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27)

그냥.. 알 수는 없었다.

어느덧.. 잠결에 맑은 바깥공기가 주는 신선함에 눈을 뜨니

차창밖으로 큰집 앞마당이 보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에서 내리신다.

동생 [현준]이 녀석을 깨워 함께 밖으로 나가니.. 밭일을 하시던 큰어머니가 우리를 반기신다.

"흐미... 욕봐부렀지라..."

"형님..잘지내셨어요...."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툇마루에 새까만 피부에 깡마른 노인이 앉아있다.

"큰아빠.. 안녕하셨어요????..."

".............."

큰집 툇마루에 앉아 대낮부터 약주를 하시던 큰아버지께서 나를 한참동안이나

뚫어져라 바라보시더니 한마디를 내던지신다.

"여어... 희준이다냐??.... 짜석.. 많이 커뿌렀네에..."

"하하... 네에.. 그동안 건강하셨구요???...."

"하하..건강은..다늙어서...무신.." 

큰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보다 10살이나 연세가 많으시다.

큰고모와 큰아버지, 둘째고모.. 셋째고모.. 우리아버지..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막내 고모..

할머니의 형제들은 7남매였다.

"당최 몸이 성치않어서 말이여..니성덜..장가가 뿌리믄 이제 나도 뒈질 나이제...."

"앗따.. 성님.. 뭔 말씀을 그라게 서운하게 허요??..."

"여어.. 동석이 왔는감??... 새끼덜 데리고 먼길 오느라 욕봐부렀구마..."

"성님은 대낮부터..뭔놈의 술이요??...형수님!!.. 여그 쪼까.. 잔 하나 추가해야 쓰겄는디요.."

아버지는 오시자마자 큰아버지의 술친구가 되어 주신다.

큰어머니가 꼬추가 담긴 소쿠리에 들고 들어오신다.

그때였다.

"야!!.. 민서야!!...뭣허냐??... 희준이네 왔는데.. 싸게나와 인사혀야지..."

".......!!!!!!!!!!!!!!!!.........."

지금 내귀로 듣고도 믿겨지지 않는다.

부엌쪽.. 

왠... 늘씬한 미녀가.. 문을 열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걸어나온다.

"뭐시여??... 야가... 여기 어쩐일이여???..."

"어쩌긴..뭐가 어쪄??.. 김가네 새끼들이 본가에 인사도 못오남???.."

화들짝 놀래시는 아버지의 옆에서서.. 나역시 놀랜 얼굴로 [민서]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들... 하셨어라??..."

"....어.. 그려그려... 민서.. 핫..하하... 재준이는 안오고..????.."

"네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민서]누나..

나와 잠깐이었지만.. 두눈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어깨아래까지 기른 검고 길다란 생머리..

하얀 셔츠에 타이트한 청바지차림의 [민서]누나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느그 어머니는 잘 계시고???...."

"네에..."

뒤늦게 큰집문으로 들어오는 [현준]이 녀석이 [민서]누나를 보고 깜짝.. 놀랜다.

"와아!!... 민서누나???..."

"호호... 응..."

나와 [민서]누나는 반갑다는 말 대신.. 서로의 두 눈만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왠지.. 가슴속.. 잔잔한 바다... 저멀리...

아주 먼곳에서..

작은 한점이.. 

바다에 떨어진다.

그 점이.. 잔잔한 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퍼지고..

그 물결이.. 점점 더 큰 너울이 되고..

그러다 파도가 되어.. 나에게 덮쳐오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천천히.. 대문밖으로.. 나와버렸다.

방금.. 내안에서의..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이었다.

'아.. 씨바... 담배나 하나 펴야겠다...'

그때였다.

[민서]누나가 대문 밖으로 나오더니 방긋 웃으며 나에게 걸어온다.

여전히 부담스럽게 커다랗고 아름다운 두눈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온다.

"아야.. 니는 누보고 아는체도 안해야??..."

"..........."

"히야아...희준이..거시기하게 커부렀네??.... 디져블게..."

[부드드드..... 부드드드.....]

"에이.. 아빠....이거 잘 안돼..."

"한번에 기일..게 당기라니까!!...."

[부르릉...부다다다다다!!!!!!!!.....]

예초기가 힘차게 울어댄다.

"돌튀니께.. 니네는 쩌그..저쪽가서 해..!!..."

"어...."

"벌 조심혀고....."

"응...."

아버지와 [현준]이 녀석과 함께 큰집 뒷산의 조상묘와 몇해전 새로 생긴 할머니의 묘를

벌초하고 있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밀집모자를 눌러쓴 아버지가 예초기로 무성하게 자란 잡풀들을

그야말로 초토화 시켜버리고 있다.

나와 [현준]이는 그저 낫이랑 갈퀴하나씩을 손에 들고.. 멀찌감치에서 어슬렁 거리기만

할 뿐 딱히 벌초를 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저멀리 큰집이 보이고.. 고추밭이 보이고.. [민서]누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소나무언덕이

보인다.

아버지의 예초기가 지난 자리.. 나와 [현준]이가 낫과 갈퀴로 베어진 잡풀들을

끌어모아.. 묘소 주변으로 내다 버리고.. 새로 이발을 한듯해 보이는 스포츠 

머리의 산소앞에 신문지를 깔고 챙겨온 간단한 제수용품을 놓는다.

"아빠.. 근데.. 이 산소에 계신 분은 누구야??.."

".. 느그네 할배..."

"우리 할아버지가 도대체 몇명이야???...."

"..할아버지가 있고.. 그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들도 있고.."

"그래서 누구냐니까??..."

"몰러..... 하여간에 조상님이니께.. 깔끔하게 해드려야 하는거여.." 

아버지가 쇠주를 한잔 따라 놓으시고.. 우리 셋이 산소에다 큰절을 한다.

뒷산쪽 벌초가 끝났다.

옆동네와 앞산쪽은 내일 사촌형들이 오면 함께 할 계획이다.

농기구를 챙겨들고 아버지를 따라 하산을 하다가 [민서]누나와 사랑을 나눴던 

소나무언덕이 다가올 때 쯔음이었다.

먼발치 앞서 가시던 아버지가 고추밭을 보고 입을 여신다.

"민서.. 여서 뭐더냐??.."

"네.. 고추 따고 있어라..."

'..........'

아버지쪽으로 빠른걸음으로 ?아갔다.

[민서]누나가 고추밭에 있다.

아버지가 농기구를 챙겨 받으시며 고추밭에서 [민서]누나를 도우라고 하시고

투덜대는 [현준]이 녀석은 아버지를 따라 큰집으로 가버렸고.. 나혼자 [민서]누나의

일을 돕고 있다.

[민서]누나와 단 둘만 있게 된 것이다.

"익은거 따면 되는거야???..."

"일 다 했어.. 그냥.. 구경이나 해..."

[민서]누나를 바라보고 있다.

허리를 숙이고 검고 긴 생머리를 귀뒤로 넘기며 가늘고 길다란 하얀 손을 쭉 뻗어 고추를

따고 있다..

까마잡잡했던 피부는 이제 온데간데 없다.

가을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누나의 하얀 피부에 반짝거린다.

"그거.. 줘봐.. 내가 들고 있을께..."

"..........."

[민서]누나가 들고 있던 작은 소쿠리를 나에게 건넨다.

소쿠리 안에는 누나가 딴 파란 고추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니 요즘에.. 사고 많이 쳤다고라....."

"사고는 무슨??...."

"걱정이다.. 걱정.. 재준이눔도 못된것만 배워서.. 싹쑤가 노렇고..."

"재준이는 집에 왔고??.."

"몰라.. 집나가서 광주로 갔다는디...에효.. 그 야긴 그만 허자.." 

얼핏 들은 얘기로는 중3인 [재준]이 녀석은 절도와 폭행으로 소년원에도 몇번 들락 거린

문자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민서]누나의 고추밭일이 끝나고.. 함께.. 고추밭을 걸어 나오고 있다.

"누나.. 먼저 들어가.."

"니..뭐덜라고???....."

"그냥.. 쫌 있다가 들어가려고.."

"훗.... 담배 하나 땡길라고 그라냐???..."

"하하.... 어떻게 알았어.."

"그냥 여서 피워... 어른덜 없으니께...."

[민서]누나와 사랑을 나눴던 소나무 아래의 언덕쪽으로 향했다.

[민서]누나가 천천히 따라온다.

"누나는 그럼 언제 미용사 되는거야??..."

"멀었어야... 인자 학원서 공부허고 실습허는디..."

"누나랑 적성에 맞는것 같애?..."

"응... 재밌어라.. 같이 학원댕기는 친구들도 많고.." 

소나무 아래.. 잔디밭에 앉았다.

[민서]누나가 내 옆에 소쿠리를 내려놓고 쪼그려 앉는다..

지난날.. 여기서 [민서]누나와 나눴던 진한 스킨쉽.. 그리고 섹스..

그 아찔한 첫경험의 장소..

문득.. 그 장소에 지금 단 둘이 있다보니.. 방금전과는 달리 어색함이 느껴진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타를 땡긴다.

점심을 먹고 기회가 없어서 여지껏 피워보지 못한 담배라..그런지.. 꿀맛같다.

"공부 잘혀어.. 때 지나고 나믄 후회해도 소용없당께라..."

"..이제는 그럴려구......."

"훗... 근디.. 뭘 먹어서 키가 그렇게 컷부렀냐??..."

"누나도 키가 더 큰것 같애..."

"나??? 아녀.. 중삼때.. 그때 키에서 이센티 정도만 크고 말았어야.."

"얼굴이랑 피부는 진짜 많이 하얘졌다.."

"피부???... 누우 피부 원래.. 안이랬냐..."

"에에... 원래..새 까맸거던요????....."

"뭔소리다냐??.. 누우 피부 원래.. 쌔하R는디??..."

"원래..까맸지.. 내가 피부 때문에 맨날 놀리고...누나가 내배위에 올라타서.. 

자기 이쁘다고 말하라고..협박하고..괴롭히고... 기억안나??.."

"글씨... 뭔소린지 모르겄다??..."

"우와!!... 어떻게 얼굴표정 하나 안바뀌고..!!!!... 이씨.. 옛날 사진 보여줘???..."

[민서]누나가 태연스레 거짓말을 하더니 그제서야.. 환하게 웃어보인다.

"히히... 그래서.. 인자는 누우 이뻐야???..."

"글쎄??... 그때 보다는 괜찮긴 한데... 하하..!!.. 근데.. 그 때는 진짜 까맸어..."

자기가 이쁘냐고 물어보는 [민서]누나의 질문..

그 아름다운 두눈망울의 물음에.. 순간 당혹스럽고 알수없는 지금의 내 감정을

숨기기위해 애써 말을 돌려댔다. 

"훗...."

"진짜.. 그 때는 거의 흑인이였지..."

"뭐???????.... 이씨이!!!....."

"하하.... 장난이야...."

[민서]누나가 주먹을 쥐고 내 어깨를 가격한다.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고 웃음을 머금은 표정은 여전히 아름답다.

코는 좀 낮은편이지만.. 촌스러울 정도로 짙은 눈썹과 커다란 쌍거풀의 두눈의

매력은 바라보고 있으면 있을 수록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의 빼어난 미모이다.

"담배 다 피웠으면.. 싸게 들어가블자....."

"그냥.. 더 있다갈래... 안에 들어가봤자..뭐 난 할것도 없는데.."

"조옷컷다....누우는 저녁준비도 허고 이일저일 해야허니께 내려 갈란다..."

"..........."

[민서]누나가 일어났다.

곧게 뻗은 두다리..

아름다운 히프의 라인....

[민서]누나가 걸어 내려간다.

길다란 기럭지의 두다리로 고추밭 고랑을 엉거주춤..지나 큰집 담벼락쪽으로 내려간다. 

[민서]누나...

너무 이쁜 [민서]누나..

소나무 아래.. 그렇게 앉아서 [민서]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뒤로 벌러덩..누웠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이 한들 거린다.

내일점심때 목포로 갈꺼라는 [민서]누나..

오래전처럼.. [민서]누나의 몸을 탐하고 싶은 철없는 행동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 그럴것 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때는 내가 철이 없듯이.. [민서]누나도 철이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에 서로 그런 사고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내일 가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민서]누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한 기분이 든다. 

그날저녁..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와 [현준]이.. [민서]누나는 큰집 앞마당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다.

[취히이익.....]

큰집의 큰형이 드럼통 반을 날리고 다리를 세워 만든 바베큐다이위에 그릴을 얹고

장작을 태워만든 숯불위.. 삼겹살들이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다.

"콜록콜록... 에이.. 연기가 나쪽으로만 와..."

"벌써 뒤집는거 아닝게라.. 누우가 할께.. 이리줘봐.."

어머니가 방금 밭에서 따온 싱싱한 상추와 깻잎.. 마늘을 씻어가지고 오신다.

상추와 깻잎위에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하나 얹고 쌈장을 듬뿍찍은 생마늘을 하나 얹어

입안에 넣는다.

숯불로 구워만든 삼겹살이라 그런지.. 기가막힌 맛이다.

[민서]누나가 접시위에 익은 삼겹살들을 수북히 담아 어른들의 밥상으로 가져간다.

"히야아.. 죽인다... 우걱우걱.."

"형.. 이건 내꺼야!!... 내가 구웠단 말이야..."

"짜식이.. 그냥.. 막 먹는거지.. 니꺼내꺼가 어딨냐???..."

"에이.... 누나가 익은건 다 가져가고.... 내가 익힌거는 형이 먹어버리고..."

"흐이그... 삼겹살 많으니께.. 걱정허덜 말고 실컷 먹어부러..... 알L냐???...."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이.. 금새 새까만 밤하늘로 변해있었고

큰집앞에서의 삼겹살 파티도 이제는 파장분위기이다.

[민서]누나가 부엌을 들락거리며 접시들을 치우고 있을 때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밥상

아래에 있는 쇠주 한병과 쇠주잔 한개를 슬쩍 챙겼다.

아까부터.. 너무나 마시고 싶었던 쇠주였다.

비록 삼겹살 파티는 끝이 났지만.. 지금이라도 좀 마시고.. 푹 자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을 헤치고.. 꼬추밭 고랑을 조심스레 넘어 소나무언덕으로 향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쇠주병 뚜껑을 라이터로 재낀다.

깜깜한 하늘과 어슴푸레한 달빛..

어둠이 제법 눈에 익는다.

"쭈욱... 크하아...!!!...."

주머니에서 포도 한송이를 꺼내넣고.. 안주로 삼는다.

"쩝쩝쩝....."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불을 붙힌다.

큰집쪽에서 나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담배를 끄고 잽싸게 내려갈까.. 하다가 그냥 있기로 했다.

지금의 이 자유스러움을 실컷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쇠주잔 하나를 또 한번 입에 털어넣고 있을 때 쯤.. 어둠속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게 보인다.

"니.. 거기서 뭐허냐??? 또 담배냐??..."

'김민서??....'

쇠주병과 쇠주잔을 숨킬까 어쩔까 하다가 그냥.. 비워진 잔에 조심스레 쇠주를 따러 붓는다.

[민서]누나가 내 옆에 앉더니.. 쇠주병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핫...하하... 참.. 징해불구마이... 역쉬.... 역시 희준이여..."

"하하... 누나도 한잔 해볼래??..."

"흐미... 속아프게 안주도 없이... 이게 다 뭐다냐...."

"여기 있잖아.. 포도..."

"누우가 전을 좀 챙겨올랑게.. 딱 요것만 마시는거여.. 알겄냐??..."

"오우..땡큐!!..."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거시... 담배에다.. 쇠주에다... 진짜.. 징허다..징해..."

".........."

의외였다.

분명.. 잔소리에.. 협박에.. 윽박지를 줄 알았는데.. 안주까지 챙겨주려하다니..

[민서]누나와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오붓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민서]누나가 쇠주를 홀짝 마시고 빈잔을 손에 든채.. 큰눈을 찡그리더니.. 안주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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