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블랙오크 토벌(4)
모두는 한곳에 모였다. 텐트 시설들은 정리하지 않기로 했다. 한번의 전투로 끝나지 않을 경우 장기전을 대비한 퇴각 지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토벌 종료 후 휴식 차원의 시설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나같이 각자의 무기로 중무장하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은 무서운걸?
정렬한 기사들 사이로 실비아가 걸어나왔다.
"저희는 오늘 블랙오크 부락을 토벌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셔도 됩니다. 전투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다방면으로 도왔다고 보고해드릴겁니다."
"사기 진작을 위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전투의 프로니까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각오를 다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도 돌아가시지 않으시는군요.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단순한 작전입니다. 원거리 공격 사거리까지 다가간 후 마법사 및 궁수 분들이 선제공격을 하고 달려나오는 적들로부터 원거리 부대를 지키며 적들을 토벌하시면 됩니다. 짐꾼 분들은 보급품들을 적재적소에 건네주시면 됩니다."
정말 단순하다. 하긴, 상대에 비하면 우리들의 인수는 너무 부족하다. 섣불리 양동작전 같은 걸 펼쳤다가는 양쪽 다 궤멸되고 말겠지.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예!""""""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출발하죠."
그렇게 우린 오크 부락으로 향했다.
"저기 보이는군요. 마법사 분들과 궁수 분들은 준비해주세요."
보석 박힌 지팡이를 든 마법사들은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팡이 끝에 불, 바람, 번개, 얼음 등 각각의 속성이 깃든 구체들이 생겨났다.
"받아라! 파이어 익스플로전!"
"윈드 스톰!"
"블리자드!"
"썬더 브레이크!"
퍼퍼펑! 콰과과광!
강력한 마법 공격들이 부락을 덮쳤다.
"쿠우워어어억! 쿠억! 쿠어억!"
갑자기 급습당해 분노한 블랙 오크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궁수 분들! 사격 개시!"
쐐애애애애액!
퍼퍼퍼퍼퍼퍼퍽!
달려오는 오크들이 쓰러져간다. 수가 너무 많아....! 이대로 가다가는 근접 전투를 피할 수 없을 터!
"파이어 익스플로전!"
"윈드 스톰!"
"블리자드!"
"썬더 브레이크!"
"근접 전사 일동 전투 준비! 몬스터들을 절대 후열 부대로 보내지 말도록!"
"으아아아아아아아!"
누군가의 함성과 함께 전사들이 돌진했다.
"여보, 저도 다녀올테니 몸 조심해요."
미아는 순식간에 몬스터들에게 뛰어나갔다.
전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락에서 일반 병사 수준의 오크들만 나온 것인지 일방적인 우리 측의 학살극이었다.
오크들이 불쌍하다고? 저 녀석들도 각자의 삶이 있겠지만 저녀석들은 오크고 나는 인간이다. 아니 반인반수지만 겉모습은 인간이고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그럼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저녀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수는 없냐고? 응 없어. 저것들 요즘엔 잠잠했지만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마을이나 도시에 쳐들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상자를 냈었겠지. 그런 녀석들의 입장에서 떠올리라니 그정도로 내가 관용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전투가 얼마나 이어지는 걸까. 우리 측에서도 한두명씩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망자는 아직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부상을 입은 전사를 사제에게 데려가는 역할이 우리 짐꾼의 역할이다.
짐꾼 중에서도 나처럼 발이 빠른 사람들은 전장에 쓰러진 부상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역할이다. 다른 사람들은 궁수에게 화살 보급, 마법사들에게 마법 촉매 보급, 어느 정도 퇴각시킨 부상자를 사제에게 데려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쿠어어어억!"
녀석들이 물러가기 시작한다. 첫 전투는 우리들의 승리다. 시작이 좋다.
"저희도 일단 퇴각합니다!"
"다들 후퇴!"
야영지로 후퇴하자마자 다들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럴 만도 하지. 근접들은 하루 종일 검을 휘둘렀고 마법사나 궁수도 똥꼬빠지게 마법이나 화살을 쏴댔으니.
기사 한 명이 실비아에게 다가와서 경례했다.
"전투 결과 보고하겠습니다. 모험가는 부상자 7명, 사망자 0명, 기사단은 부상자 0명, 사망자 0명입니다."
오....사망자가 없다. 다행이군. 이전까지 본 적도 없고 지금도 사실상 한번도 못 본 사람 수준이지만 같은 의뢰 하러 온 사람들 중에 사망자가 나온다면 되게 찝찝할 것 같다.
그나저나 기사단은 부상자도 0명? 역시 위---대한 기사단 님들은 이런 병사 오크들 따위에게는 부상도 당하지 않는다 이말입니까?
"우리의 총 전력이 모험가 37명, 기사단 30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부상자 7명마저 꽤나 큰 전력의 감소니까.....주의해야겠군."
"내일도 같은 방법으로 개전할까요?"
"흠.....녀석들은 보통 전력을 보존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아. 그런데 후퇴를 했다는건 상당히 많은 병력이 줄었다는 거겠지. 최소한 병사 오크들은 거의 다 줄었을 거다.....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만 녀석들의 기행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내일도 오늘처럼 원거리 포격을 해보고 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 돌진하는 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오늘은 다들 쉬도록 하세요. 오늘 불침번은 제가 하겠습니다."
부하들이 힘들까봐 스스로 불침번을 자원하는 기사단장님이라니! 이 얼마나 참된 리더!
그건 그렇고 실비아가 불침번을 선다는 것은 실비아의 텐트에는 나와 미아만이 남게 되고......이런 짓이든 저런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건가? 물론 섹스는 못하지만! 주무르거나 빠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자~드가자~
"어머? 실비아 양 불침번 서는거에요? 혼자 계시면 불쌍하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와장창!
뭐가 깨졌냐고? 깨지긴 깨졌다. 내 꿈이.
아니!!!!!!! 왜!!!!!!!!!!!! 왜애애애!!!!
미아는 나보다 실비아가 더 소중한거냐? NTR당한거야? 나 없는 동안 둘이 뭐한거야! 당장불어!
혼자 자야한다고? 쓸쓸하게 혼자? 고독사해버릴거야. 에라 모르겠다. 나도 며칠쯤은 안자도 문제없으니 같이 있을랜다. 양손의 꽃 들고 밤공기 마시는것도 괜찮겠지.
"미아가 그러면 나도....."
"여보는 들어가서 자요. 우리 둘이면 충분하니까."
1초만에 까였다.
"아니.....나도 밤새도 끄떡없는 몸이고, 짐꾼이라 컨디션도 덜 영향 받고, 마나 감지 도움 좀 받으려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푹 잤으면 좋겠는데..."
"그럼 가실까요?"
· · ·
"....그렇게 해서 이 기술은......"
"......그럼 한 걸음을 더 내딛는 방식으로......"
ssibal......둘이 검술 얘기로 빠져버렸다. 초전문가 둘과 문외한 하나가 있으면 그 문외한이 소외되어 버린다고! 검알못쉑ㅋㅋ 끼지도 못하죠? 누구냐 그 찐따?
그 사람이 바로 나에요.
그렇다고 얘기 흐름을 돌리자니 둘이 너무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있어서 끊지도 못하겠다.
가만히 모닥불 타는거나 보고있어야지.
탁...타닥....
조용한 세상 속에서 모닥불 타는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온다. 검술 토론 소리? 어차피 못알아먹을 소리라 없는 셈 치기로 했다.
"아, 여보? 마나 감지 도와주기로 했었죠? 옷 좀 벗어 볼래요?"
휴 드디어 내가 따돌림당하지 않는 주제다.
이전처럼 내가 옷을 벗으면 미아가 내 등에 손바닥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는 식이다.
솔직히 마나를 불어넣는다고는 하는데 전~혀 안느껴진다. 손바닥의 차가움만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가만히 있기를 한참, 결국 내가 먼저 포기했다.
"오늘도 실패인가봐. 다음에 또 해보자."
"여보는 소질 참 없네요~. 전 직접적인 도움 없이도 하루만에 성공했는데."
"전 직접적인 도움을 받고 나서 감지에 성공했습니다."
미아는 진짜 박탈감 느껴질 정도의 재능충이다. 선 넘네......그나마 실비아가 덜한데....저사람도 나랑 동등한 조건이었으면 하루컷이었다는 거잖아! 재능없찐 우러욧! 신님 왜 마나 감지에 대한 재능은 안 주신거에요! 피지컬은 줄만큼 줬으면서!
"그나저나 미아님,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미노 님과 지금 부부 관계십니까?"
실비아의 질문에 미아는 얼굴을 붉혔다.
"네 맞아요~ 평생 함께할 부부랍니다?"
"부...분명 저번에는 모자관계....."
"사랑에는 기존의 관계 따위 중요하지 않아요! 앞으로의 관계가 중요하죠!"
뭐야? 그 순정만화의 마법소녀나 외칠 만한 멘트는
"그....그렇군요....저는 아직 사랑을 느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미아 님의 사랑을 응원하겠습니다."
"고마워요~실비아 님도 애인 한번 만들어보지 그래요?"
아, 얼굴 빨개졌다. 귀엽구만. 밤샘의 대가를 보답받은 느낌이 드는 얼굴이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무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실비아 씨에게도 찾아올거에요. 운명의 사람이."
이 대화 되게 로맨스 소설의 대화같다. 사랑을 모르는 주인공에게 사랑을 알려주는 사람의 대화.
그렇게 우리들의 대화는, 주로 미아와 실비아의 대화였지만, 계속되며 밤은 깊어져 갔다.
다음날 아침, 실비아는 사제의 치유로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상자와 그를 치료할 사제 한명, 보조용 짐꾼 두명을 야영지에 남겼다. 아니 남기는건 좋은데....우리가 나간 사이에 몬스터가 급습하면 어쩌려고?
내 생각은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이 근처에는 블랙오크를 제외하면 강한 몬스터는 살지 않는다고 한다. 기껏 있는 몬스터들은 짐꾼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몬스터라고
오늘의 작전에 대한 실비아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어제처럼 부락을 향했다.
"마법, 발사!"
슈슈슈슈슝!!
퍼퍼펑! 콰광! 콰가강!
"녀석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대로 원거리 폭격만 가할까요?"
"아니, 포로나 납치 피해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원거리 공격은 여기까지만 하자. 기습을 조심하면서 근접전으로 전환하자. 적들도 바라는 바겠지만 어쩔 수 없지."
"잠시 후 돌격한다."
"예!"
· · ·
"크르....마법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벽이 부서질 겁니다..."
"위기.......응전......"
오크 녀석들, 혼자서는 뭘 하지도 못하는건가? 역겹기 그지없군. 생긴 것처럼 하는 짓도 멍청하단 말이지?
"신경쓰지마라. 녀석들은 조만간 돌진해올 것이다."
녀석들은 근접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사로잡혀있는 포로들이 있을테니 광역 마법은 위험하다.' 이렇게 생각하겠지.
멍청하기 그지없군. 살아있는 포로 따위 있지도 않은데. 그 녀석들은 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고 크크
"뭘 멍청하게 서있는거지? 나가라. 나가서 쳐들어오는 적과 싸워라. 그리고 적들을 죽여라."
저런 하등한 녀석들 따위를 수하로 부리다니, 지금의 내 신세도 처량하기 그지없군.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저런 쓰레기들 따위 당장 처분해야겠어.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난다면 대량의 인형이 생길테니. 이 세계를 발 아래 둔다면 주인님도 나의 훌륭함을 깨달아 주시겠지.
아아.....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의 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