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밤꽃무림 세계에 갇히다
광야의 심각한 표정에 태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나 심각한데-"
"강기공을 사용할 수 있으면 상황이 그나마 좋겠지만, 기공만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소."
"역시, 그렇군"
위지욱 역시 기공이 잘 먹혀들지 않는 오코-King의 가죽 때문에, 다른 부대에서 고전을 겪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태수와 위지욱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고, 당연히 이후로 뭘 해야 할 지 알고 있었던 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호군단장님,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소, 태수 대협. 덕분에, 백호군단의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소."
이후로, 태수는 광야가 안내하는 방향대로 몸을 움직였고 위지욱은 무림맹 전투지침에 따라 현무군단에 지원가기 위해 움직였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
현경의 고수이자, 무림맹의 맹주인 위지운은 들려오는 소식에 눈살을 찌푸렸다.
들리는 소식마다 승전보에 가깝기보다는, 패전에 가까웠기 때문에 입술이 굳게 닫혔다.
"맹주님, 백호군단이 방위 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후, 현무군단에 지원을 갔다고 합니다-!"
"오, 사상자는?"
"지금 집계된 바로는 사망자는 2명 정도에, 부상자는 열댓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사망자의 신원은 확인 중에 있습니다"
"호오-"
맹주의 소식통인 나팔수가 그렇게 백호군단의 승전 소식을 전해주니, 맹주의 입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이계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들었던 첫 승전 소식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백호군단이 사성군단 중 과연 힘이 강력한다고 한들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텐데,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
허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백호군단이 다른 사성군단에 비해 전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백호군단장에 자신의 동생이자, 화산파의 고수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나머지 사성군단이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 백호군단만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게 이상했다.
"청사파의 태수 대협이 갑자기 하늘 위에 나타났었습니다. 그 후, 그의 몸이 푸른 색으로 빛나더니, 주변 일대의 괴물들이 모두 쓰러졌습니다"
"허어-"
그야말로, 무림 고전으로만 들을 수 있는 전설 상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하늘 위로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몸에서 빛이 나 괴물들이 다 쓰러졌다니.
과연, 그런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군-"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호법-"
섬서 위가의 방계이자, 화경의 고수인 위무극이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맹주가 직접 움직이는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자네 실력도 봐야겠군."
"물론입니다, 맹주님."
"후훗"
맹주가 직접 움직이는 마당에, 호법이라고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둘 다, 자신의 실력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건 오랜만의 일.
이계 침공에 의한 피해가 걱정되면서도, 조금은 날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제 24초식, 오의奧義
매화만리향
오코-King들을 상대로 고전을 하고 있는 화산파 고수들 사이에 화산파의 비전인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 매화만리향이 위지운의 손에 의해 펼쳐졌다.
위지운의 몸 속에서 미증유의 내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내공의 형태는 마치, 매화꽃과 비슷했고 매화향과 비슷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화산파에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었다.
-매화검이 극劇에 이르면, 검에서 매화의 향기가 깃든다.
이른 바, 검향의 경지였다.
위지운은 실제로, 검으로 매화향을 낼 수 있는 화산파의 직계 매화검수였다.
검에서 매화향이 난다는 것은, 단순히 겉보기에만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내공이 심후하다는 걸 뜻했다.
"맹, 맹주님이 오셨다-!"
"오시자마자,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 매화만리향이라니-"
맹주가 가장 먼저 온 곳은 화산파의 방위 구역이었다.
화산파의 고수들은 문파의 비전이나 다름없는 매화만리향을 보며, 감탄을 표했다.
초식의 형形을 흉내내는 것은 요령만 있다면 할 수 있지만, 형形에 초식의 의意를 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맹주의 매화만리향은 그런 면에 있어서, 모든 것이 극에 이르렀다.
애초에, 극에 이르지 않으면 매화향이 날 수 없으리라.
심지어, 강기공이었으니 그 위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강기를 머금은 흩날리는 매화는 오코-King의 호신기를 녹여버리고, 본체에 타격을 주었다.
매화만리향이 닿은 부위는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시뻘겋게 부어올랐고 자체적으로 회복이 되질 않았다.
이것은 자체 회복 능력이 굉장히 좋은 오코-King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화산파의 방위구역에 현경의 고수인 맹주와 화경의 고수인 그의 호법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상황이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그 정도로, 오랜만에 날뛰고 있는 둘의 무위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주변 일대를 휘젓고 있었다.
칠절매화검
제 7초식, 오의奧義
암향부동화
화산파의 비전 중 하나인 칠절매화검.
그 중에, 오의인 암향부동화가 위지운의 손에서 펼쳐졌다.
매화만리향은 향긋한 봄의 계절을 담고 있었다면, 암향부동화는 차가운 겨울을 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강기를 머금은 암향부동화는 오코-King의 호신기마저 얼려버린 채, 괴물의 본체를 파괴하는 것과 동시에 얼려버렸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괴물들이 녹거나, 얼린 채로 죽고 있으니 일대의 화산파 고수들은 한동안 넋놓고 맹주의 무위를 구경했다.
"대단해, 암향부동화를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저 맹주라는 자리까지는 절대로 운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니까"
당천휘가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인정받아 당가의 역대급 후지기수였듯이 위지운도 마찬가지로 화산파의 역대급 후지기수였다.
불과, 스무살 초반대에 이르러 화경에 이르렀고 마흔이 되기 전에, 현경의 고수에 이르렀다.
천재의 영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공을 담을 수 있는 몸의 그릇도 포함되겠지만 기본적으로 무공을 어느 정도나 깊게 이해할 수 있는지 작용하는 '오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맹주는 자신의 재능을 아주 잘 살리고 있는 무인이었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제대로 된 형과 의를 놓칠 수 있겠으나 위지운은 세심하게 바느질을 하듯, 아주 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본래 초식의 위력을 살리고 있었다.
'후우'
화산파의 방위구역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후, 위지운은 곧 이어 청성파와 개방이 맡고 있는 방위구역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그의 뜻을 잘 따라주고 있지는 않았다.
현경의 고수였음에도, 내공이 특출나지는 않았고 화경 고수보다는 내공이 조금 많은 정도였달까.
애초에 위지운은 내공의 양으로 승부보기보다는, 질과 무공의 이해도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었다.
전형적인 오성이 뛰어난 천재적인 무인이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은 오랜만이군-'
오랜만에 거하게 움직인 탓에, 몸이 긴장했는지 위지운의 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만약에, 기공을 섞어 사용할 수 있다면 매우 수월하게 괴물들을 사냥할 수 있겠으나 계속해서 강기공만 사용하는 건, 그로서도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맹주님, 괜찮겠습니까?"
허억-
호법인 위무극이 가파오르는 호흡을 다스리지 못하고, 입 밖으로 기식음을 드러냈다.
그 역시, 화경의 고수였지만 강기공만 사용해야 하는 탓에 이미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맹주에게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은 맹주보다는 오히려, 자기자신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런 위무극의 기색을 읽은 맹주는 '고작, 이 정도인가?'라는 눈빛으로 위무극을 바라보았다.
'부끄럽네, 이거-'
위무극은 그런 맹주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다.
호법된 자로서, 모시는 자에게 치부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법, 상황이 급박하다. 움직이기로 한 이상, 운기조식을 할 시간조차 없다.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나가는 이들이 있으니-"
"허억, 역시 맹주님이십니다"
위무극은 이 상황이 치욕스러우면서도,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맹주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대인전이었다면 승부가 길어지지 않는 이상,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괴물과의 전투는 지긋지긋하도록 길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강기공이 아니라면 통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버틸려고 하는 맹주가 대단했다.
안으로는 화산파의 실익을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는 맹주로서 무림 전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그야말로 성군의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광야의 손이나 신체 접촉을 통하여, 광야의 속도를 경험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광야의 신법은 오직, 광야에게만 한정 되어 그 속도가 발휘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둘은 차선책으로 태수의 비행실을 하늘에 띄워 올라탄 후, 거미실을 출수해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식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도대체 무슨 무공인지 모르겠소. 태수 형, 이것도 거미실을 이용한 무공이오?"
"그래. 비행실을 하늘에 띄우는 수법이지-"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보는군. 여태껏, 하늘 위로 올라왔던 그 수법이 능공허도凌空虛道의 경지가 아닌 단순히 비행실에 의존한 것이었다니. 하하-"
하늘 위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경지인, 천상제天上梯 혹은 능공허도는 결코 도달하기 쉬운 경지가 아니었다.
신법에 특화된 심법으로 현경의 고수에 올라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법에 대한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하늘 위의 비행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니.
무림의 무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기가 찰 것이었다.
후욱후욱-
거미실이 지형지물에 부착되어, 그것을 통해 단숨에 날라갈 때마다 시야에 보이는 장면이 달라져있었다.
광야가 사용하는 뇌공에서 비롯된 공간 이동에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나름 충분히 쓸만했다.
게다가, 이건 내공 소모도 거의 없지 않은가?
마치, 거미가 거미실을 출수하듯 당연히 할 수 있는 걸 하는 듯했다.
"태수 형. 아마, 이 근처일 것이오"
"알겠다"
사아악-
태수는 광야의 말에 비행실을 거두고는, 천천히 땅으로 낙하했다.
그 기괴한 모습을 보며, 광야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발바닥에 내공의 벽을 빠르게 형성하여, 그걸 딛고 내려오는 수법은 있어도 저렇게 부드럽게 내려오는 낙하 수법은 처음 보았다.
물론, 자신이야 익히고 있는 신법이 공간 이동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준을 비교하자면 그닥 놀랄 것도 없었지만 저것은 마치, 인간이 아니라 정말 거미처럼 부드럽게 낙하하는 것 같아 기괴했다.
"맞네, 이곳"
바닥에 착지한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은 청성파와 개방의 공동방위구역으로, 그 범위가 상당히 큰 축에 속했다.
전장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강기공을 사용할 수 있는 화경 고수들은 내공이 거의 바닥을 드러나, 순번을 정하여 운기조식을 취해 회복 중에 있었고 그 외에 고수들은 화경 고수들이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방해를 받지 않도록 유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 속에서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고 보법이 뛰어나지 않은 자들은 오코-King의 몽둥이질에 몸이 그대로 박살나버렸다.
푸슈슈슛-
피분수가 터지며, 죽는 것도 이곳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태수는 마침, 오코-King의 몽둥이질에 무력하게 죽는 무림맹 인원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미래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잠룡들이 저렇게 죽어서는 안되었다.
게임 클리어를 위해, 최대한 살아남게 할 필요가 있었다.
"태수 형, 이 근처에 맹주가 있는 것 같소. 아무래도,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긴 한데. 흐음- 그런데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소-"
태수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광야는 신법으로 이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태수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맹주와 그의 호법인 위무극이 고군분투를 치르고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보니, 이미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광야, 넌 맹주에게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라"
"알겠소. 형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뭘, 어떻게 해. 다 내가 먹어야지"
"먹, 먹는다고 했소?"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어서 가기나 해. 맹주는 가서 휴식이나 취하고 있으라고 해라'
태수는 광야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한 번에 쓸어담기 위해 적절한 곳에 비행실을 띄워, 하늘 위에 날아올랐다.
다시 한 번, 노다지를 대거 쓸어담는 시간이 왔다.