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본선-4강 (3)
쿠우우우웅!
관중석까지 삼킬 듯 퍼지던 폭발은 투명한 막에 의해 막혀있었다.
경기장 위에는 로브를 쓴 사람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마법 스태프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떠 있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연구해도 도달하지 못할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이었다.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저 마법진을 보았다면 바로 로브를 붙잡고 가르침을 달라고 매달렸겠지.
"후우.....위험했네요. 급히 결계를 보강해서 망정이지. 가만히 냅뒀으면 관중석까지 피해가 갈 뻔 했네요.
이게 학생들의 수준이라니, 저 학생들은 되게 특별하네요."
로브 속에서는 여성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듣기만 해도 진정될 것 같은, 타인을 안심시켜주는 목소리였다.
{교장 선생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교장실로 와 주시겠습니까?}
"흐음, 몇십년 만에 한창 재밌는 경기라 계속 보고 싶었는데......어떡할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래요?"
분명 혼자밖에 없을 터인데 그녀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흐음....당신의 생각은 그래요? 으으음......알았어요. 어쩔 수 없죠. 나중에 녹화본이나 다시 보는 수밖에. 제 보강마법도 다음 경기 정도는 버티겠죠?
아 그래도 천세희 양이면 조금 불안한데.....그녀는 그야말로 격이 다르니까요. 뭐, 알아서 잘 조절해 주겠죠?"
"자 그러면 출발해 볼까요? 쓸데없는 이야기였다면 저도 화가 날지도 몰라요? 부디 제 여흥을 깨버린 만큼의 중요도가 있는 주제이기를. [텔레포트]"
슈슉
하늘에 있던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텔레포트같은 상위 마법이라 할 지라도 순식간에 발동하는 것 따위는 그녀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 · ·
폭발의 위력이 엄청나긴 했지만 갑옷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팔을 휘둘러 연기를 걷어내자 스피나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피나 선수, 전투 속행 불능으로 인해 의료실로 송환되었습니다. 시합 종료. 미노 선수의 승리입니다."
"드디어 결승전 진출자 한 명이 정해졌습니다! 미노 선수! 스피나 선수를 꺾고 결승에 진출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이긴건 좋은데.......의식이 흐려....진....ㄷ..ㅏ.....
털썩
· · ·
"자네, 오랜만이군!"
눈앞에는 근육질 소대가리 아저씨, 전달자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근육질 소대가리라니....너무한 거 아닌가?"
아, 이 아저씨 생각 읽을 수 있었지.
"이젠 능숙하게 하는 것 같더군. 두 번째 해방 능력 말이야. 처음 쓸때만 해도 귀기가 자꾸 흩어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렸지 않았나."
능숙하긴 개뿔. 눈앞에 화살이 떡하니 있는데 무조건 성공했어야 하니까 간신히 한거지.
"아뇨 지금도 존나 어려운데요. 못하면 뒤지는 상황이니까 오기로 성공한거죠."
"중요한 것은 성공했다는 거라네. 원래 기술이란 한두번 성공하다 보면 몸에 저절로 익는 법이니까."
그렇긴 하지.
"그거 축하해주려고 부른 겁니까?"
"그렇네. 그런데......자네, 왜 요즘 여자를 안지 않는건가?"
그런걸 왜 물어보는 겁니까? 존나 오지랖 쩌는 40대 나시 아저씨같네.
"방금 건 무슨 비유인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미아랑은 자주 하고 있는데요."
"이미 네 여자가 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여자다!"
왜? 아니, 새로운 여자랑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왜 굳이 새로운 여자를 찾는건데?
"그야 내가 보고 싶으니까!"
씨발롬. 관음충새끼. 미남충 죽었으면 좋겠어.
"농담이니까 그렇게 욕하지말게. 이것도 자네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하는 말이니. 우리 종족은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 신체 능력이 더욱 강해지지. 그것도 기존에 하지 않았던 여성일수록."
그게 도대체 무슨 종족입니까? '섹스해서 강해짐.' 웹소 제목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럼 기운으로 갑옷을 형성하고 에너지파를 쏴대는 건 말이 되는 것 같나?"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군.
"아, 그리고 또 한가지. 자네와 같이 다니는 그 늑대족 소녀, 누군지 알고있는건가?"
"누군데요. 우리 딸래미가 뭐 잘못하기라도 했어요?"
"아니, 그런건 아닌데.....그냥 조심하게."
조심해서 키우라는 거겠지? 아이들은 연약하니까.
또 의식이 멀어진다. 심상 세계에서 나오는 이 느낌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된다.
눈이 감기기 직전 전달자가 "빨리 섹스 좀 하게!"라는 병신같은 말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 · ·
눈을 뜨니 모르는 천장이다.
여기가....어디요!
"여보, 정신이 들어요?"
"아빠, 괜찮아요?"
옆을 보자 미아와 레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고있었다. 여긴 의료실인가?
"경기가 끝나자마자 쓰러져서 의료실로 옮겨졌어요. 한참을 죽은 듯 누워만 있었어요."
"다른 4강전 결과는?"
"당연히 천세희 양의 압승이었죠. 16강이나 8강 때와는 다르게 한순간에 끝난 건 아니었지만.....그녀가 일부러 안 끝내고 봐줘서 경기가 이어진 느낌이었어요."
세르피나 정도면 스피나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일텐데 그 정도의 실력자를 봐주면서 상대한다? 음......이길 가능성 전혀 없어보이는데?
"우리는 이만 가볼께요. 결승은 모레니까 지금은 푹 쉬어요. 오늘 꽤 피로가 쌓였을텐데."
"아빠, 빨리 나아!"
둘을 배웅해주고 나자 의료실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그나저나 새로운 여자를 안으라니....강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조언이지만 너무 저급해!
그리고... 레아를 조심하라고? 왜? 사실 레아는 기억을 잃은 신이라도 되는건가?
전달자의 얘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거기다가 결승은 천세희......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다시 자야지!
자려고 눈을 감은 순간
똑똑-
"미노, 나야. 들어가도 돼?"
"들어오세요."
끼익
"미노, 혹시 자?"
들어온 건 세르피나였다.
갑자기? 혹시 자기 쌍둥이 언니를 쓰러뜨린 걸 보고 복수하러 온건가?
아니면 내 강자의 면모를 보고 반해서 덮치러 왔다던가!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제 몸은 소중헤으응....! 이러면 안돼요돼요돼요......
한창 망상을 하던 찰나 세르피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얼마든지."
"미노는 쓰러져서 못 봤었지? 나와 학생회장님의 전투. 얘기해줄까?"
"감사히 들을게."
짧게라도 싸워 본 자의 경험이라면 결승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하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 · ·
"자, 이어지는 4강전 2경기! 세르피나 선수와 천세희 선수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양측 준비!"
내 눈앞에 있는건 명실상부 아카데미 최강의 존재. 정면대결에는 승산이 없겠지.
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손바닥에 땀이 멈추질 않는다. 미끄러질 것 같아.
"개시!"
어중간한 간보기용은 안 통할거야.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여신께서 직접 하사하신 내 활.....이 활과 가호의 힘이라면 한 순간의 빈틈을 찌를 여력은 있을거야!
무기 해방!
[고유결계 : 월광]
달이 뜬 밤이라면 굳이 결계를 만들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은 낮이다. 달이 아닌 태양이 떠있는 시간. 태양을 가리기 위해 달빛을 비춰주는 결계를 쳤다. 내 힘은 달빛을 받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니까.
피피피핑!
나는 그녀의 정면에서 화살을 날렸다. 여러 발의 화살이 고속으론 날아갔지만 그녀가 창을 휘두르자 맥없이 쓸려나갔다.
정면을 견제하고 있는 지금......!
"......."
티티팅!
그녀는 돌연 창을 들어올려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달빛을 막아냈다.
......어떻게 알아챈거지?
"완벽한 기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역시 통하질 않네요. 어떻게 눈치챈 건가요?"
내 무기의 능력, 그것은 달빛을 화살처럼 변환하는 것. 어떤 전조나 소리도 없기에 적을 '사냥'하는 것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감."
한마디만 탁 내뱉는 천세희였다.
"이게 다야?"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에 일말의 당황이라는 걸 띄우고 싶다! 나는 그 생각만으로 그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슈슈슈슈슝!
나는 화살에 달의 기운을 실어 날렸다. 맞는다면 달의 기운에 의해 피부가 갈가리 찢겨나갈 거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화살이 그녀의 창에 가로막히기 직전
[경화수월]!
화살들의 형상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졌고 사라진 화살들은 천세희의 등 뒤에 나타났다.
경화수월은 상대방을 중심으로 화살들을 완벽하게 대칭 상태로 만드는 능력. 그녀에게 닿기 직전에 발동했으니 대칭된 장소는 그녀의 등 바로 뒤! 절대 피할 수 없어! 이걸로 내 승리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이 되지 못했다.
화살은 분명히 천세희의 몸에는 닿았지만....그녀의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나보다 격이 낮은 공격은 종류를 불문하고 피해를 줄 수 없어."
그게 뭐야...? 이건 사기잖아.....내 활과 화살은 아르테미스님께서 직접 선사하신 무기인데 어째서 통하지 않는건데?
대답은 간단했다. 그녀의 격이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
단순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신의 힘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절대 떠올리지 못할 발상이다.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뒤로 후퇴하며 공격할 수단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하하.....방법이 없네......
내 화살은 철저하게 사냥을 위한 것. 한번 박히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선사하지만 공격 자체를 강화시켜주는 기술은 별로 없다. 즉, 아무리 화살을 쏴도 내 눈앞의 존재처럼 화살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생채기 하나도 낼 수 없다.
"그만 끝내자. 수고했어. 내 몸에 화살이 닿은 건 이 대회 사상 네가 처음이야."
그녀 나름의 인정한다는 말인가....나쁘지는 않네....
쿠우우우웅!
그녀는 창을 내질렀고 거대한 풍압이 나를 덮쳤다. 직후,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이게 나와 그녀의 경기, 아니 그녀의 일방적인 유린이었어."
"......"
"미노, 경기를 포기해. 아무리 너라도 그녀를 이길 수는 없어. 아니, 너라면 언젠가 그녀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다음을 기약하자. 응?"
"세르피나, 네가 그녀와의 경기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난 몰라. 포기하라는 것도 날 위한 거겠지.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어. 그녀에게 완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쯤은 덤벼보고 싶으니까."
그녀라면 내 모든 힘을 부딪혀도 여유롭게 맞받아칠 것 같다. 그러니, 시험해보고 싶다. 내 한계를.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이만 가볼게. 언니한테도 가봐야 하니까. 푹 쉬고 결승, 힘내."
세르피나는 조용히 나가며 문을 닫았다.
하아아아아아...........
나 무슨 생각으로 그런 낯간지러운 멘트를 한거지? 창피해! 쪽팔려!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이건 이불킥 5년치다!
씹덕 라노벨의 주인공이나 할 법한 대사를 하면 어쩌자고! 세르피나가 중2병을 보는 눈으로 날 대하면 어쩔거야!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잠이나 자고 생각하자.
스피나와의 경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한참을 기절했다 일어난 지금도 피로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다시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쿠울......
그리고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꼬박 24시간이 넘게 흐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