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데이트(2)
우리는 고오급 레스토랑으로 왔다. 히X스 아니다. 이젠 X오스도 망해버려서 레스토랑도 아니지만. 가게 이름도 빅스다. 빕X 아니야? 왠지 이 레스토랑 스테이크 잘 할 것 같다.
사실 이정도 고급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미아는 자연스레 여기로 들어왔다.
"제가 현역 시절에도 여기 자주 이용했었거든요~ 여기 되게 맛있어요."
진짜 메인디쉬로 스테이크 나오네. 이름값 잘하네.
미아는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썰더니 한 점을 포크로 찍어 내게 내밀었다.
"여보, 아~ 하세요~"
"아~"
오물오물오물
맛있다. 미아가 줘서 더 맛있는건가?
"미아, 어때? 오랜만에 현역 모험가로의 복귀는?"
"우물우물......긴장되면서도......기대되네요......."
먹으면서 대답하는게 귀엽다. 입안에 음식을 물고 있는게 햄스터같아.
내 시선은 미아의 입술에서 떼지질 않는다.
쥬지 물리고 싶어.
"여보랑 이렇게 단둘이 밥먹고 있으니.....행복하네요."
미아의 행복은 생각보다 소박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데이트하고 밤에 사랑만 하면 된다 이건가?
내가 이뤄줘야지. 미아가 행복하다면 나도 좋으니까.
우리는 와인 한잔을 마시며 식사를 끝냈다.
밥은 되게 맛있었다. 역시 고급진 식당이야. 좀 비싸겠지만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슬슬 갈까?"
"네!"
"430만원입니다~"
예? 얼마요? 43만원이지? 잘못말한거지? 43만원도 비싼거 아니야? 왜이리 비싼건데! 이럴거면 여기 오는게 아니었는데!
미아는 평범하게 패를 내밀었다. 응? 미아 이 가격 자연스러운거야? 내 경제 기준이 소시민인거야?
"내가 계산하려 했는데."
"여보, 여보가 나랑 같이 먹어준 것만 해도 나에겐 더없을 영광이에요. 그러니.....계산은 제가 하게 해줘요."
되게 고백성 짙은 멘트다. 미아의 말을 들으니 내가 꽃뱀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건 왜일까. 분명 미아는 그런 의도로 말을 한게 아닐텐데. 찔리는 걸까?
"그럼 이후 일정 계산은 내가...."
"얼른 가요!"
"미아는......이런 데이트 해본적 있어?"
"아뇨, 전 이번이 처음이에요. 모험가 때는 돈 벌기 바빴고 전남편 때는 숲을 나가지 못했으니까요."
"전 남편? 아버지?"
"현 남편은 여보니까요. 카이우스는 전 남편이죠."
참고로 우리가 있었던 숲은 나중에 돌아가보니까 없어져 있더라. 되게 신기했어. 이 또한 아버지의 위엄인가?
"자! 일단 영화 보러가죠!"
많이 신나보이네. 보고싶은 영화라도 있는걸까? 그 이전에 어떤 영화가 개봉했는지 어떻게 알지?
"무슨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몰랐구나. 그냥 가서 보고 고를 계획이었구나.
결국 우리가 본 건 로맨스 영화였다.
'천 년이 지나도 너를 사랑해.'
어우 진부해. 영화 대사 왜이리 식상해! 창의력이 없구만! 봉X호같은 감독 이 세계에는 그...없나?
고개를 슬쩍 돌려 미아를 보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이런 식상한 영화에도 감동하는거냐? 다음에는 로맨틱한 대사라도 더 많이 말해줘야겠다.
참고로 이 세계는 영화를 재생할 때 영상 녹화 수정구에 확대 마법을 걸어서 대형 판에 보여주는 식이다. 일반적인 수정구면 푸른색 홀로그램 느낌으로 영상이 나오는데 영화는 노이즈같은 것 없이 현실을 보는 느낌이다. 영화관 용도로 특수한 개조를 했나? 아니면 그냥 돈 많이 바른 수정구인가?
여주와 남주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괜히 미아가 신경쓰였다. 미아를 보자 미아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리의 얼굴은 서로 가까워졌고....키스했다.
"으응.....츄....츄릅.....츄웁......하움....."
'사랑해 메이'
"사랑해 미아."
'저도 사랑해요 리오'
"저도 사랑해요 여보."
우리는 영화의 대사가 나오는 것과 함께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영화가 끝난 후 미아는 이전보다 내게 더 달라붙어왔다. 내 팔에는 미아의 가슴의 촉감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정말 최고야.....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커플들도 많이 온 것 같다. 그래봤자 다 미아보다 못생겼지만.
그런데....피부가 따갑다. 다른 남자들은 멀리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풉 부럽냐? 너네들과 나의 클라스 차이다 이 쉐끼들아~
영화동안 음료수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화장실 가고싶다.
"미아,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 · ·
"후후, 급하셨나 보네. 저렇게 다급하게."
미아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는 것이 그녀를 세상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영화 중간에 키스랑 사랑 고백까지!
'나처럼 행복한 여자는 세상에 없을거야. 여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아는 미노의 모든 것이 좋았다. 평소의 다정한 눈부터 밤의 자신을 지배하는 지배자의 눈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면 봉사라도 해줘야지.....나도 여보를 기쁘게 해줄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저...저기요."
주위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미아는 자신이 말했지만 너무나 냉랭한 목소리에 자신도 놀랐다.
'평소라면 웃으며 적당히 대응해줄텐데? 왜 이렇게 냉랭하지?'
"아까 전부터 계속 봤었는데 제 이상형이셔서요. 혹시......"
"저 남편 있어요."
그래 남편이 있다. 저딴 한심한 남자보다 몇백배 아니 몇천배 몇만배는 멋진 남자인 남편이.
"에이, 혼자 계시던데? 그러지 말고 저랑 가시죠!"
"제가 남편이 있든 없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죠? 어차피 그쪽은 제 취향도 아니에요. 당신같은 못난 남자는 관심 없어요"
눈앞의 남자는 자신이 까였다는 사실에 납득하지 못한 듯 화를 냈다.
"하, 내가 못났다고? 니 남편같은 병신새끼가 뭐라도 되는거냐?"
병신?
죽여버려야겠다. 나를 욕한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내 남편을, 내 아들을, 내 주인님을 욕한 것은 절대 넘길 수 없다.
죽어ㅡ
"미아, 뭐해?"
그 순간, 내 뒤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미노가 웃으며 나를 잡고 있었다.
· · ·
"으휴~ 시원해라~"
폭포가 쏟아지듯 한번 크게 싸고 난 후 나는 개운하게 화장실을 나왔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와 여자 목소리인가? 여자 목소리가 익숙하다. 미아인가? 남자는 누구지? 빨리 가보자.
"하, 내가 못났다고? 니 남편같은 병신새끼가 뭐라도 되는거냐?"
시발 왜 날 욕하냐? 나 보지도 못한 새끼가.
보니까 나 없는 사이에 미아 좀 꼬셔서 어떻게 해보려다가 대차게 까이고 말싸움 중인 상황인 것 같구만. 미아는 나 외에는 무신경 그 자체인데 말이야.
미아를 보니 분노로 몸이 떨리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아가 저 남자를 죽여버릴 것 같다. 저런 버러지따위 죽어도 아무 상관 없지만 미아가 살인죄를 받는 건 사양이다. 예쁜 꽃 주위에는 예쁜 여자에게는 똥파리들이 꼬이는 법이라지만 저런 오물 따위에 걸리는 건 너무 불쌍하잖아.
나는 미아를 잡았다.
"미아, 뭐해?"
시베리아 냉기도 울고 갈 정도로 냉랭한 표정을 짓던 미아는 날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보!!"
"당신, 뭐야?"
나는 나지막히 물었다.
"하, 당신이 이 여자 남편이라는 새끼야? 어이가 없네. 저딴 비리비리한 새끼보다 내가 딸린다고?"
엑스트라 양아치가 미아한테 껄떡대는 상황, 이거 데자뷰 같은데? 저번에도 엑스트라 양아치가 우리한테 시비를 걸었고......
팔이 뜯겼었지.
저번과 달리 구경꾼이 많아서 팔을 뜯어버릴 수는 없다. 잡혀갈테니까. 하지만 부러뜨리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직접적인 티는 안나잖아.
나는 양아치의 팔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우둑
"으아아악!"
양아치의 팔목 부분은 홀쭉해져있었다. 팔이 모래시계처럼 되버렸네?
"이.....이....씹쌔끼가....!"
"다른 쪽 팔도 그렇게 되기 싫으면 당장 꺼져."
"으....으윽!"
양아치는 날 노려보다가 이내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역시 쎈 척 하는 놈 치고 진짜 강한 놈은 없다.
"미아, 괜찮아?"
"네...네헤에......."
아까 본 영화 대사 중에 분명......
'언제든지 내가 너를 지켜줄게.'
"언제든지 내가 너를 지켜줄게."
영화 멘트를 그대로 쓰자 미아의 눈은 하트로 고정되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휘파람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특히 여자들은 나와 미아를 상당히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릴 보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들을 보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이런, 나와 비교당한 남자들의 명복을 액션빔.
"가자. 아직 데이트 안끝났잖아."
우리는 손을 잡고 영화관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1. 호텔
2. 카페
3. 훈련장
미연시게임이야? 선택지 고르게? 굳이 고르자면......카페나 가자. 미아한테 물어볼 것도 있고.
우리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에는 음료 종류가 별로 없었다. 아메리카노라던가 카푸치노라던가 라떼라던가 다양한 종류 같은건 지구에나 있지. 여기에도 있는건 아니었다. 커피는 커피, 녹차는 녹차, 과일음료는 과일음료. 이렇게 단순하게 있었다.
"미아, 아까는 물어보지 못했었는데....현역 때 돈을 많이 벌어야 했었다고 했잖아. 아버지와 만나기 이전, 모험가 미아일 때의 이야기......해줄 수 있어?"
"여보, 그건 왜 궁금한 거에요? 별로 말해주고 싶지는 않은 이야기인데요..... 저한테는 그다지 좋았던 기억은 아니라...."
"나는 미아의 전부를 알고싶어. 아버지와 만나기 그 이전의 인생도. 내가 모르는 미아 따위, 없었으면 좋겠어."
"조금은.....이야기가 길어질텐데 괜찮아요?"
그럼 커피라도 마시면서 천천히 듣지 뭐. 주문이나 하자.
"여기 커피 두잔만 주세요."
잠시 후 우리 앞에는 두 잔의 커피가 놓였고 그녀는 이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