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누나와의 펜팔..
우리는 발신인의 본명은 숨긴채.. 이런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연애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다.
혹시나 우리 부모님들이 볼까봐서이다.
펜팔상으로 [민서]누나는 [써니]라는 가명의 연하녀이다.
물론 닭살스럽지만 나는 [쭈니]라는 가명의 연상남이었고..
나와 [민서]누나의 수줍은 사랑은 어쩌면 이런 펜팔 때문에 더욱더
애절해지고.. 깊어져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다음주면.. 할아버지 제삿날인데.. 편지의 내용상으로는
아무래도 [민서]누나가 [재준]이녀석을 데리고 큰집에 갈 모양인것 같다.
편지를 책상서랍에 숨기자마자 방문밖으로 서둘러 뛰쳐나간다.
주방에서 저녁준비에 한창이신 어머니의 뒤를 와락 껴안는다.
"엄마!!...."
"왜이래.. 다큰놈이 징그렇게..."
"엄마.. 있잖아...."
"왜에???..... 안돼!!!!!... 돈없어..!!!..."
어머니는 뒤에서 꽉 껴안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단호한 어조로 묻지도 않은말에
넘겨짚으신 엉뚱한 답변을 내뱉으신다.
"아니.. 그런거 말고.."
"......너..!!!......."
어머니가 나를 떼어놓으시더니.. 물기가 젖은 두손을 앞치마에 닦으시며
나의 두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신다.
어머니의 눈길은 순간 매섭기도 하다가 애처로워보이기도 하다.
"너... 또.. 무슨일 냈어???..."
"나????.... 아니...."
"그럼??... 왜????... 응???..."
"아니.. 그냥.. 좀.. 답답해서.. 그러는데.."
"그래서????...."
"다음주 큰집에 할아버지 제사있지...??.."
"그래서??.."
"나.. 시골좀 데려가면 안돼???..."
"뭐??????.... 아니.. 니가 왠일이야???... 명절때도 갈까말까 하는놈이???..."
"그냥..다음주에 방학도 시작하고 하니까..."
"가면좋지...니네아빠 알면 좋아하겠다..야..."
"하하.. 그래??.. 그럼.. 나 가는거다??...."
"그래... 그래... 평생 안하던 공부하려니... 니놈도 얼마나 고생이 많겠냐..
가서 며칠 머리도 식히고 해..."
"그래..엄마... 아라써..."
애써 태연한 척.. 뒤돌아서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앗싸리!!!.. 씨발!!!..."
기분이 째진다.
다음주에 [민서]누나를 만날 수가 있다니..!!!...
'...우훗!!....김민서..!!!... 드디어.. 너를 다시 보게 되는구나...'
서둘러 츄리닝을 챙겨입고 파카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이쁜 편지지를 사야하기 때문이다.
"야!!!... 밥먹어야지.. 또 어딜가???.."
"문방구좀 갔다올께.. 살께 있어서..."
그동안 [민서]누나와 주고받은 편지지가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전에 보냈던 편지지와 같은 편지지를 쓸 수는 없다.
[민서]누나는 소중하니까...
그날밤..
어둠속..침대위..
새하얀 나체의 [민서]누나가 핏대솟은 검붉은 내 좃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입안에 넣어버린다.
"후우.....씨바.....미..민서....누나..!!....후우...."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며칠전 친구녀석네 집에서 보았던 포르노테이프에 나오는 음탕스런 일본녀처럼 능숙하게 빨아재끼지는 않지만...
따뜻한 누나의 입속 체온이 주는 지금의 이 기분은 나를 미치게 하는건 분명하다.
"아...씨바.....졸라..싸랑해....김민서......."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이윽고.. [민서]누나가 내 몸위로 오른다.
여지껏 누나가 내 배위에서 내 좃대를 머금은 채 히프를 돌린적은 없었지만..
머지않아 그런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아...씨바.....졸라.....후우.................................민서...누우...나아............"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윽!!!!!!...]
며칠후..
교실창쪽 맨 끝에서 두번째앞..
책가방을 껴안은채.. 잠들어 있다.. 다리가 절여.. 잠에서 부시시 깨어났다.
때마침.. 담탱이가 교실안으로 들어온다.
웅성거리던 교실안은 순식간에 조용해 진다.
"차려... 경례..."
[안녕하세요.....]
"어.. 내일이면 2학년도 끝이고.. 니네는 말로만 듣던 인문계3학년이야.."
[.............]
"물론 이중 대부분이 방학때 나와서 공부는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거 알지??..
일찌감치 대학포기한 취업준비생들 위탁교육 신청 마감도 내일이니까..
이미 명단 제출한 다섯명 말고.. 또 있으면.. 미리얘기해... 내일이니까.."
[............]
"반장...."
"네... 차려... 경례..."
취업준비생.. 위탁교육..
나는 이미 담탱이와의 상담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일찌감치..
애시당초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지라.. 뺑뺑이로 인문계에 왔었고.. 그러다보니 나같이
공부와는 전혀 안어울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문제만 일으키고..
나는 부모님의 바램이나 [민서]누나의 당부처럼..
내가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는 포기한지.. 아니 어쩌면 애시당초 생각해
본적도 없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담탱이의 말대로..
나같은 놈들은 고3때.. 괜히 학교에 남아 학우들 수업 방해하는 것 보다는 일찌감치.. 근처
실업계 고등학교로 위탁교육을 보내서.. 1년동안 기술이라도 확실히 배워놓으면 기능사 자격증
도 따고.. 그러다보면.. 사회인으로 학우들보다 첫발을 빨리 내딛게 되고.. 자리도 잡을 수
있다는 결정을 하게된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같은 문제아나.. 명문대 진학률을 따지고 드는 사립인문계고등학교나..
서로가 쌍방이 윈윈하는 전략일 수도 있었다.
며칠후...
첫눈이 올듯 말듯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눈 비스무리 한게 아침부터 들뜬 내방 창밖에
내비쳤다.
큰집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의 시작으로 간혹 눈빨이 흩날리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 많은 눈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함평으로 향하는 차창밖 풍경은 온통 설레임과 들뜬 기대로 가득차 있다.
아버지는 내가 할아버지 제사에 가겠다는 선언에..
"내새끼가 이제 다컸네.." 라며 가뜩이나 바쁜 회사일을 핑계로
나만 시골로 보내기로 결정을 해주셨고.. 나는 그 덕택에.. 한결 자유롭게 혼자서
여행아닌 여행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미 열차밖 풍경은 새하얀 부푼 기대감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하얗게....
'민서누나가 마중나올 수 있을까....'
어제 도착한 [민서]누나와 큰집 전화통화로 기차역 도착시간을 가르쳐 주었고..
[민서]누나는 알았다는 짧은 대답을 나에게 전했었다.
기차가 지금의 함평역인 옛 학교역에 도착했다.
열차밖에는 온통 새하얀 눈천지이다.
하얀 눈밭의 플랫폼에 조심스레 내려 두리번거렸으나 무거운 짐봇따리만 힘겹게 내리시는
할머니와 시골아주머니 몇분만 보일뿐.. [민서]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개찰을 하고 밖으로 나가니.. 헐레벌떡.. 역사안으로 뛰어들어오는 아름다운 여자가 보인다.
[김민서....]
하얀 눈에 젖은 검은 생머리가 왠지 돋보이는 새하얗고 두툼한 파카차림에.. 길다란 치마
빨간목도리.... 너무나 그리웠던 아름다운 [민서]누나였다.
"희준아..!!.."
"민서누나!!......"
"누야 늦었부렀지??.."
"아냐.. 지금 막 도착했어.."
우리는 서로 마주서서 한동안 서로의 눈빛만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듯..
그렇게..
지금 내앞에 서 있는 이 아름다운 여자와 떨어져 지낸 지난 몇달이..
마치 몇년처럼 느껴졌으니까..
[민서]누나가 둘만의 멈춰진 어색한 시간을 먼저 깨어 버린다.
"밖에.. 겁나 추워야??... 자.. 이거.."
"아냐.. 나.. 괜찮아..."
[민서]누나가 자기의 목에 돌돌 말린 목도리를 내 목에 감아주려 하자.. 극구 사양을 했다.
왠지.. [민서]누나앞에서 이제부터는 남자이고 싶어서였을까??..
역사 밖.. 온통 새하얗고 아름다운 눈속을 해치고 둘이 붙어서 나란히 걸어가자..
누나가 내손을 살며시 잡는다.
누나의 손길..
너무나 따뜻하다.
내옆에 우두커니 걸어가는 [민서]누나에게 슬쩍 장난을 친다.
"흐음... 우리써니.. 그동안 잘있었어??..."
"오호호..... 우리 쭈니오빠...아하하...."
[민서]누나가 무척이나 쑥쓰러워 한다.
이런 누나를 보니.. 왠지 더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편지로는 사투리 안쓰던데... 우리써니 사투리 쓰지말고 말해봐.. 오빠사랑해.. 하구.."
"아하하하.... 간지럽게.. 왜그냐......"
"희준오빠... 싸랑해.. 잘 하잖아??.. 우리써니..."
"호호호호......"
"빨랑....."
"아하하하.....그만좀 웃겨부려라... 디저블겄다.."
내손을 잡아준 [민서]누나의 하얀손이 눈빨의 날씨에 시려울까봐.. [민서]누나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러자 [민서]누나가 잡고있는 내손을 자기 파카속 주머니에 슬며시 넣어다 준다.
고3을 맞이하기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할아버지 제삿날 큰집에 모여든 몇몇 친척들과
저녁을 먹고 사촌형제들끼리 건넌방에 모여앉아 화롯불에 고구마와 밤을 굽고 있다..
왁자지껄한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큰집 작은형이 나가고 [재준]이 녀석과 단 둘만이 있다.
[재준]이 녀석은 어제 [민서]누나와 함께 큰집으로 오지 않고..
오늘 저녁 늦게 따로 혼자 이곳으로 왔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작은어머니와 [민서]누나의 등쌀에 못이겨 마지못해 온 듯하다.
오랫만에 만난 [재준]이 녀석은 그전날 내 말을 잘 따르던.. 그런 [재준]이 녀석이 아니었다.
머리는 샛노랗게 염색되어 있었고.. 무뚝뚝한 표정에 무뚝뚝한 말투로..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을 할 뿐.. 나나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 듯 하다.
[민서]누나가 설겆이를 이제 막 끝마쳤는지 건넌방으로 바삐 들어온다.
쾅..닫히는 문이 [민서]누나의 뒤를 ?아오던 동장군의 바깥 한기를 싹뚝.. 끊어버렸다.
"으휴... 겁나 추워부러..."
"자..누나..이쪽..이불속으로 와..."
"흐흐...으매... 뜨뜻한거...."
[민서]누나가 내 옆자리에 앉아 치마속 두다리를 이불속에 넣으며 따뜻한 방바닥을 파고들고 있다.
길다란 검은색 생머리의 아름다운 [민서]누나를 보니.. 같은 방에 [재준]이 녀석만
없다면.. 꽉 껴안아 나의 뜨겁게 타오르는 누나에 대한 열정을 나눠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때였다.
구석탱이에 쭈그려 앉아 있던 [재준]이 녀석이 [민서]누나를 보며 한마디를 던진다.
"누.... 요즘도 그 대학생눔 만나냐??..."
"뜬금없이..시방...먼소리여???...."
[재준]이 녀석과 [민서]누나의 쌩뚱맞은 대화..
느닷없이 큰 충격을 받고있다.
무언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의 [재준]이 녀석의 물음과.. 내앞에서 두볼이 발그레해질 정도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의 웃음을 애써 짓는 [민서]누나의 떨리는듯한 대답
이었다.
"그..씨이벌놈.... 내눈깔에 띄면.. 아조 뒤져부니께.. 조심해라 그려라이???...."
"이런....느자구 없는 새끼가!!.. 어디서???..."
[민서]누나가 화난 표정으로 [재준]이녀석을 쏘아 붙혔고.. [재준]이 녀석은
[민서]누나의 울그락 불그락거리는 표정에 이내 눈길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기선을 제압한 [민서]누나가 금방이라도 [재준]이 녀석에게 덤벼들어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윽박지른다.
"니가 뭘 잘혔다고 참견이다냐??.... 어??..."
"............"
"자꾸 야마돌게 하덜말고.. 니나 잘해라... 이 병신아.... 알아쳐묵었냐??..."
"..........."
마지못해.. [민서]누나의 팔을 잡았다.
"민서누나... 됐어.. 그만하고.. 이거나 먹자...."
"........."
"한번만 주둥아리 그따구로 놀리면.. 니죽고 나죽는거시여.. 알아쳐묵었는게라???...."
"..........."
"체.!!.... 대답 안허냐????...."
"..에이..........."
[재준]이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만 서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직도 분이 덜 풀린듯한 [민서]누나가 씩씩 거리고 있다.
나 역시 당혹스럽다.
[민서]누나가 만난다는 대학생이란 말에.. 당혹스러운 내 기분을..
잔뜩 화가난 [민서]누나의 성질이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화롯불을 불쑤시개로 쑤셔가며 은박지에 싼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밤을 까먹으며
[민서]누나와 둘만이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민서]누나는 화가 어느정도 가라앉았는지.. 방금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져 있는 듯 해 보인다.
검은색 생머리에 짙은 눈썹.. 길다란 속눈썹에.. 무표정한 얼굴에.. 밤을 까먹는
발그레한 입술과 하얀 덧니..
[민서]누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나... 밤 맛있지??..."
"재준이눔.. 한얘기 신경쓰덜 마러... 그냥... 다니던 교회 아는 오빠니께..."
"아니.. 신경안써... 그냥.. 뭐..."
"..........."
[민서]누나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본다.
초롱초롱한 커다란 눈망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선이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어느정도 화가 풀린듯.. 두볼에 슬쩍.. 보조개가 비쳐진다.
"피식...진짜.. 신경 안쓰여야???..."
"하하.. 뭐.. 그냥.. 누나..... 하하... 그냥..뭐.. 누나 믿으니까.."
[민서]누나가 창호지문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림자를 살피더니 살피더니 급하게..
내 입술을 찾아..쪼옥..하고 따뜻한 입술을 맞춰준다.
그리고는 하얀 덧니가 보일정도로 미소를 지어주며.. 밤 하나를 입에 넣어준다.
"이따 열두시까정 기다려야 허니께.. 먼저 자야??.. 누우가 깨워줄라니께.."
"싫어.. 그냥 더 있다 제사 끝나고 자지..뭐..."
"그럼.. 누우가 뿔난 재준이놈 데리고 올라니께.. 쫌만 있어??..."
"...응..."
[민서]누나가 겉옷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날 밤.. [재준]이 녀석에게 캐물어서 [민서]누나의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되었다.
[재준]이 녀석이 아는 친한형이 [민서]누나를 좋아하고 무척이나 ?아다녔는데..
[민서]누나는 그 형의 대쉬를 번번히 거절했었고.. 작은어머니의 교회에 다닌다는
대학생 오빠와 몇번 데이트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아주 충격적인 얘기였다.
다음날 나중에 듣게 된 [민서]누나의 말로는 집에 몇번 바래다 준것이었다고 하지만..
하여간 집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그 형이 [민서]누나와 나란히 걸어오는 대학생 교회오빠를
사정없이 구타를 해버렸고..
그일이 커져서.. 결국 [민서]누나는 다니던 그 교회마저 못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민서누나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니...'
'대학생오빠??.... 그..개색끼.. 씨발놈.........'
나역시.. [재준]이 녀석처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대학생 오빠라는 새끼가
미워 죽을 지경이다.
그날.. [재준]이 녀석에게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난 후 누나에 대한 서운함에
분노 아닌 분노를 느끼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열등감을
느끼게도 되었던 것이다.
지난 날..나의 두눈에 시선을 꽂아버리며.. 당부하던 [민서]누나의 말이 귓가에 선명하다.
[누우랑 약속했다.... 공부 열심히 혀서..꼭.. 대학가는거다이??....]
자정이 되어서야.. 큰아버지와 큰집 둘째인 [민준]이형.. 그리고 나와.. [재준]이.. 이렇게
남자들끼리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삿상앞에 큰절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
큰방의 제사상 옆.. 부엌쪽으로 앉아계신 큰어머니와 큰집 [설희]누나와 [민서]누나가 보인다.
[민서]누나는 아까부터 의기소침해 보이는 내 표정을 살피는듯 해 보인다.
제삿상을 치우고.. [재준]이 녀석과 건넌방에 나란히 누워 이불속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이 녀석은 아까 누나가 없을 때.. [재준]이 녀석의 나름대로 억울한 고자질을
귀기울여 받아주었던 일로.. 나와는 한결 말이 많아졌다.
"재준아..니네 누나는.. 그럼.. 대학생 좋아하나보다??....그치??...."
"훗.. 생긴거슨 무신 안경잽이에 멸치대가리에.. 꼭.. 쪼다병신처럼 생긴눔이더라도..
가방끈이 길면 무신 단줄 안다니께.. 하여간에 우리나라 간내들은 그런게 문제지라이...."
"..훗...그래??......"
"우리 성국이성네 큰성님이..말이여.. 착하고.. 잘생기고.. 성실하거든... 싸움도 잘하고..."
"훗... 짜식......."
"진짜라??.. 목포에서 성태성 모르면 간첩이지라..."
".. 그럼 그 형은 깡패야??.."
"에이..성은 깡패가 머여??.. 그냥 알아주는 주먹이라고 하는것이제..."
"짜식.. 그러면.. 니는 임마.. 니네 누나가 그런 험한 남자랑 사귀는게 좋냐???..."
"아니.. 그 성님이 왕년에 그랬다는 거시제.. 지금은 조선소에서 알아주는 기술자여..
거..머시냐..맞다.. 용접!!..용접 기술자여...나한테도 용돈도 팍팍주고..
돈도 허벌나게 많이 번다니께..??..."
"그렇군.. 용접..."
"나도 이번 검정고시 끝나불면..그 머시냐..용접기술 배울거시여..
광주쪽에 국비무상교육학원 다닐꺼라게라.."
'용접이라.....'
순간 우리학교의 담탱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문사학계의 알아주는 꼴통.. 김희준과 그 일당들.. 열공모드의 학우들의 대학진학을 위해서..
그리고 애시당초 공부에 취미가 없는 우리를 위해서.. 선택한 길.. 실업계위탁교육..
갑자기.. 혼란스럽기만 하다.
[민서]누나는 분명히.. 용접기술자 대신 공부 잘하는 대학생을 좋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사르륵... 사르륵....]
온통 하얀 눈밭에 발자욱을 남기며.. 큰집 뒷뜰의 담벼락으로 향한다.
담벼락 너머의 고추밭 언덕위로 올라.. 눈덮힌 고추밭고랑을 건넌다.
[민서]누나와 진한 사랑을 나눴던 소나무언덕위로 올라.. 쪼그려 앉는다.
담배를 입에물고 라이타불을 땡긴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힌 세상에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간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민서]누나..
아직까지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그당시의 나로서는 어쩌면 그날의 그 일이
지금에와서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을 뒤바꿔놓는 그런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피우고 일어나 큰집으로 향한다.
큰집의 작은방에서 큰집 형과 큰집 누나와 [민서]누나가 아직 안자고 있는지
나즈막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간간히 [민서]누나와 [설희]누나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다음날..
[재준]이 녀석과 [민준]이형은 아침을 먹자마자 부지런히 월천리를 떠났다.
나는 내일 출발할 계획이었지만.. 어제일로 그냥 확.. 올라가 버릴까도 생각중이었다.
[민서]누나와 시간을 좀 보내고는 싶은데.. [설희]누나와 꼭 붙어서 큰집 잡일에 여념이
없는 [민서]누나와는 시간이 좀처럼 나지가 않았다.
점심을 먹고난 후 [설희]누나는 손불로 시집간 친구네 집으로 놀러간다며 큰집을 나섰고
나는 건넌방에 쳐박혀서 하는일 없이 따분한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민서]누나가 들어왔다.
"으휴... 춥다.... 우리 희준이 뭐더냐??..."
"............."
"왜야??.... 우리.. 쭈니.. 또.. 워쩐일로 골나부렀쓰야??..."
"...으..차가!!... 저러가..."
[민서]누나가 느닷없이 내옆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장난을 치려한다.
"으흐흐....."
"아...... 차갑다니까....!!..."
[민서]누나의 차가운 두손을 반강제로 맞잡게 되는 순간..
나의 의기소침했던 모든 기분이 한방에 사그라져 가는 듯 한 신비스러움이 느껴졌다.
"누우.. 큰집일 쪼까 도와주느라.. 바빴는디.. 인자는 다 끝나부렀어..."
"..............."
"인자는 우리 쭈니랑.. 같이 있을께라....."
"..............."
어느덧.. 이불속.. 내 무릅위에 머리를 기대어 눕는 [민서]누나의 검은 머릿결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민서]누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우리 쭈니.. 따뜻하다..."
"..............."
"우리 쭈니가...재준이.. 그눔 헛소리에다.. 누야가 바쁜데다가... 많이 서운했는게라??.."
"훗........."
얼굴만 이불밖으로 빼꼽 내놓은채.. 내 무릅을 배고 누운 [민서]누나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실업계 위탁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민서]누나나 부모님께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던 나였기에.. 내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열등감, 그리고 왠지 모를 자격지심까지..
복잡하기만 한 지금의 심경에 다시.. 의기소침해 지고 있다.
"왜야??....."
"..........."
[민서]누나가 누운채 내 얼굴을 살피고 있다.
뜸을 들이다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공부하기도 어렵고.. 대학갈까 걱정도 되고.. 이제 고3되니까..."
"..............."
[민서]누나가 따스한 손길을 보내 [민서]누나의 머릿결을 쓰다듬던 내손을 슬며시 잡아
어루만지며 나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걱정이야.. 걱정.. 안하던 공부하려니까.. 아무것도 모르겠고... 푸후...."
"...걱정하지마 야?...."
"....훗...."
"누우가 있응께.. 우리 쭈니 대학가라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해 줄라니께...."
[민서]누나의 짙은 눈썹과 아름다운 눈을 바라다 보고 있다.
[민서]누나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나에게 점점 더 파고 든다.
"아... 우리 쭈니랑 있응게 너무 따뜻하고 좋아 디저블겠다아... 후으음... 졸려..."
"............."
"언니 손불가불고 큰어매큰아배 학산 잔칫집 가불고..큰집에 지금 아무도 없는디..."
"..그래????............."
[민서]누나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크게 대답이 나왔고.. [민서]누나는 감긴 두눈을
지그시 뜨며.. 미소를 짓는다.
"워매??.. 뭘 그리 놀란다냐??... 방금전만 해도.. 찍소리도 않고 조용하던 놈이...??.."
"하하.... 우리 써니랑 둘이 있는거 아냐???... 지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없는 큰집에 이렇게 [민서]누나와 단둘이 있다는 것..
어제와 오늘.. 여지껏 느껴왔던 내 자신의 정체성과 열등감때문에 시달렸던 모든 스트레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머리에서 지워져 버린것이었다.
"일루와봐... 우리 써니... 뽀뽀부터.. 좀 해 보자...!!..."
"히히...아악!!!!!.........."
강제로 [민서]누나의 입술을 찾으려 하자.. [민서]누나가 이불을 끌어당겨 나를 막으려 한다.
"으흐흐흐... 우리 써니.. 찌찌.. 얼마나 더 컸나.. 쫌 만져봐야지... 일루와..!!..."
"으하하...꺄악!!!!!......."
[민서]누나와의 잠깐의 실랑이..
하지만.. 어느덧.. 지그시 두눈을 감고.. 길다란 두팔로 내 목을 감는 [민서]누나의 얼굴로
내 입술이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