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쌍둥이 자매와 카페 데이트 + 외전 - 어느 학생의 시험날
레아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등 뒤에서 누군가가 우릴 불렀다.
"미노 님, 잠깐 시간 되시나요?"
뒤를 돌아보자 스피나, 세르피나 자매가 서 있었다. 저 둘, 2학년이었지? 그래도 선배니까 존댓말 써야겠지?
"스피나 선배님, 세르피나 선배님, 무슨 일이신가요?"
"할 얘기가 있어."
"근처 카페라도 가지 않을래요?"
"가서 음료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자."
참고로 존댓말을 하는 쪽이 스피나, 반말하는 쪽이 세르피나다.
미녀 자매의 데이트 제안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좋습니다. 가도록 하죠. 레아는 어떡할래? 아빠 따라올래? 아니면 먼저 기숙사로 돌아가 있을래?"
레아는 왠지 뚱한 얼굴이었다. 나를 뺏긴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어린애들이면 그런 감정이 종종 들긴 하지.
"저도 따라갈거에요!"
· · ·
카페에는 커피, 녹차, 과일음료 딱 세 종류만 있었다. 디저트야 많았지만 음료 종류는 별로 없었다.
아카데미 카페라고 딱히 음료 메뉴가 다양한 건 아니구나. 이런 음료에 환장하는 학생들이 많은 아카데미라면 좀 더 다양한 메뉴가 있을 줄 알았어.
"뭐 마실래?"
"전 커피요."
"난 녹차."
"저는 사과주스 마실래요!"
"커피 두 잔, 녹차 한 잔, 사과주스 한 잔이요."
"케이크도 추가해 주세요~"
아니 창렬하기 그지없는 카페의 디저트, 그것도 고가의 케이크를 시킨다고? 요즘 애들은 말이야 금전 감각이 아주 개판이야! 내가 대학생일 때는 돈없어서 저렴한 국밥이나 밥버거만 시켜먹고 그랬는데!
주문을 하고 4인용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레아야, 왜 의자에 앉는 게 아니라 내 무릎에 앉는 거니?
"그래서 저랑 하실 얘기가 뭡니까? 중요한 이야기인가요?"
"아니, 딱히 별 기 없는데?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불렀어. 대화나 하자고."
"미노 님은 학생회장님 다음의 우승 후보니까요. 얼굴 정도는 서로 익혀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저희 정도면 그래도 안면 정도는 터놓을 가치가 있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저 둘 측에서 먼저 접촉해오지 않았다면 내가 저들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물론 대회가 끝난 이후에 말을 걸었겠지만.
"사실 학생회장님도 부르고 싶었는데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려서 너만 부른거야."
삐비빅!
벨이 울린다. 우리 게 나왔나 보다.
후룩-
"미노 님은 지금 제노스 격투술을 사용하고 계시죠?"
"움직임을 보니 딱 알겠더라고. 발걸음도 그렇고 공격을 흘리는 동작도 그렇고."
예리하다. 가까이서 봤던 것도 아니고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수정구 너머로 본 것 만으로 파악했다는 거야?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네.
"눈썰미 좋으시네요."
딱히 숨겨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그냥 수긍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권사들 중에서 익힌 사람이 가장 많은 격투술이기도 하고요. 알려진 게 많으니 당연한 거죠."
"기술 같은 딱딱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해볼까?"
"그러죠. 서로간의 교류를 트기 위해서는 그것만한게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스피나, 세르피나 자매는 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미노 님도 아시겠지만 저랑 세르피나는 각각 아폴론 여신님과 아르테미스 여신님께 가호를 받았어요. 어린 시절 갔었던 신전에서 우연히 두 여신을 뵐 수 있었고 그분들도 저희가 마음에 드셨는지 활과 함께 가호를 내려주셨지요."
"원래 활을 다루는 재주가 뛰어났던 우리 자매는 가호를 받은 이후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며 모험가로 활약했었지. 그러다가 어느 높으신 분을 만나서 아카데미 추천장을 받아 이곳에 올 수 있었고."
"모험가 등급은 어느 정도였나요?"
"당시 B등급이었을걸요? 활 솜씨가 뛰어나긴 해도 딱 활을 잘 쓰는 수준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마나를 다루는 것도 미숙한 수준이었고요."
"모험가 생활도 나름 재밌긴 했는데 이상한 아저씨들이 자꾸 추파를 던지고 같이 모험하는 대가로 동침을 강요하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해오는 게 짜증나서 모험가 그만뒀어."
좆험가가 또....!
"두 분, 졸업 후 계획은 있으세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면 기사단에 들어가려고!"
"일단 은빛날개 기사단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단장인 실비아 님은 현재 유일하게 성 추문이 없는 기사단장님이니까요. 저희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크흠. 그 실비아 단장님은 저번에 제 아래서 앙앙 울었던 여성인데......그녀들의 환상을 위해 조용히 하도록 하자.
"미노, 너는 어때? 아직 1학년이지만 졸업 후 계획 있어?"
"저는 아직 별 계획은 없어요. 진로를 생각하고 이곳에 온 건 아니라서요."
"그런데 미노, 몇살이야?"
"19살입니다."
"연하일 줄 알았는데 우리랑 동갑이네! 말 편하게 해! 선배라고는 해도 권위의식 같은게 있진 않으니까."
"그럴까요? 아니 그럴까? 둘도 편하게 말해."
이미 세르피나는 말 놓은 것 같지만.
"저는 높여 부르는 게 편해요."
"미노, 네 이야기도 해줄래?"
그러지 뭐. 듣기만 하는 것도 좀 그러니. 나는 모험가가 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블랙오크 토벌밖에 없었지만.
"미노, 혹시 미아라는 사람이 지금 검술 교관 미아님이야?"
"뭐야? 알아? 검술 강의 듣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알지. 아카데미 5대 미녀 중 한명인데."
엥? 그런게 있다고?
"그런게 있어? 왜 난 몰랐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데. 몰랐다니, 미노 혹시 친구 없어?"
둘이 비에 젖은 불쌍한 강아지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나도 역사학 강의에 친구 있어. 딱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 정도의 관계지만.
보통 그걸 친구라고 하진 않지만 친구라고 믿고 싶은 미노였다.
"흐흐 참고로 우리 둘 다 5명 중에 속해있어!"
세르피나는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적당한 사이즈의 흉부가 내 앞에 들이밀어진다. 만져달라는 건가.
"미녀 5명은 미아 교관님, 나와 세르피나, 학생회장님, 그리고 신학과에 한 분 있어요.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고보니 미노는 소 수인이야? 머리의 뿔이 쇠뿔같아."
소 수인? 미노타우로스랑 다른거야? 이름만 보면 미노타우로스의 하위호환 종족일 것 같다. 전생시킬 때 날먹공무원 아저씨가 배려 안해줬었으면 소 수인으로 태어났겠구나.
"어? 어...! 그렇지."
"소 수인은 여자 엄청 밝힌다던데! 역시!"
세르피나는 양 손으로 자신을 감싸며 내게서 멀어지는 시늉을 했다.
역시는 뭐야 역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데.....내가 무지성 강간마도 아니고....난 원하는 여성에게만 하는 스윗남이라고?
"미노 님, 그....저희 강한 남자 좋아해요......"
스피나가 나즈막하게 한마디 중얼거렸다.
뭐지? 자기들을 꼬셔보라는 건가? 하긴 내가 또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긴 하지!
"그래도 이런 말 했다고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저희 둘다 남자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순결한 처녀랍니다?"
"언니! 그런것까지 왜 말하는데!!"
둘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째릿-
레아가 둘을 엄청나게 째려본다. 질투하는건가? 레아는 내 손을 꽈악 쥐었다. 그런데.....좀 아프다? 악력이 왜 이리 세니?
· · ·
레아는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의 방해 없이 아빠와 하루종일 같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흐흐흥~"
경기장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아빠의 경기를 보고 경기 후 돌아온 아빠와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게 즐거웠다.
"레아야, 머리 빗어줄까?"
자상하기까지 하다.
'역시 아빠가 최고야.'
살랑살랑-
방에 돌아가면 하루종일 달라붙어 있을 생각을 하니 꼬리가 멈추질 않았다.
이대로 방에 돌아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잠드는 미래가 그려졌다.
'헤헤헤.......'
분명 그랬을 터였다. 방해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어떤 불여시같은 여자들이 나타나서 아빠의 시간을 뺏어버렸다.
'아빠도 문제야. 저 여자들이 같이 가자고 한번 꼬시니 넙죽 따라가는게 말이 돼?'
특히 서 스피나라는 여자가 은근슬쩍 아빠를 유혹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결국 어쩔 도리 없이 셋을 원망만 하는 레아였다.
· · ·
"오늘 즐거웠어~"
"그럼 미노 님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쌍둥이와 헤어지고 나서야 레아는 뚱한 표정을 풀었다.
"자! 빨리 돌아가요!"
레아는 앞장서서 걸으며 맞잡은 손을 이끌었다. 어린애가 왜이리 힘이 세냐.
그나저나 신학과라고? 신들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과인가? 신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실제로 존재하는 분들이니까.
다음에 한 번 가볼까? 신들을 영접해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니까.
절대 신학과에 있다던 5번째 미녀를 구경하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다. 물론 보고 싶긴 하지만!
혹시 신을 만날 수 있다면......아프로디테를 만나고 싶다. 저번에 못했던 일, 이번에는 방해 없이 끝까지 할 수 있도록.
· · ·
외전) 시험을 치루는 어느 마법사 지망 학생의 하루
오늘은 마법 이론학 강의 중간고사 날이다.
마법 이론학 강의가 뭐냐고? 말 그대로 마법의 이론을 배우는 것이다. 마법 발동을 연습하는 일반 마법학과는 달리 마법의 원리를 탐구하는 강의다.
그래서 그런지 난이도가 매우 지랄맞은 걸로 유명하다.
난이도가 어렵다고는 해도 어릴때부터 영재로 자라온 나였기에 만점을 받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시험지를 펼쳐보니......
시험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
문1. [재그형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어 직경 50.8cm 파이어볼을 7.43m 사출시켰다. 이때 불어넣은 마나의 총량을 계산하시오.]
문2. [프란츠 리그너가 제시했던 라그너 이론에 대해 서술하시오.]
문3. [마법진을 리브형으로 전개했을 때 마법진의 분해도를 그리고 이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을 때 마법이 사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시오.]
······
씨발. 진짜 문제 만든놈 죽여버리고 싶다. 교수들 중 누가 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출제자는 난이도 조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난이도로 불만을 표할 수는 없는게 교수들은 이런 문제를 밥먹듯이 푼다. 지들한테는 다 쉬운 문제니까 이렇게 조절 못하고 좆같이 내는거지.
결국 적당히 끄적이다가 시험이 종료되었다. 좋은 성적은 물건너갔구나.....
시험 종료 후 다른 학생들의 얼굴을 보자 다들 침울해져 있었다. 해탈한 듯 웃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마법 이론학 강의를 왜 듣냐고? 이 강의를 들어야 마탑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는 아니지만 수강한 사람과 수강하지 않은 사람이 동시에 신청했을 때 어지간한 격차가 아니라면 수강한 쪽을 합격시킨다. 그러니 사실상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마탑은 기존 마법의 개량 및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여 출판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출판된 저서들은 마법사들이 보고 마법 발동을 연습하는데 쓰인다.
하는 일의 수준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에 마탑 취업 조건 또한 까다롭다. 대신 그만큼 지원비 및 추가금도 엄청나다.
이 학생도 그 돈을 보고 마탑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하아......나도 본선에 진출했으면 이런 시험 정도는 가볍게 넘기는건데......아니 어떻게 전력으로 영창한 블리자드 스피어가 박살이 나냐?"
16강이 열리고 있을 경기장의 방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