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블랙오크 토벌(5)
"전원 돌격!"
와아아아아아아!
다 돌진하는 건 좋은데 짐꾼들은.....? 우리도 돌진해?
나야 당연히 갈거다만, 다른 짐꾼들은 어떡할지....? 그들은 전투원처럼 강하지 않다. 자기들도 함부로 갔다가는 죽는다는 걸 알고있겠지. 망설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
"우리도 돌격이다!!"
"우오오오오!"
예? 당신들 짐꾼이라구요? 탁 치니 억 하고 죽는 사람들이라구요?
아무래도 전투원들의 함성이 짐꾼들에게도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다들 흥분해서 달려드는 거 봐라. 그래도 저렇게 많이 가주면 내가 껴있더라도 딱히 이상하진 않겠지.
그럼....나도 가볼까?
나는 있는 힘껏 다리에 힘을 줘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투확!
순식간에 짐꾼들을 제치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역시 신체 능력 하나는 발군이다. 마나를 못 쓴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기 그지없는 신체다. 사실 그냥 내가 쓸줄 모르는 거지만 아무튼 못 쓰는 신체다. 절대 내 문제가 아니다.
금속이 맞대는 소리가 들린다. 먼저 돌진했던 전투원들과 오크가 싸우기 시작했나 보다.
어느덧 내 눈에 보인 것은 중장갑들로 무장한 오크들과 대치하고 있는 기사들이었다.
여러 의문이 든다.
모험가들은 어딨지? 저 오크들의 장비는 뭐고?
오크들의 장비에서는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진다. 화장실에 기어다니는 돈벌레를 보고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녀석들의 장비를 보면 소름이 우수수 끼친다.
"쿠워어.....인간.....죽인다.....!"
"크읏......!"
기사들이 밀린다. 수적으로 한참 열세니까 당연한 거겠지. 개개인의 능력은 당연히 기사들이 우위겠지만 장비와 물량으로 밀어붙이니 답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사들이 죽는다! 지금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라도 개입해야 해!
나는 참전이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짐을 내팽겨치고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오크에게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받아라!
붕권!!
떠어어엉!!! 빠지직....파캉!
내 주먹과 오크의 흉갑이 부딪힌다. 더럽게 단단하네. 때린 내 손이 아플 정도다. 그래도 통하긴 했다. 녀석의 가슴 부분 갑옷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박살이 났다.
"크.....쿠어어억!"
녀석은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지금이다!
나는 넘어지는 녀석의 가슴팍에 주먹을 한방 더 꽂아넣었다. 갑옷이 이미 파손되었던 녀석의 가슴은 내 주먹에 의해 종이마냥 뚫려버렸다.
"끄으으으......"
녀석은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놈은 잡았고......나머지는.....
네 그렇죠. 자기 동료 한명이 당하는 걸 봐놓고 그 상대에게 또 방심하는 녀석들은 없겠죠?
그래도 녀석들의 신경이 어느정도 내게 향한 덕에 기사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 같다. 전투에서 100% 집중을 할 수 있는 것과 주위에 신경이 분산되는 것의 전투력 차이는 엄청나니까.
한 놈 잡았다고 해도 아직 이곳에 있는 오크들의 숫자는 다섯, 우리 측 기사는 셋에 불과했다. 여전히 수적으로 열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대치만 하고 있으면 달라지는게 없어. 우리 측 원군이 먼저 오면야 다행이지만 오크들이 먼저 합류하면 더더욱 위험해진다. 빨리 저 녀석들을 처리해야 해.
변수를...만들어보자.
저 기사 녀석들은 딜러 타입이겠지?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작전을 하려면 저 녀석들보다는 내가 하는게 적합하다.
"기사 양반님들! 제가 어떻게든 녀석들의 빈틈을 만들어 볼 테니 그 틈에 처리해주세요!"
"모험가 소년도 조심하게!"
나를 모험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보여준 활약만 하면 블랙 오크를, 그것도 중무장한 녀석을 단 이격만에 처리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 하다. 기사들이 이번 토벌에 참가한 모험가 전원의 얼굴을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녀석들에게 달려들면서도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었다. 녀석들이 나에게 공격하도록.
"쿠워어! 받아라 인간!"
오크 전사는 내게 메이스를 휘둘러왔다. 계획대로!
"크윽!"
나는 일부러 메이스를 맞았다. 아프다!
아프다!아프다!아프다!아프다! 하지만.....견딜 수 있다!!
날아갈 것만 같은 의식을 어떻게든 붙잡고 오크의 메이스를 양 팔로 고정했다.
"으으윽.....지금..지금입니다!"
"내가 처리하마!"
서거겅!
기사의 오러를 두른 칼날이 무장을 잃은 오크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허어....허어....."
"자네 수고했네."
"아니! 바그너! 저 소년이야 공격을 받아냈으니 그럴 수 있어도 너는 지금 농땡이 피우면 안되지! '자네 수고했어.' 이러고 있네! 두명이서 네마리 막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빨리 다시 합류나 해!"
남은 오크 넷은 기사단 세 명이서 충분히 상대해 낼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회복한 나까지 합류하면서 쉽게 오크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허억....허억....!"
"잠시 쉬고 다른 분들에게 합류하죠!"
다른 분들......아 맞네! 그사이에 전원이 전사했을리는 없으니까 다들 뿔뿔이 흩어진거구나! 하긴 실비아나 미아가 어디가서 죽을 전력은 아니지.
"다른 분들은 지금 어디있습니까?"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주변을 찾아봐야.....적들이 더 옵니다!"
쿠워어어어억!
시발, 오크새끼들 또온다. 정신나갈거같아.
격통과 피로에 찌든 몸을 일으키며 응전하려 할 때였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오크들이 순식간에 토막났다. 분명 전에도 이런 광경이 있었지.....그러니까....
"미아!"
"다들 괜찮으신가요?"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담담하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걸어오는 미아였다. 잔다르크가 오는 걸 직관한 프랑스 병사들이 이런 심정이었구나. 존나 안심된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 분의 도움 덕에 사상자는 없군요."
"이게 나야."
나의 시답잖은 개그에 미아는 쿡 웃었다.
"여기에도 있었군요. 정예 오크 중보병이."
"여기에도....라니요?"
"지금 이 부락 안에는 여러 특수한 개체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일부 오크의 경우 주술을 사용하는 모습도....."
"주...주술이요? 그 말은 주술사 오크도 나타나 있다는 겁니까?"
"네."
다들 심각한 표정이다. 그나저나 주술? 주술사? 월드 오브 워X래프트나 하X스톤에 나오는 X랄 같은 녀석들인가?
진지한 표정들 속에 혼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눈치챘는지 미아가 설명을 깃들였다.
"주술사는 정령들을 매개체로 하여 각종 속성을 부리는 녀석들이에요. 마법사가 각종 마법을 부릴 수 있는데 비해 주술사는 속성 기술만을 쓸 수 있어요. 속성 정령을 통해서 기술을 발동하는 거니까요. 속성이 아닌 기술들은 쓸 수 없죠."
"대신 마법사의 공격은 마법 파훼를 할 줄 알면 무효화할 수 있지만 주술사의 공격은 파훼가 통하지 않아요. 마법사들의 속성 마법은 말 그대로 특정 속성을 띈 마법이지만 주술사들의 속성 주술은 특정 속성으로 공격하는 거니까요. 쉽게 말해 순수 공격과 상태이상이 합해진 마법과 순수 상태이상으로 이루어진 주술이랄까요?"
전혀 안 쉬운데?
"이해가 잘 안된다는 표정이네요. 불 속성으로 예시를 들어 볼까요? 불 속성 마법을 불타는 돌덩이라고 하면 불 속성 주술은 말 그대로 불이에요. 불타는 돌덩이를 맞으면 돌의 충격과 화상을 입지만 순수 불에 맞으면 화상만 입으니까요."
이제 이해가 간다. 역시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게 직빵이지. 1타강사가 따로 없구만!
"그나저나 주술사가 등장하면 왜 위험한거야?"
"아까 말했잖아요. 주술은 마법과 다르게 기술을 파훼할 수 없다고요."
"게다가 마법의 근간인 마나 충격은 피격 대상 측에서도 충분한 마나를 다룰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 충격의 상쇄가 가능한데 주술은 그게 안돼요. 순수 자연 속성의 공격이니까요."
"말하는동안 다들 어느정도 휴식을 취한 것 같으니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요? 아직 적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테니까요."
"저희도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다같이 이동할까요?"
미아는 고개를 젓고는 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저와 이 사람이 함께 이동할테니 여러분들은 따로 이동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기사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휴식을 취했어도 여전히 데미지는 누적되어있을텐데 저렇게 날아다닌다니 역시 기사단은 기사단이다.
"우리도 갈까요?"
"어."
우리는 동시에 달려나갔다. 난 분명 전력을 다해서 달리고 있는데 설렁설렁 뛰는 미아와 속도가 같다. 타고난 피지컬로도 아직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있나보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려온다. 미아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고 비명소리의 방향으로 달렸다.
끼긱
비명이 들려왔던 장소에는 모험가들의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20명쯤 되는건가....? 모험가의 절반 이상이 당한 건 위험한데.....
저사람들 그래도 나름 B급인데....다들 당했다고? 방금 말했던 오크 주술사인건가?
검은 그림자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크 주술사가 덤비더라도 미아가 있다면......!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오크 주술사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오크 주술사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전에 싸웠던 오크 중보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었다.
"말도.....안...돼.....오크 로드라니"
오크 로드라니, 로드라면 저 녀석이 이 부락의 지배자인건가?
그렇다면 저 녀석만 처치한다면.....!
미아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기대감을 담아 미아를 바라봤다.
미아는......긴장한 얼굴을 하고는 몸을 떨고있었다. 미아도 위험할 정도라고? 이거 진짜 좆된거같은데?
저 로드가 근접 공격을 하고 주술사들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걸 어떻게 뚫어야 하지?
이거.....죽을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친 순간, 죽음의 무게가 나에게 덮쳐왔다.
몸이 떨린다. 죽는다니.....내가 죽는다니......이 곳에서 내 삶은 끝이라고? 어떻게......
"....보! 여보!"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 무렵 미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라 말하는 거지?
"빨리 피해요!!"
뭐?
눈앞을 보자 도끼를 크게 치켜든 오크 로드의 모습이 보인다.
씨발. 죽고싶지않아!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가며 뒤로 점프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타이밍이라 어깨죽지를 살짝 베이고 말았다.
"큭!"
"여보!"
"난 괜찮아! 내가 로드의 시선을 끌 테니 먼저 주술사들부터 처리해줘!"
다행히 다리쪽은 다치지 않았다. 녀석도 몸이 매우 날랜 건 아니니 어떻게든 시선의 분산 정도는 할 수 있을거다. 아니, 해야만 한다.
"알았....."
콰광!
불덩이, 얼음덩이, 돌덩이들이 미아가 있던 자리에 꽂힌다. 저새끼들이 날린거구나! 저 주술사새끼들!
미아가 녀석들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한다. 한방에 파고들어 벨 심산인가보다.
"지금.....!"
쾅!
오크 로드는 그를 용납하지 못하겠는지 도끼를 내려찍으며 돌진을 방해한다. 녀석들의 공격을 피하느라 움직임이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아! 이대로 가다가는 저녀석들의 연계에 당해버린다!
"야! 돼지새끼야! 니가 여기 리더냐! 좆밥새끼가! 나랑 1대1로 덤벼 병신아! 좆만한새끼가 깝치지말고!"
로드는 내 말에 잠시 나를 보더니 이내 다시 미아를 견제한다.
씨발 저 무지성 오크새끼.......도발해도 걸리질 않네....
내가 그냥 주술사들에게 돌진하면 안되냐고? 주술사들에게 가는동안 공격 쳐맞고 당해버릴거다. 게다가 녀석들의 주위에는 정령들이 지키고 있다. 딱봐도 강해보이지는 않지만 성가시겠지. 결국 녀석들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건 미아뿐이다.
젠장, 어떻게 시선을 돌려야 하지?
어쩔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녀석의 급소를 공격하려 파고들면 저 씨발 무지성오크새끼도 나한테 집중하겠지.
"미아! 잠시만 녀석의 빈틈을 만들어내줘! 내가 녀석의 급소를 칠게! 주술사랑 로드 모두 너에게 신경이 가있을 때 내가 노려볼게!"
"알겠어요!"
미아는 내 부탁에 화답하듯 일부러 움직임을 느슨하게 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닿을 듯 말듯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녀석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이다!
나는 로드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녀석의 덩치가 워낙 커서 내 얼굴 부근에 녀석의 사타구니가 있었다.
고자로 만들어주마! 심0의 친구가 되어라! 나는 허리 탄력까지 이용한 최대 전력의 주먹을 녀석의 사타구니에 꽂았다.
아니 꽂아 넣으려 했다.
푹!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내 팔에 꽂히며 돌진하던 내 주먹은 힘없이 떨어졌다.
씨발.......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주술사, 전사가 있으면 궁수도 있을 거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왜 적들이 눈앞에 보이는 저게 전부라 생각했던걸까.......
퍼억!
로드의 거대한 다리가 나를 후려쳤다. 나는 종이마냥 하늘에 날려졌다가 땅에 쳐박혔다.
쿠우웅.....!!
이....이건 뼛속까지 아프다...! 살려줘 씨발 존나아파.....!
"여보!!!!"
미아의 울음 섞인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가까스로 정신을 잃는 것은 면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내 쪽을 향해 날아오는 주술들이었다.
콰과과과과광!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 죽고 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