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이계 괴물의 부산물은 기존의 재료와 격이 달랐다.
그들의 뼈 혹은 이빨은 검신의 재료료서 매우 훌륭했다.
흑철, 현철처럼 고급 철보다도 단단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내공 전도성이 뛰어났다.
내內가 고수일수록, 중요한 것은 들고 있는 무기의 내공 전도성이다.
내공 전도성이 좋지 않으면, 뛰어난 내가 고수라 해도 내공을 무기에 담을 수 없기에 검기든, 검강이든 비효율적이게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계 괴물의 부산물은 이상할 정도로 내공 전도성이 뛰어났다.
사람들은 그런 특성을 하늘, 즉 이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확실히, 재료가 좋긴 해-"
중앙상단의 장인이 만든 무도구를 샘플로 총관에게 건네주고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곧 있으면, 중앙상단으로 대형마차들이 계속해서 오고 갈 것이다.
이제 중앙상단도 대형 시장의 흐름에 발을 들이딛는 순간이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속 질 좋은 재료가 리뉴얼된다는 것이지. Wave가 올라갈수록-"
"혼자, 무슨 생각하고 있소."
계약을 마친 태수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광야는 넌지시 물었다.
이에, 태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별 것 없다."
"태수 형, 이제 와서 뭔 비밀에 쌓인 은둔고수 흉내를 내고 있소. 우리 사이에-"
"정말, 별 것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흐음- 이제, 곧 무림맹 회의, 표결이 시작될 것이오"
광야의 말대로, 무림맹의 마지막 일정이나 다름없는 회의 및 표결이 곧 시작될 것이다.
"그래, 가자."
표국 계약 건에 관해, 일을 다 마친 둘은 무림맹 본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홍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주홍희가 천마신교를 떠나, 광서지부의 무림대회를 간 지도 대략 한 달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십만대산과 광서의 거리를 생각하면, 오고 가는 데에만 십여 일이 걸렸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그녀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회의장에서 말없이 가만히 있던, 천마가 대뜸 그렇게 묻자 회의석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뇌마腦魔가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게, 일순 표정을 굳히더니 감추고는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수행원의 말로는, 무림 특히 광서가 마음에 드신 것 같으시더군요."
"뇌마, 자네는 그게 지금 홍희가 일정대로 돌아오지 않는 합리적인 이유라 생각하는가?"
"그건 아닙니다만은-"
쾅-!
천마, 주진악은 무표정에서 갑작스레 노한 표정을 짓고는, 회의장의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기氣같은 것은 전혀 싣지 않았고, 탁자도 단순한 나무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기묘한 것은, 그렇게 천마가 격정을 냈음에도 회의장에 참석한 칠마七魔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삼三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원래 천마는 저런 인간이다'라는 걸 알고 있듯,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놓는 답이 겨우 그것 밖에 되질 않느냐. 뇌마, 자네는 천마신교의 지략을 담당하는 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송구하옵니다, 교주님."
"홍희에게 돌아오라는 명령을 분명 했을텐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더냐."
"천마신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푸흐흡-"
크큭-
푸핫-!
푸하하하하-!
회의장 안을 울리는 천마의 광기에 차오른 웃음소리에, 천마신교의 수뇌부들은 그저 정면을 바라본 채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경박하게 웃었던 주진악은 만면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내 사랑스러운 딸이 사춘기를 겪고 있나 보구나."
저음으로 지독하게 깔린 천마의 말에 수뇌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천마가 어느 순간 미치광이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 했으나, 워낙 고집도 세고 말도 듣지 않는 탓에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 힘이 제일 강했고, 미치광이가 된 이후로는 더욱 강해졌기 때문에 힘의 논리로서도 반격의 기회를 삼을 수 없었다.
게다가, 천마신교는 강자생존이면서도 순혈주의가 굉장히 강조되었기 때문에 대대로 순혈인 천마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 매우 껄끄러웠다.
"뇌마,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신마냥 꿀벙어리가 된 채로, 입을 닫고 있지 말고 해결방안을 제시해라-"
"······."
뇌마, 성무준은 천마의 말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 자리는 단순히, 천마의 딸인 주홍희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다.
청해에서 일어난 Level4의 이계 침공은 확실히 위협적이었고, 이것이 천마신교가 자리잡고 있는 신강, 혹은 십만대산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그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였었다.
교주는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조차 없다가, 갑자기 대뜸 친딸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자신한테 묻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물론,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게 위로사항이 될 수 있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뇌마의 낯빛이 일순, 어두워졌다가 삽시간에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 사이, 뇌마는 어떻게 대답할지 이미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 후였다.
"교주님, 원래 이 자리는 이계 침공에 관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만은, 각설하고 교주님의 딸을 핑계로 정사무림을 다시 한 번 정복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때를 보아 이계 침공으로 무림 전역이 휩싸일 때, 정사무림에 발을 들여다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
이번에는 뇌마의 말에, 천마가 잠시 침묵했다.
저 대답이 동문서답인지, 우문현답인지는 곧 두고 보면 될 일이었다.
뇌마를 보는 천마의 눈빛이 오묘했다.
'이것 보게?'라는 마음이 담겨있달까.
뇌마를 제외한 천마신교의 수뇌부들은 그런 천마의 눈빛을 느끼며, 자칫 뇌마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천마는 정말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미치광이었으니까.
천마의 입에서 '츠읏-' 같은 기식음이 터져나왔다.
마치, 비웃는 듯한 소리같았다.
"뇌마, 자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감히, 내 딸을 핑계로? 내 딸을 핑계로 정사무림을 정복하자 이건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교주님. 사실, 정사무림을 침략하는 데에는 핑계 같은 건 필요없습니다. 조건만 갖춰지면 될 일이지요-"
천마는 뇌마의 대답에 그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한동안 노려보았다.
일반인이 아닌 경지에 오른 고수더라도 1초 이상 받아내지 못하는 천마의 시선을 뇌마는 담담히 받아냈다.
천마는 그런 뇌마의 당당함에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전마戰魔. 무림맹 광서지부로 갔다 와라. 가서, 홍희를 설득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강제로 데려와도 좋다-"
"······. 알겠습니다, 교주님"
전마, 성이설은 천마의 말에 한참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뇌마 성무준의 여동생으로 주홍희와 함께 작금, 천마신교의 제일미를 다투는 미녀였다.
유별나게도 그녀의 머리색은 은발이었고, 덕분에 은봉銀鳳이라는 별호가 그녀에게 붙었다.
전마.
전투의 마귀란 뜻을 갖고 있는 전마는, 역대 천마신교 역사상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 맡아왔었다.
이것은 이제 천마신교의 관습과도 같게 되었다.
역대 전마들과 주홍희의 관계는 굉장히 오묘했다.
주홍희는 여자를 사랑했고, 역대 전마들은 주홍희의 유혹에 금단의 길을 걷곤 했다.
과거, 천마에게 강간을 당하고 죽은 전마도 마찬가지였다.
주홍희는 전대 전마를 유혹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마는 천마에게 강간을 당하는 것과 동시에 죽임을 당했다.
그 이후, 전마를 이어받은 성이설은 이런 관계도를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딱히 주홍희와 접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공주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전대 전마가 주홍희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었다가, 천마에게 간살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그렇기에, 그녀는 천마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굳이 전마인 자신을 주홍희에게로 보냈는지-
천마가 뭘 노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고심하고 있는 사이, 전마의 맞은 편에 있던 검마劍魔가 입을 열었다.
검마, 신무술은 50대의 중년 남성으로 천마신교의 주력 세력가인 신가의 가주였다.
"본래 이 자리는 이계 침공에 대비해 마련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뭇, 진지한 듯한 태도의 검마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천마는 Level1~3 당시에는 이계 침공에 그닥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Level4 이후로 기공에 통하지 않는 괴물이 등장함으로서, 조금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강기공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애초에, 화경 고수가 천하에 오백인五百人이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천마신교라고 그 지분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을까.
위급한 것은, 정사무림만이 아니라 천마신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천마신교 내에 검마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천마신교의 정통이자 황실 핏줄인 주씨 가문을 제외하면 신가의 위세가 제일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알려진 배경과는 달리, 상관없다는 듯 천마의 행동은 그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이계 괴물 침공이라. 좋아, 그것도 좋지."
천마는 손으로 턱을 괴며, '자, 니들끼리 잘해봐라'라는 눈빛으로 회의장의 허공에 시선을 보냈다.
그런 천마의 태도에, 회의장에 참석한 천마신교의 수뇌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마신교라는 거대하고 위대한 국가와 종교를 지도하는 자로서, 저렇게 경망스러운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국가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모든 것이 천마 단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지닌 천마신교 내에서는 반발의 기치를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천마, 주진악의 실정 탓에, 그 견고한 벽에도 점점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비상령 선포에 찬성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반대에 표를 보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누구한테 함부로 맡길 수 있겠는가.
밥그릇은 자기 앞에 있어야,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그 이후로는, 각 문파 고수에 대한 차출 문제에 대한 표결 안건이 올라왔다.
"이계 괴물 침공을 막기 위해, 각 문파 고수를 차출할 필요성은 늘 있다. 사성군단만으로는 부족하고, 다 같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으니 사성군단 위에 상위 무력단체를 두고, 그 수장은 태수 대협으로 임명하겠다."
이 안건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 정도의 안건은 굳이 표결을 거치지 않더라도, 맹주가 본래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충분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시행하는 게 가능했다.
제한적인 부분이라함은, 각 문파의 고수를 차출하는 건 강제가 아니지만 차출하지 않은 문파는 훗날 이계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렇기에, 훗날 무림맹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이계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태수의 말에 따라 문파의 고수를 차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구만-'
태수는 여유롭게 표결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정사대전이 일어나고, 그걸 노린 천마신교의 침략에 의해 정사마무림이 한바탕 피의 혈겁으로 뒤덮히는 것이 속편했다.
그 중심에서 자신이 반드시 우뚝 서는 게 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을 다 끌어안고 가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이긴 해도-'
모든 사람을 살린다면, 훗날 높은 Level Monster Wave를 막는 것도 수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애초에, 파천회와 전혀 관련없는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피를 보지 않고서야, 파천회에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가자.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레 이들은 다 내 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어-'
Monster Wave의 Level이 높아질수록, 무림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더더욱 태수에게 의존하고, 기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기존의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피를 최대한 적게 흘리고 무림일통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렇기에, 태수는 이번에 활약으로 얻은 청사파의 표결수를 모두 사성군단 위에 새로운 무력단체를 만드는 것에 찬성했다.
비록, 신생문파였지만 표결수는 분기마다 초기화되었고, 이번에 청사파의 활약도는 엄청났기에 그 지분율이 굉장히 높았다.
무림맹 사람들도 이번 이계 침공에 관하여, 새로운 대안 체제가 필요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체제였다.
그 결과-
비상령 선포와는 달리, 거의 압도적인 지지로 무림맹 최고 무력단체인 사성군단보다 더 높은 무력단체를 만드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물론, 그 무력단체는 각 문파의 고수를 차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장으로 태수가 임명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