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예선(1)
1조 예선이 시작하기 전에 대회에 대한 이야기나 잠깐 할까? 싫다고? 그냥 들어줘.....
이 대회의 정식 이름은 하이비스 종합 전투 대회이라고 한다. 아카데미 초기부터 있던 대회 이벤트로 그 역사가 상당하다고 한다.
오래된 대회라고 뭐 특별한 방식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그냥 예선전 난투, 본선전 일기토일 뿐이다. 정말 단순하지만 명확한 규칙이다.
대회의 역대 우승자들은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대회를 우승할 때마다 전당에 이름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럼 학생회장 이름은 두번 있겠네. 입학 이후로 우승을 케이크처럼 쉽게 먹었으니.
솔직히 나도 이름 남기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잖아? 그만큼 이름 남기는게 엄청난 영광이라는 거지! 심지어 잡스러운 곳도 아니고 하이비스 아카데미인데.
그렇게 말해도 올해는 그른 것 같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용사 칭호 반년컷한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거든. 미아도 S급인데 그 윗단계인 용사는 대체 어느정도일지 짐작도 안 간다고.
왜 하늘은 나를 낳고 그녀를 낳았단 말인가!
혹시 실비아의 이름도 있을까? 그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 같은데.
올해는 참가자가 유독 많다고 한다. 다른 년도에는 약 150~200명 정도 참여했다는 것 같은데 올해는 무려 450+1명이다. 덕분에 예선 한 조에 30명씩이나 있어서 아주 바글바글하다.
대회장이 넓어서 다행이야.
대회장 구조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이 생겼다. 관객들 많은 거 보소. 관객석은 대회장 내부가 잘 보이는 위치는 아카데미 학생 우선 예약, 나머지 자리들을 외부인들에게 제공해주는 식이다.
학생들에게는 전면 무료, 외부인들에게는 돈을 좀 받는다고 한다. 외부인들 입장에서는 뭔가 박탈감을 느낄 것만도 같은데 외부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든다고 한다. 우수한 경기를 직접 보거나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겠지.
아, 이제 다들 경기장에 입장이 끝났나 보다.
해설자도 있네. 뭔가 목소리가 익숙하다. 내 지인이라는 건 아니고,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다.
"드디어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예선 1조 경기를 시자아아아아아악~하겠습니다~!"
저 해설자 아저씨, 게임 경기 해설 잘할 것 같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심판이 경기를 시작하는 신호를 알린다.
경기는 시작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거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다른 녀석들에게 집중포화를 받고 순식간에 광탈해버릴거다. 원래 처음 싸움 개시하는 놈들은 통과하기가 힘들다. 눈치싸움이라는거지.
혼자서 다른 모든 녀석들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녀석이라면 결과가 다르겠지만.
난 어디서 보고 있냐고? 대기실에 커다란 수정구를 통해 보고있다. 지구로 치면 대기실의 TV로 볼 수 있겠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거냐! 이 겁쟁이 새끼들!"
만용을 부리는 놈은 매번 나오는 법이지. 솔직히 레온이 저 역할을 맡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름 신중한 녀석이다. 역시 사람은 단편적인 정보로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먼저 나선 녀석은 거대한 핼버드를 쓰는 녀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핼버드를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옆의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후웅!
핼버드의 옆에 서 있던 녀석은 공격을 피해 한 발짝 물러나더니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인 것 같다.
마법사인데 왜 텔레포트 마법 안쓰고 움직여서 피하냐고?
저런 단순한 공격을 피하자고 마나를 소모하는 건 엄청난 낭비다. 장기전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에서 대책 없이 마나를 소모하는건 '나 탈락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동급이다.
게다가, 텔레포트는 상당히 고위 마법이다. 게임에서 마법사 캐릭터들이 이동할 때 텔레포트를 픽픽 써대니까 간단한 마법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에 텔레포트에 대해 물어봤을 때 루다가 해준 말이 있다.
"텔레포트는 출발 공간좌표와 도착 공간좌표를 계산하고 그 좌표의 마나와 물질 및 자신의 신체 구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발동할 수 있어요.
게다가 텔레포트 수식 자체도 상당히 복잡한 수식이죠. 거리가 멀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에도 엄청난 고도의 마법 수식을 필요로 해요."
이러니 겨우 아카데미의 학생 주제에 텔레포트를 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누굴 지켜줄 것도 아닌데 저렇게 무방비한 자세로 대놓고 영창을 하면....
퍽!
저렇게 쳐맞고 나가리되는거지.
즉발 마법 공격도 없는건가. 저럴 거면 왜 출전한거지? 남들이 지켜줄 거라 생각했나?
처음 한번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쉽다는 말처럼 한번 싸움이 일어나고 나자 경기장 곳곳에서 난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온 녀석은........바로 대판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길래 나름 지능적으로 하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누가 시작을 끊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저저.....저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새끼를 신중하다고 판단한 내가 등신이지.
다들 레온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첫 날에 존나 건방떨다가 나한테 점수 털린 녀석?
내가 교관의 1대1 지도를 받는 걸 질투하던 녀석?
뭐 다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녀석은 남들에게 무시받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제노스 격투술 강의에서 수석을 뽑으라면 100명 중 100명 모두 나를 뽑을 것이다.
그럼 차석을 뽑으라면? 마찬가지로 100명 중 100명은 레온을 뽑을 것이다.
레온은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격투술의 이해 또한 매우 빨랐다. 남들이 한 걸음을 뗄 때 레온은 열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비교 대상이 어디까지나 나여서 그랬지, 객관적으로 보면 최우수 학생일 것이다. 그리고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진가는 지금 이 경기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레온은 경기장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듯 뛰어다니며 참가자들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녀석의 주먹 한두방에 대부분의 녀석들이 쓰러진다. 절대 저 녀석들의 방어력이 약한 게 아니다. 그냥 쟤 힘이 무지막지한거야. 근데 일반 참가자들이 쟤 주먹 한두방에 나가떨어지는데 내가 치면 바로 명치에 구멍나는거 아니야? 간식 도너츠는 좋아하지만 인간 도너츠는 사양이다.
"하하하하하! 겨우 이정도인가! 약해! 약해!"
"역시 그 놈이 이상한 거지, 절대 내가 약한 게 아니었어! 하하하하하하하!"
저녀석 텐션이 과하게 높다. 나한테 밀렸던 설움을 한번에 풀고 있는 건가. 근데 페이스 조절 안할거야? 본격적으로 떨거지들이 탈락하고 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승부일텐데 벌써 체력을 소모하면 어쩌자고?
쩝, 그래도 같은 강의 듣는 놈이라고 은근히 응원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약한 녀석, 어중간한 강함 때문에 다수의 협공에 당해버린 녀석 등이 탈락한 후 어느덧 초기 인원수의 1/3인 10명만이 남게 되었다.
다른 녀석들은 레온을 주로 견제하는 것 같았다. 당연한 거지. 갑자기 나타난 녀석이 엄청나게 활약해버리면 그 녀석을 향해 집중적으로 견제가 들어간다. 그래서 퍼포먼스가 아니라면 이런 난전에서는 최소한의 무력만 보여주어야 하는거고.
결국 1대1로 레온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4명이 뭉치기 시작했다. 검사 둘에 마법사 하나, 궁수 하나? 밸런스 좋네. 마법사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쟤는 나름 무영창 마법에도 조예가 있나보다.
"하하하! 여럿이서 덤비려 하다니! 내가 두려운가? 바라던 바다! 한꺼번에 다 덤벼라!"
돌격을 망설이는 녀석들을 향해 레온은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좋은 선택이다. 선제공격을 하면 녀석들이 완벽하게 자세를 잡기 전에 싸울 수 있으니까.
스으으으ㅡㅡ캉! 캉!
그는 자신에게 쇄도해오는 검날들을 손등으로 흘려내 바닥으로 내리쳤다.
제노스 격투술에서 배운 기술이다. 검사를 상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술.
자신의 공격이 강제로 비틀어져 땅에 충돌하자 손을 통해 전해지는 아릿한 감각에 검사들은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그 틈은 레온은 놓치지 않았다.
빠악! 퍽! 퍼억!
""크아아악!""
복부에 그대로 주먹이 꽂혔다. 쟤 힘이면 내장까지 충격이 갔을 것 같은데. 뭉개졌을 것 같다. 내가 다 아프네.
쓰러진 그들은 마법 교수들에 의해 강제로 의료실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전위가 눈앞에서 당해버리자 방패를 잃은 후위들은......
레온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 · ·
손쉽게 마법사와 궁수까지 물리친 레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걸로 4명이니 남은건 5명인가?"
그러나 남아있는 건 5명이 아니었다. 오직 단 한명이었다.
로브를 쓴 채로 황금색 활을 든 한 명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넌 뭐지? 아까까지 눈에 띄던 녀석은 아니었는데."
"......"
"대답하지 않겠다는 거냐? 강제로라도 대답하게 만들어주지!"
레온은 다리에 힘을 주고는 전속력으로 로브인을 향해 달려갔다.
핑! 핑! 핑!
로브인은 순식간에 화살을 쏘았고 그 화살은 엄청난 기세로 레온에게 날아갔다.
"흥! 이깟 화살! 날려버려주마!"
레온은 투사체를 튕겨내려는 동작을 취했지만
푹! 푹! 푸욱!
레온의 반격마저 예상했다는 듯 화살의 움직임이 살짝 바뀌며 그의 방어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 화살은.....그대로 레온의 손을 뚫어버렸다.
"크아아아악! 어떻게....이런.....!"
핑! 핑! 핑! 핑!
달려오던 레온의 기세가 줄어들자 로브인은 더욱 많은 화살을 쏴댔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화살은 흘려낼 수 없다.... 그렇다면 바닥을 세워서 막는다!'
레온은 크게 발을 굴렀고 경기장 바닥이 뒤집어지며 그의 앞에 커다란 벽이 생겨났다.....만 화살은 그 벽마저 순두부 뚫듯이 가볍게 뚫어버렸다. 다행히 화살의 기세는 어느정도 줄어들었기에 레온은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화살 한번 살벌하군. 엄청난 실력자야.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
"끝까지 대답하지 않겠다는 거냐? 건방진 년이!"
슈슈슈슈슈슝!
날아오는 화살 세례에도 레온은 굴하지 않고 앞으로 돌진했다.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두 피하지는 못했기에 팔과 다리 곳곳에 화살이 박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
로브인도 이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순간적으로 거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건 원래 본선의 그 새끼한테 보여주려고 숨기려던 기술이거든? 특별히 선보여주마!"
"패룡격!"
콰아앙!
로브인은 활로 막아보려 했지만 워낙 거대한 충격이었기에 다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나갔다.
"후우......이 한 수는 숨기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걸로 내 승리인가?"
"......이걸 맞고도 일어난다고? 어떻게....!"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무기로 막았다고는 해도 패룡격을 맞은 이상 무사하진 못할 터! 한 대만 더 공격하면 끝난다!'
".......예선 따위에서 진심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어."
키이이이잉!
로브인의 활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퍼져나갔고 이내 평범했던 활은 화려한 무늬의 활로 바뀌어있었다.
"태양시(太陽矢)"
핑!
"......어?"
레온은 눈앞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태양빛을 목도했고 그의 정신은 그곳에서 끊겼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경기장에는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타오르는 불꽃은 마치 태양을 연상케 했다.
"스.....승자가 정해졌습니다!!!!!!"
"1조의 승자는......"
해설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로브인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들 똑똑히 보아라! 나는 스피나! 태양신 아폴론 여신의 가호를 받은 자! 이 활에 맹세코 이번 대회의 우승을 거머쥐겠다! 천세희를 쓰러뜨리는 건 나다!"
로브인은 자신을 소개하며 로브를 벗었고 로브 아래에는 들고 있는 활처럼 찬란한 금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금발벽안의 외모. 딱 그랬다.
· · ·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레온이 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본선 진출은 기본에 천세희를 만나는 것만 아니라면 나름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녀석이니까.
그런데 예선에서 진다고? 저 여자는 뭐지? 저런 힘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니.....
그리고 아폴론 여신이요? 제가 아는 태양신 아폴론은 남신인데요? 여기도 TS 신화인 겁니까?
이야.....이번 대회 기가 막혀 아주! 아카데미의 각종 고수들이 다 나와! 재밌네.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