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미아의 과거
"첫 기억은....시골 마을의 한 교회였어요. 교회에 있는 고아들, 그 중 하나가 저였거든요. 제 친부모는 기억도 나질 않아요.
저희 교회는 재정상 되게 힘들었어요. 고아들을 떠맡아서 안그래도 돈이 많이 나가는데 구호활동도 하다보니 가끔 들어오는 기부금으로는 운영하기 벅찼죠.
저희 교회 원장님은 좋으신 분이었어요. 한분뿐이셨지만 수녀님도 착하고 상냥하신 분이었고요. 원장님은 한때 모험가 활동을 하셨어요. 자신이 B급 모험가였다고 저희들에게 모험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죠. 원장님은 모험가 활동을 하다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얼마 후 다리에 부상을 입어 모험가를 은퇴하고 교회를 설립하셨다고 해요.
원장님은 모험가를 은퇴하셨지만 교회 운영 비용을 벌기 위해 풋내기 모험가들의 교관 일이나 몬스터 재료 손질 등 여러 일을 겸업해가며 운영비를 벌었어요.
저희들의 사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었는지 마을 사람들도 저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고 사정이 조금 나아지나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8살이 되던 무렵, 교회는 습격을 받았어요. 이교도들의 습격이었죠. 악신의 신도를 자칭하던 그들은 교회를 불태우고 저희를 죽이려 했어요. 원장님이 분전하신 덕에 그들을 몰아낼 수는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원장님은 돌아가셨어요. 저는....그들을 절대 잊지 못해요.
아무튼 원장님이 돌아가셨어도 주민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2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었죠. 그렇지만 저희 교회에 대한 관심도 점차 식어갔고 다시 위기를 맞이했어요.
수녀님을 제외하면 교회의 맏이였던 저는 돈을 벌기 위해 모험가가 되었죠. 그때부터 제 모험가 생활이 시작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어떤 능력도 없었던 저는 최하급 수준의 풋내기 모험가에 불과했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돈을 보내주기는 커녕, 제 한 몸을 간수하기도 힘든 생활을 연명해가던 그 무렵, 저는 은인을 만났어요. 그 은인은 제게 검술을 알려주셨어요. 은인의 검술은 저를 A급 모험가까지 이끌어 주었어요.
그 이후는 평범하게 모험가로서 생활했죠. 거의 모든 보수를 교회에 보내느라 가난하게 생활했다는 것만 빼면요. 제가 20살이 되던 무렵, 교회에는 여유가 생겼고, 저는 마침내 S급 모험가가 될 수 있었어요.
교회의 제 동생들도 저를 따라 모험가가 되기 시작한 무렵이었어요. 그 아이들이라면 재능이 있었으니 훌륭한 모험가가 되었을 것 같네요.
이제 교회도 더 이상 힘들지 않았고 동생들도 어엿한 한 명의 모험가가 되었으니 저만의 삶을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처음 의뢰를 맡은 날이었어요.
그 의뢰가 미노, 당신의 아버지이자 제 전남편인 카이우스의 퇴치 의뢰였어요. 그 결과는 아시죠? 저는 카이우스에게 사로잡혀버렸죠.
붙잡혔던 저는 카이우스에게 처녀를 잃었어요.
계속되는 능욕 속 절망뿐인 삶에 지쳐 자살하려던 날, 저는 당신을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제가 임신한 이후, 카이우스는 저를 소중하게 대해주더군요. 미노를 낳고 난 후에도 그는 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어요. 아이 때문에 그의 심정이 바뀐 것인지, 그저 아이의 출산 및 육아를 위한 도구로써 저를 챙겨준 건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잘해줘도, 그에 대한 증오는 줄어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겹기만 했죠. 하지만, 그렇게 원망스러운 카이우스의 아이라고 해도 저는 그 아이를 미워할 수 없었어요. 제 아이기도 했으니까요.
당신을 임신한 날, 저는 맹세했죠. 카이우스를 속이자. 그를 용서하고 내조적인 아내가 된 척 속이자. 그를 믿게 한 후 반드시 최후의 일격을 박아넣자. 그렇게 맹세했어요.
미노, 당신도 느꼈죠? 제가 애정 표현에 약하다는 것을. 카이우스는 제게 애정을 표현해주지 않았어요. 잘 해준다고는 해도 애정을 담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섹스도 애무 없이 강압적으로만 할 뿐이었죠.
어머? 눈이 커졌네요? 눈치챘나 보네요. 제 첫키스, 당신이 가져갔답니다?
미노, 당신의 아버지, 카이우스는 나이가 들어 죽은 게 아니에요. 그는 칼에 찔려 죽었어요. 그를 죽인 건..... 저에요. 놀란 표정이네요, 미노의 그 표정, 카이우스의 최후와 같은 표정이네요.
미노, 당신의 눈 앞에 있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죠? 경멸스럽나요? 저를 원망하나요? 죽이고 싶나요? 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라면. 당신의 손에 맞는 최후라면....그것 나름대로 좋은 결말이겠지요."
눈앞에서 들려오는 충격적인 사실에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다. 미아의 출생 및 유년기는 비극이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지구 시절에도 비극적인 인생의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미아는 어렸을 적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충격 그 자체라 내 이해 수준을 벗어났다.
아니 뭐 아버지와 미아가 처음 만난 상황을 생각하면 능욕이야 당연히 있을 줄 알았지만....! 쥬지에 굴복했든 떡정이 들었든 결국 둘이 화해한 게 아니었어? 히토미 보면 히로인도 결국 굴복해서 해피 엔드로 마무리 되고 그러잖아! 현실은 히토미가 아니라는 건가?
ㅈ도 ㅈ을 잘못 놀리면 ㅈ되는구나. 나도 조심해야겠다.
그나저나 증오를 20년간 간직하고 있었다니....미아에게 원한 사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를 동정한다거나 미아를 원망한다던가 하는 감정은 없다. 결국 아버지의 업보니까. 아버지는 미아를 능욕했고 결국 닫힌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닫힌 마음은 비수가 되어 아버지의 심장에 박혔던 거겠지.
딱 한가지, 한가지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미아, 한가지만 대답해줘."
"어떤 건가요?"
"내게 속삭였던 사랑, 그 감정도 거짓이었나?"
미아는 얘기 중간에 나를 미워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워하지 못한다'는 '미워하지 않는다' 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미아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뭘까?
만약 미아가 내게 주었던 모든 감정이 거짓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미노, 이게 제 대답이에요."
미아는 품 속에서 작고 초라한 목걸이를 들었다.
뼈로 이루어진 목걸이였다. 디자인도 투박하고 표면들도 매끄럽지 못해 목에 걸고 있으면 불편할 뿐인 목걸이. 내가 10살에 미아에게 선물로 준 목걸이다.
"나는 카이우스를 증오해요. 그가 죽은 지금도 저는 그를 싫어해요. 하지만, 당신은 싫어하지 않아요. 당신은, 당신만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연인이자, 주인님이랍니다."
"그러니......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싫어하게 되지 않아요. 설령 당신이 저를 죽일지라도."
솔직히 감동이다. 저건 어릴 때 만들었던 거라 전문적인 기술도 없고 섬세함도 없는 투박한 목걸이일 뿐인데 지금까지도 목에 걸어두고 있다니.
"미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너와 아버지와의 어긋난 관계는 전반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니까."
"아버지에 의해 새겨진 상처라면 내가 치유해주겠어.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나에 대한 애정으로 덮어주겠어. 그러니, 앞으로도 나의 곁에 있어줘."
"......흑......!"
아 울어버렸다.
"이런 부족한 몸이지만......받아주시겠어요?"
"물론이지, 미아. 과거의 아픈 기억 따위 얼마든지 덮어씌워줄게."
"그리고 애초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네....?"
"내 소유물 주제에 주인에게서 도망치려 하다니, 말도 안되잖아? 널 버릴 수 있는 건 나뿐이다."
"하아....네에!"
흥분해버린건가?
"호텔로 돌아갈까?"
"네!"
우리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로 걸어갈 때는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노을이 보이는 거리라.......운치 있는걸?
노을빛을 받는 미아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아니, 노을빛이 아니더라도 더 예뻐진 것 같은데? 근심이 사라져서 그런가?
"미아, 이야기는 카페에서 끝난 것처럼 굴어놓고 다시 질문하는 게 좀 모양 빠지긴 하는데,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요."
"아버지를 죽인 후 어떤 감정이 들었어? 통쾌했어? 허무했어? 아니면 슬펐어?"
"아무것도요. 기쁨, 슬픔, 분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살해 직전까지만 해도 염원 달성에 대한 쾌감으로 가득찰 것만 같았는데.....막상 이루고 나니 아무런 감정도 안 들더라구요."
"당신에 대한 감정을 제외한 모든 감정이 사라지다보니 그 빈자리를 당신에 대한 애정으로 채운 것 아닐까요?"
그런가? 그게 사실이라면 아버지에게 감사해야겠군. 이런 여자를 내 전용으로 만들 수 있게 해줘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데이트도 피곤하구나. 미아랑 갔던 만큼 즐거웠던 데이트라 불만은 없지만.
"미아, 먼저 씻어. 난 조금만 누워있다 씻을게."
미아는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욕실 문을 빼꼼히 열고 미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보, 같이 씻을까요?"
무무무무무무무무뭐라고? 가..같이씻어? 그 애인끼리 같은 욕실에 들어가서 서로 씻겨주고 그러다가 눈맞으면 서로 만지고 욕조나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만져주는 그거?
당근빳다죠 쒸바!
"그럴까? 잠시만 기다려. 금방 들어갈게."
목소리 안떨렸겠지?
"얼른 와요~"
미아는 창피하지도 않은가보다. 태연스레 제안하고 태연스레 들어가네.
얼른 들어가자! 천국으로!
· · ·
"하아......"
"같이 씻자니......부끄러워......"
"나를 원망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나를 감싸줬어."
"여보에겐......전부 다 해주고 싶어."
미아는 가슴에 올린 주먹을 굳게 쥐었다.
"헤헤... 당황하는 여보 반응도 귀여웠어~"
미노는 긴장을 감추는 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