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사성군단보다 더 높은 조직이며, 동시에 무림맹 소속의 모든 무력단체의 통솔권을 지닌 새로운 무력단체의 이름은 '파천군'이었다.
이름대로, 작명의 배경에는 태수가 크게 작용했다.
"자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긴 했지만, '파천군'이라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뭐,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허허- 뭐, 자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내가 딱히 할 말은 없네-"
이계 괴물 침공을 막기 위해 무림맹 차원에서 파천군이 설립된 이후, 태수는 파천군의 대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곧 바로 취임식이 진행되었고, 그 뒷풀이로 무림맹의 수뇌부들과 함께 기루에 왔다.
자리에 앉는 가운데, 맹주는 개인적으로 태수를 자신의 앞에 앉게 해 서로 마주 보게끔 했다.
그의 의도는 단순했다.
태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하고는 그닥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이계 침공 때 자신의 딸을 태수와 함께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제는 파천군의 대장군, 대장군으로 불러야 하는 건가? 하하-"
"편할대로 부르시지요, 맹주님"
맹주의 말대로, 무림맹 내에 태수의 직책이 따로 없었다.
보통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의 중진들은 무림맹 내에 직책을 두어 겸업을 하고 있는 형태였다.
이제는 태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겸업을 하는 형태로 무림맹 내에 따로 직책을 두게 되었다.
"대장군, 그런데 이번에 우리 딸과 함께 작전지역을 가지 않았나? 우리 지화는 어떻던가?"
"흐음-"
맹주의 모양새가 꼭 자식의 칭찬을 바라는 팔불출과도 비슷했다.
조금 올라간 입꼬리와 기대를 하는 듯한 눈빛이 그 증거였다.
"예쁘더군요. 그러나,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지화가 매력이 없다는 말인가?"
위지운이 이렇게 당황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 정도로, 태수가 위지화를 그닥 매력있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뇨, 매력은 있습니다만. 그닥 친해지질 않아서-"
"그렇군. 우리 지화가 사교성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그거, 댁들이 다 그렇게 교육시켜서 그런 것 아니야'
태수는 전에 보았던 위지화의 모습을 떠올렸다.
풋풋하고 말이 없는 요조숙녀와도 같은 모습.
그런 성격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섬서 위가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자란 영향도 매우 클 것이었다.
위지운이 태수의 말에 충격을 먹은 사이, 맹주 옆에 있던 위지욱이 태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대장군. 백호군단장, 위지욱입니다."
"아, 뭐 그렇게까지-"
"아닙니다, 무림맹은 철저히 무공과 계급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이른 바, 무림맹도 군대와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나이 차이가 삼촌과 조카였지만 그럼에도 위지욱은 공손한 태도로 태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뒷풀이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성군단장들과 그들을 다스릴 태수와의 만남이었다.
앞으로 무림맹의 일을 해결하는 데 있어, 이들의 관계가 중요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석 자리를 따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아우는 좀 어떠한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후훗, 알잖나."
툭툭-
위지운은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위지욱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친형제라 허물없이 지낸 덕분인지, 위지운의 손짓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마치, 동생을 놀리는 형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질문의 의도를 깨달은 위지욱은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사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결혼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연이 있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거면, 됐습니다"
"하하-"
맹주에게 대하는 태도치고는 다소, 무례했지만 이에 대해 뭐라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친형제 관계에 대해 뭐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맹주가 그렇게 동생을 놀리며, 웃고 있는 사이 조금 멀리 앉아 있던 무가희는 태수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언제 태수 공자님과 친해질 수 있을까-'
곧 있으면 각 문파 지부로 복귀할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녀는 그 이전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태수와 함께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색녀色女나 다름없는 무가희는 하루라도 남자와 교접을 하지 않으면, 그곳에 거미줄이 쳐질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특히, 태수처럼 교접을 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더욱 더 그러했다.
"저도 인사드릴게요, 청룡군단장 청성파의 운우혜라고 해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현무군단장 개방의 산개라고 합니다."
"주작군단장, 해남파의 하운이라고 합니다."
백호군단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성군단장들의 형식적인 인사가 시작되었다.
태수는 그들의 공손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파천회의 대장군, 태수라고 합니다. 뭐, 갑자기 상관이 한 명 더 생기는 탓에, 기분이 안 좋은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런 분은 나중에, 뒤에서 한 번 주먹다짐이라도 합시다. 깔끔하게-"
하하-
태수의 능청스러운 말에, 맹주를 비롯한 사람들이 웃고 있는 가운데 결코 표정이 밝지 않은 남자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바로 주작군단장의 하운으로, 해남파 대표 하진의 동생이기도 했다.
며칠 전, 하운은 회의장에서 자신의 형, 하진을 대하는 태수의 건방진 태도를 보고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봉조극의 고수?
솔직한 심정으로, 그것 역시 잘 믿기지 않았다.
듣기로는, 초식 한 번에 괴물 수백여 마리가 죽어나갔다고 하는데, 솔직히 웃기는 말이었다.
강기공으로 그 정도의 숫자를 한꺼번에 죽인다고?
그것은 상식 밖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의 이러한 감정들은 근본적으로 태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컸다.
형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태수의 말대로 갑자기 나타나서는 상관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무려, 나이 차이도 스무살.
오히려, 자신을 제외하고 태수에게 그닥 반감을 보이지 않는 나머지 사성군단장들이 오히려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하운이 표정을 굳히고 있는 사이, 태수는 운우혜가 운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반색하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청성파의 운임과 관련이 있습니까?"
"아, 네. 제 친오라버니세요-"
'역시-'
운우혜의 외모는 대략 삼십 대로 보였지만, 실은 40대 중후반에 가까운 나이일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오라버니는, 청성파의 운임으로 과거 무가희와 광야와 함께 단란주점에서 같이 사교 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다.
'잘 나가는 문파의 대표의 친인척들이 대부분 사성군단장을 맡고 있구나-'
역시 그랬다.
사성군단장의 직책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밑으로 수백, 수천의 고수들을 부릴 수 있는 위치였기에 무력의 핵심이기도 했다.
현재 화산파, 청성파, 개방, 종남파.
이 넷이 사성군단장을 배출해내고 있으며, 그 능력을 검증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대장군, 광풍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방 문주인 진개의 형입니다."
"아, 그렇군요-"
태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관계가 복잡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한다리만 거치면, 다 알고 있는 사이가 튀어나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말을 하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았다.
'후우'
게다가, 지금 자리하고 있는 이들의 나이도 상당히 많았다.
사성군단장들은 대부분 무림맹의 중진들로, 기본으로 40대가 넘었으며 많은 사람은 50대 중후반이기도 했다.
세대 차이라고 할까, 자리가 많이 부담스러웠다.
맹주, 위지운은 태수의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자리를 내어 따로 태수를 불렀다.
"후훗, 대장군은 자리가 좀 답답한가?"
"뭐, 그렇네요."
"후후, 그 자리가 상당히 무거울게야. 밑으로는 다 무림맹에 오랫동안 연을 쌓아온 중진들이고. 뭐 그래도, 자네의 무력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고개를 자연스레 조아리게 될테지-"
"흐음-"
슥-
툭툭-
위지운은 힘내라는 듯, 태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 시국에 자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그럼 좀 괜찮아지면, 다시 자리하게나-"
"알겠습니다, 맹주님"
그러고는 이내, 맹주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태수는 시야에 사라진 맹주의 등을 보며, 기척을 지우고는 순식간에 기루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꺄흣-!?"
"조용히 해, 우화린-"
태수는 조교의 방을 생성해, 우화린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가, 갑자기 왜?"
그녀의 몸과 동공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다.
탁-
놀람에 뒤로 넘어진 그녀는 주춤주춤 물러나, 불안한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태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상교는 도대체 언제 움직일지 궁금해서 말이지-"
태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뱀과 같은 눈빛으로 우화린을 노려보았다.
"너는 맹주의 비밀호위라 했지. 맹주의 비밀호위나 되는 사람이, 천상교의 일반 교인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스윽-
의심하는 듯한 태수의 태도에 그녀는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왜. 같잖은 저항이라도 해보려고?"
태수는 시덥잖은 눈빛으로 기세를 한창 끌어올리고 있는 우화린을 바라보았다.
과거 거미의 초감각으로 확인해본 결과, 그녀가 초절정고수란 건,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대도 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을텐데 무턱대고 덤비려는 수작이 우습기만 했다.
"후훗, 상대도 되지- 응?"
"나약한 인간 주제에 말이 많구나-"
갑자기,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심한 듯한 모습은 어디가고, 거만한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이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그건 무슨 말이지? 어떻게 이 아이의 모습을 알 수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겠지."
'잠시만-'
태수는 무언가 이상하게 일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것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단순히 재수없게 행동하는 우화린의 태도가 아니었다.
마치, 그녀의 몸에 다른 인격이 주입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나?
"너는 누구지? 너는 내가 알던 우화린이 아니다."
"이 아이의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지. 그리고, 뭐 너는 나한테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을 운명이니 이름 정도는 들려줘도 되겠지. 나는 라인하트 차원의 ll위계 여신, 플라모르라고 한다."
'자, 잠시만-'
이거 설정이 왜 이래?
밤꽃무림 제작진들! 댁들이 정말 이런 설정 넣은 것 맞아?
태수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우화린의 몸에 빙의한 플라모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는 태수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인간의 몸에 빙의해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었지만 나약한 인간이니 그 위세에 짓눌려 겁에 질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무협 세계가 아니잖아. 무려, 다른 차원의 여신이 언급되고 있다고-'
"후훗, 그렇게 겁 먹어도 네가 이곳에서 죽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그러게, 왜 그렇게 프로비타 차원의 자원화 계획에 깊게 알려들려고 했나? 그게 바로 네 죽음을 자초했다-"
'프로비타 차원의 자원화 계획?'
알 수 없는 말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여신-
밤꽃무림 세계의 Monster Wave가 구체적으로 왜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요주의 인물일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밤꽃무림 제작진들의 의도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원래는 단순히 Monster Wave만 막아내면, 아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힘을 모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이 이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스토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천히 생각해보자, 분명 돌파구는 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들 역시 밤꽃무림 제작진들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Npc에 불과해. 이들 역시, 밤꽃무림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지. 뭐 신으로서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곳 상당히 덥구나, 후욱-"
플라모르는 조교의 방 안이 더운 듯, 우화린이 입고 있는 옷의 가슴 부분을 손으로 여러번 들어올리며 통풍이 되게끔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도, 도대체 왜-"
"후훗, 신이라고 역시 그 섭리에 벗어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인간, 그게 무슨 말이지-?"
태수의 페이스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플라모르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뭐, 신 본체를 상대로는 이길 자신이 없겠지만, 네 말대로 나약한 인간에 빙의한 너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후의 내 성생활을 방해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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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되는 상대, 라인하트 차원의 ll위계 여신 플라모르(우화린)
"나약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와 싸우자는 것인가?"
까닥까닥-
태수는 '악의 심판자' 특성이 발휘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어서 들어오라는 듯 손가락으로 까닥까닥- 그녀를 도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