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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80/90)



〈 80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녀석, 무슨 말을 하려고-'

태수가 보기에, 광야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익힌 무공처럼 제어가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렇기에, 광야가 할 말이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괜한 소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제가 직접 쓴 사설수기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태수 대협은 실제로 강기공의 형태로, 괴물들을 한꺼번에 수백여 마리를 정확히 노려서 잡는 것이 가능하신 분입니다. 심지어, 정확도도 완벽합니다. 아군 사이에 괴물을 두고, 아주 정확하게 맞히시죠. 중요한 것은 그렇게 광범위한 초식을 운용했음에도, 절대로 지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술렁-

모든 사람들이 사설수기를 읽는 건 아니었지만, 사설수기를 읽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까지 포함하면, 광야가 적은 사설수기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마치 '공인'을 하듯 광야의 입에 직접 듣는 건 그 느낌이 색달랐다.


사설수기는 문체도 그렇고, 재미를 위해 조금 장난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 태수의 무력에 대해 설명하는 광야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보였다.

'흐음-'

태수는 듣고 있자니, 온갖 자신의 칭찬 일색에 조금 몸이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적당히란 게 있는데, 작정한 듯 아주 대놓고 칭찬하는 것이 아닌가.

"태수 형, 그렇지 않소? 내가 말한 것 중에, 다르거나 틀린 게 있으면 말씀해보시오"
"···. 없다."

저거, 정말 약이라도 했나.
광야의 입이 쉼없이 움직였다.
설득력을 얻기 위한 몸짓도 서슴치 않았다.


광야는 태수에게 확인을 받은 이후, '자, 어떻습니까?' 라는 듯한 몸짓을 취하며 무림맹의 대표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태수 대협의 무위를 직접 보신 사람이라면, 굳이 이 이상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태수 대협의 무위를 다들 아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 개방의 광야가 맹주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허락해주겠습니까, 맹주님?"

광야는 가슴을 피며 당당한 자세로, 시선을 맹주 위지운에게로 돌렸다.

광야가 말도 더듬지 않고, 회의장 안을 울리는 또렷한 발성으로 선언하듯 말을 잇자 맹주 위지운은, 광야의  잡은 연사에 속으로 피식- 웃다가도 결기가 느껴지는 듯해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광풍, 제안할 것이 무엇인가? 말해보게-"

맹주의 허락을 받은 광야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회의장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있을 이계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려면, 태수 대협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태수 대협이 없었다면, 많은 사상자가 일어났을 겁니다. 태수 대협 덕분에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죠. 그렇기에, 제안하겠습니다. 이계 침공 관련해서, 무림맹 소속으로 사성군단을 초월하는 무력단체를 만들고, 모든 전권을 일임하여  수장 자리에 태수 대협을 앉히는 겁니다. 그 권리에는 각 고수들을 각출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어떠한 이계 침공도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광야의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계엄령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랄까.

이계 침공에 대비해 각 문파의 고수들을 강제로라도 각출할 수 있는 권한.
이것은 맹주인 위지운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만약에, 이게 가능했다면 무림맹 소속 문파들의 대규모 반발이 일어나 무림맹의 연맹이 유지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광풍!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은 곧, 태수 대협이 이계 침공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이유로든 각 문파의 고수들을 강제로 각출할 수 있다는 뜻 아니오?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오? 우리가 무슨 사파무림도 아니고, 까라면 까는 게 맞소이까, 여러분-!?"


당연히, 주위에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파일방의 해남파 대표, 하진이 분개하며 자리에 일어서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최대한 호응을 얻으려고 했고 하진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맞았는지 그의 의견에 '옳소!'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하 대협. 하 대협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갑니다"


광야는 그런 반발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전혀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한 자세로 말을 치고 나갔다.


"그런데, 하 대협. 저, 광야는 하 대협에게 묻고 싶군요. 애초에, 무림맹은 왜 만들어졌습니까?"
"사파 녀석들에게 대응하기 위함이 아니오? 그 당시에는 힘을 뭉치지 않았으면, 우린 지금 사파무림에 먹혀 부자세습을 하는 남궁가주에게 통치를 받았어야 했소-"

하진이 말하는 '사파'란 정천맹을 뜻했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둘  정파무림에 속했지만 무림맹은 늘 자신이 유일한 '정正'이라 생각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사邪'로 매도하곤 했다.

심지어, 무림맹의 역사서에도 그리 표현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정천맹이 항의를 했으나 무림맹은 당연하다는 듯, 딱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천맹의 역사서에 무림맹을 '사邪'로 규정할 수 없었다.
괜히 무림맹의 신경을 거스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천맹은 이에 2인자의 서러움에 울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끼리 '정正'이라 규정하여, 자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잘 아시네요. 결국, 누군가에게 효율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무림맹 아닙니까?"
"그렇소. 정사대전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무림맹에게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소"
"푸흡-"

결연한 듯한 하진의 태도에 광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진은 자신을 명백히 무시하는 광야의 태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광풍, 지금 나를-"
"하 대협, 들어보시오. 지금 이계 침공 상황과 정사대전. 이  가지를 비교해보시오. 어느 상황이 더 위중하고, 급하오?"
"그, 그건-"


하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전자가 더 막중하고 위급했다.
들리는 말로는, 태수가 없었다면 막중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이계 침공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더 강하게, 계속.

"하 대협도 그렇고,  대협에 찬동한 분들도 그렇고.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정사무림을 포함하여, 사마외도 모두의 운명이 달려있는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제 말이 말 같지 않으신 분들은 뭐, 태수 대협의 각출을 거부하셔도 됩니다. 다만, 당신들 지역이 이계 침공 지역으로 선정되었을 때, 도움은 없을 겁니다-!"


-술렁

선언하는 듯한 광야의 말에 회의장 안이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특히, Level4 이계 침공을 경험해본 이들은 태수가 없이 이계 침공은 절대로 막을 수 없다며  목소리로 주장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가운데, 맹주는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뭣도 안되는 상황이 되고만다.

무엇보다, 광야.
광풍은 자신의 역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정작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있었다.

"잠시 조용-!"


탕-!

위지운이 망치를 두드리며, 회의장 안의 분위기를 가라앉게끔 했다.
그들 역시 너무 흥분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숨을 고르고서는 맹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광풍, 개인적으로  의견은 존중하고 있다. 실제로, 현 작금의 무림은 과거, 정사대전 때보다도 더 위중하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린 무림의 종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아직 태수 대협의 의견조차 묻지도 않은 채,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하지만 전, 태수 형이라면 반드시 앞에 나서서 무림맹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맹주가 그렇게 말하자,  바로 광야가 반박하고 나섰다.
 모양새가 어른에게 건방지게 말대답하는 어린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다들 그러려니했다.

다만, 이제 시선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이렇게 된다면  이야기의 끝을 조종할 수 있는 건 태수밖에 없었다.

'흐음- 맹주가 아직은 조금 날 무림맹의 손님처럼 생각하는군'


태수는 자신과 관련해서 맹주의 표현법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다른 문파들은 무림맹의 토박이 문파나 다름없었지만, 청사파는  탄생한 신생 문파였으니까.
게다가, 무공도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니 기시감을 충분히 느낄 수도 있었다.

"광야, 굳이 네가 이렇게 나서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태수 형-"
"뭐, 내가 해주고 싶은 말들을 네가 아주 잔뜩해준 것 같아, 좋긴 한데 너무 과했어"

태수의 말대로, 광야는 속으로 태수의 생각을 오래 전부터 읽곤 했다.


그 결과는 바로, 이런 응어리진 감정이었다.
힘을 모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며 분명 칼을 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선방을 쳐버렸다.
그 행동에는 태수를 위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지금껏 그가 봐온 태수가 무엇을 할지 감히 예측이 되질 않아 먼저 나선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딱히 내가 그런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부터 앞으로의 있을 이계 침공에 대비해 모든 문파가 힘을 합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보는 바요. 그것을 구상하고 명령을 내리는  굳이 내가 아니라, 원래 그래왔듯 맹주님이 해주시는 게 가장 낫다고 봅니다"
"역시-"

태수의 말에 회의장에 있는 몇몇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확실히, 맹주를 존중하면서도 이계 침공에 외면적이지 않은 균형있는 발언이었다.


"저렇게, 해서는 흐지부지 될  분명한데-"

하지만,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자도 있었다.
저런 식으로 넘어간다면, 비상령이라도 선포하지 않는 이상 계속 흐지부지 될 것이라 보았다.


그 중, 한 명인 곤륜파의 대표, 무가희는 참다 못해 한마디 거들었다.


"맹주님, 무림의 종말을 앞두고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비상령을 선포하세요. 그렇지 않은 이상, 그 이후로도 지금껏 그래왔듯 힘이 모이지 않을 겁니다"


-술렁


갑작스레 끼어든 무가희에 다시 한  회의장이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채워졌다.


비상령 선포라니!
대한민국으로 치면 계엄령이나 다름없었다.

비상령이 선포된 순간, 무림맹 소속의 모든 문파에 보장되었던 자유가 억압된다.
문파의 발전이고, 나발이고 뭐고 간에 모두 무림맹을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과연, 그걸 각 문파의 대표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한 심정으로 그녀는 절대로 대표들이 이 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비상령이 선포된 순간, 자신들의 밥그릇을 무림맹이 정당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그걸 왜 허락하겠는가.

와장창-!

결국, 그녀의 말에 회의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맹주 위지운은 보고 싶지 않은 그 처참한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아직 무림맹은 넘어가야 할 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너무 소란스러우니,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파破하겠다. 회의 및 표결은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올  있도록-"

탕-!

표정을 굳힌 맹주는 화풀이하듯, 망치로 내려친 후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맹주의 말은 곧, 이 사안에 대해 표결을 붙이겠다는 말과도 같았기에 회의장에 있는 이들 역시 입술을 굳게 다물며,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광야, 무슨 마음의 변화라도 있었나?"
"뭐, 딱히. 그런  없었소-"
"그런데, 왜 갑자기 그랬나?"
"그건-"


비상대책 회의가 끝나고 난 후, 어스름한 저녁.


태수는 광야를 데리고, 홍루에 데리고 왔다.
술과 음식, 여자를 주문한 후 떠보듯 광야에게 아까 왜 그랬냐고 물어보았다.

"솔직히 두려웠소. 태수 형을 위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태수 형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되질 않았소. 태수 형이라면 충분히 피바람을 일으킬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먼저 선방을 쳤던 거요-"

'허어-'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니.

태수는 조금 의외의 표정으로 광야를 보았다.
신기한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으며, 역발상적으로 한방 먹일 줄은 몰랐다.


"태수 형은 실제로 어떻소.  말대로, 적당한 기점을 보아 피바람을 일으킬 생각이었소?"
"광풍"
"말해보시오, 태수 형"
"네 말대로다"
"역시-"


광야는 그럴  알았다는 듯, 먼저 온 매화주를 태수의 잔에 따르고 자신의 잔에 따른  너나할 것없이 바로 술로 목을 축였다.

크으~

태수는 술의 쓴맛을 느끼고 있는 광야를 보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적당히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광야, 무림맹 지부에 천마신교의 친딸이 있는 건 알고 있겠지"
"물론이오,  역시 형이 주최한 무림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소? 그런데, 아직도 천마신교로 돌아가지 않았소?"
"무슨 사연이 있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천마신교의 교주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
"흐음-"


광야는 천마신교로 돌아가지 않는 공주와, 그녀를 찾고 있을 천마신교의 교주를 떠올렸다.
그 결과, 너무나 자연스레 교주의 다음 행동이 예측이 되었고 곧 광야의 표정에 놀람이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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