다음부터는 혼자 해보라고?}
그 순간 미아는 자신이 3인칭으로 느껴졌다. 감각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타인을 보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
"꺼져라. 저주받은 마물이여."
비수들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나가 느껴졌다. 단순 마나의 총량도 달랐지만 그 기운이,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이 기운은 마치....태양을 연상케 했다.
비수들은 공룡을 향해 날아갔다.
퍼퍼퍼퍼펑!
비수들이 꽂힌 공룡의 몸은 그대로 관통당한 부위부터 녹아내렸다.
"저주받은 마물에게도 영원한 안식을."
손가락을 튕기자 공룡의 몸 전체가 불타오르더니 녀석은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이정돈가? 간단하네."
"당신, 누구야?"
미아, 아니 검은 품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목소리의 방향을 내려보았다.
그 곳에는 레아가 소름끼칠 정도로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당신은 언니가 아니야. 다시 물을게. 당신....누구야?"
"하하하.....이거 연기도 안 통하네요. 일단 당신의 적은 아닙니다. 곧 본래 주인이 돌아올 테니 진정하시죠."
"당장 이 사람 몸에서 나가.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돌아와. 무섭다 야.}
".....후우....저에요. 레아."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던 레아는 그제서야 얼굴을 풀었다.
'레아... 이 아이, 대체 정체가 뭐지? 시종일관 건방지게 굴던 그 검이 갑자기 공손해지다니.....'
'그리고 이 검, 대체 정체가 뭐지? 스승님께서 주신 검이라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너무 특이해.'
검은 다시 미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한가지 말 안 한게 있네. 내 진명, 뭔지 말 안해줬지?}
{'오벨리스크'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오벨리스크?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겼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좀 조사해봐야지.'
"일단은.....이곳은 정리된 것 같으니 다른 곳으로도 가볼까요?"
미아는 발판을 타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