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4/27)

며칠후..

[현주]를 따라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채로 학원근처의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학원강사인 내 처지가 솔직히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자리지만.. [서희]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이 결국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한 것이다.

[현주]는 물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훗... 서희가 나와 지네 담임이랑 함께 온 걸 보면 당황스러워는 하겠군...

하긴 상중에.. 그런게 눈에나 들어올까..에효~ 쯧쯧.. 가엾은 것.....'

칙칙한 연합병원 지하의 썰렁한 장례식장 간판이 보인다.

[서희]네 반 친구들인지.. 나와 함께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리는 [현주]를

보고 무거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들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오늘 새벽에 돌아가셔서인지.. 첫날 저녁의 빈소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서희]가 분향소벽에 하얀 상복차림으로 넋나간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현주]를 보더니 입술을 부르르 떨며 그만 울음을 터트렸고 [현주]도 눈물을 흘리며 

[서희]를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서희]의 반 친구들 역시.. 이들주변에 모여들어 서글픈 눈물로 위로를 하고 있다.

나는 분향소까지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그냥 넓직하고 썰렁한 접객실의 테이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희]네는 일가 친척도 없나 보다.

이렇게나 썰렁한 장례식장은 처음이다.

[서희]어머니가 탈북자 새터민이라도 되는건지.. 아니면 중국 조선족 교포인지..

아님 천애고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사연많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 이겠는가..

장례도우미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나와 접객들의 테이블위에 저녁밥을 차린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있는 나에게 [서희]가 느닷없이 다가와 하얀 상복을 포개어 조심스레 내 옆에 앉는다.

"저... 선생님... 찾아주셔서 고마워여.."

"쩝쩝냠냠.....켁!!!!...크흐음!!...응~......"

"죄송해여.. 오신줄도 모르고..."

"...켁켁!!..흐음... 아..아냐.. 그럴 수 있지... 크흐음!!!!... 니가 고생이 많겠구나....켁켁!!!.."

"..........."

"어머니 좋은곳으로 편안하게 가셨을꺼야..힘내자..그래야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흐음!!

너를 내려다 보고 기뻐하시지... 큭..켁켁!!!!... 크윽!!!!.."

"선생님.. 물이요...."

"크음... 흠!!!!...그래.. 벌컥벌컥~..."

'아흐....씨바....진짜.. 무너져 버리네...'

하필이면.. 목구녕에 밥알새끼 한마리가 기도로 쏙 기어들어가 쳐박혔는지.. 

이상황에서 이렇게 망가진 모습을 보이다니..

멋지게.. 차분하고 숙연하게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려고 했건만.. 망신스럽기만 하다.

[서희]는 차분하고도 지친 표정이었지만 가늘고 길다란 손가락으로 물잔을 건네며..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반대편 벽쪽 테이블에서는 [서희]네 학교 교직원들끼리 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현주]는 그 틈에 껴서 우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을 때우고 나서 복도 밖으로 나가 담배하나를 입에 물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9월의 날씨가 어느덧.. 가을에 접어들었다는게 몸으로 느껴진다.

이번주 벌초 때문에 시골을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낮에 받았는데..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끊어버렸었다.

'얼굴도장 찍었으니.. 현주한테 간다 말하고.. 일찍 들어가야 겠구나...'

다시 접객실로 걸어들어갈 때 쯤.. 문득.. 돌아가신 [서희] 어머니의 이름이 내 두눈에

들어왔다.

金民瑞....

"..김민...서??..."

'..!!!!!...'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신 [서희]어머니의 이름이 내가 알던 까마득한 [민서]누나의 이름과도 같다니..

누군가를 닮은 [서희]의 하얀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아..아냐...핫...하하.. 김민서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많은데....." 

물잔을 건네던.. [서희]의 가늘고 길다란 아름다운 손..

어딘가 낯이 익어.. 자꾸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희]의 뒷태..

접객실 입구에서 교회 사람들로 보이는 한무리의 일행을 맞이하는 [서희]가 

눈에 들어왔다.

묶은 머리.. 길다란 목.. 하얀얼굴.. 촌스럽도록 찐한 눈썹.. 두꺼운 쌍거풀..

순간 머리속이 온통 무섭도록 쌔하얀~ 괴성으로 가득차 버렸다.

접객실 안쪽 분향소의 영정사진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오려 하자 잽싸게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냐....절대로...아니야...하하...그렇치..민서누나가 싸이에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서희]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안본게 다행이다.

아니.. 뭐 봐봤자 [민서]누나는 분명히 아닐테니...

순간 정신을 차리니 장례식장 건물앞 벤취에 앉아 담배를 연거푸 태우고 있다.

[서희]의 얼굴이 떠오른다.

[민서]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희]의 짙은 눈썹과 쌍거풀이 찐한 커다란 눈망울과.. 웃을 때만 보이는 송곳니쪽 덧니..

길다란 팔다리.. 

"아...아냐~... 아니....그래..코는 안닮았어..민서누나는 낮은데.. 서..서희코는 오똑

하잖아........내.... 코처럼..... 내코...처럼......."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마구마구 흘러 내리고 있다.

지금 이상황에서 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서희]어머니의 영정사진부터 확인을 해야 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아니면 다행인데.. 만약.. 진짜 [민서]누나가 맞다면???...

순간..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 후폭풍은 지금 저곳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아..!!.... 이..... 씨바...!!......"

계속 눈물을 훔쳐드는데.. 이제 막 도착한 어느 교회의 봉고차에서 열댓명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에휴... 김집사님.. 어떡해....에휴...."

"쯧쯧... 사십도 안된 나이에.. 여지껏 신랑도 없이.. 혼자 살면서.. 너무 안됐어.."

"목사님이 지금 안에 와계시다니까.. 빨리 서둘자고요.."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향한다.

"아.... 아니야... 이거는.... 이..이거는....."

나의 발걸음이 분주하기만 하고.. 이윽고 다다른 곳은 이 건물 지하의 어두컴컴한

영안실입구 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구닥다리 쇼파에 빙 둘러 앉아 고스톱판을 벌이던 염사들

세명이 깜짝놀란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아저씨.. 뭐에요???..."

"저.... 오늘새벽.. 들어오신 분... 김민서요..."

"네...."

"저좀.. 볼 수 있어요???..."

"네????... 가족이에요??..."

"얼굴좀 확인하고 싶은데..."

"안돼요!!.. 이안에 들어온 이상.. 염할 때 빼고는 아무에게도 못보여드립니다.."

".............."

다급하게 지갑을 꺼내들어 있는 돈을 끄집어 내었다.

"안쨈募歐?!..이사람이..큰일날라고!!!!... 빨리 나가요!!!..."

"아저씨들!!!!...진짜.. 꼭 좀.. 부탁드립니다..!!!..."

순간 염사 두명이 나를 잡아 끌어 내려 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미친듯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큰일나요!!... 빨리 나갑시다... 네???..."

"제발이요!!!... 이거 놔욧!!!!!!..... 선생님!!!... 아저씨!!!!.. 제발이요.."

"빨리 나가요!!!!... 이사람이!!!..어어???... 어이... 경찰불러!!!..."

"제발... 선생님들!!!....흑흑흑!!!.... 제발 얼굴만 확인만 할께요..!!!..."

"신원 확인하고 싶으면 그건 가르쳐 드릴께요......"

"네???....."

앉아 있던 염사 하나가 흥분을 가라앉힌 나를 보며 서류 하나를 파일안에서 끄집어 낸다.

"730528에 21*****... 본적이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월천리에 **-*번지...."

"........민서누....나......!!!!!!........"

"가족분들에게 말씀하시고.. 발인전 염할 때.. 마지막으로 보내드리세요..."

".....아!!!...이..이런!!!!....큭!!........."

허탈하게 계단을 따라 오른다.

다리에 힘이 없는지... 한발 한발.. 오르기가 버거운 듯.. 핸드레일을 붙잡은 채..

멈춰섰다..

깜깜한 오피스텔..

어느덧.. 신비스러운 밤하늘의 검은빛이 통창안 내 비좁은 공간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어제의 충격으로 침대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하루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낮에 잠깐 들렸던 [현주]가 사다 놓고 간 약봉지가 머리맡에 보인다.

이젠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한다.

그리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민서]누나를 마지막으로 봐야 하니까...

접객들이 몇몇 모여앉은 썰렁한 장례식장의 한켠.. 분향소로 향한다.

[서희]가 친구들과 앉아있다 나를 발견하고 토끼눈을 뜨며 놀란 표정으로 성큼 다가온다. 

"...음.. 어제 어머니 못 뵈었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는 드려야 할 꺼 같아서..."

"...........네에..."

영정사진 앞에 섰다.

아름다운 [김민서]가 그곳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순간.. 그 소름끼칠 아름다움이 내 머리끝까지 돋아 올랐고.. 나도 모르게 소리없이 눈물이

주르르륵 흘러내렸다.

이곳에 오기전.. 절대 눈물은 안 흘릴꺼라 굳게 다짐을 해버렸건만..

'김민서...너였냐????...이런게 너랑 나랑 행복해 지는 거였니??? 그랬냐고 이 바보야..'

의연하게 떨리는 이를 꽉 감으며 절을 했다.

내 얼굴에 온통 흘러내리는 눈물 콧물에.. 옆에 선 [서희]가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듯 하다.

"흐음... 서희야..미안해... 선생님이 갑자기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흑흑... 아니요..."

내가 너무 눈물을 많이 흘려서인지.. 내 옆을 지키던 [서희]가 따라 울던 눈물을

훔치며 모기만한 대답을 끄집어 내었다.

[서희]와 함께.. 분향소 벽에 마주 앉았다.

어느정도 안정을 취하니.. 이제는 [서희]의 얼굴이 또렷하게 내 두눈에 들어온다. 

"......서희......"

"......네에?...."

"그이름..어머니께서 지어준 이름이니??..."

"네에...."

민서.희준.

서희....

이 아름다운 천사의 이름을 [민서]누나가 그렇게 지어주었나 보다.

그렇다면...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민서]누나의

딸은.. 내 딸이다.

[서희]의 나이와 나와 [민서]누나가 사랑을 나눴던 때를 추측하니.. 대충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민서]누나는 내가 대학1학년때..신안 작은어머니댁에서 뛰쳐나와 애를 혼자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군대가기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초췌한 모습일 때.. 이미 갓난아이였던 [서희]를

혼자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천사 [서희]가 내 딸이었다니..

이렇게 대견하게도 자라 주었구나.. 애비도 없이..

[민서]누나의 아픈 일생처럼.. 아빠 혼자 여지껏 살았을 [서희]를 생각하니.. 또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천사 앞에서.. 더이상 약한 모습 따위는 보일 수가 없다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내가 그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전부니까.. 

그리고 이 천사를 앞으로 엄마처럼 살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가 굉장히 미인이셨네.. 서희가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

"어머니는... 뭐 하셨던 분이셨니??..."

".....미용실 하셨어요..."

"그랬구나... 진작 알았으면.. 하하.. 머리좀 깎으러 갈껄..."

".......네에..."

"내일.. 어머니 발인날이지..."

"네...."

"어디로.. 모실꺼지??...."

"엄마가.. 평소 말씀하신곳이 있어서요... 저한테 당부한 곳으로..."

내가 너 아빠다..!!.. 라고 말하기에는 지금은 시점이 분명히 아니다.

지금 내 앞의 천사가 스스로 내가 자신의 아빠라고 생각되어질 만큼.. 내책임을

다한다면.. 내가 먼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차츰 분위기가 안정되고.. 오고 가는 대화가 많아지자.. [서희]가 슬쩍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근데.....이상하네??..."

"응???....왜???.."

"....호호..그냥.. 두분이 서로 미인이다.. 미남이다.. 막 칭찬 하셔서요.."

"응???.....그게..무슨???..."

".... 사실.. 제가.. 그전에 선생님 강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병원에서 엄마한테 보여드렸는데요..."

"..!!!!!......."

"..죄송이요.. 너무 피곤해서..병원가서 다시 공부하려구.. 핸펀으로.. 중요한 강의부분.."

"..아냐아냐.....계속.. 계속 얘기해봐... 그랬더니..!!..."

"그냥.. 엄마가 선생님 이름 물어보시고.. 말씀드렸더니.. 한참을 우시면서.. 

너무 미남이라고..너무 잘생겼다고...."

".............."

또다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흘러내렸다.

하지만.. 의연하게 맘을 다잡고 양복소매로 급하게 눈물을 훔쳐내어 버렸다. 

"핫....하하... 정말..그러셨어???... 어머니께서.. 하하.. 사람볼 줄 아시네..."

"...흐음.......호호........"

"그러셨구나..."

".....엄마가요..그래서.. 선생님 사진 계속 찍어달라고 하셔서.. 딱.. 자기 스타일

이라면서요..."

".....하하..."

"그래서... 사진 많이많이 찍어서 보여드렸어요..."

"하하... 나중에.. 내가 저세상에 가면 꼭 어머니께 초상권료 받아내야 되겠는데??..."

"....호호....흐음....."

"..........."

"마지막으로.. 선생님 얼굴 보시면서.. 흑흑...웃으면서..가셨어요... 편안하게...흑흑.."

"..........."

"흑흑흑흑..."

[서희]를 껴안아주었다.

[민서]누나와 나의 금기된 근친의 사랑이 낳은 씁쓸한 결과라기에는 너무나 이쁘고 아름답게 

자라버린 내 딸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흐릿한 눈앞을 훔쳐내었다.

'..흑...김민서.. 너.. 나중에 초상권료 안 내놓기만 해봐.....'

접객실 앞..

한무리의 검은 양복을 입은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남자들의 형체가 보였다.

그 일행중에 눈에 익은 남자가 있었다.

'....혹...시?????....'

나와 함께 [민서]누나의 영정사진옆에 앉아 있던 [서희]역시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보더니 흠칫 놀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 남자가 성큼성큼 분향소쪽으로 다가와.. 영정 사진앞에 무릅을 풀썩~ 꿇으며..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들고 있었다.

[민서]누나의 동생인 [재준]이였다.

짧은 머리에 아주 건장한 체구.. 살이 얼마나 붙었는지.. 얼핏 봐서는 모를뻔 했다.

[재준]이와 함께 왔던 다른 거구의 남자들은 접객실 입구앞에 왠 수많은 화원들을 

잔뜩이나 가져다 놓느라 분주해 보였다.

[재준]이가 고개를 돌려 젖은 눈으로 [서희]를 매섭게 쏘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이.. 썅...!!!!..."

"........"

[서희]가 잔뜩 불만어린 표정으로 [재준]이의 눈빛을 무시한 채 벌떡 일어나더니

분향소 밖으로 빠른걸음으로 나가 버린다.

[재준]이 녀석은 아직 나를 못알아 보고 있는 듯 멍한 내 표정을 무시한 채 

뛰쳐나간 [서희]를 뒤?으려는지 젖은 얼굴을 훔치며 벌떡 일어나

분향소 밖 [서희]를 ?으려 나가려는 찰라였다.

왜 그랬을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왠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분노한 [재준]이가 

[서희]를 그냥 둘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다짜고짜.. [재준]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재준]이 녀석이 그대로 멈춰선 채.. 뒤도 안 돌아보며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나즈막히 깔아 뱉았다.

"셋 셀동안.. 이 개~발 안치우면.. 뒤져블게 쳐맞고 여서 상치룰거시여... 하나.. 둘.."

"재준아......"

[재준]이 녀석이 흠칫 놀랜 표정으로 뒤돌아 보더니 내얼굴을 유심히.. 바라다보더니

금새.. 쌉싸름한 화색이 돌기 시작이다.

"...혹...혹시... 희준이 성님..??..."

"그래... 나다..."

"음마...성님이..!!.... 어쩐일로..!!!...."

"...짜식.. 진짜.. 오랜만이구나....."

접객실의 테이블..

[재준]이 녀석과 소주잔을 주고 받으며 마주보고 앉아있다.

"성님.. 담배 하나 피울라요..."

"....그래..."

"날이 날이니 만큼.. 이해해 주쇼~..."

"...그냥..피워.... 뭘 그런걸 물어봐.."

"뻑.. 후우~....근디.. 성님은 여그 어떻게 알고??..."

"..아.... 서희가 우리 학원 수강생이야.. 내가 학원 강사고......"

"음마??... 그라요????....헛... 하하..."

"...서희의 돌아가신 엄마 이름이.. 민서누나이름이랑 같아서..설마하고 와봤는데...."

"그랬소??..성님 많이 놀랐겠소.... 뻑~ 후우...."

".......그랬지... 뭐..."

이제 나이가 서른넷인 [재준]이 녀석..

아직 장가는 안갔고 무슨 토목사업쪽으로 일을 한다고는 말하지만 함께 온 일행들이나 이녀석의 행동거지를

봤을때 영화나 텔레비젼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조직폭력배 같아 보였다.

거의 20년 만에 만나 반가워야 할 사촌동생이었지만.. 숙연한 자리에서 그저 그동안

살아 온 얘깃거리를 안주삼아 조용히 소주잔만 주고 받고 있을 뿐이었다.

[민서]누나에게 혼이나서 징징짜며.. 또래의 [현준]이와 나와 함께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그 순박한 [재준]이의 모습은 난데간데 없고.. 무슨 조폭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낯선 [재준]이의 모습에 그저 여간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재준]이 녀석을 통해 [민서]누나가 그동안 나와 헤어진 후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훗~..그 씨벌.. 나중가서는 말이여라.. 서울의 어느 대학생놈의 시퀴한테 미쳐불더니.. 

집까정 뛰쳐나가불고..그 충격으로 어매가 몸저 눕더니만 결국.. 돌가가불고... 니미..."

"....작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

"....그전에는 말이여라.. 큰집에 행사있었을 때 그려도 김가네 새끼들이라고..

나랑 민서누는 함평으로 보냈는디.. 누우가 신안에서 뛰쳐나간 후로는 아예 김가네

근처에 얼씬도 못혀게 했지라.. 그러다보니께.. 어매 돌아가불고.. 연락도 못혔지라..

하필.. 나도 핵교에 쳐박혀 있어서... 벌써 10년도 더됐지라이...."

"...........그..그랬구나...."

작은 어머니께서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니..

뜻밖의 소식에 충격스럽게만 하다. 

[재준]이 녀석이 쇠주잔을 집어삼키듯 잔술을 입속에 털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성태성님께서 핵교에 오래동안 가있고.. 누우 아퍼불고 혀서.. 내가 몇번 다녀갔긴

혔소..... 근데.. 저.. 여시같은 년이 지 삼촌 알기를 개~좃으로 알고.. 뭔일 나면

겁나불게 연락혀야 헌다고 누누이 신신당부를 혔건만......"

'....성태???.....'

순간 낯선 왠 남자의 이름이 [재준]이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씨부럴...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디... 나가 누우한테 죄가 많어라...??..."

"....성태형??.. 그사람은 누구..??.."

"아.. 우리 큰형님인디.. 매형이나 마찬가지요.. 저 지랄같은 년 애비지라..."

'...!!!!.......'

"그..그래???..."

순간..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서희]가 [성태]라는 놈의 딸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벌써 한참 전 야그요.. 우리 큰형님이 배부른 누우 많이 챙겨주고..가게도 봐주고 하다가 

저 여시같은 년 태어나불고..뭐..훗..나중가서는 뭐...그렇게 됐지라이.."

"아.... 하하.... 그랬구나... 서희한테.. 아..아버지가 있었구나..."

"저년이 그런야그는 안허요???...."

".......... 하하.. 그냥 들어본적이 없어서..."

"훗... 뭐.. 혼인신고는 안혔지만.. 그 머시냐.. 쭈욱~ 크흐으... 사실혼 관계요....."

"..............그랬구나..."

"나가.. 그전에 성님한테 말한적 있는것 같은디.. 함평 큰집에서... 목포 성국이 성님

네 큰형님이 있었다고..."

".........그래??...."

"나가 다리를 놔부렀는디..누우가 싫다고 혀서..큰형님이 사실 누우를 많이 ?아다녔지라.."

"...벌컥~.....크하아....."

"훗... 우리성님.. 핵교에서 을매나 슬퍼할찌..에효~.. 자.. 한잔 받으쇼~..."

"........."

[재준]이 녀석의 핸드폰이 울어대고 있다. 

[띠리리리...]

"응.... 나여.... 하여간 상중이니께.. 나가 조만간에 인사드린다 전하고 

정중하게 모셔라이??"

[탁!!...]

[띠리리리...]

"응.... 말혀.... 느그들.. 정신못차리냐...하여간에 이~색히들.. 한시간 안에 서류챙겨 

사무실에 갔다놔... 씨벌놈아 상중인거 몰렀냐?...그려~이 잡녀르 색히야~!!....끊어!!.."

[탁!!...]

"에이.... 써글눔덜..... 쭈욱...크하아....우걱우걱우걱..."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그동안 내 입장에서만

[민서]누나에 대해 여지껏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내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나역시 여자가 있었으니.. [민서]누나 역시 남자가 없었겠냐만은 이런 험한 세계의

남자와 함께 하면서 그 얼마나 모질고 힘든 삶의 여정을 보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조용히 가슴이 아파왔다.

밖으로 뛰쳐나갔던 [서희]가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접객실입구로 들어오더니..

[재준]이 녀석과 겸상하고 있는 나를 조심스럽게 흘깃 살피며 분향소 안으로 들어갔다.

[서희]를 보자.. 다시금 마음이 아파왔다.

어쩌면 내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재준]이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서희... 성태형인가 그분.. 딸.. 맞는거지??..."

"...그라지라?..."

"..........흐음..."

"...훗..와요??.. 누우가 큰성님이랑 도장콱~찍어불지 않고 살아서 아닌가 했소???

핫..하하... 그럼 우리 누우가 무신 성모 마리아요?? 그냥 애가 태어나불게??....."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자꾸.. [서희]가 내딸인듯.. 느껴지고.. [재준]이의 모든 말이 다 거짓말이기를

바랄 뿐이다.

알다가도 모를 세상사..

어쩌면 내가 지금 이순간도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호한 어조로 [재준]이에게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는데 재준아.. 서희에게 우리가 친인척 지간이었다는 말.. 하지 말아줘라.."

"와요?????...."

"...그냥.. 아직 내가 서희한테 니네엄마가 사촌누나라고 말 하지 않았던것도 있었고......"

"그려요....훗~ 사실 남이나 마찬가진데.... 뭐.. 알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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