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진검대결
"자! 설명은 이것으로 끝! 그럼 다들 내일 또 보도록 합시다!"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아까 격투술 교관도 그렇고 퇴근 실력이 심상치 않다.....!
교수가 나가고 나서야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넌 이름이 뭐야?"
"난 xxx야, ~~수업 들어. 너는?"
"나는······."
주변에서 대화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도 대화하러 안오냐?
주변을 보자 나를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이 많다. 이 또한 소개식에서 깝친 편입생들의 위엄이겠지요 개새끼들아.
그런 눈빛 쏘지마세요 저는 선량한 편입생입니다. 그새기들하고는 달라요! 믿어주세요!
다른 편입생 놈은 뭐하고 있는지 봤더니.......천세희한테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쟤 이름이 아직도 카인인지 코카인인지 헷갈리네. 그냥 코카인이라고 부르자.
코카인 저거 미친놈인가 진짜. 주제파악을 못하나?
"버러지들 사이에서도 꽃은 피나보군. 네년에게는 특별히 내 첩이 될 기회를 주겠다. 바그레스 남작의 장남인 나의 첩이 되는 것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요즘 귀족은 그냥 이름만 달린 명예 계급 아니냐? 거기다가 귀족 본인도 아니고 그 아들이 용사한테 귀족직위를 앞세워서 깝친다고? 뇌가 있는 겁니까? 혹시 선생님의 능지 수준은 미토콘드리아와 동일한 수준입니까?
설마 저런 애랑 같은 편입생이라고 동일 취급 받아야 하는건 아니지?
슈우우우웅 콰앙!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사이, 내 옆으로 무언가가 날아가 벽에 쳐박혔다. 고개를 돌려 벽을 보니 코카인이 쳐박혀있었다. 저 학생회장님이 던져버린 것 같다. 눈나 멋져!
천세희는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아 코카인 저 씨발럼, 저 천세희란 사람하고 할 얘기가 좀 많을 것 같은데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에휴.....미아나 만나야지.
나는 수정구를 꺼내 미아에게 만날 수 있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시간 돼?]
답장은 순식간에 왔다. 하루종일 수정구 보고있는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이리 빠르게 답장할 수 있는건지.
[가능해요. 어디로 갈까요?]
[대련장. 같이 연습이나 하자.]
[알았어요. 15분 후에 몇 가지 좀 사갈게요. 먼저 들어가있어요. 어느 대련장으로 가는지 꼭 메시지 보내줘요!]
대련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투 기술 강의에 대비하여 몸을 풀려는 것 같다. 아니면 각자 강의와 별개로 개인의 기술을 연마하려는 거거나.
나는 후자에 속한다. 적혈 갑옷의 능력을 확인하고 귀기의 활용법을 알아보려고 온 거니까.
"어디보자......1번.....사람있고.....2번...있고.....3번....있고·········17번 있고.....아니 뭔 대련장 자리가 이리 없냐?"
"후....다시 찾아보자. 18번 있고········27번 대련장이......오 비어있다!"
드디어 찾았다! 사람 없는 대련장!
나는 그대로 대련장에 입장하고 미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7번 대련장에 들어왔으니 도착하면 나한테 메시지 보내줘. 문 열어줄게.]
먼저 좀 하고있을까?
첫 발현은 거의 무의식 속에서 한 거였지만 지금도 발현 방법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전달자가 말했던 본능적으로 깨닫는다는게 이런 거였구나. 머릿속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 처럼.
귀기를 발현하고는 갑옷의 형태를 떠올린다. 그러자 내 몸에는 붉은빛이 맴도는 귀기의 갑옷이 둘러져 있었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귀기와 적혈 갑옷 발현.
솔직히 귀기의 활용이라고는 해도 새로운 능력을 나타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적혈 갑옷도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깨달은 거니까 백날 머리 써가며 능력을 떠올리려 해봤자 알 수 없겠지.
그저 기존 혈통 해방 기술의 숙련도를 높일 뿐이지.
나는 갑옷을 두른 채로 주먹을 가볍게 내질렀다. 그러자
콰가가가가강!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헐."
내가 한 거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위력에 나는 외마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삐빅!
메시지가 왔다. 미아가 보냈네. 문 열어달라는 거겠지.
"먼저 하고있었네요?"
"여보,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미아가 제안? 뭐지? 키스해달라는 건가? 아니면 더 좋은거?
"여보가 그 갑옷을 두른 형태와 싸워 볼 수 있어요? 제 진검을 들고."
아, 연인으로써의 부탁이 아니네.
진검이면 좀 무서운데...?
"수련용 검으로는 아무리 마나를 부여하고 아무리 강한 기술로 공격해도 여보의 그 갑옷을 전혀 뚫지 못하더라구요. 오히려 검만 순식간에 박살날 뿐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진검으로 싸울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제 검이라면 여보의 갑옷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제 검의 능력을 더 활용해 보고 싶기도 하구요."
듣고보니 괜찮은 제안 같은데? 솔직히 적혈 갑옷의 방어력이 궁금하긴 하다. 딱 발현만 가능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 상태의 방어력을 알고 싶다.
게다가 내 능력의 한계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 같으니......
"좋아. 해보자."
· · ·
나와 미아는 대련장 중앙에 마주보고 섰다. 어제도 대련을 위해 마주보고 선 적은 있었지만 그때의 중압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련용 검 따위를 든 미아와 진검을 든 미아는 천지차이니까.
하지만, 나도 어제와는 달라.
"그럼 시작하죠."
시작과 동시에 미아의 검은 무수히 많은 가시들로 변했다.
저게 미아의 무기 해방 능력인가?
"생사결이 아니라 대련이니까 능력 정도는 알려드릴게요. 이 가시들은 뭉치거나 흩어지는 방식으로 여러 물체들로 변할 수 있어요.
가시들이나 가시들로 생성한 물체들은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요. 간단하지만 강력한 능력이죠."
"그때 블랙오크 로드와 그 부하들을 물리친 건 이 능력이야?"
"네. 한번 해방하고 나니 해방 방법을 알게 되더라구요. 이젠 자유롭게 해방할 수 있어요."
나도 질 수 없지. 몸 내부에 흐르는 귀기를 몸 밖으로 발현한다. 나와라 적혈 갑옷!
"여보도 갑옷을 발현시켰으니.....갈게요?"
미아의 말과 동시에 주변에 떠있던 가시들이 뭉치며 용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대한 용이 나타났고 그 용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쿠오오오오!
가공할 위력이다. 가만히 맞아줄 수는 없지!
"이 정도로는 통하지 않아!"
용을 향해 크게 주먹을 휘두른다. 용은 주먹의 충격파를 피하려고 한 것 같았으나 덩치가 너무 컸기에 꼼짝없이 충격파를 맞고 몸체가 부서져버렸다.
가시용이 부서지자 작은 용들로 분할되어 다시 날아온다.
나는 날아오는 용들을 향해 주먹을 난타했다.
펑! 퍼펑! 콰앙! 쿠우웅!
작은 용들이 부서지자 아예 그냥 가시들이 날아온다. 끝도 없네.
결국 다 쳐내지 못한 가시들이 적혈 갑옷에 부딪힌다. 하지만 첫 가시용에 비해 위력은 훨씬 약해져 있어 적혈 갑옷에 손쉽게 막혀버렸다.
"역시 여보네요. 통할 거라고 기대는 안했지만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안 통하다니.
그럼 근접 공격은 어떨까요?"
미아는 가시들로 검을 생성하더니 그대로 내게 돌진했다.
어라? 보법을 쓰지 않고 정면에서 달려드는건가? 자기 무기의 공격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받아주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 갑옷에게는 안될거다!
검과 주먹이 맞대기 직전
등 뒤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크헉!"
"방심하면 안돼요. 근접 공격을 한다고는 했지만 원거리 공격을 안 한다고는 안했잖아요?"
충격 때문에 다리의 균형이 무너진 내게 무수한 용들이 덮쳐온다.
투콰과가아아아앙!
"이래도 안 뚫리네요. 어떻게 된 단단함인지......"
미아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보통 적혈 갑옷을 두르고 있으면 일정 시간마다 일정량의 귀기를 소모한다. 그런데..... 귀기 소모량이 너무 빠르다!
설마 갑옷이 부서지고 있는거야? 그 부서진 부위를 수복하기 위해 귀기를 더 소모하는 거고?
이렇게 무방비로 얻어맞고 있다고는 하나 설마 갑옷의 방어력이 뚫릴 줄이야......
일어나고 싶은데 용들의 난타 이외에도 미아가 주기적으로 견제를 해와서 자세를 잡을 수가 없다.
젠장! 그렇다면.....!
나는 양 손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쿠우웅! 드드드드드드......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대련장 바닥은 크게 갈라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읏....!"
미아의 집중력이 일순 흐트러지자 용들의 공세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나는 이 짧은 순간을 활용해 간신히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우.......정말 대단한 능력이야 미아. 그대로 당할 뻔 했어."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여보. 도대체 어떻게 된 힘이에요? 로드를 순식간에 죽여버렸던 기술보다 훨씬 강력한 기술들을 난사해도 버티는 갑옷이라니."
"능력 활용은 충분히 했어? 슬슬 마무리를 지을까?"
"좋아요. 여보도 최선을 다해요. 저도 저의 최강의 일격을 날릴테니."
단 일격. 이 일격에 내 모든 걸 담기 위해서는 전신 갑옷까지 필요하진 않아! 필요한 건 오직 오른팔 부위! 그 오른팔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여보라면 최강의 일격을 날려오겠죠. 연인으로써, 어머니로서 절대 밀릴 수는 없어요!
모든 가시들을 한 자루에 응축시키듯이.....해방 전과 동일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형태로 응축시킨다!'
둘의 도착점은 동일한 곳이었다. 단 하나에 모든 힘을 응집시켜 상대에게 꽂아넣는 것.
그리고 두 힘이 격돌했다.
· · ·
으으으......어떻게 됐지?
나랑 미아랑 크게 격돌했고....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또 정신을 잃었나 보다.
"정신이 들어요?"
미아는 내 머리를 무릎베개 해주고 있었다.
어라? 이 상황 어제도 겪지 않았었나?
"여보랑 저랑 부딪혀서 둘다 기절했다가 제가 먼저 정신차린 거에요.
그러니 오늘도 제 승리네요. 후훗!"
"......그래 너가 이겼어."
"여보, 제가 이겼으니 승자의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면 안돼요?"
"뭔데?"
"아직 안정했지만......확답이라도 들어놓으려고요!"
미아라면 뭐....나한테 해가 되는 소원을 빌지는 않겠지. 아마도.....
"알았어 뭐. 대신 나중에 듣고 너무 심하다 싶으면 안들어줄거야!"
"알았어요, 알았어요~."
차후 미아가 요청한 소원은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