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하이비스 아카데미(1)
지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방으로 돌아오자 레아가 나를 반겨주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늦었네요."
"씻고 와서 저랑 같이 자요~"
레아는 오늘도 귀엽구나. 힐링된다. 딸바보가 괜히 되는게 아닌 것 같다.
힘들어서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지만 우리 딸이 씻고 오라면 그렇게 해야지. 간단하게 씻고 침대에 누웠더니 금새 잠들어 버렸다.
"쿨......"
"아빠......자요?"
"잠든 모습도 멋있어. 내 아빠.......헤헤......"
레아는 잠든 미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 거야......"
어린아이의 독점욕일지, 혹은 다른 감정일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 · ·
아~잘 잤다! 개운하구만!
자고 일어나니 대련의 후유증 따위 완벽하게 회복했다.
어디보자. 신임 강사 소개 및 편입생 소개식이 오전 10시고 지금 시간이........
9시 55분?
씨발!!!!! 중요한 날에 지각을 하는 흔해빠진 클리셰에 내가 걸리다니!
"아빠 좋은아침이에요."
태평하게 레아가 아침인사를 건네온다. 평소라면 웃으며 답해줬겠지만 지금은 내가 너무 절박하다. 씻을 시간도 없다! 최대한 빠르게 뛰어간다!
"다녀올게!"
"후훗, 다녀오세요~"
소개식 장소인 강당은 여기서 20분 거리! 하지만 나의 튼튼한 다리라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믿을게 내 다리야!
전력으로 뛰어서 강당에 도착하자 시계는 10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소개식 같은 특별한 날에는 5분이나 10분 정도 지체되는건 일상다반사에 보나마나 교장의 훈화말씀으로 또 시간 잡아먹을테니 이정도면 무사히 도착했다고 볼 수 있다.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대로 교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학생들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가 들어온 후에도 교장의 연설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어서 새로 부임한 교관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미아 교관, 앞으로 나서 주십시오."
미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가볍게 인사하고는 다시 물러났다. 미아 외에도 마법, 신학 등등 다른 과목 교관들도 있었다.
"다음은 오늘부터 이 하이비스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편입하게 된 학생들입니다. 한분씩 나와서 각자 한마디 소개 부탁드립니다."
편입생들은 나를 포함해 약 10명 정도였다. 10명의 편입생들 중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얶떢게 꼬추들밖에 없어!
"카인이다. 수준 낮은 너희들과 같은 수업을 듣자니 구역질이 난다만 어쩔 수 없지."
저 저 싸가지 없는 놈 봐라. 그 우리 카인 친구는 눈치라는게 그.....없나? 이게 라이너가 말했던 자존심 덩어리들인가? 말투가 싸대기를 부른다.
그래도 저런 미친놈이 특이한 거겠지? 다른 애들은 좀 정상적으로 소개할 거라고 믿을게!
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주던이다. 이 몸에게 어울리는 학생이나 교관 따위는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잘 부탁한다."
"내 이름은 레닌이다. 이 나와 같은 곳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도록."
이 외에 나머지 편입생들도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시발련들아 니들이 그렇게 개판으로 소개하면 나까지 눈치가 보인다고!
학생들의 분위기를 보자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한 거겠지. 저 녀석들도 한 자존심 하는 애들일텐데 개무시받았으니 빡칠 수밖에.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평범하게만 하자.
"미노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소개식을 마치겠습니다."
드디어 끝이다. 그런데 나 빼고 다른 편입생들이 분위기 망쳐놔서 나까지 편입생 묶음으로 욕먹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내 아카데미 생활 왕따로 시작하는 거 아냐?
"여보, 들을 강의 정했어요?"
"응? 자동으로 정해지는 거 아니야?"
"자신이 들을 아카데미 과목은 각자 정하는 거에요. 오늘부터 강의를 신청할 수 있어요. 1주일 정도 강의를 들어보고 변경할 수도 있고요."
완전 대학교 수강신청이랑 수강변경 시스템이네. 대학생활의 최대 난관, 수강신청을 전생하고 나서도 해야 하는건가.
"강의 신청은 학생용 수정구로 하면 돼요. 보통 한 학기당 전투 기술 강의 1개, 이론 강의 1개 정도 듣는다고 하더라구요. 강의 계획서도 수정구를 통해 조회할 수 있고요."
어제 행정실에서 받은 수정구를 얘기하는 건가. 스마트폰 역할인가. 진짜 이 세계 기술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럼 미아 너도 계획서 작성했어?"
"당연하죠."
"그럼 저는 강의 일정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이따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봐요~"
그렇게 미아는 떠나갔다. 나도 좀 알아봐야지. 어디보자 권술 관련 강의가.......제노스 격투술 강의?
ㅣ [제노스 격투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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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교관 : 라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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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소개 : 강인한 신체를 바탕으로 전투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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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강의 장소 : 12호관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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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강의 내용 : 올바른 권(拳) 및 축(蹴) 자세 교정, 회피, 방어 및 보법 기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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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시험 방식 : 학생 간 대련(30%), 공격 기술 위력 측정(20%), 이론(10%), 마물 상대 실전(40%)
이거다! 이거 듣자!
이 강의 외에도 세계역사학을 신청했다. 화학 연금술이나 수학 강의도 있었지만 이과 과목들은 치를 떨었기 때문에 눈길도 안줬다.
전생에 문과였냐고? 아니 이과였다. 이과라서 더 싫어하는거다. 대학교에서 이과 과목 하고있으면 고등학교 시절의 몇 배로 좆같아진다. 대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이과 과목들을 혐오하는 정도는 문과들보다 이과가 더 심할거다. 아님말고
일단 격투술 강의부터 들으러 가자.
드르륵!
강의 장소로 가자 여러 쌍의 눈이 단번에 쳐다본다. 나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난 소개식 때 이상하게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까지 이런 취급이냐고!
그런데......강의실에 여자가 안 보인다. 다 남자밖에 없다. 이 미친 남초강의!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그대로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
"다 모였나?"
나타난 것은 떡대 아저씨였다. 와 아저씨 3대 몇 치세요?
"반갑다. 내가 제노스 격투술 강의를 맡게 된 라이온 교관이다."
"첫 시간이니 신체능력 확인 정도만 할까? 수준을 알아야 그에 맞게 강의를 할 테니 말이다."
라이온 교관은 이내 기계를 한 대 가져왔다.
펀치킹 기계 아냐? 저걸 치라고?
"순서대로 나와서 한대씩 쳐라. 주먹을 내지르든, 발로 차든 상관없다. 제일 강력한 한 방으로 쳐라. 위력에 따라 점수판에 나오는 점수가 나올 거고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오는 놈이 학생장을 맡을 거다."
"제가 먼저 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순서대로 치라고. 깝치지 말고."
누군가 괜히 나서려다 바로 제지당했다. 이윽고 첫 번째 학생이 기계를 때리자 점수가 나온다. 62점? 100점 만점인가? 평범한 점수네.
"참고로 천 점 만점이다. 한심하기 그지없군."
헐. 쟤도 나름 세게 때린 것 같은데 천 점 만점에 62점? 존나 빡세네.
132점......46점......302점......11점 등등 다양한 점수가 나왔지만 단 한명도 500점을 넘기지 못했다. 근데 11점은 뭐야 11점은!
"다음, 레온."
레온이라는 놈은 흑발의 미남이었다. 아 시발 잘생긴 놈 죽어.
"하, 다들 한심한 새끼들 뿐이군. 이 몸이 제대로 된 주먹이란 게 무엇인지 보여주지."
건방진 애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대사다. 저저....싸가지 없는 놈 같으니. 교육(물리) 마렵네. 주먹이 운다.
그는 기계를 그대로 후려쳤다.
콰앙
소리가 살벌하다. 쟤는 점수 좀 나오겠는데?
553점이 나왔다. 싸가지없긴 하지만 입 털 만한 실력은 있는 모양이다.
"처음으로 500점이 넘는 녀석이 나왔군. 한 명즈음은 쓸만한 녀석이 있어."
저 싸가지 이후로는 다들 고만고만한 점수였다. 안돼! 저 싸가지가 1등이 학생장이 되면 존나 귀찮아질거야!
"드디어 마지막이군. 미노."
드디어 내 차례다.
제일 강한 한방으로 치랬지? 적혈 갑옷을 두르고 칠까? 아냐, 굳이 드러내지 말자. 원래 최후의 한 수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숨기는 거랬어. 나중에 이 녀석들과 대련도 해야 하는데 미리 밑천을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잖아? 점수에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평범하게 하자.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이 일격에 담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담아서. 저 싸가지 없는 레온의 점수만큼은 넘을 수 있도록!
퍼엉!
내 주먹은 펀치 기계를 뚫어버렸다. 주먹을 치는 부분이 도넛이 되어버렸네. 설마 부숴먹었다고 배상해야 하는 건 아니지?
띠리리리링 띵!
1000점이었다.
"""""""..........."""""""
내 펀치 이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지 못했다.
"대.....단하군.....자네, 편입생이랬지? 확실히 근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겠군."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학생장은 자네일세. 미노 학생."
"저....그런데 학생장은 무슨 일 하는 겁니까?"
"음? 내가 아직 설명을 안 해주었나? 이거 미안하네 하하하하! 요즘 건망증이 심해져서 말일세."
갑자기 친한 척 해오는데 뭐냐.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 엄한 사람이요 하면서 정색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사실 아카데미의 학기 말에는 강의 평가를 매긴다. 아카데미 측에서 내리는 평가와 학생 측에서 내리는 평가가 있는데 아카데미에서 내리는 평가는 수강생 대표의 우수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라이온 교관은 강한 힘을 가진 미노에게 잘 해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학생만 잘 가르친다면......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그럼 내 월급도.....!'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라이온이었다.
"아, 학생장의 역할에 대해 물었었지? 학생장은 나를 보조하고 실전 시 다른 학생들을 인솔하는 역할 등을 하네! 상당히 귀찮고 힘든 일을 떠맡는 대신 점수에서 가산점을 받지!"
시벌.....귀찮은 일 독박쓰게 생겼네. 다른 학생이야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 안달난 녀석들일테니 이런 가산점에 환장하겠지만 나는 적당히 다니면서 지내는게 목적이란 말이지? 귀찮은건 싫은데 왜 내가 맡게 됐냐고! 혹시 그만둘 수 있나?
"저.....혹시......"
"설마 그만두려는 건 아니겠지? 능력이 가장 우수한 자네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인가! 부디 맡아주게!"
"......예......"
눈앞에서 존나 큰 떡대가 저렇게 말하는데 대놓고 거절할 수 있는 용자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나 보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다! 다들 내일 늦지 말도록!"
역시 수업 첫날은 날먹해야 제맛이다.
라이온 교관은 순식간에 강의실을 나갔다. 저저, 빠른거 봐라. 그렇게 밥이 먹고 싶드나!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인사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하나둘씩 서로 안면을 터 가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었다면 이때 말을 걸어봤겠지만 강의실에는 남자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내 아카데미 친구들은 여자애들로만 이룰 거다!
전생의 대학교에서도 아싸였던 그는 오늘도 아싸의 길을 걷는다.
"어이, 네놈. 힘이 제법이더군."
강의실을 나가려는 순간 아까의 싸가지 없는 놈이 말을 걸어왔다. 친구라도 해달라고? 난 남자랑 친구할 생각은 없어! 나랑 친구하고 싶으면 존나 이쁜 여자가 되어서 오라고!
혹시 자기보다 강한 녀석이 있는 걸 알아버렸으니 자신의 건방짐을 다른 학생들에게 사과하러 다니는 게 아닐까? 첫번째로 나에게 사과하러 온 거고.
"힘 좀 세다고 너무 건방지게 굴지 않는 게 좋을거다. 알겠냐?"
음, 역시 싸가지는 싸가지다. 사과는 지랄.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뒤에서 레온인지 레몬인지 하는 싸가지가 고함을 질러대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이제 슬슬 점심시간인데 미아도 강의 끝냈겠지? 설마 강의 첫날부터 fm으로 하는 건 아니지?
나는 점심식사에 대한 기대를 하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