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블랙오크 토벌(3) (20/78)



〈 20화 〉블랙오크 토벌(3)

"... 님. 미노 님!"

"으응.....미아....조금만 더....."


"출발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전 미아님이 아닙니다!"

응? 뭔가 잘못됐다. 급하게 눈을 뜨니 실비아의 얼굴이 보인다. 오늘도 아름다우시군. 잠깐만, 그럼 실비아한테 미아라고 부른거? 씨발! 완전 실례를 저질렀네.

"그으어어어어어어어......"


힘겹게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갈아입는 동안 텐트 내부를 둘러봤지만 미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나간건가?

"물 한잔 마시고 정신차리세요."

나는 물잔을 받아들었다.

꿀꺽꿀꺽

 시원하다. 잠이  달아나네!

이때 내 표정은 대충 맥주 마시는 대머리가 짓는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맥주잔, 아니 물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잠깐 달리고 올게요."

뜬금없이 왜 달리러 가냐고? 그야 물론 잠 깨기 위해서지? 나 못믿어? ...........사실은 캠프 정리하기 귀찮아서 도망가는 거긴 해.

"다녀오세요. 캠프 정리는 제가 할테니."

눈치챘나보다. 크흠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가볍게 달리기 딱 좋은 날씨구만.

"후우.....후우....."

드르렁~크헝! 흐컹!


다른 캠프들을 지날 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구나.  나만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건데!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내 철칙에 맞지 않는데. 억울해!

대련장을 지날 무렵 미아가 보였다. 미아는 반복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저 검을 휘두른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나는 그 동작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저렇게 완벽한 동작이라니! 저 한 동작을 얼마나 반복해왔던 걸까! 어쩌면 그녀의 강함의 비결은 완벽한 기초동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존경스러워졌다.

한참을 뛰다보니 어느덧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뛰는 기사들도 생겼다. 포X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검프의 대사가 뭐였더라.....분명....이제 내가 할 말은....


"이젠 돌아갈래요."

한 마디를 남기고 실비아가 있는 캠프로 돌아갔다. 캠프와 내부 짐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 커다란 캠프를 혼자서 정리한건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아.

"오셨습니까? 아침은 휴대용 식량으로 때우도록 하죠. 빨리 출발하는게 좋으니."

실비아는 내게 작은 봉지 하나를 주었다.  안에는 물과 비스킷 몇 조각이 있었다. 아....딱봐도 맛없게 생겼다. 휴대용 식량들 특징이 더럽게 맛없다는 거잖아.

나는 똥씹은 표정으로 비스킷을 한입 베어물었다.

와그작!


어? 생각보다 괜찮네? 쌀과자 맛이다. 진짜 개폐급 맛을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미노 님, 미아 님을 데리고 어제 식사하러 모였던 곳에 와주시겠습니까? 그곳에서 짧게 오늘의 일정을 설명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즉시 대련장으로 가서 미아를 불렀다.

"미아, 연습 그만하고 일단 가자! 출발해야지!"

미아는  말을 듣고 쪼르르 달려왔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원래 귀여웠지만.

"벌써 이틀째네요."

"그러게. 오늘도 별일없이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괜히 쓸데없이 나서서 현장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안 나타났으면 좋겠어."

그러나 얼마 후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실을  리가 없었다.


우리가 모임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모험가와 기사들 모두 도착해있었다.

단상 위에 오른 실비아가 지도가 그려진 큰 종이를 가리켰다.

"오늘은 이곳까지  겁니다. 정찰병이 조사한 루트로 갈 예정이니 전투는 거의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야!  싸우고싶다고! 니들 멋대로 길을 정하지 말란 말이다!"


하아.....저런 근육대갈통 싸움광은 왜 매일 등장하는거지? 심지어 좀 틀딱이다.  틀딱은 전력을 아낀다는 생각이 없나? 꼭 저런 새끼들이 본격적인 의뢰 때 방심하다가 순식간에 광탈하고 사망하더라.

"당장 중요한 싸움이 내일이니 전력 손실을 최소화해야합니다. 필연적인 싸움은 어쩔  없더라도 고의로 몬스터와 조우하는건 허가할 수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실비아 눈나가 저렇게 매너있게 대답해주는데 설마 또 꼴깝떨지는 않겠지? 또 지랄하면 진짜 폐급이지.


"아 그런건 모르겠고 난 싸우고 싶다니까?"

환장한다. 폐급이네. B급 모험가가 Bㅓ러지 모험가였나?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만 좀 해요 아저씨. 되게 추해요."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네. 목소리의 근원을 보자 작은 체구의 소년이다. 남캐네. 왕 실망.

"꼬맹이 주제에 어른이 하는 말에 토달지 마라!"

꼰대 속성까지 있는 아저씨였네. 이러다가 라떼까지 나오겠다.

"내 전성기 때는 의뢰 거리가 멀어도 단숨에 달려서 해치우고 왔는데! 요즘 것들은 나약해 빠져가지고!"

시발 진짜 나오네. 고려장 마렵다.


"음....글록 씨?"


어우, 무슨 목소리가 저렇게 차갑냐. 내가 알던 실비아 눈나의 목소리는 미아에게 대하던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인데.

그나저나 글록이라니.... 권총 잘 쏠 것 같은 이름이다.


"저희 기사단이 길드에 의뢰를 맡기면서 내건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혹시 아시나요?"

"무....뭐냐!"


"의뢰서에도 적혀있었는데 몰랐나요?"

 그러고보니까 의뢰서 최하단에 작게나마 뭔가 적혀있었지. 분명 내용이......

"'토벌 진행에 과도하게 방해가  경우 즉시 전력에서 제외하고 도시로 귀환시킨다.'입니다. 글록 씨, 당신은 저희 토벌 원정에 방해가 됩니다. 지금 당장 떠나주십시오. 여비와 식량 정도는 드리지요.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을 시 강제집행하겠습니다. 강제집행의 경우 어떠한 것도 드리지 않을 겁니다."

아! 시원~하다~! 나는 개X스콘 아저씨마냥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씨발....씨발...씨발...!"


저 글록이라는 틀딱도 어제 한 모험가가 깝치다가 실비아에게 쳐발린 걸 봤겠지. 봤으니까 덤비지는 못하고 작게 욕만 하고 있는거 아니야.


"자....잘못했네! 나는 이번 의뢰도 취소되면 모험가 신뢰도가 바닥을  걸세! 상급 모험가들에게는 신뢰도가 생명인 거 알지 않나!"

"규칙은 규칙입니다. 유감입니다. 안녕히."


틀딱은 포기했는지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고 기사에게 여비 일부와 식량을 받은 뒤 초라하게 떠나갔다.

짝!


"자! 여러분! 계획을 방해하려는 사람은 더 없겠죠? 정당한 문제 제기나 비판은 환영합니다만 무지성 비난은 자제해주세요? 그럼 궁금한 게 있으신분?"


방금전까지 무서운 눈나 모드였으면서 순식간에 친절한 실비아로 돌아왔다.

틀딱이 급발진하긴 했어도 다른 모험가들도 다혈질인건 마찬가지라 방금 전까지는 작게나마 불평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비아의 저 한 번의 퍼포먼스(?)로 입을 여는 모험가들은 없었다.


"실비아 양 멋지네요~훌륭한 기사단장이에요!"

미아만 빼고.

"저....질문할 게 있는데요."

아까 틀딱한테 한 소리 했던 소년이다.


"뭔가 궁금한게 있으십니까?"


"루가 평야랑 조금 가깝지 않을까요? 오크들이 쳐들어오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붙게 되는건데 위험할 것 같은데"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락의 오크들의 활동을 조사한 결과 녀석들은 부락에서 거의 나오지 않아요. 나오더라도 부락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만 이동하죠. 안전거리는 충분히 확보한 야영지 장소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조용히 전진하게 됐다. 이런 전개 아주 좋아. 분위기 곱창내는 넌씨눈도 없고 얌전히 활동을 진행하는 전개.


한참을 걸을 무렵이었다.

첫날때 봤던 레드 라이노 무리가 한번 더 등장했다. 이번에는 10마리....아니 12마리다.

좋아....이번엔 내가.....

"여보, 지금 여보는 짐꾼 신분인거 알고는 있는거죠?"

아.

대차게 잊어먹고 있었다.


"제가 할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미아는 내 턱을 한번 쓰다듬고는 순식간에 달려나갔다.

부드러운 손이 턱을 간질이는게 기분이 좋.....아니 내가 강아지냐? 무심코 좋아할 뻔했어.

서걱! 서걱! 촤차창! 스겅! 스겅!

헐..... 이.....이게 뭐고?

혼자서 다 썰어버리고 있다. 미아의 신형이 라이노 근처에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라이노들이 토막나있다.  깜빡임 한번  한마리다.


결국 다른 모험가나 기사들이 대응하기 전에 혼자서 12마리를 전부 썰어버린 미아였다.

사람들의 표정 좀 봐라. 미아의 벽력일섬을 처음 봤을 때의 나같은 표정을 하고있네. 당연히 놀랐겠지. 어제 8마리가 쳐들어왔을때도 어지간한 모험가들 다 씹어먹는 기사들이 연합해서 해치웠었는데 오늘은 혼자서 12마리를 순삭해버려? 놀라지 않을리가 없다.


"역시나 미아 님이군요. 정말 강하십니다. 역시 저와 함께 이 토벌부대의 최고 전력을 담당하는 분답군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실비아가 말을 걸었다.


"그러네요. 게다가 저게 오러조차 쓰지 않은 상태라니. 미아의 끝을 알 수가 없어요."


지금 기준 가장 오랫동안 미아와 함께 지낸 사람은 당연히 나다. 그런데 미아의 강함은 알면 알수록 새롭다. 식칼을 휘두른 것만으로 바위를 썰어버리는 건 약과였어.


레드 라이노 무리 이후 우리는 더 이상 몬스터를 조우하지 않았다. 편하게 가는게 제일이다. 내 활약? 어차피 짐꾼이라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상황 따위 나오지 않을텐데. 진영붕괴나 전멸 같은 위기상황을 제외하면.

한참을 또 걷고 걸어서 오늘의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여기는  지명같은거 없냐고? 없다. 그냥 적당히 중간지점에 있는 평평한 지대를 찝은거라 이름같은거 없어.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자리를 잡죠."


둘째 날은 별다른 몬스터들의 습격이나 모험가의 난동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모두의 머리에 깊이 새겨졌나 보다. 깝치다가 좆되는 수가 있다고.

식사 시간이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다들 모여있는 곳에 갔더니 공기가 무거웠다.


"내일이 결전....."


"긴장되는군...."

"후........"

기사들도 그렇고 모험가들도 그렇고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저들이 아무리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니 긴장되는게 당연하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호기로운 분위기였는데 하루 전으로 다가오니 위험이 체감되는걸까.


나도 조금은 긴장된다.


"미노, 조심해야돼요? 비록 전투 역할은 아니지만 전장이라는 곳은 불확실성 요소들이 넘쳐나는 곳이니까요."

"알고 있어. 너야말로 조심해. 너처럼 강한 사람한테는 몬스터도 많이 몰려들테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식사에만 몰두했다.

식사 후에는 가볍게 달리기 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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