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습격(1)
얼마나 해댄 것일까 밖을 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으으......♥ 자지......최고....♥ 완전 조아....♥"
밤새 고문과도 같은 쾌락에 시달린 천세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일어나요. 학생회장님."
밤에는 이성이 없던 상태라 반말했었지만 그래도 선배인데 평소에는 존댓말 해줘야겠지. 밤에는 주인님이었지만 지금은 후배니까.
내 말에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처녀 상실의 고통과 밤새 시달린 후유증으로 잘 걷지도 못할 줄 알았는데 잘만 움직이네. 역시 뷰지는 삼류여도 실력은 아카데미 제일인인가.
"빨리 옷 입으세요. 일단 오늘 결승날이니까요. 늦으면 안되잖아요 학생회장님."
그녀는 내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고는 다급히 외쳤다.
"하대하셔도 돼요. 주인님! 아니 하대해주세요!"
밤에 이뤄진 관계가 기본 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
"저는 앞으로 뭐라고 부르실 건가요? 천세희? 세희? 그것도 아니면 암캐?"
기존의 행보하고 너무 다르잖아. 그전에는 냉기 풀풀 쿨뷰티 미녀 학생회장님이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건데...... 그리고 암캐는 뭐야 암캐는!
"그....그럼 세희라고 부를게요....."
"주인님, 올해로 19살이죠? 지금 저랑 동갑이니까 말 놓아주세요!"
2년 선배지만 동갑이라....그러면 나, 세희, 스피나, 세르피나 전부 동갑인건가? 황금의 세대네.
"그럼 편하게 할게. 너도 편하게 해."
"아뇨, 전 이게 편해요. 주인님께 말을 놓는 불경을 저지를 순 없으니까요."
그놈의 주인님. 왜 평범한 사이가 되지 못하는거지?
"세희 너는 지구 출신이지? 어쩌다 이 세계로 온거야?"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구에 있던 저를 여신님이 이 세계로 데리고 왔어요."
"강제로 너를 끌고온거야?"
"아뇨, 제안이었어요. 수락한 건 전적으로 제 의지였다구요? 덕분에 주인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튼! 빨리 옷 입어. 경기장 가야지. 결승날이니까."
내 말에 세희는 옷을 집어들고는 천천히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심하게 옷을 입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내게 엉덩이를 씰룩거리거나 가슴을 보여주었다. 뇌쇄적인 눈빛을 보내오는 건 덤이고.
그렇게 노골적인 유혹에 나는 절대 걸리지 않아! 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렬한 꼴림이었다.
"이리 와!"
"꺄아♥"
그대로 그녀를 덮쳐서 다섯 번 더 사정해버렸다.
· · ·
후.....결승 한시간 전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근데 이젠 진짜 좆된 거 같다.
"세희야, 이젠 진짜 가야돼! 먼저 출발한다!"
나는 한마디 남기고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녀 정도라면 나보다 빠르게 갈 수 있겠지. 무엇보다 일단 다른 사람을 신경쓸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아! 미리 가서 대기해야 할 것까지 생각하면 지금 출발하는 것도 좀 늦었다고!
홀로 남게 된 천세희는 조용히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더없는 행복이 느껴졌다.
"드디어.....드디어 당신과 이어졌어."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늘로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지만....아쉽게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
"앞으로.....내 이상적인 주인님으로 만들어 줄게.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자? 내 옆에서 영원히....."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읊조린 후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 · ·
끼기익-
도착했다! 시간은......개시 시간 40분 전! 이 정도면 얼추 적절하게 도착한 것 같네.
결승 경기 이전에 하는 건 금지된 수단의 사전 확인 및 트래쉬 토크다. 경기 전 트래쉬 토크 문화는 여기에도 있나보다.
참고로 천세희는 트래쉬 토크에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했던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반응이 없으니 상대방은 신나게 도발했고 그만큼 경기에서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천세희 선수요? 한번 꽂으면 정신 못차릴걸요? 완전 허접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뭘 꽂는지, 뭐가 허접인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경험담을 이야기한거다.
"......"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다보니 트래쉬 토크도 순식간에 끝났다. 반박을 해야 또 거기에 말을 하고 하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니 몇 마디만에 끝나버렸다.
표정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설마 살짝 도발했다고 복날 개처럼 쳐맞는 건 아니겠지? 적당히 사리면서 말한 건데....
· · ·
"금지 물약을 복용하진 않으셨죠?"
기본적으로 버프 물약이 자주 유통되고 사용되는 세계니까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네."
형식적인 도핑 테스트 같은건가.
"잠깐 따끔할 겁니다."
검사 직원은 혈액을 채취해갔다. 뭐 특이한 게 검출되지는 않겠지? 딱히 복용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미노타우로스의 피가 흐르니까 혹시나 해서.
"이상 반응 없습니다. 가셔도 됩니다."
다행히 무난하게 지나갔다.
· · ·
대기실로 가던 중 미아와 레아를 만났다.
"여보, 몸은 좀 괜찮아요? 이틀이나 안 돌아오다니......의료실에서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어제 밤에는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세희랑 광란의 야스 하느라고 안 들어온거지만....이대로 말하면 둘이 날 죽여버릴테니 조용히 하도록 하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결승전! 미노 선수와 천세희 선수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각 선수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해설자의 선수 소개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어차피 기존 대회 행적이나 아카데미 활동 특이사항 얘기해주는 것 뿐인데 그런 해설 따위는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 어차피 글자 낭비일테니 생략하도록 하자.
나와 천세희는 경기장 중앙에 마주보고 섰다.
"조심해요 주인님."
옆에 있는 심판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뭘 조심하라는 걸까. 한방에 박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건가? 그래도 결승전인데 한방에 끝나버리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는데.....조금 봐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럼.....경기 개시!"
심판이 경기 개시 신호를 보낸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ㅡㅡㅡ
하늘에 경기장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마나로 이루어진 마법진이었다.
시발 저건 뭐냐?
콰과가가가가가강!
마법진에서는 무수히 많은 마법 공격들이 쏟아져 내렸다. 관중석을 덮고 있는 결계 덕에 피해가 닿지는 않았지만 가해지는 위력으로 볼 때 결계가 부서지는 것도 시간 문제 같았다.
관객들은 잠시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엄마~!! 살려줘!!"
"이게 뭐야!!"
"도망쳐!!"
"무질서는 혼란만 야기할 뿐입니다! 모두 질서정연하게 대피하십시오!"
안내원들이 관객들을 인솔하고 있었으나 워낙 수가 많았기에 대피에도 한참이 걸렸다.
콰카과가가강!
쩌적.....쩍.....쩌저저적
파캉!
얼마나 많은 공격을 받아낸 걸까, 굳건히 버티던 결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지이이이이잉ㅡㅡㅡ
결계가 부서지자 마법진은 다시 빛을 발했다. 그 후 마법진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쏟아졌다.
"""""""""슈브 니구라스 님을 위하여!!!"""""""""
빛줄기 속에 나타난 건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들이 그 광신도들인건가.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다니.....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하하하하! 죽어라!"
"그 분의 강림을 위한 제물이 되도록! 영광으로 알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승객들이 그들에게 공격을 당했다.
대회에 흥미를 가진 아이와 그의 어머니, 아카데미의 학생과 그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싶은 강사, 아카데미의 학생들 모두 저 광신도들에 의해 쓰러졌다.
젠장, 미아와 레아도 저기에 있다고!
미아의 무력이라면 자신과 레아의 안전 정도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되긴 했지만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저 녀석들을 막아야 해!
나는 즉시 관객석으로 달려나가려 했으나 내게도 녀석들이 달려들어 그곳으로 향하지 못했다.
"이 개새끼들이.....꺼지라고!"
분노에 가득 찬 채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주먹에 맞은 녀석은 강자는 아니었던건지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머리통 절반이 박살난 채로 널부러진 시체는 별로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광신도라고는 해도 일단은 인간이라 죽이는 데 일말의 거부감은 느껴질 줄 알았는데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치워야한다는 생각만 들 뿐. 다른 종족으로 전생하면서 윤리관도 바뀌어 버린건가.
녀석들은 나를 중심으로 조금씩 포위하고 있었지만 달려들지는 않았다. 한 번 당하더니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 거리를 조절하면서 원거리 공격을 퍼붓겠다는 건가?
"안 덤빌거냐? 그럼 이쪽에서 간다!"
저 녀석들과 싸운다고 해도 귀기는 함부로 쓸 수 없다. 적들의 정확한 숫자도, 강함도 모르니까. 귀기의 사용은 어디까지나 비상 수단이다. 믿을 건 내 신체 능력과 체술 뿐.
각오를 다지고 적에게 달려드려는 순간, 경기장에 있던 모든 광신도의 허리 부근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투화아아아악!
""""""""으아아악!""""""""
그리고 그 직후 내 눈앞의 광경은......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며 쓰러지는 광신도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베어낸 것은 천세희였다. 순백의 창을 들고 수십의 시체들 사이에 당당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칭호인 '용사'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단 한 방의 공격에 다 쓸어담다니, 역시 용사는 용사인가?
"주인님, 괜찮으세요?"
광신도 수십을 단번에 죽여버린 세희는 나를 보며 걱정하는 얼굴을 지었다.
"어? 어....난 괜찮아...일단 아카데미 교관들이랑 경비들이 올 때까지 저 녀석들을 저지하자!"
"알겠어요! 저는 이쪽을 맡을테니 주인님은 저쪽을 부탁드릴게요!"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뛰었다. 한 명이라도 빨리 처치하기 위해. 사상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멀어져가는 내 모습을 본 천세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초월적인 감각은 아카데미 전체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주인님.....아마 교관들은 안 올거에요. 아니 못 올거에요. 녀석들이 덮친 곳은 비단 이번 경기장 뿐만이 아니에요. 아카데미 전부가 공격받고 있어요...."
"나와라. [소리]"
그녀의 손 위에는 하얀 올빼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주인님이 위기에 처할 것 같으면 그를 지켜. 무슨 일이 있어도."
펄럭펄럭-
'소리'라는 순백의 올빼미는 미노가 달려갔던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솔직히 주인님 이외의 녀석들은 다 죽더라도 별 상관없지만......주인님께 생채기 하나라도 생긴다면......"
그녀의 붉은 눈이 더욱 붉게 빛났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